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선정 기준·돌봄서비스 부족에 지원 사각지대 여전
국회 정책토론회서 실제 돌봄 부담 중심의 제도 개선 촉구
지난해 어머니를 암으로 잃은 한 아동은 매일 혼자 식사를 준비하고 아픈 아버지와 어린 동생을 돌본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정작 공적 지원에서는 소외돼 있다. 초등학생 이하를 대상으로 하는 ‘드림스타트’에는 새로 지원받기 어렵고, 아직 만 13세가 되지 않아 청년미래센터의 지원 대상에도 포함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위기아동·청년법 시행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가’ 정책토론회에서 김승환 초록우산 옹호사업본부 과장이 소개한 사례다. 가족돌봄 아동·청년을 위한 법적 지원체계가 마련된 지 7개월이 지났지만, 현장에서는 이처럼 지원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까다로운 선정 기준과 부족한 돌봄서비스로 청년의 실질적인 돌봄 부담을 덜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번 토론회는 제1회 대한민국 영케어러 위크의 일환으로 마련됐으며,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와 행복한 대한민국이 공동주관했다. 서영석·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 백종헌·이달희 국민의힘 의원, 정춘생·백선희 조국혁신당 의원이 공동주최했다.

지난해 2월 국회를 통과한 ‘가족돌봄 등 위기아동·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은 올해 3월 26일부터 시행됐다. 기존 복지제도가 주로 돌봄을 받는 가족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정작 가족을 돌보는 아동·청년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마련됐다. 이 법은 가족돌봄 아동·청년과 고립·은둔 청년을 공적 지원 대상으로 명시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책임을 규정했다.
법 시행으로 지자체 조례와 시범사업에 의존하던 가족돌봄청년 지원이 국가 차원의 법적 기반을 갖추게 됐다. 위기아동·청년을 조기에 발굴하고 심리상담, 학업·취업 등을 지원할 근거가 마련됐으며, 가족돌봄 아동·청년을 위한 자기돌봄비 지원과 맞춤형 사례관리도 제도화됐다.
◇ 지원 문턱 높고 돌봄 부담 여전…법 시행 후에도 사각지대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러한 제도적 변화만으로 실질적인 돌봄 부담을 덜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까다로운 지원 대상 선정 기준과 돌봄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이지 못하는 지원 방식 등이 주요 문제로 꼽혔다.
현행 지원 기준은 돌봄 대상 가족의 질병·장애 정도뿐 아니라 35세 이상 다른 가족 구성원의 존재 여부, 돌봄 대상자와의 동거 여부 등을 고려한다. 그러나 다른 성인 가족이 있어도 청년이 실질적인 돌봄을 전담하거나, 따로 살면서 병원 동행과 일상 관리를 책임지는 경우도 있다. 실제 돌봄 부담보다 가족 구성과 거주 형태 등 형식적인 기준이 앞선다는 지적이다. 앞서 소개한 아동처럼 제도마다 지원 연령이 달라 발생하는 공백도 있다.
지원 대상에 포함되더라도 실제 돌봄 부담을 줄이기는 쉽지 않다. 자기돌봄비 200만 원의 일회성 지원과 상담·취업 지원 등이 마련됐지만, 정작 아픈 가족을 대신 돌봐줄 서비스가 부족해 청년이 돌봄을 계속 떠안는다는 것이다. 기존 일상돌봄서비스는 본인부담금과 지역별 공급 격차로 이용에 제약이 있고, 갑작스러운 돌봄 공백에도 대응하기 어렵다. 지난 3월 시행된 통합돌봄제도와의 연계도 미흡한 상황이다.
조기현 돌봄청년커뮤니티 N인분 대표는 돌봄 공백이 청년의 직장생활까지 위협한다며 ‘돌봄이 얼마나 잘 보장돼 있느냐’가 노동권과 직결된다고 짚었다. 실제로 조 대표가 소개한 한 청년은 공공기관에 취업해 가족돌봄과 일을 병행하려 했지만 결국 퇴사했다. 중증 와상 상태인 어머니가 응급실에 가거나 활동지원사가 갑자기 나오지 못하면 회사를 비워야 했고, 가족돌봄휴가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아 상사의 배려에 의존해야 했다.
◇ 실제 돌봄 부담 중심으로 지원…공적 돌봄·지역 연계 강화해야

이날 현장에서는 법 시행이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려면 지원 대상 선정 기준과 돌봄서비스, 지역 지원체계를 함께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노혜진 강서대 교수는 동거 여부나 가족 구성보다 실제 돌봄 부담을 중심으로 지원 대상을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가족 전체의 돌봄 상황을 파악할 통합 평가도구를 마련하고, 아동이 성인이 되거나 돌봄이 시작·종료되는 시점에도 재평가할 것을 제안했다.
청년에게 집중된 돌봄 부담을 사회가 나눠야 한다는 요구도 이어졌다. 이를 위해 일상돌봄서비스의 비용·신청 부담을 낮추고, 통합돌봄과의 연계 및 긴급 대체돌봄 마련을 통해 청년의 휴식을 보장하는 방안 등이 제시됐다. 함선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 많이 돌보고 있는 사람들을 더 돌보게 하는 정책이 아니라 안 돌보고 있는 사람들을 돌보게 해야 한다”며 “불합리한 분배 구조를 개선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기관 간 역할을 정비해 연령에 따라 담당 기관이 바뀌거나 가족돌봄이 끝난 뒤에도 지원이 이어지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김승환 초록우산 옹호사업본부 과장은 시군구가 학교·드림스타트 등과 함께 아동·청년 발굴과 사례관리를 맡고, 광역 청년미래센터는 고위험 사례 지원과 자원 연계에 집중하도록 제안했다. 이 밖에도 청년과의 신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전담인력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 당사자가 참여하는 별도 심의기구 마련, 지원사업의 실질적인 효과 평가 등이 과제로 꼽혔다.
이화영 보건복지부 청년정책팀장은 현장 의견을 토대로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팀장은 “지원 대상을 유연하게 선정할 수 있다고 봤지만 현장에서는 적용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다만 지원 대상은 명확해야 하고, 다른 복지제도와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돌봄서비스 공급의 한계를 짚으며 드림스타트 등 기존 제도와의 연계를 보완하고, 필요하면 법령 개정도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올해 안에 청년미래센터를 전국 17개 시도로 확대하고, 내년에는 지역 공공·민간기관과의 협력체계를 강화하는 한편 전담인력의 처우 개선도 모색할 계획이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