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현신 지구촌나눔운동 WFK 청년중기봉사단장
코로나19로 여전히 국경을 넘기 어려웠던 지난 1월, 메콩강 주변 4국과 한국 청년 130명이 온라인에서 모였다. 국내·현지의 만 39세 이하 청년들이 국가별 연합팀을 구성해 메콩 지역 이슈 해결을 위한 봉사활동을 벌이기 위해서다. 봉사단원들은 난민 인권(태국), 산모 보건(캄보디아), 장애인 인권(베트남), 지뢰(라오스) 등 문제 해결을 위해 매주 연락을 주고받았다. 공여국 주도의 기존 국제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현지인의 관점을 전체 봉사 과정에 반영한 것으로, 국제구호개발의 ‘새로운 거버넌스’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달 25일 메콩 지역의 평화와 인권을 지키자는 공동성명서를 채택하면서 공식 일정은 마무리됐다.
이번 프로젝트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의 ‘월드프렌즈코리아(WFK):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청년중기봉사단’ 사업의 일환으로 운영됐다. 지구촌나눔운동은 지배구조(G) 부문을 맡아 협력의 구조를 만들었다.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이현신(56) 지구촌나눔운동 WFK 청년중기봉사단장을 만났다. 이 단장은 “이번 사업에서는 다양한 구성원의 ‘협치’에 집중했다”면서 “코로나19 이후에도 이어갈 수 있는 모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개발의 새로운 모델
-큰 프로젝트가 끝났다. 온라인으로 해외봉사를 한다는 새로운 시도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에 ‘거버넌스’라는 주제를 받아들고 막막했다. 그러다 새로운 국제구호활동 모델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해본 적 없는 방식이었지만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거버넌스 키워드를 해외봉사에 어떻게 적용했나.
“‘협치’에 초점을 맞췄다. 다양한 구성원이 협력할 수 있는 구조와 환경을 만들 방안을 고심했다. 지금까지 해외봉사는 주로 공여국 위주로 진행됐다. 이번에는 국가별 이슈를 선정하고 해결하는 것까지 모두 현지 단원과 함께 결정하고 시행했다. 현지 단원은 현장 상황과 관점을 제공하고, 한국 단원은 교육·홍보 자료 같은 콘텐츠를 주로 만들었다. 팀별로 일주일에 한 번씩 총 20회가량 온라인 정기 모임을 했다. 언어가 다른 팀원들이 함께 어울려 활동을 이끌어가도록 하는 게 큰 숙제였는데 기대 이상으로 잘 끝났다. 각 팀이 민주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작은 거버넌스를 구축했다.”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했나.
“국가별로 3개씩 연합 팀을 구성하고 ‘액션플랜’을 정했다. 총 12개 액션플랜이 선정됐다. 큰 주제는 나라마다 다르다. 캄보디아는 산모 보건 의식 증진, 라오스는 북부 지역 불발탄 제거, 태국은 국경지대 난민 인권, 베트남은 장애인 인권 문제를 다뤘다. 편의상 주제를 나눠서 활동하기는 했지만, 메콩강 인근 국가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옆 국가 문제가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데 다들 공감했다. 그래서 마지막에 공동 성명문을 채택했다. 메콩강 주변 지역 환경보호, 평화 유지, 취약계층의 인권 보장을 위해 국제사회가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봉사 주제가 현지 단원에게는 익숙한 문제들인가.
“그렇지 않다. 라오스 불발탄 이슈의 경우 정부가 공론화하기를 원치 않아서 현지 인지도가 정말 낮다. 베트남 전쟁 때 미군이 철수하면서 뿌리고 간 불발탄인데 라오스 국민들은 어디에, 왜 묻혀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참석한 현지 단원들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전체 매장량의 1%도 제거가 안 됐다. 북쪽 산간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파종기가 되면 불발탄을 밟고 잇따라 목숨을 잃는다. 다리가 절단되거나 사망에 이르는 아이들도 매년 줄지 않는다. 지역에서 그나마 주민을 대상으로 시행하던 안전 교육은 코로나19 기간에 중단됐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정부가 굉장히 비협조적이었다. 막판에 간신히 허가를 받아 공공기관이나 학교에 우리가 만든 교육 자료를 나눠줄 수 있었다.”
-태국 난민 ‘카렌족’ 이야기도 생소하다.
“우크라이나 난민이나 로힝야 난민은 많이 알려졌지만, 미얀마에서 넘어온 카렌족은 거의 잊힌 존재다. 태국 내에서도 고립돼 있다. 정부가 이동 허가를 잘 내주지 않아서 국경지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주눅이 들어 있었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상황이 열악해도 밝은데 카렌족 아이들은 눈치를 자주 보는지 나이답지 않게 조용했다. 아이들에게는 정규 학교에 다닐 자격도 주어지지 않는다. 겨우 대학교육까지 마쳐도 일자리를 얻기 어렵다. 선교사나 NGO가 세운 비정규 학교가 있기는 하지만 환경이 열악하다. 단원들은 학교에 물탱크와 필터부터 설치해주기로 했다. 한국 단원이 물건을 구매하고, 설치와 공사는 현지 단원이 직접 했다. 교직원을 대상으로 보건 교육을 하고 구급약품도 제공했다.”
난민이 푸는 난민 문제
-난민 청년들이 직접 참여했다고.
“3명이 있었다. 이 단원들의 스토리를 한국 단원들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왜 미얀마에서 태국으로 넘어왔고 그 이후로 어떻게 살았는지, 나의 문제는 무엇인지, 왜 미래가 보이지 않는지 등을 다뤘다. 지금까지 세상을 만날 방법이 없어서 늘 답답했는데, 한국 단원들과 교류하면서 속이 트이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당사자가 있었나.
“장애인, 이주민 등이 참여했다. 베트남 장애인 이동권 플랜에 장애인 단원이 직접 참가했다. 베트남에서 온 이주민 여성도 현지 문화를 설명하고 통역을 도맡아 했다. 보호나 교육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여겨지던 사람들이 먼저 나서서 나눠주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전문가, 비장애인 중심이던 해외봉사 단원의 영역을 확장한 것도 이번 사업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처음엔 단원들이 뭐부터 해야 하는지 몰라서 막막해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만나서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다음 계획을 세우고, 활동을 일일이 점검하는 과정을 버거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끝날 때쯤 돼서 성과가 눈앞에 나타나니까 각 과정이 왜 필요했는지 이해했다. 한 태국 단원은 식수를 제공할 물통이 학교에 설치되고, 구성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걸 보면서 ‘온라인으로도 우리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구나’ 기뻤다고 한다. 이제 국제구호개발이 뭔지 알 것 같고,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끝나서 아쉽다는 후기도 있었다.”
-현지 단원의 역량이 강화됐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 해외봉사를 할 때 ‘지속가능성’을 매우 강조한다. 사업이 끝나도 현지에서는 효과가 계속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은 파견됐던 봉사단원이 돌아가면 그 지역이 죽어버린다. 이번에 형성된 네트워크는 사업이 끝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후속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역량이 강화된 현지 단원들도 계속 지역에 있다. 이렇게 봉사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의미 있는 모델이 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지구촌나눔운동은 세계시민교육이 주요 미션이다. 온라인 봉사의 방법으로도 미션을 달성해보려고 한다. 참여 대상을 청년에서 확장한다면 더 의미 있을 것이다. 기업·기관과 협력하거나 은퇴한 시니어 층과 함께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봉사활동 의지가 높아도 현지에 장기 거주하면서 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80% 정도는 온라인으로, 20%는 현장에서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