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美, 감축·공급 동시 압박…배출권 가격↑
中 산업 확대, 日 2026년 거래 의무화
이재명 정부가 2030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과 2035년 감축 로드맵 수립을 위해 탄소가격제 강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2015년부터 시행 중인 배출권거래제(이하 ETS)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시장기능 보완과, 스위스식 탄소세 도입 여부가 정책 검토 테이블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제25차 국무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스위스는 탄소가 배출되는 원료 등에 세금을 부과하고, 그중 절반은 산업 보전비용, 나머지는 전 국민에게 환급하는 구조로 운영 중”이라며 “우리에게도 적용 가능한지 검토해달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도) 최소한 배출권을 확대·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적으로는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반영하는 탄소가격제가 운영되고 있다. 이 제도는 ▲배출량에 비례해 비용을 부과하는 탄소세와 ▲정부가 정한 총 배출량 내에서 기업 간 배출권을 사고팔 수 있도록 한 배출권거래제(ETS)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2024년 기준 탄소세는 39개국, 배출권거래제는 36개국에서 도입돼 있으며, 한국은 2015년부터 ETS를 시행 중이다.
하지만 한국은 배출권 가격이 여전히 낮아 온실가스 감축 유인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2024년 10월 기준 한국의 톤당 배출권 가격은 약 1만2550원. 유럽연합(EU)은 9만6530원, 영국 6만7930원, 캘리포니아 4만1830원, 중국 2만140원으로 격차가 크다.
글로벌 흐름은 탄소가격제를 단순한 감축수단이 아닌 ‘산업전환 도구’로 활용하는 추세다. 세계은행은 지난 6월 발표한 ‘2025년 탄소가격제 현황과 동향’ 보고서에서 “2024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탄소가격제가 창출한 세수는 1000억 달러(한화 약 140조 원)에 달하며, 이 중 절반 이상이 환경·개발사업 등에 재투자됐다”고 밝혔다. 또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8%가 가격 책정을 받고 있으며, 규제 시장의 탄소 크레딧 수요는 전년 대비 3배 이상 급증했다.
탄소배출권 가격은 전반적으로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EU는 산업별 배출총량을 매년 축소하고, 2026년부터는 무상할당을 단계적으로 줄인다. 특히 수입업체에도 탄소비용을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이하 CBAM) 시행으로, EU 역내 기업의 무상할당 명분이 약해지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EU와 영국 ETS 연계 법안 초안도 공개돼, 양측의 배출권 상호인정과 CBAM 이중적용 방지가 추진 중이다.
미국에서는 전기차 보조금 철회와 산업 재국산화 정책 등으로 온실가스 배출 증가가 예상되자, 주 단위로 탄소규제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2030년까지 최대 3억 9000만장의 배출권 공급 축소를 검토 중이며, 동부 11개 주가 참여하는 ‘지역 온실가스 이니셔티브(RGGI)’는 같은 해까지 매년 3.5%씩 배출권을 감축하고, 2027~2033년 사이에는 추가로 10.5%를 더 줄일 계획이다. 이 같은 공급 축소 흐름은 북미 탄소배출권 시장 전반의 가격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
중국과 일본도 제도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은 올해 3월 말, 기존 전력부문 중심의 ETS를 올해 3월부터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등 고배출 산업으로 확대했다. 대상 기업은 2200개에서 3700개로 늘어나며, 2030년 배출 정점-206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 ‘30-60 전략’의 일환이다.
일본은 2026년부터 연 10만 톤 이상 배출 기업을 대상으로 ‘GX(녹색전환)-ETS’를 의무화하며, 자국산 탄소크레딧(J-크레딧)만 허용하는 방식으로 배출권 품질과 감축 유인을 동시에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수요 대비 공급 부족과 가격 상한제 도입 논의는 숙제로 남아 있다.
탄소가격제의 패러다임이 ‘규제 수단’에서 ‘전환 투자’로 전환되고 있는 지금, 한국의 ETS도 단순 감축이 아닌 산업 혁신 촉진 수단으로서의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