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 회계의 선] 70년 공익법인 세제, ‘의심’에서 ‘신뢰’로 나아갈 때

변영선 회계세무사무소 선 대표(공인회계사·세무사)

30년간 공인회계사로 일해 왔다. 그중 20년은 비영리법인과 공익법인 회계와 세무에만 매달렸다. 시민사회단체와 재단법인의 이사회 감사 역할도 오랜 기간 맡아 오면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회계사가 좋은 일하는 공익법인에서 할 일이 뭐가 있나요?”

1999년 사회복지사의 꿈을 품고 잠시 내려놓았던 회계사 자격증을 다시 꺼내 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공익법인 세제와 회계기준의 부재가, 오히려 가장 시급한 문제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익법인 세제의 역사는 ‘지원’에서 출발해 ‘관리’를 거쳐 ‘규제’로 무게중심이 이동해 온 과정이라 할 수 있다.

1950년대 전쟁 직후, 민간의 자발적 구호 활동을 독려하기 위해 공익사업을 비과세 대상으로 두고 출연재산에 대한 상속세를 면제하는 세제의 틀이 마련됐다. 이후 1974년에는 출연재산의 사용계획과 진도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관리 장치가 도입됐다.

전환점은 1980년대 이후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기업들이 공익법인을 상속·증여세 회피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이에 따라 1990년 주식 출연에 대해 20% 제한이 처음 도입됐다. 1993년에는 이를 다시 5%로 낮췄고, 1996년에는 세무확인 제도를 마련하며 관리의 강도를 높였다.

2000년대 들어 기부금 유용과 부실 운영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면서 회계 투명성 확보와 사후관리 강화가 본격화됐다. 2007년 전용계좌 사용, 외부감사, 결산공시 의무가 신설됐고,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공익법인 관리의 문제점은 2017년 지정기부금단체 요건 강화, 외부감사 대상 확대, 출연재산 사후관리 강화, 결산공시 대상 확대 등 촘촘한 세제 개편으로 이어졌다. 이는 국세청의 본격적인 관리·감독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2023년부터는 종교법인을 제외한 모든 공익법인에 결산공시 의무가 적용됐다. 이제 투명성은 상당 부분 확보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2024년 국세통계에 따르면 표준서식으로 공시한 1만2864개 공익법인 가운데 자산 10억원 이하의 소규모 법인이 45%(5749개), 기부금 수입이 3억원 이하인 법인이 83%(1만608개)에 달한다. 대다수가 소규모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요구되는 세법상 의무 수준은 주식을 보유한 대규모 재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불필요하거나 중복된 의무, 응능부담의 원칙을 넘는 세제는 현장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소규모 법인은 제도를 따라오지 못해 위축되고, 대규모 법인은 불분명한 해석과 과세 위험 속에서 새로운 공익사업을 주저한다. 세제가 공익활동의 촉진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제 공익법인 세제는 ‘의심’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투명성을 토대로 유형별·규모별 차등 적용을 도입하고, 예측 가능한 과세 기준을 마련하며, 적정 수준의 가산세와 본세를 부과하는 등 공익법인을 살리는 세제 프레임을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자와 정책 담당자뿐 아니라 현장을 아는 실무자와 전문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세제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공익법인의 유입은 멈추고, 공익활동은 점점 위축될 수밖에 없다. 70년 공익법인 세제에 이제는 ‘신뢰’라는 날개를 달아줄 때다.

변영선 회계세무사무소 선 대표(공인회계사·세무사)

필자 소개

30년째 공인회계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삼일회계법인 비영리법인지원센터를 만들고 비영리 전문서비스를 20년 이상 제공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비영리 세제를 개정하고 공익법인회계기준을 만들고, 비영리법인 회계와 세무 실무를 집필하고, 업계 종사자, 국세청, 전문가분들께 비영리 교육을 하였습니다. 이제 ‘회계세무사무소 선'을 통해 좀 더 가까이서 좀 더 많은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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