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7일(화)

미디어가 말하는 청년, 저희는 그거 아닌데요?

이서연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원

여기 한 청년이 있다. 김민준은 1994년생으로, 31살이다. 현재 경기도에 있는 부모님 집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 서울 소재 모 대학의 경영학과를 졸업해 제조업 계열의 총무팀에서 일하고 있다. 아침에 7시쯤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자차를 운전해 1시간 10분 정도 서울로 이동한다. 퇴근 후 집에 와서는 OTT로 이것저것 보다가 새벽에 1시쯤 잠이 든다.

민준은 정치엔 관심이 없고, 투표 외엔 정치적인 활동은 전혀 해본 적이 없어 캠페인에 참여해 본 적도, 집회에 나가본 적도 없다. 주말엔 수면시간이 두 시간 정도 늘어나고, 토요일 저녁에 친구들과 만나 술 한잔하고, 직장에 출근하지 않는다는 점 정도가 평일과 다른 점이다.

‘공정’과 관련해 김민준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특권을 누리는 데에는 반대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과 상관없이 빈곤하거나 욕구가 있는 사람을 돌봐야 공정하다는 의견에는 어느 쪽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얻는 데에는 노력이 필요한데, 노력 없는 도움을 줄 순 없다. 그렇지만 어려운 사람은 돕고 살아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배워왔다. 쉽게 고르기 어려워 의견을 유보하고 있다.

김민준의 연간 총소득은 3200만원으로 98%가 회사 다니면서 번 돈이고, 나머지 2%는 주식에 투자해서 번 돈이다. 지금 갖고 있는 자산은 적금을 붓고 일해서 모은 돈이 1131만원이고, 주식에 투자해서 모은 돈이 259만원, 가상자산에 투자해서 모은 돈이 25만원 정도 있다.

여기에 부채도 비슷한 정도로 있는데, 학자금 대출 남은 돈이 58만원, 초반에 주식에 투자해 보겠다고 대출받았던 돈 36만원과 출퇴근을 위해 전기차를 구입하면서 받은 대출로 823만원 정도의 빚이 있다. 부모님께는 생활비로 한 달에 32만원 정도 드리고 있다.

다양한 청년 중 일부만 미디어에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Unsplash

그리고 여기, 1994년생 김서연이라는 청년이 있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독립해 울산에 있는 1억 7000만원짜리 전셋집에 1인 가구로 살고 있다. 연간 소득은 2000만원 정도로 홈쇼핑 콜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스케줄 근무가 없을 땐, 가끔 친구가 사장으로 있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유튜브 콘텐츠를 편집하는 일도 하는 ‘N잡러’이기도 하다.

퇴근 후 김서연은 할머니 댁에 들러 두 시간씩 할머니를 돌보고, 할머니의 말벗이 되어 드린다. 할머니가 주무시는 걸 보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온 김서연은 시간을 쪼개 학점은행제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 대학에 가지 않아 학벌로 많은 차별을 당해 이제라도 대학 졸업장을 따기 위해서다. 수면시간은 정말 피곤한 게 아닌 이상 4시간을 넘기지 않는 편이고, 일주일에 2회 이상 운동을 한다. 김서연에겐 ‘시간이 없어서’라는 이유는 없는 말과 같다.

정치에 매우 관심이 많은 김서연은 사내 노동조합의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일을 하지 않는 토요일에는 노동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위한 집회에 꼬박꼬박 참여한다. 디지털성폭력 가해자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국회 탄원서를 직접 작성해 여러 사람의 동의를 받아 제출한 경험도 있다.

‘공정’과 관련해 김서연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특권을 누리는 데에는 김민준처럼 반대하지만, 사회에 기여하는 것과 상관없이 빈곤하거나 욕구가 있는 사람을 돌봐야 공정하다는 의견에는 동의한다. 김서연은 할머니를 돌보며 돌봄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함을 매우 많이 체감했기 때문이다.

◇ 통계에 가려진 ‘청년’의 다양성

앞서 설명한 민준과 서연, 두 인물의 공통점이라곤 1994년생이라는 점과 2008년 출생아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름이라는 점 정도뿐이다. 사는 지역, 거주 상황, 경제적 상황에 하는 일과 정치에 대한 관심도까지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청년이라는 같은 범주로 묶인다.

