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켈리 클레멘츠(Kelly T. Clements) 유엔난민기구 부최고대표
“관심의 공백은 곧 안보와 생명의 공백입니다.”
켈리 클레멘츠(Kelly T. Clements) 유엔난민기구(UNHCR) 부최고대표가 <더나은미래>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로힝야 난민 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로힝야는 미얀마 라카인주에 거주해 온 무슬림 소수민족이다. 1982년 시민권법 개정 이후 시민권을 인정받지 못한 채 차별과 박해를 받아왔다. 2017년에는 라카인주 군사 작전이 일어나며 약 75만 명이 방글라데시로 피신했다. 이후 2024년 미얀마 내 무력 충돌이 다시 심화되면서 약 15만 명이 추가로 국경을 넘었다.
국제사회는 로힝야 공동대응계획(Joint Response Plan·JRP)을 통해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JRP는 방글라데시 정부 주도로 유엔 기구와 인도주의 파트너들이 공동으로 수립하는 통합 대응 체계다. 현재 방글라데시 현지 NGO 52곳을 포함한 총 98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더나은미래>는 공동 대응에 참여하고 있는 클레멘츠 부최고대표를 통해 로힝야 난민의 현실과 국제사회의 과제를 들여다봤다.
◇ 늘어난 난민, 줄어든 인도주의 지원
로힝야 난민촌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난민 거주지 중 하나다. 현재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와 바산차르의 33개 캠프에 약 120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여성과 아동이 전체의 약 77%를 차지한다.
난민 가구의 35%는 식량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동과 경제활동에 제약이 있어 스스로 생계를 꾸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도주의 지원은 줄고 있다. 2026년 공동대응계획 예산은 전년 대비 26% 축소된 총 7억1050만 달러(약 1조870억 원)으로 책정됐다. 클레멘츠 부최고대표는 이를 두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만을 반영한 결과”라고 표현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2026년 로힝야 대응 재원 부족액을 약 1억4700만 달러(약 2250억 원)로 추산했다.
클레멘츠 부최고대표는 글로벌 경제 위기와 다른 지역의 급박한 비상사태가 겹치면서 로힝야 인도주의 재원이 급감했고, 난민들이 ‘자립과 생존의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현장에서 배급하는 식량 구성을 다양화하기 어려워지고, 임시 거처 유지·보수 자재 공급도 지연되고 있다”며 “난민 가족들이 살아남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배급이 줄고 경제활동 기회가 감소하면서 조혼과 아동 노동이 늘고 있으며, 더 나은 삶을 찾아 위험한 해상 이동을 감행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2026년 3월에도 270명 이상이 탑승한 선박이 전복돼 9명만 생존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클레멘츠 부최고대표는 이 문제가 로힝야 내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기화된 난민 위기를 방치하는 것은 한 국가나 민족, 집단의 불행을 외면하는 것을 넘어 지역 전체의 안정과 안보를 흔드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짚었다.
◇ 부족한 재원 속 강제되는 선택과 집중
지원 수요는 커지고 있지만 재원은 줄고 있다. 로힝야 공동 대응과 유엔난민기구는 여성 가장 가구, 장애인, 노인, 아동 등 가장 취약한 계층에 자원을 우선 집중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클레멘츠 부대표는 “‘아이들의 교육 예산을 줄여 오늘 당장 먹일 식량비를 채워야 하는가’, ‘여성과 아동을 위한 전용 보호 시설 운영을 줄여 식수 위생 시설을 고쳐야 하는가’처럼 생존과 미래 가치 사이에서 저울질해야 하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며 “이는 고통스러운 선택의 연속”이라고 밝혔다.

보호 영역의 최우선 과제는 취약 계층의 안전 확보와 공동체 중심의 예방 체계 구축이다. 성 기반 폭력 예방과 생존자 지원, 아동 보호 등이 대표적이다. 클레멘츠 부최고대표는 “난민촌 내 자원이 줄어들면 치안이 불안정해지고, 여성과 아동 등 취약 계층이 폭력과 인신매매의 표적이 되기 쉽다”며 “가장 취약한 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보호 활동의 출발점”이라고 전했다.
효율적인 대응 역시 중요한 과제다. 수많은 기관이 공동 대응에 참여하는 만큼 역할 중복과 자원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유엔난민기구는 ‘부문별 섹터 시스템(Sector System)’을 운영하고 정기 공조 회의를 통해 이를 조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현지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방글라데시 NGO의 참여와 권한을 확대하는 ‘지역화(Localization)’ 전략도 추진하고 있다. 클레멘츠 부대표는 “현지 파트너들은 지역사회의 필요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며 “이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은 보다 지속가능한 인도주의 대응을 위한 핵심 요소”라고 말했다.
◇ 오늘의 생존을 넘어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다만 로힝야 대응의 목표가 단순히 현재의 생존을 지원하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과제는 ‘오늘을 버티는 일’에서 ‘내일을 준비하는 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난민과 수용 지역사회가 함께 지속 가능한 삶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수십만 명의 난민이 장기간 머물면서 방글라데시 수용 지역사회 역시 상당한 부담을 떠안고 있다. 난민 지원과 함께 지역 주민을 위한 지원이 병행돼야 하는 이유다. 클레멘츠 부최고대표는 난민과 지역사회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난민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의 미래도 주요 과제로 떠오른다. 클레멘츠 부최고대표는 “캠프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삶의 목적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며 “그들이 단순히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언젠가 공동체를 이끌어갈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유엔난민기구는 미얀마 교육과정 도입과 기술 교육 등을 통해 난민들이 귀환 이후에도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클레멘츠 부최고대표는 단순히 지원 규모를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라도 난민들이 합법적으로 이동하고 경제활동에 참여해 스스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생계의 자유’가 점진적으로 허용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궁극적으로는 로힝야 난민의 무국적 상태가 해소되고,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회복돼야 한다”며 “그것이 안전과 존엄을 위한 핵심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미얀마로의 귀환이다. 그러나 현재 라카인주의 분쟁 확산으로 조기 귀환은 어려운 상황이다. 유엔난민기구는 미얀마 현지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한편, 난민들이 귀환 후 단절 없이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교육과 기술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클레멘츠 부최고대표는 “로힝야 난민들은 자발적이고 안전하며 존엄이 보장되는 방식으로 고향에 돌아갈 권리가 있다”며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성급한 귀환은 또 다른 비극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클레멘츠 부최고대표는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소외된 채 신음하고 있는 전 세계의 잊힌 위기들에도 균형 있는 관심과 연대를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