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힘 모아 바꾼 음주운전 처벌법… 창호 같은 비극 더는 없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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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만드는 시민들]  ‘윤창호법’ 이끈 윤창호씨 친구들

 

지난 3일 부산 해운대구에서 만난 고(故) 윤창호씨의 친구들. 왼쪽부터 이영광, 예지희, 김주환씨. 대학에서 각각 기계공학, 광고홍보, 화학공학을 전공해 법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제는 음주 운전 관련 법 조항을 줄줄 꿰는 전문가가 다 됐다. ⓒ부산=류열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시민의 힘으로 법을 만드는 ‘크라우드법 운동’이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개인이나 단체가 법안을 만들어 여론을 형성하고 국회를 압박해 법을 바꾸는 사례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18일과 지난달 25일, 두 번에 걸쳐 시행된 ‘윤창호법’이 대표적이다.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과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대폭 강화한 이 법은 평범한 대학생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지난해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윤창호씨를 위해 친구들이 만든 법이다. 지난 3일 윤씨의 고향 부산에서 만난 김주환·예지희·이영광(이상 23)씨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윤창호법’과 ‘제2 윤창호법’이 시행되면서 음주운전자 처벌 강도가 높아졌고, 음주운전 단속 기준도 강화됐다. ⓒ부산=류열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법 없이도 살 사람’ 윤씨 기려 법 만든 친구들

“사고 나기 6개월 전쯤 창호랑 맥주를 한잔했어요. TV에서 뉴스가 나오는데 음주운전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었죠. 창호가 화를 내더라고요. ‘술 먹고 운전대 잡을 생각 자체를 못하게 하려면 법부터 바꿔야 한다’면서요. ‘그래 맞아’ 하고 넘겼어요. 창호가 피해자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영광씨는 윤씨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도 이제는 법이 바뀌었으니 창호 같은 안타까운 사연들이 좀 줄지 않겠어요? 창호도 뿌듯해할 겁니다.”

윤씨는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이름을 딴 법안을 남겼다. 음주운전자의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높인 ‘제2 윤창호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이다. 음주운전 사망사고를 낸 운전자의 형량이 ‘1년 이상’에서 ‘무기 또는 3년 이상’으로 높아졌고, 면허정지 기준도 혈중 알코올 농도 0.05%에서 0.03%로 강화됐다.

윤창호법을 이끌어낸 건 윤씨의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동창 10명이다. 사고 발생 일주일 뒤인 10월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청원을 올린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직접 법률 개정안 초안을 작성해 국회의원 299명에게 전달했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법제사법위원회 간사들을 만나 법안 통과를 주문하는 한편 기자회견과 서명운동으로 시민의 참여를 독려했다. 그 결과 사고 발생 66일 만인 지난해 11월 29일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의사로부터 “일주일을 넘기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고도 46일이나 버텼던 윤씨가 세상을 뜬 지 20일 만이다.

“창호가 정말 좋은 사람이었나 보다고 말씀들 하세요. 그러니까 친구들이 나서서 법까지 만든 것 아니냐면서요. 저희한테 창호는 ‘산’ 같은 사람이었어요. 든든했죠. 만약 창호가 저였어도 울고만 있지는 않았을 거예요.”(이영광씨)

윤씨는 고려대 졸업 이후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었다. 버릇처럼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첫 장에는 꼭 ‘절제(節制), 품격(品格), 정도(正道)’라는 단어를 바른 글씨로 썼다.

“창호가 친구랑 다투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시험 기간이면 직접 과목별로 요약한 노트를 나눠주던 애예요. 고민을 털어놓으면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요. 약자들한테도 관심이 많았어요. 위안부, 천안함 기억 배지 같은 걸 사서 친구들 가방에 달아줬어요.”(예지희씨)

윤창호씨와 윤씨 친구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을 그리워할 윤씨의 부모를 위해 친구들이 인화했다. ⓒ부산=류열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작은 힘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어”

윤창호법 초안은 윤씨가 입원한 부산 백병원 중환자실 로비에서 완성됐다. 윤씨 친구들은 사고 발생 사흘 뒤부터 이곳에 모여 자료 조사를 시작했다. 국회의원실과 경찰청 통계, 음주운전 판결 관련 기사를 수집하고, 해외 사례와 비교했다.

“작은 원칙부터 지켜야 사회 전체의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친구의 뜻을 이루기 위해 청와대 게시판에 글을 썼어요. 청원 올린 날, 친구들이랑 처음으로 같이 웃었어요. 항상 창호한테 받기만 했는데 반대로 무언가 해 준 것 같아서요. 정말 많은 분이 뜻을 모아주셨죠. 사흘 만에 20만명의 동의를 얻었으니까요. 학교 다니면서 자료 조사하고, 과제하면서 법안 검토하고 정말 정신없이 살았던 것 같아요.”(김주환씨)

혈중 알코올 농도별 심신 변화에 관한 의학 논문, 음주운전 범죄 재범률과 음주운전 사고 사망률 관련 경찰청·국회의원실 통계, 언론 보도를 뒤졌고, 이탈리아·미국·캐나다 등 국가의 관련 법률과 비교해 초안을 작성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윤창호법은 의원 1명을 제외한 전원의 동의를 받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제2 윤창호법 시행일인 지난달 25일 이후 일주일간 전국 음주운전 단속 건수는 27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9% 감소했다. 대리운전 호출 건수가 급증하고 간이 음주측정기가 불티나게 팔리면서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예지희씨는 “‘술 한 잔도 못 먹게 하는 게 정상이냐’ ‘어린 애들이 뭘 안다고 법 만든다고 설치느냐’ 같은 댓글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면서도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윤창호법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영광씨는 진로까지 바꿨다.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의대에 다시 진학해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지난 4월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았어요. 의사 선생님이 ‘자신의 마음부터 돌아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이번 일을 계기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감히 창호 몫까지 2인분을 힘껏 살아볼 생각이에요.”

김주환씨는 “법을 만들면서 우리가 얼마나 정치에 관심이 없었는지 실감했다”고 말했다. “정치인이 만든 법이 시민의 삶을 좌우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작은 힘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용기도 얻었고요. 창호가 우리에게 남겨준 교훈이에요.”

[장지훈 더나은미래 기자 jangpr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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