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독스 액션세미나 ‘공공기관 경영평가·ESG 성과 관리 전략’ 개최
“기관 특성 반영한 절대평가·ESG 성과관리 필요”
40년간 유지돼 온 공공기관 경영평가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단순 점수 매기기식의 획일적인 상대평가를 벗어나, 기관 특성에 맞춘 절대평가와 ESG 가치 창출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주장은 11일 서울 연세대학교 백양누리에서 언더독스 주최, 한국사회가치평가(KSVA) 공동주관으로 열린 ‘액션세미나’에서 나왔다. 이날 ‘공공기관 경영평가 동향과 ESG 정책 방향’을 주제로 기조발제에 나선 라영재 건국대 교수는 경영평가 제도의 한계를 짚으며 평가 체계의 전환을 촉구했다.

◇ “평가를 위한 경영”…늘어난 지표와 상대평가가 만든 부작용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1984년 공공기관의 방만경영을 통제하고 책임경영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됐다. 매년 공기업·준정부기관 등의 경영 실적을 평가해 등급을 매기고, 그 결과를 성과급과 기관 운영에 반영하는 제도다. 라 교수는 “경영평가가 공공기관의 관리 수준을 높이고, 경영 시스템을 표준화하는 데 기여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제도가 확대되면서 평가 대응 자체가 공공기관 경영의 중심이 됐다는 점이다. 라 교수는 과거 250~300개 수준이던 정부 평가가 최근 450개 안팎까지 늘어났다고 설명하며 “대한민국은 평가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평가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평가가 기관의 장기 투자나 구조개혁보다 단기 실적과 점수 관리에 집중하게 만드는 한계도 있다”고 했다.
라 교수는 특히 상대평가의 한계를 짚었다. 기관의 규모와 사업 성격이 다른데도 같은 틀 안에서 비교하다 보니, 각 기관의 고유한 역할과 성과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점수 차이가 작아 등급이 갈리는 문제도 언급했다. 라 교수는 “준정부기관은 1등과 하위 기관의 점수 차이가 3~4점 정도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며 “최종 등급 산정 과정에서 한 끗 차이로 B가 되기도 하고 C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평가가 정교해질수록 기관 간 실질 차이보다 보고서 작성 능력과 지표 대응력이 결과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기관 규모·특성 고려한 ‘맞춤형 절대평가’ 도입 필요성
라 교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점수와 등급 중심에서 컨설팅과 소통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핵심은 기관별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평가와 절대평가다. 기관끼리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 아니라, 각 기관이 맡은 역할과 목표를 기준으로 성과를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우선 상장 공기업부터 절대평가를 도입하는 방안을 주문했다. 상장 공기업은 시장의 감시를 받는 동시에 공공성을 수행하는 이중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기존처럼 다른 공공기관과 단순 비교하기보다 기관별 사업 구조에 맞춘 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내 공공기관끼리 비교하는 대신 해외 동종 기업을 벤치마킹하는 방식도 제시됐다. 에너지 공기업이라면 국내 기관 간 순위보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과의 비교를 통해 재무 건전성, 공급 안정성, 탄소중립 대응 등을 살펴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평가 주기도 바뀌어야 한다고 봤다. 라 교수는 매년 반복되는 단기 평가보다 3~5년 단위의 중장기 성과를 봐야 한다고 했다. 특히 공공기관의 주요 사업은 단기간에 성과가 드러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기관 설립 목적에 맞는 핵심성과지표(KPI)를 중심으로 누적 성과와 정책 기여도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무성과 평가에 대한 전제도 짚었다. 라 교수는 “정원, 인건비, 예산, 요금을 통제하면서 재무성과만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전력·가스요금처럼 정부 통제를 받는 기관이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기관은 정책적 역할 때문에 재무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기관에 재무지표 가중치만 높이면, 기관이 통제하기 어려운 정책 변수까지 경영 실패로 평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ESG, ‘몇 명 지원’보다 ‘무엇이 달라졌나’ 봐야
ESG에 대해서는 또 하나의 점수 지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정책이나 사업이 생길 때마다 이를 경영평가 지표로 추가하면서 제도가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라 교수는 ESG 평가가 기관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면 형식적 대응으로 흐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철도공사가 과거 동반성장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던 사례를 언급했다. 동반성장 평가는 일반적으로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상생 노력을 보는 방식으로 설계되지만, 철도공사처럼 사업 구조가 일반 제조기업과 다른 기관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료집은 공공기관 ESG 경영의 핵심 변화로 ‘단순 공시’에서 ‘설명 가능한 데이터’로의 전환을 제시했다. 그동안 공공기관 ESG 정보는 알리오(ALIO) 등을 통해 공개돼 왔지만, 예산 규모나 참여 인원 등 단편적 정량 지표가 중심이었다. 국민이 기관의 실제 성과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라 교수는 “중요한 것은 단순 산출(Output)이 아니라 결과(Outcome)”라고 제언했다. 예를 들어 ‘취약계층 1000명을 지원했다’는 수치만으로는 부족하며, 지원 이후 생활 안정, 고용 유지, 사회적 비용 절감 등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실행 방안으로는 세 가지가 제시됐다. 기관별 주요 공익사업을 표준 가이드라인에 맞춰 재진단하고, 필수 공시 항목과 기관 특성을 반영한 자율 항목을 구분해야 한다. 또한 정량 지표를 화폐가치 등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내야 한다. 아울러 내부 자체 평가만으로는 신뢰 확보에 한계가 있는 만큼 외부 전문 평가 프로토콜을 활용해 데이터 산출 과정의 객관성을 높여야 한다.
◇ “ESG는 홍보실 업무 아닌 전략 부서 의제”
라 교수는 ESG 대응을 홍보실이나 사회공헌 부서 업무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별도 ESG 보고서를 만들어 평가위원에게 제출하는 방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관의 경영전략, 주요 사업, 경영실적보고서 안에서 ESG 성과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내부평가의 중요성도 거론했다. 외부 경영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내부 성과관리 체계가 먼저 갖춰져야 한다는 취지다. 라 교수는 “경영평가는 내부평가가 전제되지 않으면 외부평가도 잘 나올 수 없다”며 기관의 전략, 내부 시스템, 사업 성과가 서로 연결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