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화)

[Cover Story] 샘킴, 나의 요리 나의 나눔

요리와 음악 통해 즐거운 기부 이끌다…
‘소울푸드 콘서트’로 환아 돕는 셰프 샘킴
“요리로 도울 수 있는 일 뭐든 하고 싶어”…
특정 단체 홍보대사 안 맡는 이유

“즐기면서 좋은 일 하실 준비 되셨죠?” 평소 방송에선 말이 없던 샘킴(38) 셰프가 앞치마를 벗고, ‘소울푸드(Soul Food) 콘서트’의 MC로 무대에 나섰다. 150명의 관객이 내지르는 환호성이 터질 듯했다. 지난 13일 저녁,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보나세라’. 드라마 ‘파스타’의 촬영지이자 샘킴 셰프가 총주방장인 식당이다. 한 달 전 식사 예약을 해야 하는 이 ‘핫(hot)’한 식당은 이날 모든 영업을 접었다. 대신 요리와 음악, 기부를 공유하는 ‘나눔의 장(場)’으로 변신했다.

미국에서 ‘아시아 라이징 스타 셰프’라 불리며 탄탄대로를 가던 ‘성자셰프’ 샘킴은 내 나라에서 요리로 좋은 일을 하고 싶어 돌연 ‘한국행’을 택할 정도로 나눔에 열정적이다. 그는 자신의 열정이 담긴 요리가 배를 채우는 ‘한 끼’를 넘어,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소울푸드’가 되길 꿈꾼다. /메이크어위시재단 제공
미국에서 ‘아시아 라이징 스타 셰프’라 불리며 탄탄대로를 가던 ‘성자셰프’ 샘킴은 내 나라에서 요리로 좋은 일을 하고 싶어 돌연 ‘한국행’을 택할 정도로 나눔에 열정적이다. 그는 자신의 열정이 담긴 요리가 배를 채우는 ‘한 끼’를 넘어,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소울푸드’가 되길 꿈꾼다. /메이크어위시재단 제공

‘소울푸드 콘서트’는 초대 손님이 추억의 음식(일명 소울푸드)을 재현하면, 이를 샘킴 셰프와 보나세라 요리사들이 따라 하면서 수백 인분의 요리를 완성해 관객들과 나눠 가지고, 초대 가수들의 공연도 감상할 수 있는 콘서트다. 관객은 그에 상응하는 기부로 답한다. 입장료(6만5000원) 이외에 음식·음료 값을 레스토랑 곳곳에 둔 모금함에 원하는 만큼 지불하는 것.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지난해 9월, 첫 공연엔 120장의 표가 이틀 만에 매진됐고 올해엔 정원을 30명 늘렸는데도 하루 만에 신청이 마감됐다. 행사 당일에는 장대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 식당 앞엔 공연 시작 1시간 전부터 우산을 쓴 채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이 긴 행렬을 이뤘다.

이날 150명의 관객에게 다섯 가지 메뉴를 선보이느라, 주방에선 쉴 새 없이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칼질 소리가 그칠 줄 몰랐다. “2분 남았다”는 신호에, 주방 요리사들은 모두 “네”라고 답했다. 주방의 일사불란한 움직임 못지않게, 홀 직원들 또한 음식 서빙으로 분주했다. 서로 눈빛만 교환하고도 척척 작업이 이뤄졌다. 일주일 전부터 행사를 준비하느라 힘들 법도 한데, 직원들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없었다. 홀 서빙을 담당하는 이기원(29)씨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힘들다”며 “아직 돈을 기부하진 못하지만 몸으로라도 하루 좋은 일 한다는 보람에 힘이 난다”고 말했다.

무대에선 인디밴드 ‘소란’과 여성듀오 ‘옥상달빛’이 관객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가수 정엽과 이현우는 감미로운 발라드로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배우 이선균은 샘킴 셰프에게 돌직구 농담을 던지며 공연에 깨알 웃음을 더했다. 이들 모두 출연료 없이 100% 재능기부로 참석했다. 몇 달간 공들여 자선 콘서트를 기획·준비한 샘킴 셰프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의리’로 뭉친 것이다.

1 지난 13일 저녁 이탈리안 레스토랑 보나세라에서 열린 ‘소울푸드 콘서트’ 현장. 샘킴 셰프와 가수 정엽이 공동 MC로 나섰다. /박창현 사진작가 제공 2 150명의 공연 관람객들의 입장료와 현장 모금액 등은 모두 메이크어위시재단에 기부됐다.
1 지난 13일 저녁 이탈리안 레스토랑 보나세라에서 열린 ‘소울푸드 콘서트’ 현장. 샘킴 셰프와 가수 정엽이 공동 MC로 나섰다. /박창현 사진작가 제공 2 150명의 공연 관람객들의 입장료와 현장 모금액 등은 모두 메이크어위시재단에 기부됐다.

