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누군가를 위하여, 상처받은 가슴을 위하여, 우리가 망쳐버린 것들을 위하여“
– 라라랜드 대사 중
요즘 ‘라라랜드(감독 다미엔 차젤레)’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 영화는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배우 지망생 ‘미아’(엠마 스톤)의 꿈과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환상적인 색채, 리드미컬한 재즈선율 등 백 가지쯤 들 수 있다. 한 평론가는 ‘우리가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모든 이유가 이 영화 안에 들어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강력한 영화의 매력은 꿈을 향해 가는 남녀의 사랑이 결국 현실을 택함으로 인해 관객들에게 씁쓸함과 아련함 그리고 긴긴 여운을 남겼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고 꿈과 사랑은 양립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며 허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마지막 엔딩에서 주인공 남녀가 주고받은 눈빛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사람들은 꿈과 사랑의 완성을 성공과 실패라는 목표지향적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하다. 꿈과 사랑은 목표나 결과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주면서 온전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런 의미에서 라라랜드는 새드엔딩이 아니라 꿈과 사랑을 모두 이룬 진정한 해피엔딩이다.
꿈과 사랑이 양립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일과 삶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최근 많은 연구자들이 일과 삶을 균형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말은 일과 삶의 분리를 전제하고 있다. 일과 삶을 트레이드 오프(trade-off) 관계로 보고, 비교분석을 통해 더 나은 하나를 선택함으로 균형을 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말처럼 일과 삶을 다 가질 수 없기 때문에 포기를 통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균형을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대립적 구도로 대비하여 균형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스튜어트 프리드맨(Stewart D. Friedman)은 2014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터뷰 결과를 토대로 ‘현실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균형이 아니라 통합(integration)’이라고 주장하였다. 현재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정부와 기업의 일가정양립정책들도 통합적 관점을 취한다. 그는 일과 삶의 균형 주장은 함정이며, 통합을 통해서만 삶의 네 가지 영역인 일, 가족, 공동체, 자아를 모두 고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Balance is bunk. It’s a misguided notion that assumes we must always make trade-offs among the different aspects of our lives.(균형은 함정이다. 삶의 영역들 간의 교환이 이루어져야 함을 가정하는 잘못된 생각이다.)
통합에 대한 해법으로 네 영역 간의 경계를 재설정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훈련하라고 제안한다. 경계 재설정이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나누고 다시 합치기’를 반복하면서 효과적 선택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주말에 2시간 일을 해야 한다면 나머지 시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투자하는 나누기와 회사에서 후원하는 행사에 가족들을 데려가는 등의 합치기를 통해 경계를 재설정하는 것이다.
일과 삶을 균형이 아닌 통합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고된 현대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일과 삶은 다양한 연결기제 하에서 서로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을 주고 받는다. 개인들은 그러한 두 영역을 넘나들면서 때로는 상충적 혹은 보완적 요구를 적절히 조절하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모색하게 된다. 그러나 갈수록 일과 삶의 시공간적 경계가 무너지고 삶이 일에 미치는 영향보다 일이 삶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지면서 두 영역을 조율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통합’은 무엇이 일이고 무엇이 삶의 영역인지 알 수 없는 공통분모가 큰 상태를 말하고, ‘분리’는 두 영역을 서로 별개의 독립적 영역으로 간주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두 영역을 완전히 통합 혹은 분리하는 극단적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자신들의 제약조건 내에서 통합-분리의 연속선 위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간다. 통합과 분리의 연속선 위의 한 점에 스스로를 위치시키는 것을 경계활동(boundary-work)이라고 한다.
