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이른 오후, 침대에 내맡길 권리를 포기하고 나온 이들이 있다. 그들은 청년들의 질문에 답을 찾아가기 위해 모였다. 이들 앞에 놓인 종이 속 여러 질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현재 자신이 가진 것의 일부를 얼마나 포기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이었다.
하나의 질문이 ▲과연 나는 얼마나 포기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더 나은 사회는 무엇이지? ▲내가 가진 것들이 뭐가 있지? ▲그중에 어떤 걸 포기할 수 있지? 등 여러 질문으로 파생된다. 그러다 문득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내가 포기한 적이 있던가?’
우리의 첫 만남은 ‘포기’에 대한 생각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N포 세대. 첫 신조어는 2011년에 등장한 삼포세대였다.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라는 뜻으로 취업난 등을 겪는 2030 세대의 어려움이 드러났다. 이후 오포세대가 나왔다. 앞의 세 가지에 취업과 내 집 마련이 더해졌다. 이어 칠포세대가 나왔다. 앞선 다섯 가지에 건강과 외모 관리가 더해졌다. 다음으로 구포세대가 나왔다. 앞선 일곱 가지에 인간관계와 희망이 더해졌다. 급기야는 십포세대, 완포세대, 전포세대가 나왔다. 그들은 삶을 포기했다.
포기가 주는 어감은 부정적이다. 결과주의적인 사회에서 포기하는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어딘가 부족한 사람, 어딘가 모자란 사람. 이런 사회에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얼마나 포기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 나를 자극했다. 포기했는데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마이너스로 플러스가 될 수 있다고? 포기가 긍정적일 수는 없을까.
◇ 개인을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더 나은 포기’
우리는 ‘더 나은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란 무엇일까? 각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무엇일까? 더 나은 사회에 필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이어 ▲더 나은 나의 삶 ▲각자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사회 ▲개개인이 행복한 사회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를 통해 그려본 우리의 이상적인 사회는 ‘개인으로서의 가치를 오롯이 존중받으면서도 그런 개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사회는 각자의 개성을 갖고 살아가는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과연 다원화된 사회 안에서 각기 다른 개인들의 각기 다른 가치들이 공존할 수 있을까? 우리가 내린 결론은 개개인을 존중하기 위해 각자 약간의 포기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포기들에 이름을 붙였다. ‘더 나은 포기’라고.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일종의 ‘더 나은 포기’를 할 때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각자 포기했던 사례를 나누었다. 대부분이 머뭇거리며 생각보다 자잘한 포기의 경험을 전했다.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는 친구를 배려한 것, 어려운 단어를 줄이고 천천히 아이들에게 말한 것, 휠체어 경사면은 최대한 사용하지 않은 것, 천천히 버스를 타시는 어르신을 차분히 기다린 것, 교통약자석은 항상 비워둔 것, 시민들의 목소리에 함께한 것, 사회 운동에 후원한 것. 실은 모두 우리의 선호 혹은 시간, 비용을 잠시 ‘포기’하고 행한 것들이다. 혹자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런 ‘더 나은 포기’들에 감사함을 표현하면서 응원하고자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다른 실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촉진제가 되고 싶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더 나은 포기의 가장 간단한 예시는 ‘교통’이었다. 출근길이 약 32km일 때 자가용이 아닌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한다면 1년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약 2.2톤 줄일 수 있다. 만약 서울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이 정도를 줄인다면 2200만 톤이 줄어든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3%를 차지한다. 무심코 들은 이 정보가 출근 준비 중에 생각난다면 우리 팀의 목표는 성공이다.
일상에서 겪어왔던 것들에 더해, 새로 시도할 수 있는 것도 탐색했다. 팀원 중 한 명은 공유킥보드가 무분별하게 주차된 영상을 가져왔다. 영상에는 점자블록 위에 주차된 공유킥보드로 인해 점자블록을 따라 걷는 시각장애인이 위험해지는 상황이 담겨 있었다. 처음 알게 된 사실에 ‘공유킥보드를 타게 된다면 주차 시 점자블록을 신경 써야지’하고 새로운 다짐이 늘었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영상을 보고 집에 가는 길, 평소 신경 쓰지도 않던 점자블록들을 훑어봤다. 누군가 점자블록위에 공유킥보드를 주차했다면 다른 곳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를 통해 누군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면 이 또한 우리 팀의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 포기 실천을 위한 ‘포기 유형 테스트’
우리는 일상생활에서의 ‘더 나은 포기’ 실천을 위해 ‘포기 유형 테스트’를 만들었다. 지루할 수 있는 정보를 ‘펀하고(즐겁고) 쿨하고(멋지고) 섹시하게’ 전달하고 싶어 ‘유형 테스트’ 방식을 택했다. 이는 하루를 보내며 마주할 수 있는 여러 상황에서 다양한 선택지를 고르면 자신이 어떤 유형인지를 보여주는 테스트다.
선택지를 고르는 상황은 크게 환경과 다양성으로 나눠 그에 맞는 15개의 사례를 준비했다. 환경에는 텀블러·에어컨·채식·테무깡·메일·배달·분리수거·와이파이 등이, 다양성에는 공정무역·종교·동성혼(가족의 형태)·이주민·장애인·교통약자석 등과 관련된 상황이 담겼다. 테스트 중간의 질문 속에 정보들을 넣기도 하고, 테스트 중간마다 깜짝 정보들을 넣기도 했다.
당위적으로 했던 행동에는 포기가 있었다. 지구에서 한 사람이란 존재는 먼지와 같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이것까진 내가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포기한 사람들도 있다. 우리 팀은 그런 당신의 ‘더 나은 포기’에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도 지속할 수 있도록 같은 자리에서 응원하고자 한다. 나아가 생각지 못했던 포기들을 제안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것이다.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우리와 함께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더 나은 포기를 시작하고 싶다면, 다음의 QR코드를 통해 당신의 포기를 테스트해 보자!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더 나은 포기’가 생활 속 곳곳에 꽃피어 있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홍서희 중앙대 재학생
필자 소개 버튼이 있으면 다 눌러보는, 글씨란 글씨는 모두 읽어보는 청년. 어릴 적부터 내가 사는 이 세상에 궁금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독일어문학을 전공하며 문학으로 공감 및 소통 방법을 배우고, 사회복지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선천적 호기심과 후천적 지식이 더해져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중앙대학교 독일어문학·사회복지학부 학사과정 재학 중. |
※ 사회적협동조합 스페이스작당의 ‘청년들의 작당’은 청년들이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한 생각과 이야기를 나눈 뒤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행동하는 프로그램으로, 더나은미래는 미디어 파트너로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