◇환아 가족들의 아픔 남 일 같지 않아… ‘후원자’에서 ‘자선 콘서트 기획가’ 자처

샘킴 셰프는 지난해 메이크어위시재단에 먼저 자선 콘서트를 제안, 2년째 행사의 기획부터 준비를 도맡고 있다. 왜 고생을 사서 할까. 계기는 2012년부터 재단을 통해 요리사가 꿈인 아이들을 만나 요리 멘토 역할을 해오면서다. “소원을 이룬 아이들이 밝게 웃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때 난치병 아동들의 ‘소원 이뤄주기’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알게 됐죠.”

다섯 살 아들의 아빠이기도 한 샘킴 셰프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아무것도 못 한다”며 “아픈 아이가 한번 웃기만 해도 한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는 걸 볼 때마다, 더 많은 사람이 메이크어위시재단을 알고 도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고민 끝에 생각해 낸 아이디어는 콘서트를 통해 관심을 이끌고 재단을 홍보하는 것.

첫 시도인 만큼 오랜 준비 과정이 필요했다. 레스토랑 관계자들과 직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냈고, 흔쾌히 참여 의사를 밝힌 ‘절친’ 정엽과 ‘색다른 나눔 콘서트’를 만들고자 수없이 회의를 했다.

“홍보와 모금을 위해 일부러 아이들의 아프고 힘든 모습을 부각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내가 즐겁게 즐기면서도 남을 도울 수 있구나’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둘은 ‘요리’와 ‘음악’이라는 각자 재능을 살려, 관객이 즐긴 만큼 자발적으로 모금에 참여하는 공연 콘셉트를 만들어냈다. 이후 지인을 중심으로 사람을 모으고, 별도 행사 메뉴를 개발했다. 기획 시작부터 콘서트 개최까지 총 3개월이 걸렸다. 최은혜 메이크어위시재단 홍보팀 대리는 “샘킴 셰프가 프레젠테이션(PPT) 10장에 공연 시간표부터 공간 배치는 물론, 직접 그린 ‘소울푸드 콘서트’ 글자체 디자인까지 완벽하게 만들어 보여줘 깜짝 놀랐다”고 회상했다.

노력만큼 관객들의 만족도도 높다. 지난해 첫 공연에 왔다가 ‘열혈팬’이 돼 올해 다시 행사를 찾은 이들도 많다. 이정민(30)씨는 “오랫동안 다른 단체에 정기 후원을 해왔지만, 솔직히 이 행사를 통해 나눔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며 “작년 공연을 잊지 못해 올해 다시 왔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온 박선화(31)씨는 “아이가 선천성 안면기형(구순구개열)으로 태어나 심한 산후우울증으로 고생을 했는데, 오늘 공연에 와 아픈 아이들과 가족을 응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고 큰 힘을 얻었다”며 “앞으로 6~7차례 수술이 남았지만 끝까지 아이와 이겨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공연 후 ‘특별한 상봉’도 이뤄졌다. 인천에서 온 소연(가명·21)씨가 평소 우상이던 샘킴 셰프를 만나는 소원을 이룬 것. 소연씨는 지난해 대뇌에 종양이 생기면서 오랜 꿈이었던 클라리넷 연주가를 포기해야 했다. 수술 후 방황하던 소연씨는 샘킴 셰프를 보며 요리사라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됐고, 올해 한 대학교 조리학과에 입학했다. 6개월 전 소연씨에게 영상메시지를 보낸 샘킴 셰프는 당사자를 직접 만나자, 반가운 마음에 손을 놓을 줄 몰랐다. “먹어 보는 것도 배움이야. 꼭 레스토랑에 다시 와야 해. 풀코스로 요리해줄게.”

콘서트를 마치고 만난 샘킴 셰프는 “하루 15시간 이상 일하고 방송까지 하면서 콘서트 준비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은데, 사람들이 공연을 즐기고 도움을 받는 자선단체나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그 ‘맛’에 매년 또 공연을 하게 된다”고 웃었다.

◇끊임없는 요리 연구 노력 ‘한 끼’ 식사로 끝내긴 아까워 다양한 ‘나눔’과 결합

“요리가 먹고 맛있다는 데서 끝나면 서운하죠. 얼마나 많은 공(功)이 들어가는데, 배만 채우고 끝나긴 아쉽죠.”

17년 경력의 샘킴 셰프는 자타 공인 국내를 대표하는 이탈리안 요리사다. 2010년엔 미국 스타 셰프협회에서 ‘아시아 라이징 스타 셰프’에 선정되는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요리를 할 수 있다면 뭐든지 했다.

박창현 사진작가 제공
박창현 사진작가 제공

요리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 비행기값만 들고 부모님 몰래 미국 유학을 감행하기도 했다. 인종차별 속에서 청소·설거지·채소 씻기만 근 5년을 해야 했다. ‘팬’을 잡고 제대로 요리라는 걸 만들기 시작하면서 하루 3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 그는 지금도 제철 식재료로 음식을 개발해 매달 식당 메뉴를 바꿔 선보인다. “최고의 음식을 새로 찾아내는 과정은 험난하죠. 한 달 동안 수도 없이 실패를 해도 메뉴 하나 건지면 다행인걸요.”

