業을 살린 LG 사회공헌… 1930년대부터 이어진 의인 돕기
선로에서 시각장애인 구한 최형수씨… LG그룹 특별채용
독립유공자 임우철 선생 자택, LG하우시스 개·보수
“사회는 물이고, 기업은 그 안의 물고기다.”(구인회 LG그룹 창업회장)
많은 전문가들에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잘하는 대표기업이 어디인가’라고 물으면, 대다수가 손꼽는 기업이 바로 LG그룹이다. 사회가 건강해야 기업도 살아 움직일 수 있다는 신념 아래 사회공헌과 기업 경영을 따로 떼놓지 않는다. 이 고집은 벌써 1930년대 독립운동을 지원하던 3대 전부터 이어지면서, 이제 LG그룹 문화이자 정체성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그 활동들을 살펴봤다.
◇’사람’을 바르게 세우는 ‘LG의인상’
의로운 일을 해도, 정당한 보상과 예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소방관들이 순직을 인정받기 위해서 공사(업무 중 사망) 입증에 필요한 서류는 11종이다. 모두 소방관측이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교육훈련 중이었던 경우는 업무로 인정되지도 않는다. 이뿐 아니다. 지난해 8월,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로 두 다리를 잃은 장병이 부상 정도가 심해 민간병원 치료가 불가피함에도 불구하고, 국군병원 이외엔 30일만 지원되는 현행법의 사각지대가 알려지기도 했다. 당시 구본무 회장은 부상당한 두 장병에게 각각 5억원씩 지원하기도 했다. 이런 제도의 한계 속에서 LG복지재단의 ‘LG의인상’은 복지의 틈새들을 메운다.
특징은 ‘신속성’이다. LG의인상 심사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진행된다. 우선 LG복지재단이 사회적으로 조명돼야 할 의인들을 발굴, 경찰서 등 유관기관에 한 번 더 사실 관계를 파악해 1차 후보자를 선정한다. 이후 LG복지재단의 심의위원회가 ‘사회적기여’, ‘사회관심’, ‘경제적 상황’, ‘제도적 지원책 여부’ 등 5가지 부문을 평가한다. 심사에서 지원까지 일주일 내 신속하게 이뤄져 치료 등 수혜가 급박하게 필요한 경우도 대처하고 있다.
의인에 대한 지원 방향도 개인에 맞게 다양하다. 지난 2월에는 대구 지하철 명덕역 선로에 떨어진 시각장애인의 생명을 구한 최형수(25·대구대 경찰행정학과 3년) 병장에게 대학 졸업 때까지 장학금을 지급하고, 소속부대에 감사패와 격려금을 전달했다. 후보 심사 과정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LG그룹 특별채용 기회도 얻었다. 특히 구본무 회장이 “누군가를 위해 자기 안위를 돌보지 않는 사람이면, 어느 자리에서도 분명 본인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며 가장 큰 힘을 보태기도 했다. 지금까지 LG복지재단은 10여명의 우리 사회 의인들을 격려했다.
이문종 파트장은 의인상 제정 후 외부 반응은 물론 사내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한다. “재단뿐만 아니라 타 계열사에도 뉴스에 훌륭한 분이 나왔다며 연락을 줍니다(웃음). 그룹 내에서부터 정의로움에 관심이 높아진 걸 피부로 느낍니다.” 이문종 파트장도 담당자로 느끼는 것이 크다. “지난 3월, 불길 속에서 할머니를 구하다 2도 화상을 입은 박종우 가평경찰서 읍내파출소 소속 경사는 할머니가 더 크게 다쳤다며 격려금을 할머니 병원비에 쓰더라고요. 남은 건 또 기부한데요. ‘훌륭한 분들을 돕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일을 하면서 정말 뿌듯하더라고요.”
LG복지재단은 올해 ‘LG의인상’을 재단의 주 사업으로 확대하여 의로운 행동이 사회적으로 더 확산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독립운동 관련 시설 및 독립유공자 주택 개보수하는 LG하우시스
국가와 사회를 위해 희생한 의인들을 돕는 또 하나의 사회공헌이 있다. LG하우시스가 국가보훈처와 함께 하는 ‘독립운동 관련 시설 및 독립유공자 주택 개보수 지원’이다. 지난 2월엔 독립운동가 서재필 선생의 유품 800점이 있는 ‘서재필 기념관’을 개·보수 했고, 올해 하반기에는 ‘중경 임시정부 청사 복원’을 완료할 예정이다.
