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촛불 램프로 첫 매출액만 10억!…스타트업 ‘루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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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르의 촛불 램프, ‘루미르 C’./ 루미르 제공

“세상을 밝히는 당신의 노력을 응원합니다.” “인테리어용으로 ‘퍼펙트(Perfect)’.”

지난 1월, 세계 최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kickstarter)’에선 일명 ‘촛불 램프’가 펀딩을 시작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한 달 반 새 1100여명으로부터 14만달러(1억 6000여만원)의 펀딩을 달성한 것. 목표액 5만달러(약 5700만원)에 3배 가까운 성과였다.
 
‘촛불 램프’는 작은 양초에 길쭉한 항아리 모양의 램프를 덮기만 하면, 램프 위로 촛불의 100배 이상 환한 빛이 나오는 제품이다. 전기선이나 배터리도 필요 없어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디자인도 좋아 소품용으로도 제격.

하지만 더 큰 박수를 받은 건, 촛불 하나에 의지해 모든 생활을 하는 개발도상국엔 수익을 남기지 않고 제품을 보급한다는 사실이었다. 독일 최대 일간지 ‘빌트(Bild)’는 킥스타터에서 소개한 제품을 보고 ‘이건 저개발국에 혁신이다’라고 극찬했다.
 
이 ‘히트 상품’을 만든 건 한국의 스타트업 ‘루미르’. 그 중심엔 대한민국 청년, 박제환(28·중앙대 전기전자공학부 4) 대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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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르의 촛불램프는 주변 전체를 밝히는 제품과, 특정한 곳만 밝게 하는 것 두 종류로 개발해 용도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루미르 제공

◇‘빛’에 빠져 기술 개발에 몰두한 열혈 공학도

왜 촛불이었을까. 박 대표는 작년 3월, 선후배들과 함께 필리핀을 돕기 위해 빈민가 ‘타오빌’에 갔다가  겪은 이야기를 꺼냈다.

“양초 하나에 바짝 붙어 책을 보는 아이를 봤어요. 글이 잘 안 보이니까 자꾸 불 가까이 가는 거예요. 위험천만했죠. 다음날 밝을 때 보라고 말리니, ‘낮엔 일하러 가야 해’ 하더라고요. 마을 아이들 대부분이 그랬죠….”

NGO들이 마을에 보급한 태양광 발전 시설은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엔 ‘무용지물’이었다. 

‘작은 양초 하나로 밝은 빛을 낼 수 없을까.’  아이들 모습이 계속 머릿 속에 맴돌았던 박 대표는 한국에 돌아와 직접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앞선 몇 번의 기술 개발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  2014년 그는 ‘캠퍼스 CEO’라는 창업 관련 수업을 들으며 폐스마트폰을 활용한 폐쇄회로 카메라(CCTV)를 만들기도 했고, ‘LED 무정전 전원 장치(UPS)’도 개발했다.

그리고 박대표가 2015년 2월, 아예 이 ‘LED UPS’를 생산, 판매까지 하기 위해 차린 회사가 바로 ‘세상을 밝히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딴 ‘루미르’다.

‘촛불램프’ 개발 과정은 지난 제품들보다 두세 배 더 어려웠다. 가장 핵심 기술은 양초에서 나오는 열을 전기로 바꾸는 기술. 일명 ‘제벡(Seebeck) 효과’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일상생활보다 로켓, 미사일 등 군사 무기에 주로 적용되기 때문에 정보 자체가 별로 없었다.

“여러 기술들을 섞어서 수도 없이 해보니 나중엔 어디를 고칠지 몰라 넋 놓고 바라만 볼 때도 있었죠.”

 해결책은 램프 내부의 독특한 설계에서 풀렸다. 램프 안쪽 한 면은 차갑게, 다른 쪽 면은 뜨겁게 해서 그 온도차로 인해 열을 전기로 바꾸게 하는 설계였다. 7개월 동안 개발한 끝에 시제품을 완성, 다시 필리핀에 가서 직접 테스트를 했다.

“25가구에 ‘촛불램프’를 주면서 사용 방법을 설명했죠. 그날 밤 집집마다 환한 빛이 나오는데 가슴이 뭉클하더라고요. 주민들이 ‘꼭 더 만들어 달라’ 하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도우려면 더 탄탄한 수익 모델을 갖춰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모두가 쓸 수 있는 빛 ‘촛불램프’… 올해 12개국 수출 앞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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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환(사진 첫째 줄 왼쪽) 대표는 정전 방지용 센서를 현지 테스트하기 위해 지난해 필리핀 빈민가 ‘타오빌’을 찾았다. 하지만 전기조차 없이 생활하는 대다수 사람들을 보고 촛불램프 개발을 결심했다. 7개월 뒤 다시 필리핀 마을을 찾아 25가구에 루미르 시제품을 직접 전달했다. /루미르 제공.

