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일주일마다 총성이 울린다”… 끝나지 않은 난민촌 이야기

미얀마·아프간·우크라 난민촌 장기화
지원 축소, 생활고에 범죄 노출까지

방글라데시 남부 콕스바자르 난민캠프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돈다. 일주일에 한명씩 사람이 죽어나간다는 것이다. 인도적 지원을 위해 로힝야 난민캠프에 머물고 있는 이승지(28)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는 “매주 총기 사고로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며 “작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난민촌인 콕스바자르 난민캠프가 새로운 위기에 직면했다. 로힝야족 난민 커뮤니티 내 무장단체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외부 불법 통로로부터 총기를 들여오면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난사한다고 하더라고요. 방글라데시 당국도 긴급구호보다 치안 유지를 위한 군인 인력을 충원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쿠투팔롱(Kutupalong) 캠프에 사는 로힝야족 난민들이 텐트 밖에서 요리를 하고 있다. /UNHCR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쿠투팔롱(Kutupalong) 캠프에 사는 로힝야족 난민들이 텐트 밖에서 요리를 하고 있다. /UNHCR

콕스바자르 난민촌에는 미얀마에서 탈출한 로힝야족 96만명이 머물고 있다. 지난 2017년 8월 미얀마군의 집단 학살을 피해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다. 캠프 생활도 벌써 7년째. 기약 없는 하루를 보내던 난민들은 이제 ‘범죄와의 전쟁’을 치뤄야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에는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이 지원을 줄였다. WFP는 난민 1인당 매달 12달러(약 1만5400원) 수준의 식량 바우처를 지원해왔는데, 이달부터 지원 규모를 8달러로(약 1만원) 대폭 삭감했다. 그윈 루이스 유엔상주조정관은 독일 뉴스통신 dpa와의 인터뷰에서 “자금 부족으로 로힝야 난민 지원 예산 5600만달러(약 730억원)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로힝야족처럼 전쟁·기후위기 등으로 삶의 터전을 떠난 인구는 지난해 말 기준 1억840명에 달한다. 역대 최고 수준으로, 전 세계 인구 74명당 1명 꼴이다. 더나은미래는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난민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단법인 아디, UNHCR, 국제이주기구(IOM) 소속 활동가들과 화상·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현지 활동가들이 전하는 미얀마·아프간·우크라 난민들의 상황은 해마다 악화하고 있지만,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또다른 재난에 떠밀려 점점 잊히고 있다.

로힝야족 난민의 하루 생활비 ‘4700원’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 있는 로힝야 난민캠프는 총 34개 구역으로 나뉜다. 수용해야 하는 난민이 100만명에 이르다보니 거주하는 구역을 다 분리시켜 놓은 것이다. 한 구역당 난민 3만여명이 거주한다.

난민 수용 규모도 전 세계에서 가장 크다. 난민촌 시작점인 쿠투팔롱(Kutupalong) 캠프부터 방글라데시 국경 지대인 테크나프(Teknaf) 캠프까지의 거리만 해도 50㎞. 서울 중구와 용산시를 잇는 거리다. 이승지 활동가로부터 전해 들은 로힝야 난민캠프의 모습은 마치 작은 마을과 같았다. 우선 캠프 내 구역별로 교육시설, 병원, 시장 등이 마련돼 있다. 로힝야족 난민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NGO·정부에서 운영하는 기관에 취업해 일을 하거나 가내수공업 제품을 시장에서 판매한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로힝야 난민캠프에 있는 사단법인 아디의 여성지원센터 ‘첸티카나’. 첸티카나에서는 심리지원프로그램과 생계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문해·수리 교육을 제공한다. /사단법인 아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로힝야 난민캠프에 있는 사단법인 아디의 여성지원센터 ‘샨티카나’. 샨티카나에서는 심리지원프로그램과 생계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문해·수리 교육을 제공한다. /사단법인 아디

아디는 코이카의 지원을 받아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 및 수용공동체 여성 심리사회적 회복역량강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사업의 일환으로 ‘평화의 집’이라는 의미의 여성지원센터 ‘샨티카나’를 운영 중이다. 이승지 활동가에 따르면, 샨티카나에 상주하면서 근무하는 이들은 모두 로힝야족 여성들이다. 이들은 하루 평균 5시간 일하고 일당으로 400타카, 한화 약 4700원을 번다. 방글라데시 정부가 난민캠프를 대상으로 설정한 규제에 따라 최대 시급 80타카(약 950원)까지밖에 받지 못한다.

