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매일 뉴스와 커뮤니티, SNS를 오가며 쏟아지는 정보를 접한다. 그중에는 진실도 있지만,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조작된 허위 정보도 있다. 문제는 이 허위 정보가 단순한 착오나 오해가 아니라는 데 있다. 누군가는 악의적으로 가짜뉴스를 만들고, 누군가는 그 뉴스를 이용하여 혐오를 선동한다. 특히 정치가 그 뉴스에 올라타는 순간, 허위 정보는 더 이상 개인의 착오가 아니라 ‘사회적 무기’가 된다.
2020년 미국 대선 당시 “선거가 조작됐다”는 음모론은 수많은 가짜뉴스를 촉발했고, 급기야 지지자들은 의사당을 점거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있었다. “중국 간첩이 선거에 개입했다”, “선관위 직원이 중국인이다”, “중국인이 탄핵 반대 집회에 집단 참여했다”는 주장은 근거 없이 유포됐고, 실제 국회의원과 공인들까지 그 주장을 퍼뜨렸다. 특히 이 허위 정보들은 보수 유튜버 채널이나 커뮤니티를 타고 ‘사실’처럼 굳어지며, 혐오를 부추겼다.
정보 홍수 시대, 진실은 늘 자극적 허위정보에 밀린다.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 취향에 맞춰 자극적인 콘텐츠를 우선 노출해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과 ‘필터 버블(filter bubble)’을 강화한다. 반면 진실은 검증이 필요해 즉시성이 떨어지고, 복잡한 사실 관계는 클릭을 유도하지 못한다. 결국 진실은 밀리고, 허위는 증폭된다. 이 구조 속에서 시민이 무력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공론장의 붕괴, 민주주의의 위기로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정보 환경이 개인의 오보 인식을 넘어 사회 전체의 공적 신뢰를 파괴한다는 점이다. 허위정보·혐오·음모론이 공론장을 잠식하면, 공동체 감각은 무너지고 정치적 분열은 일상이 된다. 사실을 검증하고 토론하던 광장은 ‘진영의 감정 대결장’으로 전락하며, 민주주의도 정보에 기반한 이성이 아닌 적대감에 의해 작동한다. 이미 우리는 유럽 극우 정당의 득세와 한국 극우 커뮤니티 확산, ‘극단 정치’가 주류로 이동하는 현상을 목도했다.
이 사태는 단순한 교육이나 개인의 분별력 강화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허위정보는 우연히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생산·전략적 배포·정치적 활용되는 콘텐츠다. 시민이 ‘속는 것’이 아니라 ‘속도록 설계된 정보 생태계’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제 허위정보 대응은 개인의 몫이 아니라, 공론장의 구조·플랫폼 알고리즘 설계·정치인의 발언 책임·공공기관 감시 기능이 맞물린 구조적·공적 책임 과제가 되었다.
유발 하라리가 지적했듯, 정보가 쌓일수록 진실은 떠오르기보다 가라앉는다. 그렇다면 이 지경에서 진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시민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답을 찾으려면 이제 “누가 혐오를 말하는가”가 아니라, “왜 그 말이 퍼지고 반복되며 효과를 발휘하는가”를 묻기 시작해야 한다. 이 근본적 질문에서 출발해야만 허위정보에 대한 실질적이고 지속가능한 정책 대응이 가능해질 것이다.
◇ 대선 후보들의 외면과 공허한 진단
허위정보와 혐오가 공론장을 잠식하는 구조적 위기는 결코 이론적 논쟁에 그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다루겠다는 대선 후보들의 공약은 무엇일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플랫폼 책임 강화와 사회 통합을 언급하며 일부 해법을 제시했지만, 정치인의 허위정보 유포 책임을 묻는 법안 제정이나 차별금지법 도입, 혐오 표현 대응을 위한 구체적 입법 계획은 찾기 어렵다. 반면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차별·혐오 금지, 플랫폼 규제, 사회적 약자 보호 등을 망라한 포괄적 공약을 내놓으며 이 분야에서 가장 진전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혐오와 허위정보 문제에 대해 사실상 침묵하거나, 시장 원리에만 기댄 보수적 접근에 머물러 있다. 플랫폼 알고리즘이 어떻게 혐오·허위를 증폭시키는지, 정치인의 발언 한마디가 어떻게 공동체 신뢰를 붕괴시키는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처럼 주요 거대 정당이 허위정보·혐오 대응에 눈감는 사이, 공허한 공약의 빈틈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가 정치권 전체에 던져진 과제다.
