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9일(수)

사람들의 ‘기적적인 연대’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김치라 민생연대 변호사

올해 초, 별생각 없이 켠 유튜브에서 뉴스 영상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제목은 <“정말 충격적인 사람입니다”…방송 일주일도 안 돼 벌어진 일>, 섬네일은 <역시 참지 않는 한국인들 방송 일주일도 안 돼 ‘발칵’>.

자극적인 글귀는 무심코 영상을 눌러보게 한다. ‘도대체 뭐가 충격이라는 거지?’, ‘한국인들이 무엇을 참지 않았을까?’

영상은 3일 간격의 두 뉴스 보도가 합쳐진 것이었다. 첫 번째 보도는 시민단체를 홀로 이끌어온 한 인물에 대한 것이다. 그는 16년간 무료 상담으로 수천 명의 사채 피해자들을 살려왔지만, 후원금이 끊겨 더 이상 피해자들을 돕지 못하고 해산 절차를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보도는 첫 보도 이후 기적처럼 쏟아진 후원금에 해산 결정은 기적처럼 취소됐다는 소식이었다.

자극적인 제목과 썸네일 그대로 ‘충격적인 사람’과 ‘참지 않는 한국인들’의 이야기였다. 업로드된지 7개월이 된 해당 영상의 조회수는 현재 270만회를 훌쩍 넘는다.

◇ 기적적인 연대가 가능했던 이유는 의미와 ‘재미’

어떻게 이런 기적적인 연대가 가능했을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어서일까? 뉴스에 보도된 인물은 십수 년간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을 도우며 누가 봐도 의미 있는 일을 해왔다. 하지만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많다. 다만 그 이야기가 대중들에게 닿지 않고 있을 뿐.

그럼 어떻게 그의 이야기는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닿게 되었을까? 우리는 여기서 ‘재미’의 역할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재미를 논하기 전 재미의 사전적 의미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재미’를 국어사전과 영어사전에 검색한 결과. /네이버 사전 갈무리

국어사전의 뜻은 어쩐지 와닿는 의미가 아니어서 영어사전을 검색하니 ‘fun’과 ‘interest’가 나온다. 주목하고 싶은 ‘재미’의 의미는 장난치듯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fun’보다는 ‘interest’의 뜻과 상응한다. ‘관심, 흥미, 호기심’, ‘흥미로움’, 혹은 ‘관심을 끄는 것’.

영상은 ‘충격적인 사람’, ‘역시 참지 않는 한국인들’, ‘방송 일주일도 안 돼’ 등의 표현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이끌었고, ‘지난 19일 밤, 서울 영등포의 허름한 사무실. 한 30대 남성이 중년의 남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라며 영상은 호기심을 더욱 자극한다. 이후 오랜 세월, 자신을 돌보기보다 어려운 이웃을 살려온 한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토록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시민단체가 후원금이 없어 문을 닫는다니 도저히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자극적인 표현만큼이나 자극적인 보도였다. ‘자극하다’의 사전적 의미처럼 ‘감각이나 마음에 반응이 일어나게 하는’ 보도. 사람들은 영상을 보고 마음에 반응이 일었고, 응원의 댓글을 달고 후원금을 보내는 행동으로써 ‘연대’했다.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된 것’이다.

◇ ‘청년들의 작당’ 활동에의 적용…재미와 의미를 잡는 ‘포기유형 테스트’

청년들의 작당 2기의 ‘더나은포기’팀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포기유형 테스트’를 제작했다. ‘의미’는 일상 속 환경, 다양성, 사회 이슈와 관련된 정보를 구체적 실천방법과 함께 제시하여 사람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생각의 틈을 열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미’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즐겁게 참여하기 위해 곳곳에 둔 장치였다. ‘더 나은 포기’가 존재할 수 있다는 모순적인 팀명을 시작으로, 요즘 유행하는 MBTI, 티니핑 테스트와 같이 상황 속 선택을 하는 인터랙티브 플랫폼의 활용, ‘외국인 친구가 놀러 온 어느 주말’이라는 몰입을 위한 스토리텔링, 픽 웃음이 나는 선택지의 문구, 테스트 유형으로 제시된 8가지의 귀여운 멸종위기 동물 캐릭터는 서로의 결과를 궁금해하며 공유하는 즐거움을 주고 확산을 촉진했다.

프로젝트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다. 조회수는 1055회, 참여 완료수는 516회로 많은 인원이 테스트에 참여했다. 참여 후기도 반응이 좋았다. 참여소감을 나누는 온라인 공간에는 몰라서 실천하지 못했던 정보들을 재미있게 알게 되었고, 자신이 실천하고 있던 멋진 포기를 발견하게 되는 기회였다는 내용 등이 올라왔다.

청년들의 작당 2기의 ‘더나은포기’팀의 프로젝트인 ‘포기유형 테스트’ 결과 페이지. /스페이스작당

처음에 소개한 시민단체 이야기는 바로 필자가 일하고 있는 ‘민생연대’의 이야기다. 변호사가 아님에도 벼랑 끝에선 사람들을 법률적으로 도우며 생활고를 겪어온 삶을 보고 충격을 받아 필자의 블로그에 글을 썼다. 그러다 우연히 지하철승강장에서 영상 속 인물을 마주쳤고, 말을 걸었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변호사로서 함께 일하게 됐다.

뉴스가 보도된 이후 반년 동안 민생연대는 불법사채 피해상담뿐만 아니라 불법사채 근절을 위한 법률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의원을 통한 입법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흥미로운 피해상담과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풀어내어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할 예정이다.

‘청년들의 작당’ 역시 의미를 발굴하고 그 위에 재미를 더하는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의미 있는 활동에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자꾸 더해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변화를 위한 더 큰 연대가 열릴지도 모른다. 아니 확신한다. 우리는 이미 지구라는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필자 소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전부를 걸고 싶은 멋쟁이 공익변호사. 시민단체 민생연대에서 주로 불법사채 근절을 위한 법률개정안 작업을 하고 있다. ‘세상은 거대한 놀이터이어라!’라는 태도와 주문으로 사람들에게 진짜 재미있게,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 일환으로 ‘청년들의 작당’을 함께 기획하고 참여했다. 시민단체 민생연대 소속 법제전문위원.

※ 사회적협동조합 스페이스작당의 ‘청년들의 작당’은 청년들이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한 생각과 이야기를 나눈 뒤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행동하는 프로그램으로, 더나은미래는 미디어 파트너로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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