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경학·안보 리스크 부상 속 기후 의제 비중 급감
“지금 외면하면 10년 뒤 더 큰 비용 치른다”는 경고
세계경제포럼(WEF) 연례회의가 열리는 다보스에서 기후 의제가 한 발 뒤로 밀렸다. 19~23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대화의 정신’을 주제로 열리는 올해 회의에서는 한때 공식 의제와 프로그램 전반을 관통하던 기후변화 논의의 비중이 눈에 띄게 줄었다. 기후위기는 여전히 ‘가장 심각한 장기 리스크’로 평가되지만, 단기적으로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자리에서는 지정학·경제·기술 리스크에 밀린 모습이다.

◇ 기후위기, 위험 인식 순위서 밀리고 다보스 프로그램서도 비중 축소
이 같은 변화는 WEF가 회의를 앞두고 발표한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 2026’에서 현재 최대 글로벌 위기 요인 1위는 18%를 차지한 ‘지경학적(geoeconomics) 대립’으로 나타났다. 국가 간 무력 충돌이 2위(14%)를 차지했고, 극단적 기상 현상 8%로 3위에 그쳤다. 생물다양성 손실과 지구 시스템의 급격한 변화 응답은 2%에 머물렀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극단적 기상 현상은 글로벌 리스크 인식 조사에서 2위(14%)를 차지했던 항목이다. 향후 2년을 기준으로 한 위험 인식에서도 극단적 기상 현상은 2위에서 4위로 내려앉았고, 오염 문제는 6위에서 9위로 밀렸다. 지구 시스템의 중대한 변화와 생물다양성 손실에 대한 우려 역시 각각 7계단, 5계단 하락했다. 단기 위기 인식에서 기후·환경 이슈의 존재감이 약화된 셈이다.
다만 장기 전망에서는 여전히 기후·환경 리스크가 최상위에 놓였다. 같은 조사에서 향후 10년을 기준으로 한 최대 위험 요인 1위는 극단적 기상 현상이었고, 생물다양성 손실과 지구 시스템의 중대한 변화가 뒤를 이었다. 문제는 기후위기가 ‘언젠가 닥칠 미래의 문제’로 인식될 경우, 지금 필요한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 적응 투자가 지연돼 위험이 오히려 증폭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보스 공식 프로그램 구성도 이런 인식 변화를 보여준다. 로이터에 따르면 올해 다보스 공식 세션 가운데 ‘기후변화’를 직접 언급한 세션은 4개에 그쳤다. 2022년 16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줄어든 수치다. 대신 ‘유럽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는가’, ‘AI와 안보’, ‘공급망과 전략 자원’ 등 지정학·기술·안보 이슈를 전면에 내세운 세션이 다수를 차지했다.
기후 전문 매체 클라이밋 홈 뉴스는 “기후 의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에너지 전환을 전제로 한 구조적 해법 논의보다는 전기차·재생에너지 확산에 대한 회의론이나 핵융합 같은 ‘기후 문샷’ 기술로 초점이 이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 삶의 에너지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세션에는 화석연료 규제 완화를 주도해 온 미국 에너지 정책 핵심 인사와 대형 석유기업 최고경영자가 패널로 참여한다. 지난해 다뤄졌던 ‘COP30으로 가는 길’ 세션이 올해 프로그램에서 사라진 점도 상징적이다.
◇ 장기 리스크로 밀렸지만…“기후는 서로 연결된 현재진행형 위기”
전문가들은 기후위기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고 해서 위험 자체가 줄어든 것은 아니라고 경고한다. 요한 록스트룀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PIK) 소장은 “우선순위 변화는 정치적 판단일 뿐, 물리적 위험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지정학적 갈등, 허위정보 확산, 다자주의 약화는 모두 기후위기와 맞물려 작동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평등 완화와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달성하는 가장 값싼 수단이 재생에너지라는 점에서 기후 대응은 경제·안보 의제와 분리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WEF 연례회의를 총괄하는 사디아 자히디 디렉터 역시 단기 의제에서 기후가 밀려나는 흐름에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지금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손실에 대한 초점을 잃는다면, 10년 뒤에는 적응과 완화 모두에 실패하게 될 것”이라며 “기후위기는 장기 리스크이면서 동시에 ‘지금 여기’의 위험”이라고 말했다.
과학계의 경고는 더욱 분명하다. 최근 3년은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됐고, 유엔은 2025년을 전후해 파리협정이 제시한 ‘지구 평균기온 상승 1.5도 이내 억제’ 목표를 초과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고 공식 인정했다. 잇따른 폭염과 산불, 홍수는 기후위기가 더 이상 미래의 경고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위기임을 보여준다.
한편 다보스를 찾는 주요 인사 다수가 전용기를 이용하는 현실 역시 기후 의제의 위상을 둘러싼 논란을 키우고 있다. 그린피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2023~2025년 사이 다보스 관련 전용기 운항이 3배로 늘었다고 분석하며 “기후위기를 논하는 자리 자체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