샘킴 셰프는 그 노력이 레스토랑에서 한 끼 식사로 끝나는 게 아까워, 어떻게 의미 있게 쓰일 수 있을지 항상 찾아왔다. 바쁜 일정을 쪼개 SK행복나눔재단의 ‘해피쿠킹스쿨’에서 요리사가 되고 싶은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을 위해 멘토로 활동한 것도 이 때문이다. 메이크어위시재단의 ‘소울푸드 콘서트’뿐만 아니라 국제구호개발NGO 옥스팜코리아의 ‘러브 챌린지 푸드 트럭’ 캠페인도 샘킴 셰프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러브 챌린지 푸드 트럭은 샘킴 셰프가 푸드 트럭에서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면서 식량난을 겪고 있는 개발도상국이나 재난·재해 지역을 돕는 기부금을 모으는 행사다. 두 달에 한 번꼴로 푸드 트럭을 몰고 서울 곳곳은 물론 지방을 방문해 2000인분씩 음식을 하기도 하지만, 고되지 않다고 한다. 한 번 행사에 정기 후원자가 60명까지 늘기도 하는 기쁨 때문이다. 최근엔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식습관 개선이 아이들의 인성을 좌우한다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샘킴 셰프는 모든 NGO 활동을 재능기부로 참여하고 있다.

“요리와 나눔의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협업)은 무궁무진하죠.” 이 때문에 샘킴 셰프는 특정 단체의 홍보대사를 맡지 않는다. 단체들의 각각 다른 목적에 요리사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도울 생각에서다. 1년 이상의 캠페인에만 참여하는 것도 샘킴 셰프의 나눔 원칙. 단순히 일시적으로 ‘얼굴마담’이 필요한 꼼수인지, 진정성 있게 돕는 일인지 면밀히 따지는 그만의 기준이다. 대신 아무리 바빠도 봉사 활동 일정만큼은 사수한다. 최근엔 옥스팜 러브 챌린지 푸드 트럭을 가기로 한 날짜에 샘킴 셰프가 출연 중인 유명 요리 경연 프로그램의 홍콩 촬영이 잡혀, 방송 출연을 정중히 고사하기도 했다.

◇사회적기업 세우러 한국행 결심… “나눔 교육으로 ‘제2의 샘킴’ 만들어야죠”

“‘셰프’인지 ‘자원봉사가’인지 때론 헷갈린다니까요(웃음).”

소울푸드 콘서트를 준비하던 직원들은 투정 섞인 ‘뒷담화’를 하지만, 이들은 휴일도 반납하고 샘킴 셰프의 나눔 활동에 따라나선다. 3년 차 요리사 박대산(27)씨는 “처음에는 셰프의 등쌀에 밀려 형식적으로 봉사에 임했는데 봉사 활동을 하고 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며 “요리로 남을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을 하나씩 알게 해준 샘킴 셰프에게 이젠 고마운 마음이 크다”고 했다.

샘킴 셰프와 봉사 활동 다니는 것이 버거워 식당을 나간 이도 여럿 있다.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는다. 비영리단체 동영상을 보여 주면서 동기를 부여하거나 봉사 활동 인증서를 ‘당근’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때론 봉사 활동 경험이 적은 순서대로 직원들을 봉사 활동에 차출하는 ‘채찍’도 쓴다.

“제 스승들이 가르쳐준 것을 후배들에게도 물려줘야죠.” 10여 년 전, 미국 내 손꼽히는 이탈리안 식당에서 근무하던 샘킴 셰프는 유명 셰프들과 토요일마다 홈리스(homeless)에게 ‘타코’를 대접하는 봉사 활동을 했다. 몇백 불짜리 코스 요리를 만들 때처럼 정성껏 1불짜리 타코를 준비해 대접하는 선배 셰프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최고의 요리’에 대한 기존 생각을 바꿨다.

“비싼 식재료로 값비싼 음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먹는 사람의 기억에 남을 수 있고 인생을 바꿀 수 있느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죠.”

이후 그는 최고급 식당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됐다. 고민 끝에 2009년, 탄탄대로를 걷던 미국 생활을 접고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이 요리를 배우고 당당히 사회 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게 돕는 사회적기업형 레스토랑을 만들기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 한국에서 6개월간 실패를 거듭하다 계획을 보류하고 보나세라 식당 총괄셰프로 취업했지만, 아직도 그의 계획은 진행형이다. 샘킴 셰프는 “직원 10명 중 1명이라도 내가 느낀 감명을 알고 실천하는 ‘나눔의 대물림’을 만들어 가고 싶다”고 했다.

샘킴에겐 ‘기부’도 ‘요리’ 같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 비법은 방송으로, 또 책으로 많은 사람과 나눠왔죠. 기부도 마찬가지예요. 즐겁고 보람된 일들을 더 많은 사람이 해보고 느낄 수 있도록 널리 퍼뜨릴 겁니다. 내년엔 소울푸드 콘서트 ‘판’을 키워 더 많은 이가 참여하게 할 거예요. 기대해주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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