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는 지원 중단했는데 한국만 ‘친환경’ 분류 고수
정부가 ‘기후금융’이라는 이름으로 조성한 정책자금의 상당 부분이 LNG 운반선 금융에 쓰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제적으로는 이미 화석연료 지원에서 배제된 LNG가 한국에서는 여전히 ‘친환경’으로 포장돼 공적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신장식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5대 공적금융기관이 승인한 기후정책자금 94조원 가운데 17조6000억원, 약 20%가 LNG 운반선에 투입됐다. 수출입은행은 지원액의 3분의 1 이상을 LNG 선박에 썼다. 사실상 녹색 금융이라는 간판 아래 화석연료 지원이 이뤄진 셈이다.
문제는 분류 기준이다. LNG는 석탄보다 배출이 적다는 이유로 전환연료로 불리며 ‘친환경 선박’으로 묶여왔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미국 코넬대는 미국산 LNG의 전 생애주기 배출량이 석탄보다 33% 높다고 분석했다. 국제해사기구(IMO)도 2023년부터 연료 평가 기준을 전 과정으로 바꾸면서 LNG는 더 이상 ‘친환경’으로 분류하기 어렵게 됐다.
LNG 운반선은 한국 조선업의 효자 품목으로 불려왔지만, 수요는 줄고 공급은 늘고 있다. 2024년 말부터 운임이 손익분기점을 밑돌며 적자 운항이 이어졌다. 향후 3년간 300척 이상이 추가 투입되면 좌초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세계 LNG 운반선 발주량은 2024년 77척에서 올해 15척으로 급감했다. 그 가운데 조선소 자체 계열 발주를 빼면 13척에 불과하다.
환경 부담도 막대하다.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17만5000㎥급 LNG 운반선 한 척은 연간 1233만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현재 건조 중인 350척이 모두 운항하면 연간 43억톤에 달해 인도 전체 배출량을 웃돈다. 연소 과정에서 최대 15%가 미연소 상태로 새어 나오는 ‘메탄 슬립’ 문제도 심각하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80배 강력한 온실가스다.
해외 주요 금융기관들은 이미 LNG 지원을 접었다. 유럽투자은행(EIB), 영국 수출입은행(UKEF), 덴마크 수출신용기금(EIFO)은 2021~22년부터 LNG 운반선 금융을 중단했고, BNP파리바 등 민간 금융사들도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LNG를 제외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LNG를 기후금융으로 분류해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기후솔루션은 “온실가스 배출이 큰 화석연료를 ‘녹색’으로 둔갑시킨 시대착오적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의 출발점으로 ‘녹색’의 정의 재정립을 꼽는다. 신장식 의원은 “기후금융의 국제 기준에 맞는 녹색분류체계를 새로 세워야 한다”며 “화석연료는 화석연료로 분류하는 상식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은비 기후솔루션 연구원도 “해외는 이미 LNG를 화석연료로 규정했는데 한국만 시대착오적 기준을 고수하고 있다”며 “기후리스크 평가 제도도 이 기준이 바뀌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금융기관의 기후리스크 평가 의무화에 찬성 입장을 밝혔지만, 현행 기준이 유지된다면 제도가 도입돼도 ‘그린워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로 출범하는 기후에너지환경부의 행보가 주목된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