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아버지가 요양원에서 방치당해 사망했습니다”…‘학대’ 판정에도 처분 없는 이유

[이슈&해법] 요양시설의 급증하는 노인학대
노인보호전문기관 조사권 강화 필요해

“아버지는 요양시설에서 눈썹이 밀리고, 갈비뼈가 부러졌으며, 폐렴까지 걸렸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학대가 아니라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난 11일 국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인요양시설 학대 문제 현황과 개선 방안 세미나’에서 아들 도중헌 씨의 울분이 터져 나왔다. 그는 “아버지가 요양원에서 틀니가 파손되고, 보호자 동의 없이 눈썹이 삭발됐으며, 갈비뼈 골절이 발견된 것도 한참 뒤였다”며 “요양원이 폐렴 증상을 가족에게 제때 알리지 않아 병세가 악화되었고,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도 씨에 따르면, 노인보호전문기관은 요양원이 갈비뼈 골절과 폐렴 증상을 보호자에게 알리지 않은 행위를 ‘방임’에 해당하는 학대로 판단했다. 그러나 경찰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도 씨는 현재 항고해 사건이 대전고검으로 넘어간 상태다.

또 다른 사례도 충격적이다. 지난 5월 20일, 제주 시내 한 요양원에서 60대 남성이 팔다리가 묶인 채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숨졌다. 조사 결과, 해당 요양원은 기저귀 교체 시 가림막을 설치하지 않아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등 학대 행위를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신체적 학대’와 ‘성적 학대’로 판정됐다. 이 사건은 요양시설 내 노인 학대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금 부각시키며, 관련 기관의 대응 강화와 법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도중헌씨가 지난 11일 개최된 ‘2024 로펌공익네트워크 세미나’에서 아버지의 요양시설 내 학대 피해에 대해 토로하고 있다. /로펌공익네트워크

◇ 노인학대, 5년간 55% 증가했지만 행정처분은 20%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노인학대 판정을 받은 노인복지시설은 55% 증가해 1237곳에 달했으나, 이 중 실제 행정처분을 받은 시설은 248곳(20%)에 불과했다.

서울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권금주 교수는 “노인보호전문기관은 조사 권한만 있을 뿐, 처벌 권한이 없다”며 “학대 판정을 내려도 실질적인 처벌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지자체가 최종 결정권을 가지기 때문에 노인보호전문기관의 조사 결과가 행정처분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소극적인 대응도 문제로 지적됐다. 권 교수는 “시설 측이 민원과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행정처분을 회피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2015~2019년 사이 장기요양보험법 위반으로 행정처분된 사례 중 41건이 행정심판과 소송으로 이어졌다.

◇ “조사권 강화 필요…법 개정 절실”

법무법인 다담의 김수경 변호사는 이날 세미나에서 “노인보호전문기관의 조사권을 강화해야 한다”며 “현장 조사 시 경찰이 동행하도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CCTV 열람 및 자료 제공 권한도 부여해야 학대 판정에 대한 소송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세미나는 로펌공익네트워크가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와 김예지·김미애·서명옥 의원과 공동 주최했으며, 보건복지부가 후원했다. 로펌공익네트워크는 법무법인 태평양, 지평, 율촌 등 12개 로펌이 참여해 로펌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출범한 단체다.

지난 11일 로펌공익네트워크가 개최한 세미나 현장. /로펌공익네트워크

로펌공익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법무법인 동천의 유욱 이사장은 “이번 세미나를 통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예산과 거버넌스 구조를 점검하고, 종합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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