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0일(금)

필리핀 니켈 채굴, 전기차의 그늘…“주민 삶 파괴한다”

국제앰네스티 ‘필리핀 니켈 붐 인권 악영향’ 보고서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폭증하면서 핵심 원료인 니켈 채굴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와 환경 파괴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제앰네스티는 9일 발표한 보고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필리핀 니켈 붐의 인권 악영향’에서 필리핀 니켈 채굴이 주민들의 생계와 건강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엠네스티는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필리핀 니켈 붐의 인권 악영향’ 보고서를 발간했다. /국제엠네스티 보고서 갈무리

보고서는 필리핀 잠발레스주와 팔라완주를 사례로 들어 니켈 채굴이 주민 동의와 지역사회 협의 없이 진행됐으며, 산림 훼손과 중금속 오염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잠발레스주의 산타크루즈 지역에서는 니켈 채굴로 인해 담수원이 오염돼 농작물 수확량이 급감하고, 어민들의 생계도 큰 타격을 받았다고 짚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광산 개발 이후 천식, 호흡 곤란, 피부 질환 등 건강 문제가 급증했다고 호소했다. 또한 팔라완의 브룩스 포인트 주민들은 채굴 기업이 환경영향평가서 등 주요 문서를 제공하지 않아, 채굴이 자신들의 삶에 미칠 영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2024년 1월, 산타쿠르즈 지역 해안이 내켈 채굴로 오염돼 적갈색을 띄고 있다. /국제엠네스티 보고서 갈무리

국제앰네스티는 필리핀의 현행법이 채굴 전 주민들에게 ‘충분한 사전 정보에 입각한 자유로운 동의(FPIC)’를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례에서 이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예컨대 브룩스 포인트의 팔라완 주민들은 채굴 기업 이필란 니켈(INC)에 환경영향평가서와 운영 구역·경계 측량서 제공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고 진술했다.

브룩스 포인트 주민들은 채굴 기업이 일부 주민들에게만 뇌물을 제공하며 협의를 진행했고, 반대 의견을 낸 주민들은 의도적으로 배제됐다고 주장했다. 브룩스 포인트 주민 베토 칼만 씨는 “돈과 뇌물 탓에 광산 개발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회의에 초대받지만, 정작 우리같이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주민은 결코 회의에 부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팔라완의 브룩스 포인트 주민들은 니켈 채굴 작업으로 피해를 입었으며, 채굴 전 환경영향평가 자료를 요청했으나 받지 못했다. /국제엠네스티 보고서 갈무리

알리샤 캄베이 국제앰네스티 기업·인권 조사관은 “필리핀 정부는 인권·환경 침해에 대한 긴급 조사가 이뤄질 때까지 채굴 작업을 중단해야 하고, 니켈 광산 운영자들은 인권 보장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기차 제조사들도 필리핀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와 무관하지 않으므로, 공급망에 필리핀산 니켈이 포함돼 있는지 확인하고 그 결과와 위험 완화 조치를 공개적으로 발표해야 한다”며 “전기차 및 배터리 공급망 전반에 걸쳐 기업들은 더 큰 책임을 지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필리핀에서 채굴된 니켈은 중국, 일본, 한국으로 수출되며 이는 스테인리스 강철과 전기차 배터리로 가공된다. /국제엠네스티 보고서 갈무리

한편, 이번 조사는 2023년 9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약 1년간 이어졌다. 90명의 지역사회 주민을 대상으로 현장 인터뷰를 진행하고 현장 인터뷰, 프로젝트 문서, 법원 문서 및 이미지 기록을 검토했다. 혐의를 부인한 기업들의 답변은 보고서 부록에 수록됐다. 보고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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