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왜 사회공헌을 할까요?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따뜻한 기업 이야기’ 뒤에는 어떤 진짜 이유가 숨어 있을까요? 사회를 위한 책임감일까요, 아니면 살아남기 위한 전략일까요? ESG 경영이 주목받는 지금, 기업과 사회는 정말 공존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럴듯한 명분 아래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걸까요? 더나은미래는 [기업과 사회의 공존법] 시리즈를 통해 이런 질문을 던지고, ESG와 사회공헌의 본질과 효과, 그리고 그 이면까지 입체적으로 탐구합니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 기업과 사회가 진정으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고민하며, 공존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 나가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
기업과 사회의 공존법<1> LG유플러스
[인터뷰] 이명섭 LG유플러스 ESG추진팀장
2022년 가을, 태풍 ‘힌남노’가 경북 포항을 강타했다. 수많은 이재민이 대피소로 몰려들었고, 구호물품을 나르던 한 대의 차량이 현장으로 향했다. 차량에는 충전기 30포트와 3킬로와트 발전기가 실려 있었지만, 이내 문제는 드러났다. “충전 속도는 느렸고, 줄을 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점점 초조해졌습니다. 무엇보다 한꺼번에 많은 기기를 지원하기엔 역부족이었죠.”
그날 현장에 직접 나섰던 이명섭 LG유플러스 ESG추진팀장은 통신사로서 재난 구호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재난 현장은 긴박합니다. 한 순간의 지연도 큰 불편과 이어지죠. 그때부터 더 효율적이고 신속한 지원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지난해 1월 출시된 ‘대민 구호 차량’이다. 이 차량은 지진, 홍수 등 재난이 발생한 현장에서 최대 68대의 휴대폰을 동시에 충전할 수 있고, 무료 와이파이도 제공한다. 또한 휴대용 TV도 두 대가 실려 재난방송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무선으로 연결 가능한 프린터는 긴급 문서 출력에 활용된다.
차량 한 대만 도착하면 이 모든 지원이 가능한 점 또한 큰 장점이다. 대부분의 통신 지원은 발전기와 충전기 등을 따로 싣고 가서 현장에 테이블을 마련해 설치하는 방식인데, 이러한 번거로움을 줄이고, 신속한 지원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 차량은 지난해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전북 익산시 재난 대피 구호소에서 처음으로 활용됐다. 당시 지원은 완주 군수로부터 ‘재해 유공 표창’도 받았다.
◇ 현장의 빈틈을 채우다, 재난 속 사회공헌의 가치
2024년 7월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은 익산 재난 대피소. 이 팀장은 이틀간 그곳에서 머물며 또 하나의 빈틈을 발견했다.
“부모들은 물품 수령이나 업무 때문에 바빴고, 아이들은 방치된 채 불안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별도의 공간이 없다는 게 참 아쉽더군요.”
그 경험은 LG유플러스가 국제구호단체 더프라미스와 손잡고 만든 ‘아동친화공간’으로 이어졌다. 이 공간은 최근 제주항공 참사로 혼란에 빠진 무안국제공항에서도 설치됐다. 어린이 매트와 접이식 책상, 미끄럼틀로 꾸며진 이 공간은 부모가 자리를 비운 동안 아이들에게 안전한 쉼터가 되었다.
“아동은 재난 현장에서 누구보다 불안해합니다. 터키 등 해외 지진 구호 현장에는 에어바운스 같은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생긴다고 해요. 그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아이들에 심리적 안정감을 줄 공간과 색연필, 그림책, 매트라도 아이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팀장은 기업 사회공헌의 핵심 전략으로 현장의 필요를 파악하는 것을 꼽았다. 그는 “정부가 공적 구조를 맡고 NGO가 실행단 역할을 한다면, 기업은 현장에서 중복되는 지원을 줄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회사의 사업 방향성과 연결된 사회공헌을 기획하는 것이 필수라고 덧붙였다.
“기업은 자선 단체가 아닙니다. 사회공헌은 회사의 사업 방향성과 연계되면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단, 이를 잠재고객 확보나 단순 정량적 성과로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진짜 변화를 위해 선택한 ‘자원순환’의 방식
지난해 5월에는 폐배터리 자원순환 협의체 ‘배리원(Battery Recycle One team)’을 출범했다. 배리원은 LG유플러스를 중심으로 에너자이저코리아, ㈜이알, 한국전지재활용협회, 한국청소년재단, 고려대학교 등 다양한 기관이 참여해 재활용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많은 곳에서 사은품으로 나눠주는 것처럼, LG 대리점에서도 고객에게 보조배터리를 무상으로 제공하기도 합니다. 근데 폐배터리에는 망간, 아연, 니켈 등 인체에 유해한 중금속이 들어 있어 분리수거하지 않으면 환경오염의 주범이 됩니다.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 폐배터리를 올바르게 수거하는 방법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인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LG유플러스는 직영 매장과 사옥을 활용한 폐배터리 수거와 대국민 홍보를 주도하며, 에너자이저코리아는 재활용 네트워크를 통해 수거된 배터리의 전문 처리를 지원한다. 재활용 전문기업 ㈜이알은 전처리 기술로 희귀 금속을 추출하고, 한국전지재활용협회는 정책 자문과 기술 표준화를 담당한다. 한국청소년재단은 청소년 대상 환경 교육과 캠페인을 운영하며, 고려대학교는 제도개선·수거에 따른 경제·사회적 효과 분석을 맡고 있다.
이 팀장은 최근엔 ‘비영리스타트업 육성’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기업의 지원이 자립준비청년이나 다문화가정 등 특정 이슈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며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비영리스타트업과 협력해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