이후 박 대표는 촛불 램프 모델을 두 개로 분류했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유통하기 위한 제품과 개발도상국에 지원하는 제품으로 나눈 것이다. 단가를 낮추기 위해 부품은 대량으로 동일하게 생산했지만, 소비자용은 별도로 도자기 갓을 씌우고 색을 입히는 등 디자인을 개선했다.
 
“미국이나 유럽은 1960년대부터 고가의 아로마 향초 등이 인기를 끌 정도로 일찍부터 초 문화가 발달했거든요. 기능성을 갖거나 인테리어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양초들의 수요가 무척 높아요. 초가 일상생활용품이죠. 하지만 테라스나 정원 등 야외에서 사용할 땐 불편함이 많았어요. 루미르가 이 틈새를 공략한 것이죠.”

예상은 적중했다. 해외 반응은 놀라웠다. 킥스타터 펀딩에 ‘대박’이 난 후, 시장성을 확인한 해외 바이어들이 루미르에 몰렸다. 현재 미국 대형 소품업체 ‘터치오브모던(Touch of Mordern)’과 3억원 규모 계약을 체결한 것을 비롯, 대만, UAE(두바이) 측과도 협상을 끝냈다.

독일에 100여개 지점이 있는 생활용품 업체 ‘프로아이디(Pro-Idee)’의 부사장은 루미르 공정을 보기 위해 직접 한국을 찾았을 정도다.

올 상반기에는 스위스 100년 전통 양초 업체 ‘발타자(balthasar)’ 등 12개국 바이어와도 계약을 추진 중이다. 박 대표는 “킥스타터를 보고 루미르 제품을 구입한 한국 인테리어 업체도 네 곳 정도”라며, “한국 사람끼리 달러로 거래하는 경험도 해본다”고 웃었다. 덕분에 루미르는 사업 후 첫 성과를 내는 올해,  매출 10억원을 달성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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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르의 소비자용 촛불램프는 기능성과 디자인이 뛰어날 뿐 아니라, 수명이 1~2년에 불과한 배터리 일체형 랜턴들과 달리 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해 인기다. 킥스타터에서 개당 약 70불(한화 약 8만원)의 비교적 고가에도 불구, 1000여명 이상이 구매했다./루미르 제공

기업만이 아니다. 킥스타터에서 루미르의 촛불 램프를 보고 도움을 요청한 NGO가 인도에서만 3곳.  박 대표는 “인도와 주변국에서는 양초 대신 등유 램프를 더 많이 쓴다는 조언을 얻었고, 제품 하단 부분에 등유를 넣어 사용할 수 있도록 변형해 올해 9월쯤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등유는 타면서 인체에 해로운 매연이 생겨요. 하지만 루미르 램프는 기존보다 연료를 10분의 1만큼 적게 쓰니까 기존과 같은 밝기를 내면서도 매연이 90% 이상 적게 나와 건강을 덜 해치죠.”

이뿐 아니다. 필리핀의 경우 촛불램프를 사용하면 연료 비용을 8분의 1까지 줄일 수 있다. 월급 10만원 중 30%가량을 전기료로 썼지만 이젠   4000원 정도면 충분한 것이다.

헝가리 공영방송 ‘MTVA’에서는 전기가 자주 끊기는 빈민촌 지역에서 루미르의 촛불 램프를 사용한 다음 바뀐 생활들에 대해 다큐로 촬영, 오는 5월 방영할 예정이기도 하다.

◇ “사회적 옳은 뜻은 언젠가 ‘빛’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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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적정기술 개발을 시작했던 박제환(사진 왼쪽에서 셋째) 대표는 이제 6명의 직원과 함께 루미르를 꾸려가고 있다./루미르 제공

박 대표는 지난 3년간 루미르를 이끌며 가장 크게 느낀 건 사회적 가치 실현이 ‘최고의 마케팅’이라는 걸 느꼈다고 했다.

“‘LED 무정전 전원 장치(UPS) 센서’를 개발했을 땐 신생 업체라고 눈길조차 안 주더라고요. 하지만 제일 힘들었던 건 불안한 앞날에 제 자신조차 저에게 자신이 없어질 때였어요. 그런데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가치 있는 일에 공감하고 힘을 보태기 위해 주변에 훌륭한 인재들이 들어와 다시 힘을 냈어요.”

덕분에 현재 6명의 직원들을 꾸렸고 매출액도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킥스타터에서 ‘촛불램프’가 성공한 큰 요인 중 하나도, 저개발국을 돕겠다는 ‘진심’이 통해서죠.” 

그는 “다른 것을 해보라는 이야기도 많지만, 앞으로도 ‘빛’에 관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당차게 포부를 밝혔다. “명확한 한 가지 가치를 보여주고 성공해야 다른 이들도 용기를 낼 수 있는 ‘선례’로 남을 테니까요. 그게 가장 소셜벤처에 기여하는 길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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