“로힝야족은 결혼과 출산을 축복으로 여기기 때문에 주로 대가족을 이루는데,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성인이 많지 않으면 부양해야 하는 가족들에 큰 부담을 느껴요. 또 부족한 식량 구매비를 생활비에서 충당하느라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죠.” 이승지 활동가는 “미얀마에서 로힝야족 난민들이 넘어온지 5년이 지나면서 시스템이 체계화됐고, 분위기도 훨씬 안정됐다”면서도 “마약 범죄, 총기 사건과 같은 새로운 위기가 떠오르고 있다.”고 했다. 이어 “최근에는 WFP가 식량 바우처 지원 규모를 줄이면서 난민들이 식량·식수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로힝야족 난민들은 마약, 인신매매 등 범죄에 연루되기도 한다. 생계유지가 어렵다보니 큰 돈을 벌기 위해 범죄에 손을 대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방글라데시 정부는 로힝야족 난민을 미얀마로 송환하려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1차 송환 후보는 1140명. 올해 말까지 6000명을 미얀마로 송환한다는 계획이다. 이승지 활동가는 “방글라데시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물가가 오르는 등 경제난 악화에 난민들이 점차 부담이 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로힝야족 난민들을 미얀마 본국으로 송환하려고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너무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정부가 미얀마로 송환하려는 난민 리스트는 이미 다 정해진 상태예요. 난민들은 ‘미얀마에 돌아가면 죽는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다시 귀국한다고 해도 시민권을 되찾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쿠데타의 여파로 안전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미얀마로 돌아가는 걸 꺼리는 분위기죠.”

이혜원 유엔난민기구(UNHCR) 보호담당관이 파키스탄으로 넘어온 아프간 난민 아동들과 얘기 중이다. /UNHCR
이혜원 유엔난민기구(UNHCR) 보호담당관이 파키스탄으로 넘어온 아프간 난민 아동들과 얘기 중이다. /UNHCR

기후위기, 취업난으로 정착 어려움 겪어

재난 발생으로 인해 주변국으로 피난한 난민들은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다. 기후위기로 제2의 터전을 잃거나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해 생계난에 빠지기도 한다. 지난 2021년 8월 아프간에 약 20년간 주둔한 미군이 철수하며 탈레반은 정권을 다시 잡았다. 그러면서 폭력 통치를 일삼고, 아프간 내 여성·아동 인권을 유린했다. 대부분의 공립학교에서 중·고등학교 여학생의 등교가 금지됐고, 여성이 취업할 수 있는 곳도 학교와 병원 등으로 제한됐다. 지난해 12월에는 여성들이 국내·외 NGO에서 활동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공공장소에서는 몸을 가리도록 명령했다. 또 월드비전이 19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간의 아동 노동률은 47%, 학업 중단률은 46%에 달했다. 아동 2명 중 1명은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프간 난민들은 정부의 탄압을 피해 피난길에 올랐다. 화물차나 배를 얻어 타고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가거나 주변국으로 대피했다. 특히 난민들은 아프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파키스탄으로 많이 이동했다. 이혜원(29) UNHCR 보호담당관에 따르면, 현재 파키스탄에는 아프간 난민 130만여명이 거주 중이다.

파키스탄은 기후위기 취약국이다. 지난해 6월 계속되는 폭우로 홍수가 발생하면서 최소 1350여명이 숨졌다. 국토의 3분의1이 물에 잠겼고, 국민 7명 중 1명꼴인 3300만여명이 피해를 봤다. 기후위기는 난민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혜원 보호담당관은 “전례없는 홍수로 인해 난민들의 거주지가 파괴됐고, 또다시 실향민이 된 이들도 있다”며 “대홍수는 파키스탄 전반의 경제를 악화하면서 난민을 수용하는 지역사회에도 큰 타격을 입혀 생계비 관련 위기를 가중시켰다”고 했다. UNHCR 은 파키스탄 전역에서 ▲법적 자문 ▲생계를 위한 기술 훈련 ▲양질의 교육을 위한 장학금 등을 지원한다.

국제이주기구(IOM) 슬로바키아 대표부는 우크라이나 난민이 타국에서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언어 교육을 지원한다. /IOM 슬로바키아 대표부
국제이주기구(IOM) 슬로바키아 대표부는 우크라이나 난민이 타국에서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언어 교육을 지원한다. /IOM 슬로바키아 대표부

지난해 2월 발발한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슬로바키아, 폴란드, 루마니아 등 주변국으로 이주한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에 있어 기본 구호물품을 넘어 취업 지원 등 인도적지원의 다각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19일 더나은미래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발론 할리미 IOM 슬로바키아 대표부 임시 대표와 니나 파울레노바 IOM 슬로바키아 대표부 선임 프로그램 조정관은 우크라이나 난민의 노동시장 진입로를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난민과 이주민의 경우 본국에서 취득한 자격증, 직업 경력이 있음에도 개인의 실제 숙련도와 역량에 걸맞은 직업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또 IOM은 트라우마 같은 심리·정신적 불안정을 완화하고 법률 자문, 사회적 보장 안내 등 다양한 측면에서 난민과 이주자들의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울레노바 조정관은 “여전히 식량·식수·위생키트와 같은 긴급구호품의 지원이 절실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난민과 이주자를 위한 정신건강 지원의 중요성을 느꼈다”며 “IOM은 난민들이 언어 장벽을 해소하도록 돕고,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극복하도록 지원한다”고 말했다. 할리미 임시 대표는 “오늘날에는 난민들을 지원하는 범위가 굉장히 넓어졌다”며 “법적 의무를 넘어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난민, 이주민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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