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재정·서류 미비 이유로 불허했지만 법원 “근거 부족”
성평등가족부서도 유사 갈등…비영리법인 설립허가제 위헌 심판대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비영리법인 설립을 거부한 판단이 잘못됐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문체부는 사업 지속 가능성과 일부 서류 미비를 이유로 들었지만, 법원은 이를 설립허가를 거부할 충분한 근거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서울행정법원 제8부는 지난 12일 김덕산 한국공익법인협회 이사장이 사단법인 플래닛주민센터 설립허가 거부를 두고 문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지난해 3월 문체부의 비영리법인 설립허가 거부처분을 취소하라고 했다.
◇ 재정·사업 지속성 이유로 거부…법원 “근거 부족”
주식회사 플래닛주민센터는 봉사와 여행을 결합한 ‘소셜트립’을 운영해온 영리기업이다. 김덕산 이사장과 박찬우 대표는 이 가운데 취약계층 봉사여행 등 공익성이 강한 사업을 별도 비영리법인에서 운영하기 위해 2024년부터 문체부에 사단법인 플래닛주민센터 설립허가를 신청했다.

문체부가 주요하게 문제 삼은 것은 재정 기반과 사업의 지속 가능성이었다. 신청 측은 김 이사장의 출연 약정액을 500만 원에서 5000만 원으로, 박 대표는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늘려 총 6000만 원을 초기 자산으로 제시했다. 어느 정도의 재원을 갖춰야 하는지도 물었지만, 별도로 정해진 금액 기준은 없다는 답을 받았다는 게 신청 측 설명이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서는 플래닛주민센터보다 적은 출연금으로 설립허가를 받은 사례도 확인했다. 김 이사장은 “우리보다 적은 곳 중에는 출연금이 1800만 원, 4100만 원, 5600만 원인 곳도 있었다”고 짚었다. 이후 재신청 과정에서는 기존 6000만 원에 더해 향후 5년간 총 1억 원을 추가 출연하겠다고 약정했지만, 문체부는 다시 재정 안정성을 이유로 허가하지 않았다.
법원은 기존 사업 실적과 수입·지출 계획 등을 고려하면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단정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은 기존 월드비전·SK이노베이션 사업 성과 등을 고려하면 계획한 사업의 “실현가능성이 적다고 보이지는 않는다”며, 수입 재원의 현실성과 지속가능성이 부족하다는 문체부 판단을 “합리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문체부는 정관과 창립총회 회의록 일부에 날인이 빠졌다는 점도 거부 사유로 들었다. 신청 측은 서류를 낼 당시 날인이나 인감증명서 등 형식적인 요건은 필요하면 바로 보완하겠다는 뜻을 담당자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체부는 별도로 보완을 요구하지 않은 채 이를 거부 사유에 포함했다.
재판부는 날인 누락 등이 설립허가를 거부할 정도의 사유는 아니라고 봤다. 판결문은 해당 사항들이 “쉽게 보완될 수 있는 사항”이라며 신청인에게 보완할 기회를 주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 2년 가까이 이어진 허가 절차…공익사업도 발 묶였다
설립허가 절차가 길어지면서 후원회원 관리에도 어려움이 생겼다. 플래닛주민센터는 법인 설립을 준비하며 약 100명의 후원회원을 모았고, 일부에게는 인감증명서 등 관련 서류도 요청했다. 그러나 허가가 지연되면서 계획한 활동을 시작하지 못했고, 후원회원들에게 진행 상황을 알리기도 쉽지 않았다. 박 대표는 “공익성을 믿고 이름을 올려주신 분들에게 어려운 부탁을 드리고도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한 것이 개인적으로도, 회사적으로도 많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비영리법인에서 추진하려던 사업 가운데 일부는 다른 방식으로 돌리거나 포기해야 했다. 취약계층과 소멸위기 지역을 대상으로 한 봉사여행 등은 다른 비영리법인이나 지방자치단체와 협업해 진행했고, 여건이 맞지 않는 사업은 추진하지 못했다.
결국 처음 구상과 별도로 다른 법인을 세웠다. 김 이사장은 설립허가를 더 기다리기 어려워 경남에서 다른 이름의 법인을 설립했고, 당초 계획했던 사업과 일부 겹치는 활동을 그곳에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설립허가를 둘러싼 과정은 당시 이미 2년 가까이 이어진 상태였다.

◇ 반복되는 비영리법인 설립 갈등…민법 32조는 헌재로
비영리법인 설립허가를 둘러싼 갈등은 문체부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다. 김 이사장은 청소년단체 ‘청소년직접행동’을 사단법인으로 설립하기 위해 2024년 성평등가족부(과거 여성가족부)에 허가를 신청했다가 거부되자 별도의 행정소송을 냈다.소송 과정에서는 비영리법인 설립허가의 근거가 되는 민법 제32조 자체의 위헌 여부가 쟁점이 됐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2월 민법 제32조 가운데 비영리 사단법인 부분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민법 제32조는 비영리 사단·재단이 법인이 되려면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도록 한다. 그러나 현행 법령에는 설립허가의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대법원도 허가 여부가 주무관청의 정책적 판단에 따른 재량에 맡겨져 있다고 본 바 있다. 위헌제청을 결정한 재판부는 신청자가 어떤 요건을 갖춰야 허가받을 수 있는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봤다. 결정문은 민법 제32조가 “아무런 기속적 지침 없는 주무관청에 대한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인가주의나 준칙주의처럼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법인 설립을 인정하는 방식으로도 같은 공익을 달성할 수 있다고 봤다. 민법 제32조의 위헌 여부는 현재 헌법재판소가 심리 중이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