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선도하는, 연결하는 ‘선’한 기업이 사랑받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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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과 교수 3인이 말하는 ‘사회가치경영’

경영학과 교수 여섯 명이 모여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회가치경영의 실천 전략’이라는 책을 펴냈다. 저자로 참여한 김재구·이정현·이무원 교수(맨 왼쪽부터)는 “사회가치경영은 기업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사무실에 하나 둘 배달되는 우편물이 있다. 기업들이 매년 여름쯤 발간하는 ‘지속가능성보고서’다. 지난 1년간 기업이 창출한 경제적·사회적·환경적 성과를 소개하는 책자다. 기업의 목표와 비전은 무엇인지, 고객에게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했는지, 직원들의 성장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협력사와 공정하게 거래했는지, 어떤 사회공헌 활동을 펼쳤는지 등을 각자의 방식으로 자세히 담아낸다.

현재 국내 기업 수백곳이 이런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보고서들을 연도순으로 놓고 살펴보면 기업들의 경영 방식이 점점 ‘사회적 가치’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걸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함으로써 기업의 정당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사회가치경영’의 흐름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치경영의 개념이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왔지만, 구체적 실천 전략이나 방법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다. 경영학과 교수 여섯 명이 모여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회가치경영의 실천 전략'(클라우드나인)이라는 책을 펴낸 이유다. 1년 가까이 함께 토론하고 정리하며 만든 책이다.

저자로 참여한 김재구·이정현(이상 명지대)· 이무원(연세대) 교수를 지난 6일 서울 광화문 근처에서 인터뷰했다. 셋은 경영학계의 소문난 ‘절친’이기도 하다. “사회가치경영을 하는 기업은 ‘선’한 기업이에요. 세 가지 의미의 ‘선’이죠. 착한(善) 기업, 먼저(先) 실행하는 기업, 이해관계자들을 연결(線)하는 기업.” 책 출간 뒤풀이 비슷하게 시작된 만남은 금세 열띤 토론으로 번졌다.

기업은 혼자서 존재할 수 없다

―사회가치경영에 관심 갖는 국내 기업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김재구=SK,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대기업들이 선도하고 있죠.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해요. 미국 주요 기업 CEO들의 모임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은 지난해 사회가치경영과 관련된 특별한 선언을 했습니다. 아마존·애플 등 181개 기업 CEO가 모여 ‘기업의 목적’을 새롭게 정의하고 공표했죠. 기업의 목적은 ‘경제적 가치 극대화’가 아니라, ‘이해관계자들과의 공동 발전’에 있다고요.

―’이해관계자들’은 누구를 가리키는 건가요?

김재구=기업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기업이 속한 사회로부터 인적·물적 자원을 받아들여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경제적·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내죠. 고객, 직원, 협력사, 주주, 지역사회 등이 전통적 관점의 이해관계자들이에요. 우리 책에서는 범위를 더 확장해 정부, 비영리조직(NPO), 사회적경제조직, 나아가 자연환경까지도 이해관계자로 봅니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행복과 성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게 사회가치경영의 핵심이에요.

―지속가능경영, CSR(기업의사회적책임) 등 비슷한 개념이 많은데 ‘사회가치경영’이라는 말을 선택한 이유는요?

이정현=유사한 용어들이 정말 많죠. CSV(공유가치창출), DBL(더블보텀라인), TBL(트리플보텀라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각자 족보가 있고 계보가 있어요. 그중에서도 사회가치경영이라는 말을 쓴 건 기존의 용어들과 차별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에요. 단순한 경영 전략을 넘어 조직, 인사, 문화 등 시스템 전반의 변화를 포함하는 개념이죠.

―시스템 전반의 변화요?

이무원=기업이 사회가치경영을 실현하려면 ‘톱다운’ 방식이 될 수밖에 없어요. SK와 포스코가 대표적이죠. 회장들의 미션과 비전이 확고한 곳이에요. 하지만 리더의 미션이 직원들에게 체화(體化)되기는 어려워요. 그동안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경제적 가치에만 몰두해 있었는데 갑자기 톱다운 식으로 사회가치경영을 하려다 보니 ‘문화’로 고착화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겁니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생경하고 혼란스러운 거죠.

이정현=톱다운 방식의 사회가치경영은 시작됐지만 조직 전반으로 확산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따를 겁니다. 비전과 전략은 조직 내 소수의 사람이 만드는 거지만, 이게 실은 ‘행동 규범’으로 발전해야 하는 거예요.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죠. 늘 경제적 가치를 지향하는 방식으로 일을 해왔으니까요. 조직 내부의 제도,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이게 안정되면 문화가 되는 거예요. 거기까지 가야 변화라고 할 수 있죠.

한국이 미국보다 더 잘할 수 있다

―기업들이 변해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시민들의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겠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인지 아닌지를 소비자들이 판단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이정현=한국의 경제 성장은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어 끌고 가는 방식이었어요. 지난 60년을 1998년 IMF 외환 위기 이전 40년과 이후 20년으로 나눠 생각해봅시다. 40년간의 경제 성장 속도보다 이후 20년의 속도가 더 빨랐어요. 경제적 성장도 눈에 띄지만 시민의 역량과 능력도 크게 발전했어요.

