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가 이끈 25년, ‘아름다운재단’이 묻는 비영리의 내일

[인터뷰] 김진아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

“선의의 경쟁을 통해 조직 안에서 직접 사무총장을 선발할 수 있는 재단이 자랑스럽습니다.”

김진아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은 빙그레 웃으며 “제가 뽑혀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라고 덧붙였다. 결과보다 과정을, 그리고 그 과정을 가능하게 만든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아름다운재단은 2023년 8월, 창립 이래 처음으로 내부 경쟁을 통해 총장을 선출했다. 팀장 경력 5년 이상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 구조로, ‘총장의 문’을 재단 안으로 열어둔 것이다. 그 결과 2008년부터 홍보, 사업, 경영 업무 등을 거쳐 정책기획실장까지 재단에서 15년을 보낸 김진아 씨가 ‘내부 선발 1호 총장’으로 선출됐다.

2023년 8월 내부선발 1호 사무총장으로 뽑힌 김진아 총장은 ‘참여’가 아름다운재단을 유지해온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주민욱 기자

◇ 작은 ‘참여’가 쌓여 사회 변화를 이끌다

신학대학을 졸업한 그는 기독교 잡지사와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며 사회운동가를 비롯해 우리 사회의 변화와 대안을 고민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해 책을 펴냈다. 그러나 글만으로는 변화를 이끌기 어렵다는 한계를 느끼고, 보다 직접적인 실천의 장을 찾아 재단으로 향했다. 올해로 취임 2주년을 맞은 그는 재단 25주년의 의미를 “참여가 끌고 온 시간”으로 정리했다.

그는 재단 창립 25주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재단 사무국에서 진행한 <더나은미래>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관람한 프랑스 현대미술 작가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의 전시 ‘리미널(Liminal)’을 언급했다. “‘리미널’은 문턱과 경계, 이중성을 뜻하는데, 그 지점에서는 가능성과 불안정성이 함께 드러납니다. 재단의 성격도 그렇습니다.”

2000년 소득의 1%를 기부하는 ‘1%나눔 캠페인’로 출발한 아름다운재단은 시민 참여 덕분에 안정적이면서도, 특정 오너십이 없어 늘 긴장 상태를 안고 있었다. 김 총장은 “이중성을 다양한 참여로 다뤄왔기에 25년을 버텼다”고 설명했다.

참여는 거버넌스뿐 아니라 사업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립준비청년의 권리를 넓히는 ‘열여덟 어른’ 캠페인이다. 2000년 고(故) 김군자 할머니의 기부로 마련된 1호 기금에서 비롯돼 2001년 시작한 보호종료아동 지원은, 캠페인을 통해 최근 몇 년 사이 본격적인 흐름을 얻었다. 참여를 기반으로 ‘열여덟 어른’은 빠르게 진화했다.

자립준비청년 당사자인 허진이 캠페이너는 ‘열여덟 어른’ 캠페인을 통해 자립준비청년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름다운재단 홈페이지 갈무리

2019년 출범한 캠페인은 교육비·네트워킹 지원으로 청년들의 자립을 돕는 한편, 이들과 ‘함께’ 현실을 사회에 알렸다. 캠페이너 허진이는 당사자 커뮤니티를 꾸리고, 직접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목소리를 넓혔다. 김진아 총장은 “캠페인이 성공했다고 패턴화해 반복하기보다, 당사자와 함께 더 넓혀갔다”며 “청년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에서 출발해 사회 인식 변화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작은 참여가 큰 캠페인으로 확산된 사례도 있다. ‘노란봉투 캠페인’은 해고 노동자에게 47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 소식에서 시작됐다. 시민 배춘환 씨가 노란 봉투에 4만7000원을 담아 보낸 것이 계기였다. 재단이 이를 캠페인으로 확장하자 전국적인 모금으로 번졌고, 해고 노동자의 생계비와 법률 개선 활동을 뒷받침하는 힘이 됐다. 이 과정에서 제안된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은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며 지난 8월 국회를 통과했다.