경계활동을 개인의 성향 혹은 선호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으나, 실제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데 일 영역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즉, 개인이 일과 삶을 양립하는 데 있어서 과도한 노동시간, 노동시간에 대한 통제력, 조직문화와 같은 조직의 영향이 더 크게 작용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일과 삶을 통합하려는 정책들이 노동시간을 늘리고 일과 삶을 조율하는 데 있어 개인들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유연근무제, 자율시간근무제, 스마트워크의 시행으로 개인들은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자신과 가정을 더 돌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과중한 업무와 성과에 대한 조직의 압력은 삶의 영역을 더 많이 침범하고 있다. 삶이 잠식당하는 상황 속에서 개인들은 최소한의 삶의 공간을 지켜내기 위해 오히려 일과 삶을 분리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1999년부터 주 35시간의 업무시간을 준수해왔지만, 스마트폰과 이동통신기술이 근로자의 삶에 무자비하게 침투하게 되자 근로자의 업무 후 개인시간을 보호할 필요성을 느꼈다. 프랑스 노동조합과 기업연합은 최근 업무시간 후 회사관련 메일과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협약에 사인했고, 25만 명의 기술 산업 및 컨설팅 분야 근로자들이 이 혜택을 받게 되었다.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67%의 독자가 이 협약을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국가가 국민들의 행복한 직장생활을 위해 앞장서서 고민해주는 모습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생각할 때 마냥 부럽기만 하다. 존엄과 안전도 보장이 안 되는 수많은 일자리들은 통합이 아니라 분리를 촉진시키고 있다. 작년 5월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도중 19살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가 사망하는 참사가 있었다. 이 사건은 안전수칙 위반과 역무실의 관리감독 부실 등 열악한 작업환경과 관리소홀 그리고 하도급 불공정으로 인해 발생한 전형적 인재였다. 12월에는 조류독감 사태로 현장 방역업무를 맞았던 40대 공무원이 과로로 숨진 사건이 있었다. 조류독감 발생 이후 숨지기 하루 전날까지도 하루 14-15시간씩 방역업무를 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현장 인력관리가 소홀하였음을 알 수 있다.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들도 일이 삶을 잠식하는 수준은 상당할 것으로 본다. 작년 11월 퇴근길에 심장마비로 쓰러져 투병하다 새해 첫날 별세한 30대 중반의 사회복지사의 죽음은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사인을 단정 짓기는 어려우나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 이로 인한 건강의 악화가 원인일 수 있을 것이다. 야근문화를 없애기 위해 주 1회 6시 정시퇴근과 강제소등을 도입하겠다는 한 복지관의 방침에 대해 관련 종사자들이 열렬한 환호를 보내는 것은 비영리기관들의 근무여건의 열악함을 반증해준다.
활동이 삶이고, 삶이 활동인 활동가들은 존경받아야 한다. 그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기에 우리사회가 이만큼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과 삶의 영역이 많이 중첩되는 수준을 넘어 완전히 일치해버린다면 지속가능한 활동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더욱이 자발적 의지가 아니라 조직의 여건과 환경에 의한 어찌할 수 없는 통합이라면 일과 삶의 조화를 위한 통합과는 거리가 멀다. 삶 속에서 자신을 성찰할 여유가 없는 활동가가 건강한 활동,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일과 삶의 문제를 접근하는데 있어 균형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최신 과학에서 균형이 곧 정상이란 등식이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하버드 의대 에어리 골드버거 교수의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건강한 심장은 매우 불규칙하게 박동하며,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심장박동은 흔히 노령자나 심장병 환자에게서 나타난다고 한다. 균형에서 벗어나 불규칙하게 변동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은 함정일 수 있다. 일과 삶을 분리해놓고 균형을 맞추려 집착하는 것은 일과 삶의 조화를 이루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불가능한 균형에 도달하려는 개인들의 몸부림은 더 큰 자괴감을 불러올 것이다. 불균형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여기서부터 출발해 해결책을 찾는 것이 합리적이다.
일과 삶의 통합도 함정일 수 있다. 의도적 통합은 일과 삶의 분리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통합이 간과한 또 다른 실재를 드러내고 있다. 통합은 두 영역을 합치는 것이 아니다. 두 영역에 대한 몰입도를 높혀 삶의 질을 향상시키도록 돕는 것이다. 의도적 통합은 분리현상을 유도하게 되고 구성원들의 반발과 갈등 그리고 정책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다.
활동가의 삶을 고민하는 단체들이 늘고 있다. 비영리단체에서 정부와 기업들이 제시하는 다양한 제도들을 여건상 다 도입하여 실행할 수도 없지만, 먼저는 제도들의 기본가정(basic assumptions)과 관점들에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비영리조직만이 가지는 조직, 과업, 활동가의 특성을 고려해 개인들이 일과 삶을 어떻게 조율하는 지에 대한 조직의 더 섬세한 고민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일과 삶에 대한 단체들의 노력이 단순한 직원복지의 향상이 아니라 활동가의 총체적인 삶의 가치를 제고하는 것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열망 넘치는 조직과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 삶의 미션이다. CSR, CSV, 섹터 간 파트너십, 민관협력(거버넌스), 리더십, 전략경영, 성과평가, 소셜임팩트, 일가정양립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영리와 비영리를 넘나들며 강의, 교육, 컨설팅, 연구 등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