이무원=예전에는 정부·기업·시민 간에 정보 불균형이 있었어요. 시민들의 정보량이 훨씬 적었죠. 이제 기술 혁신으로 그런 정보의 비대칭이 사라졌어요.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걸 시민들도 알게 됐죠. 그래서 기업의 사회가치경영에 대한 요구가 더 세지는 거예요.

김재구=현대사를 보면 변화를 촉발한 세 가지 큰 사건이 있었어요. 1998년 IMF 외환 위기, 2008년 금융 위기,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사태죠. 1998년 이전에는 경제적 가치를 최고로 여겼어요. 그런데 그게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간을 가졌던 것 같아요. 2008년 금융위기 때는 격차사회(格差社會)라는 걸 제대로 느꼈죠. 경제가 무너진 후, 잘 버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려운 사람들은 더 어려워졌어요. 그리고 코로나19라는 인류 공동의 적이 나타난 겁니다. ‘협력’과 ‘연대’가 가장 중요한 시대가 온 거예요.

―코로나19가 각자도생에서 연대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셈이네요.

이정현=사실 우리나라 공공 의료 시스템이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진다는 얘기가 있었잖아요. 이탈리아 같은 나라는 경제적 가치를 따져서 이걸 줄이다가 결국 코로나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고요. 서구의 효율성이나 개인주의가 지혜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이무원=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걸 서구에서는 ‘패러독스(Paradox) 매니지먼트’라고 해요. 모순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 역사 속에는 ‘공동체 자본주의’라는 게 있었어요. 경제적 가치가 사회적 가치를 부양할 수 있고, 사회적 가치를 잘 만들어내면 경제적 가치가 따라온다는 거죠. 그게 개성상인 모델이고, 품앗이 모델이에요. 하지만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너무 가난해지니까 공동체의 가치는 잠시 미뤄두고 경제적 가치만 따르게 된 겁니다. 우리 안에 그런 유전자가 있으니까 우리 기업들이 어쩌면 사회가치경영을 서양보다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죠.

사회가치경영 과정에서 ‘혁신’이 나온다

―우리나라 사회가치경영이 해외보다 뒤처진 건 사실이죠?

이무원=휼렛패커드(HP)는 1957년에 이미 ‘글로벌 시민정신(corporate citizenship)’을 도입했어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수행하는 게 글로벌 시민정신의 개념이죠. 벌써 60년도 더 된 일이에요.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 기업들도 시작해야 해요. 아까도 얘기가 나왔지만 전 사원이 체화되는 단계로 가려면 로드맵을 잘 짜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선언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요.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어야 해요.

―대기업도 시작 단계니까 중소기업들은 더 어렵겠네요.

이정현=중소기업 대표들 만나면 ‘가뜩이나 어렵고 바쁜데 언제 사회가치경영까지 신경 쓰냐’고 해요. 여유가 있을 때는 할 수 있을까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요. 사회가치경영은 과거 경영의 불균형에서 나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거예요. 3년, 5년짜리가 아니라 지난 100년간 이어진 경제적 가치 중심의 경영을 대신할 100년짜리 경영이죠.

이무원=한편으로는 대기업의 역할이 큽니다. 중소기업들은 대체로 대기업들과 연결돼 있으니까요. ‘이케아’를 생각해보면 공급망이나 유통망이 모두 중소기업이에요. 환경에 대한 하이 스탠더드를 협력 업체에 똑같이 적용하죠. 이케아와 거래하는 중소기업은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가치를 지켜야 해요.

이정현=’유니레버’도 그래요. 이케아처럼 사회가치경영과 관련된 제도들을 도입하고 이해관계자들이나 납품업체에 장려합니다. 협력 업체 입장에서는 코스트(비용)를 유니레버가 지원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거예요. 유니레버는 ‘충분히 지원은 하되 일부는 협력 업체가 부담하게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식으로 서로 논의하고 협상하면서 규범을 만들어 확산하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겁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기업이 이케아나 유니레버처럼 해도 이런 갈등이 발생하겠죠?

이무원=사실 거기서 ‘혁신’이라는 게 나옵니다. 중소기업이든 소셜벤처든 비용을 줄여가는 과정에서 더 좋은 기술이 나와요. 경제적 혁신이 기술적 혁신으로 이어지는 셈이죠. 베트남에 있는 유니레버 납품 업체 한 곳은 유니레버 기준에 맞추려다가 사회가치경영 수준이 현지의 다른 기업보다 월등히 높아져서 중소기업임에도 다른 기업들을 선도하는 수준이라고 해요. 기준을 높이니 협력 업체들이 ‘어쩔 수 없이’ 혁신을 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 거죠(웃음).

두 시간에 걸친 토론을 마무리하며 세 사람은 ‘사회적 가치’의 속성을 다시 한번 짚었다. 경제적 가치가 단일한 가치라면, 사회적 가치는 다양한 가치들의 집합체라고 설명했다. 경제적 가치를 달성하기 위한 경영 전략들은 쉽고 명확했지만, 사회적 가치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은 모호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재구=사회가치경영에 정해진 공식은 없습니다. 기존의 공식을 깨는 게 사회가치경영이죠. 기업에 맞는 실천 전략을 만들고 구체화해 ‘실천’하는 게 핵심입니다. 조직의 조건, 구성원의 역량에 따라 기업들은 앞으로 각자 다른 ‘사회가치경영의 길’을 걷게 될 겁니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기자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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