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사회의 공존법 <9> 유한킴벌리
[인터뷰] 전양숙 유한킴벌리 지속가능경영센터장
지난 17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북쪽으로 350㎞ 떨어진 셀렝게 주 토진나르스.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로 소나무들이 일렬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높이 2~3m의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가운데, 10m를 넘는 키 큰 나무 몇 그루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가지는 꼭대기에만 남아 있었고, 줄기에는 불에 그을린 흔적이 선명했다.

2000년대 초, 이 일대는 대형 산불로 황폐화됐다. 당시 토진나르스 숲은 몽골 전체 소나무 숲의 16.2%를 차지할 만큼 핵심 생태지역이었다. 사막화 우려가 커지자 몽골 정부는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고, 한국의 유한킴벌리가 응답했다. 2003년부터 동북아산림포럼(현재 평화의 숲)과 숲 조성에 나선 유한킴벌리는 지금까지 11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조림 면적은 3250헥타르. 여의도의 11배, 서울 송파구 크기다.
◇ “없어진 숲을 되살려줘서 고맙습니다”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으로 잘 알려진 유한킴벌리. 이 기업이 몽골에 심은 나무는, 사실 한국의 하늘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2002년 당시 국내 연평균 미세먼지 오염도는 61㎍, 사상 최고치였다. 몽골에서 불어오는 황사가 뿌연 하늘을 덮자, 사막화 방지는 한국에도 시급한 과제가 됐다.
초목이 살아나면서 모래바람이 줄었고, 숲은 생태계를 되살렸다. 할미꽃 같은 들풀이 다시 피었고, 노루와 사슴도 돌아왔다. 주민들도 변했다. 이젠 숲 속에서 결혼사진을 찍고, 가족 나들이를 즐긴다. 지난 17일 돗자리를 펴고 소풍을 즐기던 가족이 기자의 눈에 들어왔다.
유한킴벌리는 단지 나무만 심은 것이 아니다. 조림지 주변에는 양과 염소 떼가 드나들며 묘목을 짓밟기 일쑤였다. 초반엔 주민들을 설득해 가축의 방목을 막았고, 이젠 주민들 스스로 “숲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조림지에서 만난 한 운전기사는 유한킴벌리 임원에게 한국어로 “없어진 숲을 되살려줘서 고맙다”고 전했다. 전양숙 유한킴벌리 지속가능경영센터장은 “그 순간이 가장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숲은 ‘일자리’도 만들었다. 연간 70여 명의 현지 인력이 조림 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2003년부터 누적 4만5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관광객도 몰린다. 토진나르스 자연보전구역 관리사무소(SPAA) 나랑바트 을지바야르 소장은 “유한킴벌리 숲이 명소로 자리 잡으면서 매년 최대 1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숲은 시간이 흐를수록 관리가 더 중요해진다. 유한킴벌리는 2014년 조림을 완료한 후, 해마다 100헥타르씩 ‘숲 가꾸기’에 나서고 있다. 지나치게 빽빽한 나무들을 간벌하고 가지치기를 하며 숲이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지금까지 전체 조림지의 3분의 1이 정비됐다.
전양숙 센터장은 “숲을 만든다는 것은 심는 것보다 꾸준히 돌보는 일”이라며 “숲의 진짜 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드러난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사회부터 몽골 정부, SPAA와 현지 NGO까지 함께 소통하며 신뢰를 쌓은 것이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덧붙였다. 유한킴벌리는 매달 현지 NGO로부터 숲의 변화 상황을 보고받으며, 연 2회 직접 현장을 찾아 문제점을 점검한다.
◇ 몽골 ‘숲 복원’의 상징이 된 한국 기업
2022년부터 몽골 정부는 ‘2030년까지 10억 그루 나무 심기’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오흐나깅 후렐수흐 몽골 대통령이 이 계획을 발표한 장소는 다름 아닌 ‘유한킴벌리 숲’이다. 후렐수흐 몽골 대통령은 2023년 진재승 유한킴벌리 대표와 만나 “20년간 조림사업을 꾸준히 이어온 기업은 유한킴벌리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유한킴벌리 숲은 ‘숲 복원’의 상징적인 장소로 자리 잡았다. 16일에는 일본 비영리단체 일본재단(Nippon Foundation) 관계자들이 토진나르스를 찾아 유한킴벌리의 사례를 배웠다. 오는 6월엔 현지 유통사 MSD와 새로운 MOU도 맺는다. 유한킴벌리는 조림뿐 아니라 숲 비교연구를 진행하고, 다른 기업에도 자문을 제공할 계획이다.
전양숙 센터장은 말했다.
“몽골은 기후 때문에 나무가 천천히 자랍니다. 그래서 단기간 성과를 기대하긴 어렵죠. 하지만 유한킴벌리가 20년을 꾸준히 걸어온 것처럼, 이곳은 누군가에겐 희망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마중물이 되고 싶습니다.”
셀렝게 토진나르스(몽골)=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