◇ 혐오와 허위정보의 구조를 끊기 위한 4대 과제
필자는 첫째로 정치인의 허위·혐오 정보 유포에 실질적 책임을 묻는 법률을 제정할 것을 제안한다. 공직자법에 ‘허위정보·혐오 조장’ 행위에 대한 징계 근거를 명문화하고,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해당 항목을 신설함으로써 정치인의 언어가 사회적 무기가 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온라인상의 발언에도 책임 범위를 확대해, SNS를 통한 무차별적 정보 유통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둘째, 필자는 유튜브와 커뮤니티 등 대형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을 주기적으로 외부에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자극적·분열적 콘텐츠가 우선 노출되는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허위와 혐오는 반복적으로 증폭된다.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를 공개하면, 플랫폼은 스스로 콘텐츠 배치 방식을 재검토하고, 혐오·허위정보 우선 노출 차단 기능을 도입하는 등 자정 노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방송통신위원회와 주요 플랫폼이 즉각 협력하는 실시간 대응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신고 중심의 사후 대응은 이미 퍼진 허위정보를 막지 못한다. AI 기반 조기 감지 필터를 개발해 선거·재난·외교 등 파급력이 큰 사안에 자동 ‘신속 대응 모드’를 발동할 수 있는 프로토콜을 수립함으로써, 위험 정보의 확산 속도를 근본적으로 제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시민·전문가·플랫폼·공공이 함께 참여하는 ‘시민 허위정보 감시협의체’를 제안한다. 이 협의체는 허위정보 유포 패턴을 분석하고 반복 유포자를 데이터베이스화해, 플랫폼 제재 기준을 마련하고 국회와 정부에 정책을 제안하는 역할을 맡는다. 제도만으론 막을 수 없는 허위·혐오의 물길을, 시민 스스로 감시하고 기록하는 문화로 전환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정보 생태계의 주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네 가지 과제를 통해 제도와 기술의 안전장치를 갖추더라도, 진짜 변화를 이끌 주체는 시민이다. 필자가 특히 강조하고 싶은 ‘시민 허위정보 감시협의체’ 설치는 단순한 기구 설립을 넘어, 문제 해결의 주체로 시민이 직접 나설 수 있는 구조를 제시한다. 허위정보는 법령 하나로 완전히 제어할 수 없다. 그물망처럼 계속 변형되며 우리 일상 속으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이 직접 감시하고, 추적하고, 문제를 제기하며 기록해 나가는 ‘공론장의 습관’이 필수적이다. 이 협의체는 제도적 틀을 넘어, 함께 문제를 다루며 해법을 모색하는 ‘문화의 씨앗’이 될 것이다. 정부나 플랫폼의 한계를 넘어, 시민의 눈과 목소리가 허위와 혐오를 막아낼 최후의 보루다.
◇ ‘말’이 아닌 ‘제도’로 허위정보·혐오 생태계 혁신하기
지금까지 허위정보를 ‘말의 문제’로만 다뤄왔지만, 그것은 이미 정치적·구조적·조직화된 현상이다. 따라서 대응 역시 말이 아닌 제도로 이뤄져야 한다. 진실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법·제도적 구조를 세우고, 시민이 무력하지 않은 정보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서로를 의심하고 혐오와 거짓이 공론장을 뒤덮은 이 시대에, 이번 대선에서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공약이 거의 전무했다. 단순한 아쉬움이 아니라 의도적 외면이다. 가장 위험한 현상이 가장 방치되는 악순환을 더는 반복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각기 다른 감정과 언어, 신념을 가진 존재다. 그 다름이 배제와 분열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불안과 분노, 단순한 해답에 대한 갈망은 인간 본연의 감정이며, 그것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문제는 그 감정을 혐오와 거짓으로 전환시키는 권력 구조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길 말’이 아니라, ‘이어질 말’이다. 서로를 침묵시키는 통합이 아니라, 모든 목소리가 살아 움직이는 공론장, 갈등을 숨기는 공존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가 서로를 지지하는 상생의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상생 없는 통합은 공허하며, 공존 없는 통합은 억압이다. 우리는 이제 공존과 상생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홍서희 중앙대 재학생
필자 소개 버튼이 있으면 다 눌러보는, 글씨란 글씨는 모두 읽어보는 청년. 어릴 적부터 내가 사는 이 세상에 궁금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독일어문학을 전공하며 문학으로 공감 및 소통 방법을 배우고, 사회복지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선천적 호기심과 후천적 지식이 더해져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중앙대학교 독일어문학·사회복지학부 학사과정 재학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