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안 ‘기부 위축’ 논란에 급선회
기부 공제 3배 확대, 재단 과세 철회…“자선활동에 제도적 숨통”
미국 상원이 자선기부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세제 개편안을 수정하면서, 비영리 부문에서 환영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을 표방하며 하원이 통과시킨 기존 법안의 기조와는 다른 움직임이다. 하원안은 민간 재단과 대학 기금에 대규모 과세를 예고해 비영리계의 반발을 불렀다. 그러나 지난 16일 공개된 상원안은 기부 공제를 확대하고 논란이 된 조항들을 대폭 완화하며 방향을 선회했다.

◇ 美 상원, ‘기부공제 영구화’…표준공제자도 세제 혜택
이번 상원안에서 가장 주목받은 조항은 항목별 공제를 하지 않는 납세자도 일정 한도 내 자선기부 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점이다. 개인은 1000달러(한화 약 137만원), 부부는 2000달러(한화 약 275만원)까지 공제가 가능하며, 이는 하원이 제시했던 한도보다 3배 이상 높다. 특히 이 조항은 한시가 아닌 ‘영구 적용’으로 명시됐다.
미국의 소득세 제도는 ‘표준 공제’와 ‘항목별 공제’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표준 공제를 선택하면 정부가 정한 일정 금액을 자동으로 공제받는 대신, 의료비·기부금 등 개별 지출 항목에 대한 공제는 받을 수 없다. 반면 항목별 공제를 택하면 각종 지출을 하나하나 신고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문제는 납세자의 약 90%가 간편한 표준 공제를 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다수의 미국인은 기부를 하더라도 실질적인 세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구조다. 비영리 전문매체 크로니클 오브 필란트로피는 “2017년 세법 개정으로 표준 공제 금액이 확대된 이후 소액 기부자의 이탈이 계속되고 있다”며 “현재 미국 전체 인구 중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비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전했다.
이번 상원의 조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비영리 섹터에서는 “수년간 이어져온 기부 인센티브의 왜곡을 바로잡는 신호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비영리단체 연합(The Nonprofit Alliance)은 이번 공제 확대 조치로 인해 연간 자선기부가 400억 달러(한화 약 55조 원) 가량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3년 미국의 총 기부금(한화 약 766조 원) 대비 약 7%가 증가하는 셈이다.
브라이언 플래이해븐 자선기부연합(Charitable Giving Coalition) 의장은 성명을 통해 “상원안은 자선활동을 국가적 우선순위로 끌어올린 조치”라며 “기부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면 시민들은 더 적극적으로 호응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 민간 재단·대학·교통 혜택 과세 조항도 줄줄이 철회
논란이 됐던 민간 재단에 대한 투자수익 누진세는 상원안에서 전면 삭제됐다. 하원은 재단 자산 규모에 따라 최대 10%의 소비세를 부과하자는 내용이었으나, 상원은 현행 1.39% 세율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 조항이 유지됐다면 게이츠 재단의 경우, 순 투자수익이 자산의 6%로 적용될 경우 연간 4억 6000만 달러(한화 약 6323억 원) 이상의 세금을 추가로 납부해야 했다.
대학 기금 과세 조항도 완화됐다. 하원은 학생 1인당 대학기금이 200만 달러(한화 약 27억 5000만원)를 초과할 경우 최대 21%까지 과세하는 방안을 냈지만, 상원은 누진 과세 구조를 도입해 최대 세율을 8%로 제한했다.
또한 비영리단체가 직원에게 제공하는 대중교통비나 주차비 등 복지성 교통 혜택에 과세하려던 하원안의 조항도 상원에서는 삭제됐다. 하원은 이를 ‘비관련 영업소득(UBIT)’으로 간주하려 했으나, 과세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에 따라 철회됐다.
이러한 상원안에 대해 전국비영리협의회(National Council of Nonprofits), 재단협의회(Council on Foundations), 유나이티드 필란트로피 포럼(United Philanthropy Forum) 등은 환영의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 일부 독소조항도 유지…“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만 모든 우려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상원안에도 일부 비영리계가 반대해온 조항이 포함돼 있다. 대표적으로, 기부 공제를 받기 위해 최소 1% 이상을 기부해야 한다는 ‘하한선’ 기준은 유지됐다. 기존에는 기업이 과세소득의 최대 10% 내에서 자유롭게 공제를 받을 수 있었으나, 이 하한 기준은 중소기업 기부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고소득자의 기부 유인을 약화시킬 수 있는 조항도 담겼다. 상원은 일반 납세자에 대한 공제를 확대하는 대신, 고소득 항목별 공제자에겐 일정 수준 이하 기부에 세제 혜택을 제한하는 규정을 포함했다. 초안에 따르면 조정총소득(AGI)의 0.5%를 초과하는 기부에 대해서만 공제가 가능하며, 공제율도 1달러당 35센트로 낮췄다. 이는 현행 37센트보다 낮은 수준이다.
매튜 에반스 유나이티드 필란트로피 포럼 옹호 및 대외 관계 담당 부사장은 “이번 상원안은 분명 진전이지만, 하원에서 삭제된 조항이 다시 복원되지 않도록 끝까지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원은 이번 세제 개편안을 이달 말까지 통과시킨 뒤, 다시 하원과 조율을 거쳐 최종 법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