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제 해결한 만큼 보상…‘성과기반금융’ 한국에도 통할까

SK 사회적가치연구원(CSES), 글로벌 25개 혁신 사례로 OBF 개념·실행 모델 제시
“한국형 정책 재설계의 가이드라인 될 것”

“사회문제를 해결한 만큼 보상하자는 아이디어에는 누구나 공감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늘 비슷한 질문이 뒤따랐죠. ‘해외의 실제 성공 사례가 있나요?’, ‘우리 정책에도 당장 적용할 수 있나요?’라는 것입니다.”

SK 사회적가치연구원(CSES)이 12일 펴낸 ‘성과기반금융(OBF: Outcomes-Based Finance)-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정책수단’은 이런 현장의 질문에서 출발했다. OBF는 사회문제 해결에 투입된 예산이나 활동량이 아닌, ‘실제 창출해 낸 성과’를 기준으로 자금과 보상을 연계하는 방식을 뜻한다. 이때 보상은 현금뿐 아니라 대출금리 우대 등 다양한 금융 조건으로 나타날 수 있다.

사회적가치연구원은 2015년부터 사회적기업이 만들어낸 사회성과를 측정하고 그 크기에 비례해 현금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사회성과인센티브(SPC)’를 실험해왔다. 이후 성과 기반 보상을 정책 영역으로 확장하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한 가지 과제를 확인했다. 개념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외에서 실제로 어떻게 적용됐으며 국내 정책에는 어떤 방식으로 접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사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공저자인 정명은 사회적가치연구원 실장은 “기사와 연구자료 등을 통해 OBF를 꾸준히 소개하면서 개념 자체는 조금씩 알려졌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었다”며 “실제 정책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한데 모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책은 이를 위해 OBF를 세 가지 질문으로 풀었다. 어떤 사회문제를 다룰지 ‘WHAT’, 어떤 원리로 성과에 보상할지 ‘LOGIC’, 어떤 방식으로 실행할지 ‘HOW’다. 고용·보건·교육·환경·사회포용 등 7개 분야의 글로벌 사례 25개를 이 틀에 맞춰 정리했다.

정책 실무자가 자신의 분야에서 바로 참고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보건 정책 담당자라면 기존 정책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해외에서는 어떤 성과를 측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보상했는지를 따라가며 정책 적용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미 성과가 충분히 축적된 사례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험적 사례를 함께 담았다. 대표적인 성과기반금융 사례는 영국의 ‘피터버러 사회성과연계채권(SIB)’이다. 민간 투자자가 출소자의 재범 방지 프로그램에 먼저 자금을 투입하고, 실제 재범률이 낮아지는 성과가 확인되면 정부가 이에 따라 투자금을 상환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성과가 발생했을 때 비용을 지불하고, 민간은 사회문제 해결 성과와 금융을 연결한다.

공저자인 유미현 사회적가치연구원 팀장이 특히 주목한 사례는 브라질 세아라주의 교육정책 ‘PAIC’다. 세아라 주정부는 학생들의 문해력과 학업성취도에 따라 기초지자체에 배분하는 재정의 일부를 차등 지급했다. 유 팀장은 “성과에 따라 받은 재원의 일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데, 세아라주는 이를 다시 교육에 투자했다”며 “성과에 비례해 보상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세아라주는 이후 초등학생의 기초 문해력과 학업성취도를 끌어올렸고 브라질 교육발전지수(IDEB)에서도 상위권 지역으로 올라섰다.

연구진이 책을 쓰며 특히 고민한 것은 ‘파이낸스(Finance)’라는 표현이었다. ‘펀딩(Funding)’이 한 주체가 자금을 지원하는 데 무게가 있다면, 파이낸스는 누가 돈을 대고 성과를 측정·검증하며 이를 구매할지까지 연결해 돈이 계속 흐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정명은 실장은 “한 번 지원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가 반복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고 이야기했다.

◇ 한국형 OBF, 기존 정책의 ‘재설계’가 해법

사회적가치연구원이 SPC 실험을 시작한 지 10여 년. 연구진은 그사이 성과 기반 보상을 바라보는 정책 환경도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저성장 속에서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는 늘어나는 반면 정부와 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에는 한계가 생기면서, 얼마를 투입했느냐보다 같은 자원으로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었느냐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기업 사회공헌에서도 지원 규모 자체보다 사업이 만들어낸 실제 변화를 측정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정책 현장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가치연구원과 SPC 협력사업을 진행하는 서울시는 올해부터 2·3차년도 참여 기업에 최저 보상액을 두지 않고 측정된 사회성과만큼 보상하는 방식을 적용하기로 했다. 유미현 팀장은 “서울시는 성과에 비례해 보상한다는 제도의 취지를 보다 충실하게 반영하자는 데 적극적이었다”고 말했다.

연구진이 궁극적으로 제안하는 방향은 해외의 성과기반금융 모델을 그대로 들여오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이미 운영 중인 정책과 재정 수단을 성과 중심으로 다시 설계해보자는 것이다. 정명은 실장은 “SPC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며 “각 기관이 이미 가지고 있는 제도와 자원을 조금씩 바꿔도 더 큰 성과가 나오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교육·사회포용 분야 OBF 사례인 ‘기가 프로젝트’는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학교에 통신망을 구축한 뒤 실제 연결 여부와 품질을 확인하고, 검증된 성과를 크레딧으로 전환해 투자가 이어지도록 설계했다. /유니세프

대표적인 것은 유니세프와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기가 프로젝트’다. 각국 정부와 개발금융기관이 재원을 마련하고 통신사업자가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학교에 통신망을 구축한다. 이후 실제 연결 여부와 품질을 계속 확인해 검증된 성과를 거래 가능한 크레딧으로 전환한다. 2025년 기준 54개국에서 220만 개 이상의 학교가 매핑됐고, 13만6000개 이상의 학교가 실시간 연결성 데이터를 보고하고 있다.

연구진은 이 방식이 한국에서는 농산어촌이나 도서벽지의 AI·디지털 교육 격차를 줄이는 데 응용될 수 있다고 봤다. 인터넷망 자체는 이미 널리 갖춰진 만큼, 지역별 디지털 교육환경을 데이터로 파악하고 필요한 투자를 연결하는 식이다. 정명은 실장은 “대상과 문제의 종류가 달라도 방법론은 얼마든지 적용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책이 정책 현장에서 새로운 제도를 검토하거나 기존 사업을 설계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자료로 쓰이길 바란다고 했다. 해외 사례를 찾고 정책의 필요성을 설명해야 하는 실무자들에게 판단과 설득의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책을 펴낸 또 다른 이유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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