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더 이상 과학적 경고에 머물지 않고, 재난의 형태로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있다. 폭우와 산불, 폭염과 가뭄은 일상의 풍경이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기후로 인한 위험을 직접 겪고 있다. 하지만 정책의 언어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재난이 일어나면 그에 대한 대처 방안이 제시되지만, 이 위기를 어떤 방향성 아래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희미하다. 무엇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항목은 많지만, 왜 그것을 하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자 하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이번 대선 공약을 살펴보면, 기후위기 대응은 여전히 ‘무엇을 하겠다’는 정책 나열에 머물러 있다. 구체적인 사업과 예산 항목은 많지만, 이를 통해 어디로 나아가고자 하는지 명확한 방향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재난으로 현실화된 기후위기 앞에서, 단편적인 대응 조치만으로는 근본적인 전환을 이끌어 내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의 양이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전환할 것인가’를 보여 주는 전략적 로드맵이다.
대한민국은 곡물·에너지 자립도가 낮고 기후재난에 취약하다. 기후위기를 방치할 경우 일상생활과 생명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동시에 탄소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글로벌 산업 질서 속에서, 기후 대응은 무역장벽을 피하고 새로운 산업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핵심 전략이 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기후대응 역량은 국가 경쟁력과 신뢰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고 있으며, 복지 측면에서도 폭염·침수·에너지 불안정에 취약한 계층을 보호하는 정책적 연계가 절실하다. 기후위기를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기반은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으며, 지금 필요한 것은 전방위적이고 구조적인 전환이다.
◇ 공감되지 않는 위기, 놓치고 있는 전환의 순간
기후위기는 과학적으로 분명히 입증된 현실이지만, 이 사실이 곧바로 사회적 공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기후위기의 영향이 모두에게 똑같이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울이 하루 만에 영상 17도를 기록한 뒤 폭설을 겪었던 2025년 3월의 기상이변은 누구에게는 여행의 불편이지만, 저지대 주민에게는 생존의 위기로 다가온다.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다수가 기후위기를 북한의 핵보다 더 큰 위협으로 인식했지만, 정부의 외교 정책 우선순위에서 기후위기를 1순위로 꼽은 비율은 13.5%에 불과했다. 위기의 실체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것이 ‘공유된 체감’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폭염에 취약한 고령자, 식량 가격 상승에 절망하는 저소득층, 침수 위험에 노출된 저지대 거주자에게 각기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이처럼 불평등하게 작동하는 위기는 단순 대응만으로 넘길 수 없는 ‘구조적 전환’ 과제로 다뤄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흔히 이 위기를 ‘미래세대를 위한 과제’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 싸움은 멀지 않은 시점의 ‘미래의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기후위기에 대한 체감의 격차는 결국 정책 우선순위의 격차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더 큰 피해를 막을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
◇ 정책 목록보다 필요한 것은 방향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목록이 아니라 나침반이다.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공약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우리가 이 위기를 해석하고 어떤 사회로 전환할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대응이 아닌 전환, 임시 처방이 아닌 구조적 설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뒤따라가는 정책이 아니라, 앞서 준비하는 전략이 가능해진다.
기후위기를 윤리의 언어로만 호소하고, 공감에만 의존해서는 충분치 않다. ‘공감’에서 ‘시스템 설계’로, ‘개별 사업’에서 ‘국가 전략’으로 관점을 확장해야 한다. 어떤 언어로 위기를 묘사하느냐에 따라 프레임이 달라지고, 그 위에서 가능한 미래 설계도 달라진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기술·데이터 기반의 기후기술강국이 될 것인가, 지역 기반의 녹색소득국가를 지향할 것인가, 복지와 회복탄력성을 중심에 둔 포용국가로 나아갈 것인가, 혹은 그린무역국가로 자리매김할 것인가. 이 선택은 단지 정책 항목의 추가가 아니라, 국가가 기후위기를 ‘어떤 언어’로 번역하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위기를 어떤 언어로 말하고, 어떤 프레임으로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기후위기를 좁혀 말한다면 정책도, 산업도, 사회적 합의도 그 틀 안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이 위기를 산업구조의 재편이자 안보의 재정의, 복지의 재설계, 국제사회에서의 신뢰 구축 문제로 말한다면, 대응의 범위와 깊이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언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설계할 수 있는 미래의 모습도 그만큼 달라질 것이다.
조유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박사과정생
필자 소개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전 세계와 대한민국의 정책, 그리고 환경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기후정책과 사회적 불평등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기후위기라는 새로운 ‘위험사회’ 속에서 발생하는 상처와 이에 대한 공공의 대응을 기록하며, 그 과정에서 언론에 보도되는 기사들을 통해 사회의 인식과 담론의 흐름을 읽고자 한다.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한 연구를 꿈꾼다. 그렇다면, 더 나은 미래란 과연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