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8일(금)

[영리한 비영리] 우리가 서로 돕는다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김진아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은 새드엔딩으로 끝난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목초지는 결국 황폐화된다. 1968년, 생태학자 개릿 하딘은 공유지의 비극 개념을 발표하며 중요한 경고를 남겼다. 숲과 물 같은 공공재를 개인과 시장의 원리에만 맡겨둔다면, 공동체의 이익이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각각의 개인이 방대한 목초지에서 경쟁하며 자유롭게 소를 방목하는 것은 합리적 선택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말라붙은 목초지였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이 무한하지 않으며, 무분별한 사용이 결국 파국을 부른다는 사실을 경고한다. 동시에 ‘공유의 비극을 넘어서기 위해’ 공동체의 역할과 책임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진지한 질문을 남긴다.

거버넌스가 유명무실해지는 이유

거버넌스(governance)는 정부, 기업, 비영리기관, 시민 등 다양한 주체가 함께 정책을 수립하고 협력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협치’라는 번역어도 있지만, 거버넌스라는 용어가 더 자주 사용된다. 한국에서는 거버넌스를 정부나 지자체가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점점 더 복잡해지는 사회문제 때문이다.

오늘날 정부는 더 이상 단독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사회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다양한 시민사회단체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또한, 지역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민간 기업과의 협력이 절실하다. 지자체도 거버넌스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중간 조정자 없이 정부와 민간이 원활하게 협력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는 각종 위원회와 협의회를 구성하고, 다양한 주체를 참여시키는 플랫폼을 마련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불행하게도 거버넌스의 성공사례는 찾기 어렵다. 정부 부처, 지자체가 주도한 많은 거버넌스가 생겼다가 몇 년 뒤 자취를 감추는 경우가 허다했다. 시민사회단체를 대거 참여시킨 정부 주도의 거버넌스에 참여했던 한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거버넌스를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시도는 좋았지만, 몇 년간 지속된 뒤 지금은 자취를 감추고 유명무실해진 위원회를 보고 있으면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왜 많은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가. 가장 큰 원인은 정권과 지자체 단체장의 변화에 따라 기존 정책과 사업이 쉽게 뒤집히기 때문이다. 사회문제는 변하지 않고 시민들의 삶은 여전히 힘들지만, 정책과 거버넌스는 이어지지 않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흔들리는 구조에서 ‘무엇이 혁신이고, 무엇이 유산인가’를 신중하게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비영리 기관 역시 변화해야 한다. 편을 가르지 않는 협력이 필요하다. ‘더 나은 사회’라는 공통된 목표를 중심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 궁극적 목적이 같다면 언제든 손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개별 기관이나 섹터 중심의 이기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사회문제 해결은 단거리 달리기로 승부가 날 수 없다. 장거리 이어달리기를 하듯, 장기적 관점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해결해야 한다. 내 눈앞에 결승점이 보이지 않더라도 믿고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길 수 있는 신뢰가 필요하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절실함이 크다면, 정권의 변화나 기관의 이익과 차이 속에서도 이어갈 바통이 무엇인지 선택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환경과 안보를 연구하는 유엔대학교의 연구소 UNU-EHS(UN University Institute for Environment and Human Secure)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지난 몇 년 사이 발생한 세계적 재난을 분석했다.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우림에서는 무려 8700㎢가 불타며 1년 동안 대규모 산불이 이어졌다. 북극의 여름철 기온이 38도까지 치솟았고, 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19 팬데믹도 발생했다. 이처럼 개별적 사건처럼 보이는 재난들은 사실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보고서는 환경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인간의 무분별한 산림 벌채, 과도한 육류 소비 증가 등과 맞물려 있음을 지적했다. 이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생활 방식 전반과 연관된 문제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지역사회의 작은 문제도 마찬가지다. 결국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작은 변화가 없을 때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요원하다. 복잡하고 어려워지는 난제(Wicked Problems) 해결의 열쇠가 ‘협력’인 이유다.

협력은 어렵다. 거버넌스나 기관 간 협력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내 옆의 동료나 다른 부서와의 협력도 쉽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HR 전문가들은 협력을 원활하게 하는 다양한 기술을 제시하지만, 협력이란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사회에 존재하는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치 한 배에 탄 공동운명체와 같다. 협력하지 않으면 인간의 실존이 위태롭다. 전 세계에 닥친 기후위기는 상징적인 예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희박한 거버넌스 성공 사례 속에서도 희망의 증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라는 공동의 주제 아래 2021년부터 환경부, 기업,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토론, 정책참여,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추진되고 있는 거버넌스이자 공론장인 ‘화학안전정책포럼’이나 ESG 경영과 맞물려 활기를 띠고 있는 오픈이노베이션의 일환으로 추진된 안성시의 ‘일죽목욕탕’과 같은 사례는 민간 기업, 지자체, 비영리, 시민과 같은 다양한 영역의 주체들이 모여 한 걸음씩 변화를 만들고 있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아름다운재단도 2015년 서울어린이대공원에 무장애통합놀이터인 ‘꿈틀꿈틀놀이터’를 조성하여 매뉴얼을 개발해 배포하고, 2023년에는 두 번째로 무장애통합실내놀이터 조성을 시작해 준공을 앞두고 있다. 두 개의 사업이 가능했던 이유는 서울시와 양천구의 부지 제공과 시민기부자들의 기금을 통해서였다. 다자간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너 오스트롬은 2010년 출간한 <공유의 비극을 넘어>에서 ‘공유지의 비극’을 극복한 공동체 사례를 소개했다. 스위스, 일본, 스페인, 필리핀 등 세계 여러 지역의 사례를 분석하며, 인간이 어떻게 이기심을 극복하고 자율적 규칙을 만들어 협력하는지를 보여준다.

오스트롬이 강조한 핵심은 ‘정부의 최소한의 개입과 조정’, 그리고 ‘공동체의 자치적 협력’이다. 무분별한 개입이 아니라 공동체가 자율적으로 자원을 관리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협력’이란 가치는 의지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정부의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주인으로 군림하는 대신, 권력을 최소한으로 통제하면서 공동체의 자치에 기반한 협력을 지원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거버넌스의 미래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난제들은 단순한 구호나 보여주기식 협력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거버넌스가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허울뿐인 체제에 불과하다. 우리가 협력의 가치를 진정으로 실천할 때, 공유지의 비극은 더 이상 새드엔딩이 아닌 해피엔딩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에게 기회는 있다.

김진아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

필자 소개

아름다운재단에서 15년간 근속하고 2023년 내부선발 1호 사무총장이 되었습니다. 공익활동을 지원하고 건강한 기부문화를 확산하는 아름다운재단의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도록 전략적 도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난제’가 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다자간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문제의식 아래 거버넌스에 대한 연구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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