일상에서 마주하기 쉬운 청년은 ‘김민준’의 모습일 것이다. 두 사람에 대한 설명은 모두 국무조정실에서 발표하고, 통계청에서 확인할 수 있는 ‘2022년 청년삶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조금씩 각색을 더해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김민준에 대한 설명은 모든 조사 결과에서 빈도수가 가장 많은 통곗값으로, ‘가장 흔한’ 청년의 모습이다. 김서연에 대한 설명은 그와 대척하는 지점, 빈도수가 낮은 통곗값을 주로 활용했다. ‘보통’으로 대표될 수 있는 청년의 모습과 통계의 ‘이상치’라고 말할 수 있는 청년의 모습을 함께 그려본 셈이다.

대부분의 청년은 보통의 범주와 이상치의 범주 사이 어디쯤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과 언론의 인식 속에는 다양한 청년의 모습보다 ‘보통 청년’의 모습이 익숙할 터이다. 사람들이 떠올리는 청년에 관한 인식은 빈도가 높은 청년의 모습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는 통계의 친절함 덕분이지만, 한편으론 통계가 보여주는 ‘다수’의 모습에 ‘다양한’ 청년의 모습이 가려지는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미디어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다룰 때는 ‘20대에서는 찬성하는 의견이 60%, 반대하는 의견이 40%였다’ 등 통계의 주요 수치를 중심으로 다루게 된다. 그런 맥락이 ‘이대남’, ‘이대녀’ 등의 프레임으로 이어져 청년 다수의 의견으로 언론에 보도된다.

정치권에선 언론에 비친 청년의 모습을 기준으로 삼고 청년 정책을 구상하고, 발표한다. 20·30대를 ‘캐스팅 보터’라 일컬으며 청년 표심을 잡겠다고 하지만, 결국 기준이 될 수밖에 없는 건 다수의 청년일 것이다. 그들을 만족시키는 정책을 내놓는 것이 다수의 청년을 만족시켜 표를 더 많이 얻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말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다양한 청년의 목소리는 언론과 정책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청년들의 안전한 일자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 성폭력의 적정한 처벌과 일상 회복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 완화 방안 등 청년의 삶에서 중요한 의제가 중력을 잃고 허공에 부유하고 있다. 비단 청년의 목소리뿐 아니라 세밀한 정책 설계가 필요한 대한민국 시민들의 목소리도 사라져가고 있다. 결국, 나와 우리 모두의 목소리가 공중에서 분해된다.

◇ 여기, 다양한 청년의 삶이 있습니다!

‘청년들의 작당’은 내가 살고 싶은 집 같은 사회(堂)를 만들기(作) 위해 시작했다. 소소한 작당을 모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모였다. 통계에서 이상치가 되어 버린 다양한 청년의 삶을 청년인 우리의 목소리로 직접 이야기하고 싶었다.

원하지 않는 저출생 대응 정책과 지방소멸 대응 정책이 정말 실효성이 있는지, 무한경쟁으로 압박하는 교육체계 속에서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지향하며 함께 공존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투표 외에 시민으로서 정책 결정 과정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활용할 수 있을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내가 누리는 것을 어느 정도까지 포기할 수 있을지 등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청년의 삶이 더 나아지기 위해선 다양한 삶에 대한 이해가 우선 필요하다. 청년을 위한 정책 역시 청년의 다양한 삶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양한 청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혹은 듣고 싶지 않아서 듣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에게 청년들의 작당은 오늘도 확성기를 켜고 외친다. “여기, 다양한 청년의 삶이 있습니다!”

이서연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원

필자 소개

‘해리포터’ 시리즈의 ‘후플푸프’처럼 세상은 다수의 성실한 민중이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좀 더 안전하고 평등하게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 작당을 함께 하고 있다. 전직 여론조사, 현직 재정 관련 일(나라살림연구소 소속)을 하는 연구원.

※ 사회적협동조합 스페이스작당의 ‘청년들의 작당’은 청년들이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한 생각과 이야기를 나눈 뒤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행동하는 프로그램으로, 더나은미래는 미디어 파트너로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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