2024년 11월 22일(금)

[비영리활동가의 일과 삶의 균형] 스마트워크 시대, 스마트한 활동가 ⑦

“스마트워크는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것이다.”

스마트한 e시대, 일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깔끔한 정장차림을 하고 사무실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분주히 자판을 두들기는 A씨와 편안한 운동복에 워킹화를 신고 강변을 열심히 달리다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는 B씨. A씨는 근무시간에 동호회 단톡방에서 회원들과 주말 모임에 대한 애기를 나누고 있고, B씨는 바이어와 가격 딜을 하면서 중요한 오더를 확정짓고 있다. 둘 중 누가 진짜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스마트워크(smart work)는 현재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들의 최대 관심이슈다. 스마트워크란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체제를 말한다. 전 세계 경제 불황으로 기업들은 건물과 사무실 운영에 드는 비용을 절감하기를 원하고 있고, 직원들은 출퇴근 시간과 비용을 줄여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싶어 하는 욕구가 크다. 여기에 2010년 이후 인터넷, 스마트 디바이스 등 IT 인프라의 획기적인 발달로 스마트워크 실현이 가능해졌다.

픽사베이_출처안밝혀도됨_스마트워크_휴식_일_일과삶의균형
본문과 직접적인 관계 없음

스마트워크의 거점인 네덜란드는 2000년부터 서서히 준비기간을 거쳐 현재는 모든 직장이 스마트워크화 되어 있다. 네덜란드는 유럽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경비절감에 대한 욕구가 높았고, 자연환경도 열악해 세금의 상당액을 해수면 지탱에 사용하고 있어 스마트워크가 절실하였다. 거기에 인터넷 인프라 수준이 높고 젊은 세대들 사이에 새로운 일과 문화를 만들어가는 시대적 변화가 맞물려 스마트워크가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다. 현재 네덜란드는 모든 관공서가 스마트워크로 전환중이고, 500인 이상의 기업의 경우 91%가 원격근무를 하고 있으며, 시스템이 완비된 스마트워크센터 99개를 공공과 민간이 공동으로 구축하여 운영하고 있다.

최근 국내 대기업과 공공기관도 경쟁하듯 스마트워크를 도입하고 있다. 정부의 일가정양립정책의 일환으로 스마트워크를 실행하도록 강권하기도 한다. 스마트워크를 도입했다는 사례들을 들여다보면 깔맞춤이라도 한 듯 스마트워크에 대한 설명이 한결같다. 이들은 칸막이 제거, 전 직원 유연좌석제, 최신 IT 기술 및 애플리케이션, 자율 출퇴근, 재택근무, 혁신적인 스마트워크 센터, 페이퍼리스(Paperless) 시스템, 기업컨텐츠관리(Enterprise Contents Management: ECM) 및 클라우드(Cloud) 환경구축 등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곤 한다.

픽사베이_출처안밝혀도됨_스마트워크_휴식_일_회의_미팅_비즈니스_사무실_오피스_일과삶의균형
본문과 직접적인 관계 없음

우리는 스마트워크를 열심히 외치고 있지만, 오피스만 스마트해지고 정작 조직과 사람은 여전히 덤덤(dumb dumb)하다. 칸막이만 없어졌을 뿐 수직적 위계는 여전하고 협업과 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스마트워크는 또 다른 형태의 고도화된 노동착취로 비춰지기도 한다. 출장 간 이사님이 자료 확인해달라고 주말에 톡을 남기고, 한밤중에 상사와 동료들로부터 업무연락이 버젓이 울려대 맘 편히 쉬기도 어렵다. 스마트워크가 삶의 균형이 아니라 균열을 가져오고 있다.

IT강국인 대한민국에서 스마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건 왜일까. 네덜란드에서는 스마트워크를 ‘헽 뉴 붸르큰’, 즉 ‘새로운 업무 방식(The New Way of Working)’ 이라고 부른다. 네덜란드의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라보뱅크, 보다폰 등 세계적 기업들은 회사 내 공간과 시설뿐만 아니라 업무방식과 조직문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시키는데 집중하고 있다.

진정한 스마트워크란 복잡한 IT기술과 업무환경만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과 사람의 변화에 대한 것이다. 공간과 시간의 경계를 허무는 것은 답답하고 관료적이며 비효율적인 방식을 벗어 던지고 구성원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극대화하여 생산성을 증대하고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함이다. 대한민국에서 스마트워크가 성공하려면 기술, 공간과 더불어 사람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픽사베이_출처안밝혀도됨_스마트워크_디지털_IT_네트워크_휴식_일_일과삶의균형
본문과 직접적인 관계 없음

공익을 추구하며,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하는 비영리단체들도 변화해가는 e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스마트워크를 외면하기만은 어렵다. 스마트워크를 도입해 총체적인 조직변화를 시도하는 곳은 없지만, 기혼여성 활동가들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재택근무나 자율 출퇴근시간제를 도입하거나 IT 인프라를 구축해 오피스환경을 바꾸려는 움직임 등이 보인다. 비영리단체들도 기업이나 공공기관처럼 스마트워크를 공간과 시간, 기술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스마트워크는 비영리단체에게 양날의 검이다. “새로운 일하는 방식”으로서 비영리단체가 처한 조직의 많은 문제점들을 돌파할 수 있는 한 줄기 빛이 될 수도 있고, 잘못 사용하면 짙은 어둠이 될 수도 있다.

스마트워크는 단체재정과 활동가 처우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비영리단체는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회원들의 회비와 기부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재정구조가 열악하고 인력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적은 인원으로 많은 사업을 하다 보니 활동가들은 밤낮 없이 일하고 주말에도 행사를 준비하거나 진행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스마트워크를 도입해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혁신한다면 사무실 임대 및 관리비용을 줄여 단체의 재정 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고, 활동가들의 출퇴근으로 인한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해 지금보다 더 나은 보상을 제공할 수 있다.