◇ 달라진 비영리의 역할, 여전히 ‘신뢰’는 중요하다

김 총장은 재단의 변곡점으로 창립, 노란봉투 캠페인, 그리고 미션·비전 재정립을 꼽았다. 최근 변곡점으로 꼽은 미션·비전 재정립은 겉으로는 작은 내부 조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2021년부터 2년간 전 구성원이 매달린 대형 프로젝트였다. 기부자와 파트너를 찾아 강점과 약점, 기대를 묻고, 수차례 논의와 장장 9시간에 걸친 워크숍 끝에 새로운 방향을 확정했다. 그는 “그 경험이 지금도 구성원들이 사업을 추진하고 공감대를 쌓는 든든한 기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모두의 의견을 존중하는 소통은 재단의 고유한 문화다. 미션·비전을 세울 때도 이사회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기보다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댔다. 김 총장부터 현장의 매니저들까지 “때로는 제약이 되지만 그만큼 소중한 문화”라고 입을 모았다. 그는 “민주주의에서 많은 의견이 있다는 건 그만큼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는 뜻”이라면서도 “덕분에 재단에는 다양성과 민주주의가 살아 있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는 행동으로 옮길 실천력이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25년간 변화를 쌓아온 재단은 이제 새로운 환경과 마주하고 있다. 김 총장은 “소셜벤처, 임팩트 투자, 기업가 재단까지 사회적 가치 생태계가 다변화됐다”며 “전통적 비영리가 관성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의 역할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영리가 혁신과 협력을 통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름다운재단 역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영리 부문을 포함한 더 넓은 파트너십을 모색하고 있다.

김진아 총장은 스스로 기부하는 이유를 성찰하는 주체적인 기부자가 더 확산되어야 하며, 비영리 또한 신뢰와 투명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짚었다./ 주민욱 기자

그는 요즘처럼 사회문제가 복잡해지는 시대엔 해법이 ‘협력’에 있다고 했다. 김 총장은 “기후 변화로 늘어난 폭우가 산간지역 고령층에게 더 치명적인 것처럼, 구조적 요인들이 사각지대를 더욱 깊게 만든다”고 말했다. 단순한 기존 방식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복합 위기에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정부가 통합 돌봄이나 지역 클러스터로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듯, 비영리도 비슷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대 변화는 기부자들의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김 총장은 “세대 변화와 블록체인 같은 기술이 맞물리면서, 기부를 직접 확인하려는 주체적 기부자가 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기빙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2017년부터 기부 이유에서 ‘불쌍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보다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이 더 많이 선택되면서, 성찰적 기부가 주된 흐름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앞으로 이런 주체적 기부가 더 확산해야 한다는 것이 김 총장과 재단의 목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가치도 있다. 바로 ‘신뢰’다. 과거에는 재정을 엑셀 파일로 공개하는 투박한 방식을 썼지만, 지금은 공시 체계와 연차보고서로 투명성을 보여준다. 아름다운재단이 기금 출연자인 김강석·윤우람 기부자를 이사로 초빙한 것도 신뢰를 다지려는 시도다. 김 총장은 “김강석 이사에게 이사회 참여를 부탁했더니 ‘내가 들어가면 더 피곤할 텐데’라고 했다”며 “기부자는 당연히 더 까다롭게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신뢰는 구성원이 조직을 믿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외부에도 드러나는 가치”라고 했다.

◇ “사람에 투자해야 더 오래 간다”

아름다운재단은 올해 6월, 김강석 이사의 기부금을 토대로 ‘마중물 기금’을 조성했다. 신규 기부자의 기부금에 매칭 기부를 더해 조직 성장과 구성원 복리후생에 함께 투자하는 방식이다. 기금 출연자인 김강석 이사는 “뚝심과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는 투자 같은 기부가 절실하다”며 “기금이 구성원의 성장을 이끌어 더 오래 지속되는 공익활동의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아름다운재단은 올해 6월에 김강석 이사와 함께 구성원들의 성장에 투자하는 마중물 기금을 새롭게 조성했다. /아름다운재단

김진아 총장은 “비영리는 운영비를 줄이고 지원 대상자에게 더 많이 쓰는 것이 미덕이라는 인식 탓에 구성원 성장에 투자하기 어렵다”며 “그러나 사업을 제대로 해내려면 사람에 대한 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성장이란 단순히 직무 역량이나 리더십을 쌓는 데 그치지 않고, 조직 문화 속에서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것까지 포함한다고 강조했다.

함께 변화하고 성장하는 조직에서 리더의 역할은 무엇일까. 김 총장은 “1호 내부 선발 총장으로서 후임들이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인프라와 기본을 갖추려 한다”며 “서로를 포용하고 환대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성원들이 워낙 잘해주고 있어, 사실은 내가 잘하기만 하면 된다”며 웃었다.

김진아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은 “내부 선발의 강점은 리더가 재단과 사업을 남다르게 이해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욱 기자

“사진 찍는 건 2년이 지나도 여전히 힘드네요.”

김 총장이 쭈뼛거리며 포즈를 취했다. 인터뷰 시간 중 가장 난감해한 순간은 다름 아닌 사진 촬영이었다. 한 시간 반 동안 막힘 없이 이어진 답변에는 재단과 함께한 시간과 애정이 담겨 있었다. “내부 선발의 강점은 리더가 재단과 사업을 남다르게 이해한다는 점”이라는 그의 말은, 대화가 끝난 뒤에도 잔잔한 울림으로 남았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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