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넘어 법·제도 개선, 정책 연구로 활동 방식 확대
국내 공익변호사 활동 지형이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사단법인 두루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는 변호사 중심 공익단체와 로펌 후원 법인, 시민단체 등 약 30곳에서 공익 전담 변호사들이 활동 중이다. 이들은 난민, 장애인, 아동뿐만 아니라 환경, 해외입양, 재난 등 우리 사회의 세분화된 갈등과 소수자 인권 문제 전반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 [이주민·난민] 우리 사회의 구성원은 어디까지인가
이주민과 난민 분야에서는 공익법센터 어필, 법무법인 덕수, 이주민지원센터 감동, 난민인권센터 등이 대표적이다.
영화 ‘청년경찰’ 속 대림동 중국동포들에 대한 부정적 묘사는 단순한 창작의 자유일까. 법무법인 덕수 조영관 변호사는 이를 명백한 혐오 표현으로 보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했지만, 2020년 항소심에서는 영화사의 공식 사과를 끌어내며 화해권고로 종결됐다. 조 변호사는 “법률적으로 이기기 어려운 소송이었으나, 동포들에 대한 부정적 묘사가 문제라는 기록을 명확히 남기고 싶었다”며 “이 판결이 이후 미디어 내 혐오 표현을 거르는 나름의 방파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공익법센터 어필 이일 변호사는 코로나19 당시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난민 인정자를 제외한 정책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난민 인정자는 자국의 보호를 상실해 한국 정부의 보호를 받는 사회 구성원임에도 지원에서 배제한 것은 평등권 위반이라는 취지였다. 헌법재판소는 2024년 재판관 전원일치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 [장애인권] “전동휠체어도 신체의 일부…동등한 보행권 보장해야”
장애인권 분야는 장애인권법센터, 법무법인 화우, 법조공익모임 나우 등이 주도하고 있다.
법무법인 화우 정지민 변호사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보행자와 충돌해 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뇌병변 장애인의 무죄를 이끌어냈다. 1심은 휠체어를 ‘위험한 중량물’로 보아 벌금을 선고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휠체어 이용자를 일반 보행자와 동일하게 판단했다. 정 변호사는 “전동휠체어는 중증장애인에게 선택할 수 없는 신체의 일부”라며 “휠체어 이용자와 비장애인을 동일한 보행자 선상에서 평등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법적 기준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행사 문턱을 낮추기 위한 법정 투쟁도 이어지고 있다. 법조공익모임 나우 이수연 변호사는 난해한 선거공보와 투표용지 탓에 발달장애인이 참정권을 온전히 행사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차별구제 소송을 진행했다. 고등법원은 2024년 “문자를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한 투표보조용구를 제공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 [아동·청소년] 훈육 빙자한 폭력 근절·미등록 이주아동 권리 구제도
아동·청소년 분야는 사단법인 두루, 사단법인 온율, 국제아동인권센터 등이 대표적인 활동 기관이다.
60여 년간 부모의 체벌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악용됐던 민법 제915조(징계권). 사단법인 두루 강정은 변호사는 2021년 이 독소조항의 폐지에 앞장섰다. 가정 내 폭력을 훈육으로 포장하는 법적 근거를 원천 차단한 것이다. 강 변호사는 “부모는 아동을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폭력으로부터 자녀를 보호할 막중한 책무를 지닌 사람”이라며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허용해선 안 된다는 관점에서 활동을 전개했다”고 말했다.
행정 사각지대에 방치된 미등록 이주아동의 권리 구제에도 공익변호사들이 발 벗고 나섰다. 외국인 유학생 모친과 한국인 생부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생부의 잠적으로 국적 취득이 가로막힌 사건을 사단법인 온율 전민경 변호사가 대리했다. 조력 끝에 인지청구 소송과 유전자 검사를 거쳐 2024년 친자관계가 인정됐다. 전 변호사는 “소송 인용으로 자녀는 한국 국적을, 모친은 양육자로서 체류 자격을 얻게 됐다”며 이주 아동 보호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 [노동·환경] 대기업 ‘입막음 소송’ 뚫고, 생태계 난개발 막아
노동·환경 분야는 법무법인 여는, 녹색법률센터, 사단법인 선 등이 활동 중이다.
사단법인 선 김보미 변호사는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활동가들을 향한 기업의 이른바 ‘입막음 소송(전략적 봉쇄소송)’에 제동을 걸었다. 김 변호사는 두산중공업 본사 앞에서 석탄발전소 수출 반대 집회를 열다 재물손괴 등으로 기소되고 1840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까지 당한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들을 변호했다. 2025년 대법원은 수성 스프레이를 분사한 행위는 재물손괴가 아니라고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녹색법률센터 박소영 변호사는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둘러싼 행정소송을 맡고 있다. 설악산은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는 생물다양성 핵심 지역이지만 지자체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러나 우리 법제에서는 해당 지역 주민이 아니면 원고적격을 인정받기 어려워 소송 자체가 쉽지 않았다. 박 변호사는 “생태적으로 민감한 지역일수록 주민이 적어 난개발을 사법적으로 통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북한이탈주민] “잠재적 간첩 아닌 보호 대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법무법인 바른 등은 탈북민의 인권 보호에 주력하고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북한이탈주민 보호센터(구 합동신문센터)의 폐쇄적인 조사 구조와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탈북민들이 형사절차 없이 6개월씩 장기간 구금되어 조사받는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끈질긴 문제 제기 끝에 2010년 이후로 센터 명칭이 변경되고 독방 구금이 완화되는 등 수용 환경이 일부 개선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황 변호사는 “한국에 보호를 요청한 사람들을 잠재적 간첩으로 간주하고 비밀시설에 구금하는 것은 문제”라며 “동서독 사례처럼 체제의 우월성을 자신한다면 더 이상 공포와 불안에 기반한 시스템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제3국을 떠돌며 신분증을 취득할 수밖에 없는 탈북민의 척박한 현실을 법원이 인정한 사례도 있다. 법무법인 바른 송윤정 변호사는 중국 호구부로 발급받은 여권으로 한국에 입국했다가 ‘위장 탈북’에 따른 정착지원금 부정수급 혐의로 기소된 사건을 맡았다. 송 변호사는 탈북민이 제3국에서 신분증을 얻는 것은 생존을 위한 현실적 선택이며 정상적인 국적 취득으로 볼 수 없다고 논증했고, 대법원은 무죄를 확정했다.
법조공익모임 나우의 ‘2025 공익변호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공익변호사의 활동은 소송을 넘어 정책 연구, 국제기구 대응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 사회적 경제, 인신매매, 재난 인권 등 법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마다 공익변호사들의 보폭은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