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디캠프, 창업자 정신건강 들여다봤더니… 2030세대·여성 ‘고위험’

디캠프, 국내 첫 ‘창업자 정신건강 실태 보고서’ 발간

“한국 자살률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18년째 1위입니다. 매일 40분에 1명꼴로 스스로 생을 마감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많은 나라인 거죠. 특히 스타트업 창업자의 경우 일반인 집단에 비해 정신건강 관리가 더 필요하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출퇴근만 반복하는 삶을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특정한 시간을 정해 직장과 집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쉬는 시간을 갖는 게 좋아요.”

김정현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번아웃’을 걱정하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전하는 조언이다.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디캠프 선릉센터에서 열린 ‘창업자를 위한 마음고민 상담소’ 행사에 참석한 김 교수는 “기존의 창업 관련 지원은 재정·인프라·교육 등 창업 활성화에만 초점을 맞춘 측면이 강하다”면서 “CEO로서 책임을 지면서 실무 역할도 도맡는 창업자들의 정신건강을 진단하고 이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일 서울 강남구 디캠프 선릉센터에서 열린 '창업자를 위한 마음고민 상담소'에 참석한 (왼쪽부터)전연호 디캠프 경영지원실장, 김정현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영덕 디캠프 상임이사가 창업자들의 고민에 답하고 있다. /디캠프 제공
20일 서울 강남구 디캠프 선릉센터에서 열린 ‘창업자를 위한 마음고민 상담소’에 참석한 (왼쪽부터)전연호 디캠프 경영지원실장, 김정현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영덕 디캠프 상임이사가 창업자들의 고민에 답하고 있다. /디캠프 제공

이날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는 분당서울대학교병원과 공동으로 진행한 ‘스타트업 창업자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국내 창업자의 정신건강 문제와 원인을 분석한 최초의 보고서다.

창업자 10명 중 2명꼴 ‘자살 고위험군’

이번 연구는 국내 스타트업 창업자 271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연구진은 ▲우울 ▲불안 ▲수면 ▲문제성 음주 ▲자살 위험성 ▲스트레스 등 11개 위험 요인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창업자들의 정신건강 상태는 일반 성인 대비 우울, 불안, 자살유병률 등 항목에서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우울 수준을 살펴보면 중간 수준 이상이 전체의 32.5%를 차지했다. 전국 성인 평균인 18.1%보다 14.4%p 높은 수치다. 불안 수준도 중등도 이상 비율이 20.3%로 전국 평균 12.2%를 크게 웃돌았다. 문제성 음주 부문에서는 위험 수준의 음주가 22.5%,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음주는 10.7%로 나타났다. 특히 자살 위험성 고위험군에 속해 치료가 필요한 창업자는 21%에 달했다.

응답자들이 꼽은 스트레스 요인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자금 압박 및 투자 유치’(44.6%)였다. 이어 ‘조직 관리 및 인간관계’(20.3%), ‘실적 부진 및 성과 미흡(19.6%) 순이었다.

성별로 따져보면 남성보다는 여성의 정신건강이 더 나빴다. 자살위험성에서 위험 수준으로 조사된 여성 비율은 34.1%로 남성 18.5%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중등도 이상의 스트레스를 보이는 비율도 여성은 68.2%로 남성(57%)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 밖에 연령대로 보면 2030세대가 50대 이상보다 우울 수준이 크게 높았고, 사업 연수로 보면 5년 이상이 3~5년차에 비해 자살 위험성이 높았다.

20일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가 마련한 ‘창업자를 위한 마음고민 상담소’에는 스타트업 창업자를 포함한 관계자 50여 명이 참석했다. /디캠프 제공
20일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가 마련한 ‘창업자를 위한 마음고민 상담소’에는 스타트업 창업자를 포함한 관계자 50여 명이 참석했다. /디캠프 제공

“정신건강 문제, 언제든 전문가 도움받을 수 있어야”

보고서는 창업자들이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기 위해선 내재적 동기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재적 동기란 업무에 흥미나 만족을 찾으려는 원동력을 뜻한다. 김정현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도 내재적 동기가 늦은 창업자가 우울, 불안,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돈이나 타인의 평가 등 외재적 동기는 정신건강 개선에 크게 도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응답자 중 전문적 도움을 받을 의향이 없거나 의향은 있지만 현재 도움을 받고 있지 않은 비율은 93%였다. 이들에게 다중 응답식으로 그 이유를 조사한 결과 ‘정신 건강 문제로 어려움이 있지만 도움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한 비율이 46.9%로 가장 컸다. 이어 ▲치료 시간을 내기 어렵다(39.8%) ▲비용이 많이 든다(33.9%) ▲어디서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지 몰랐다(13.8%) ▲나약한 사람으로 비칠까 염려된다(10.2%) ▲사회나 직장에서 받을 불이익 때문(5.1%) 등으로 나타났다.

김정현 교수는 “여전히 정신건강에 대한 전문적 도움을 받는 일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창업자들이 정신건강 상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언제든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심리 교육의 기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영덕 디캠프 상임이사는 “창업자의 긍정적 심리상태는 개인의 행복과 직결되지만 결과적으로 업무 능률을 높이고 성공적인 창업에도 영향을 미친다”면서 “창업자들의 정신건강을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을 지속 운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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