스마트워크는 일하는 공간과 업무방식을 변화시켜 조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젊은 활동가들의 경우는 기존의 활동방식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고 유연한 근무방식을 선호하기도 한다. 이제는 현장의 개념이 반드시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가상의 공간이라도 시민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그곳이 바로 실제적인 현장이다. 사무실에 오지 않아도 디지털 디바이스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활동이 가능하다. 답답한 사무실보다 편안한 집, 쾌적한 카페, 탁 트인 야외가 창의적인 발상을 하는데 더 효과적이다. 더욱이 사업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단체 재무, 회계, 후원자, 기부자 등의 관리업무를 맡고 있는 활동가들에게는 더 추천할만하다. 자원봉사자들도 IT 시스템을 활용해 가능한 시간과 장소에서 단체 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스마트워크는 단체의 소통과 협업의 혁신을 도모할 수 있다. 비영리단체의 활동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 속에서 소통과 협업이 중시된다. 온라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앉아야만 일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비영리조직에서 이루어지는 빈번한 면대면 회의는 활동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가장 강력한 킬러다. 회의실 마련, 페이퍼로 된 자료준비, 참석자 참석여부 확인 등 회의 준비부터 회의 진행, 그리고 회의록 정리까지 회의 한 번에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이 만만치 않다. 이러한 시간들만 줄여도 활동가들의 직무소진을 완화할 수 있을 것 같다. 더욱이 1-2시간의 회의에서 결정되어야할 사안들이 착착 논의되어 사업진행에 도움이 되기보다 여기저기서 던져진 의견들로 활동가들은 더욱 혼돈스럽고 착잡하다.

여전히 많은 비영리단체들은 소통과 협업이라는 측면에서 스마트워크에 대해 우려를 가진다. 스마트워크는 소통과 협업이 가능하도록 네트워크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스마트워크를 성공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한국마이크로소프트의 자체 조사에서 스마트워크 도입 이후 개인의 업무 효율성이 20% 상승하고, 형식적 차원의 협업 개선 정도는 20%, 비형식적 차원의 협업 개선 정도는 24% 향상되었으며, 팀 효율성은 27% 증가하였다고 보고하고 있다. 또한, 스마트워크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인식한 구성원들은 커뮤니케이션을 이전보다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비영리단체들도 스마트워크를 통해 소통과 협업의 빈도가 아니라 질(quality)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픽사베이_출처안밝혀도됨_스마트워크_휴식_일_회의_미팅_비즈니스_사무실_오피스_네트워크_소통_대화_일과삶의균형
본문과 직접적인 관계 없음

한편, 스마트워크가 가지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많은 기업과 공공기관들이 스마트워크 흉내내기에 그치면서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는 현상은 비영리단체들에게도 함의를 가진다. 스마트워크는 조직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혁신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퇴보다. 기존 세대에 기존 방식, 기존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다보니 유비쿼터스 오피스 속에 산업화 시대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형국이다.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의사소통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 같은 비영리단체들도 관료적인 한국적 조직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젊은 활동가들은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다 비영리영역을 떠나고 있다.

또한, 스마트워크는 상호간 신뢰를 바탕으로 진정한 권한위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현불가능하다. 눈앞에 안보이면 직원들이 노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드는 리더라면 스마트워크 하지 마라. 활동가들은 자율성과 자기주도성이 강하기 때문에 어떤 타 영역의 구성원들보다 스마트워크에 부합할 수 있다. 엉덩이가 일하는 시대는 지났다.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방식에서 효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일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리더들은 활동가들이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일에서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신뢰하고 지지해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스마트워크는 효율성과 성과를 강조하고 있어 도입 시 단체의 가치와 업무환경, 활동특성을 고려해 조직 내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효율성 차원에서 스마트한 오피스 구축에 치우치기보다 활동가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업무환경이 무엇인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 일하는 공간이 변하고 업무방식이 바뀌어야 스마트워크다. 더불어 활동의 성과를 측정하는 것은 비영리단체들에게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스마트워크 도입 이전과 이후 실제적으로 활동의 질과 단체의 영향력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정량적으로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진정한 스마트워크의 목표는 스마트워크를 통해 개인들의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스마트워크는“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체제”에서 “일하는 시간이나 장소, 방법에 자율성을 토대로 업무의 효율을 극대화하고 이렇게 생긴 잉여시간과 가치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 개개인의 삶과 일의 균형을 이루는 것”으로 재정의 되어야 한다.

스마트한 e시대에는 워크홀릭 활동가가 아니라 스마트한 활동가가 필요하다. 활동가들이 일하는 현실이 워크 하드(work hard)하기 때문에 더욱 더 워크 스마트(work smart)해야 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장자는 기계(機械)는 수고를 덜어주고 시간을 단축시키는 역할, 기사(機事)가 있으나 그 기사 때문에 기심(機心)이 생긴다고 말한다. 일을 쉽고 빠르고 힘들이지 않게 하려는 기심은 결국 순수한 마음과 생명력을 잃게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해가는 영리한 비영리단체들이 많아지는 것도 좋지만, 기심으로 인해 비영리단체가 가진 원형을 잃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열망 넘치는 조직과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 삶의 미션이다. CSR, CSV, 섹터 간 파트너십, 민관협력(거버넌스), 리더십, 전략경영, 성과평가, 소셜임팩트, 일가정양립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영리와 비영리를 넘나들며 강의, 교육, 컨설팅, 연구 등을 하고 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