독립유공자의 노후한 주택 자재를 교체, 시공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첫 수혜자는 마지막 독립운동가 세대인 임우철(97) 선생. 지난 19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자택에서 만난 선생은 77년 전 이야기를 들려줬다. “고향이 충남 보성인데 학교 다닐 때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았어. 더 공부하고 싶어 일본에 갔는데, 그것보다 더 좋은 것 배웠지. 바로 ‘독립운동’이야.”
일본 현지여서 감시가 덜한 데다 같은 하숙방 청년 3명 모두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영향이 컸다. 3년을 함께 창시개명 반대 등 항일운동을 하다 모두 비슷한 시기에 옥고를 치렀다. 추운 감옥 안에서 손가락 마디마디가 터지고 피가 흘렀다고 한다. 3년 옥살이 후 독립은 됐지만, 그의 손가락 마디는 잘 구부러지지 않았다.
1953년부터 무려 63년 동안 살고 있는 선생의 집은 단열이 되지 않아 아무리 보일러를 틀어도 소용없었다고 한다. 한여름 이전까지는 옷을 몇 겹이나 껴입어야 했다고. “나보다 아픈 아내가 더 걱정이었지.”
그런 선생에게 LG하우시스가 반가운 손을 내밀었다. 선생의 집을 3주간 고쳤던 이용찬 LG하우시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팀 차장은 “집이 너무 오래돼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전체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며 “창호, 장판, 벽지, 이를 총괄하는 파트까지 총 4개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셨다”고 설명했다. 가장 신경 쓴 것은 단열. 60년 넘은 창으로 우풍이 심했던 상황, 이를 단열 기능이 탁월한 시스템 창호로 교체하고 벽과 바닥에도 단열 시공을 철저히 했다. 지붕에 물이 새 마감재가 계속 썩고 있어 추가 방수 공사까지 마쳤다.
선생은 성치 않은 손으로 온기가 도는 거실 바닥을 연신 만져보며 흐뭇해했다. “이번 겨울은 추운 줄도 모르고 보냈지. 이제 손주들이 집에 와도 자고 갈 수 있어 좋아. 그동안 집안이 너무 추워 부를 수 없었거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고, 더 어려운 독립운동가들이 많은데 이 사람들한테도 꼭 좀 해줘….” 임우철 선생은 연신 부탁했다.
독립유공자 지원은 LG그룹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LG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과 부친인 춘강 구재서 공이 독립운동을 돕기 위해 중경임시정부와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이용찬 차장은 “젊은 날을 나라를 위해 애쓰신 분들이었는데 여생은 따뜻하게 보내실 수 있게 돼 가장 기쁘다”고 했다. 앞으로 LG하우시스는 매년 광복회를 통해 다섯 분을 추천받아 자택 개·보수를 할 예정이다.
◇세대· 조직 아우르는 한 방향 사회공헌 활동
LG그룹이 세대 간, 계열사 조직 간 동일한 사회공헌 방향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사회공헌 지표’ 덕분이다. 사회공헌 활동을 평가하기 위한 기준은 크게 ‘내부 역량을 얼마나 활용하느냐’와 ‘실제 사회문제를 얼마나 해결하느냐’로 나뉜다.
2013년부터 LG 주요 계열사들에 적용, 매년 이를 측정하고 정리, 체계화한다. 신규 프로그램을 만들기 전 사전 평가 자료로도 활용된다. 사회공헌 관련 내용을 공유하고 교육하기 위해 LG그룹 CSR팀에서 정기적으로 계열사 간 워크숍도 한다.
또 계열사 간 시너지를 내기 위해 각 사가 함께 할 수 있는 사회공헌 활동들을 찾아가고 있다. 지난해 LG연암문화재단이 주최한 ‘메이커 페스티벌’이 대표적. 행사에 LG전자, LG이노텍, LG CNS가 참여해 일반 메이커, 과학 교육기관 등과 48개 과학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 ‘일상 속 과학 축제’를 만들었다.
LG재단 남상건 부사장은 “앞으로도 LG는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곳에 LG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실질적인 지원을 할 것”이라며 “더욱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