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1일(토)

[책임있는 기업, 존경받는 리더] ⑤ “이건음악회 23년째… 사회공헌 오래 하려면 좋아하는 분야 선택하길”

책임 있는 기업, 존경받는 리더 <5>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문화소외지역 주민 위해 매년 여는 클래식 음악회
솔로몬 군도서 벌채할 땐 허가받기 전 재단 세우고
주민 교육 사업부터 벌여

‘돈 벌면 나누겠다’ 말고 분명한 목표 정한 뒤
직접 관심갖고 공헌해야

목재회사와 문화예술.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다. 이건산업 박영주(72) 회장을 말하려면 이 두 가지를 빼놓을 수 없다. 이건산업은 1990년부터 인천에 위치한 회사 공장에서 ‘이건음악회’를 시작, 지역사회를 위한 문화예술 사회공헌을 23년째 해오고 있다. 오랜 역사 앞에서 ‘그 돈으로 어려운 아이를 돕지 웬 클래식 무대냐’는 비아냥은 사라지고, 이건산업엔 ‘문화예술 사회공헌의 선구자’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미상_사진_책임있는기업존경받는리더_박영주이건산업회장_2013 ―1972년 회사를 창업한 지 벌써 41년째인데, 당시 어떤 비전을 품었나. “창업 때부터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심은 없었다. 나는 놀기 좋아하고 취미도 많다. 다만 남들이 안 하는 전문 분야를 개척하고 싶었다. 그 일을 통해 사람들의 삶이 좀 더 나아진다는 보람도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고생스러운 기업 운영을 계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1960년에 군 제대 이후 몇 달 동안 일급 노동자들과 함께 합판공장에서 나무를 깎았다. 그 경험을 통해 ‘기업이 돈만 벌어서는 안 되고, 사람들을 위해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평생 머릿속에 갖게 됐다. 우리 회사가 그동안 노사 분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경영에도 진정성이 중요한 것 같다. 단기적인 봉합만으로는 안 된다. 기업을 한다는 건 몇 십 년 직원들과 같이 사는 것이다.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노조와 임금협상을 하는 협상 대표한테 부탁한다. ‘회사 형편상 가장 많이 대우할 생각을 하고 가라’고. 아무리 맘먹고 최고로 주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이만큼은 절대 안 주겠다’는 심보로 가도 결과는 비슷비슷하다.” ―삼성의 사회공헌이 본격 시작된 게 1995년 삼성사회봉사단이 만들어졌을 때인데, 이보다 앞선 1990년에 본격적으로 ‘이건음악회’를 시작했다. 왜 시작했고, 계속해온 이유는 무엇인가. “(돌이켜보면) 내가 참 웃기는 사람이었다. 내부가 좀 자리 잡힐 때쯤이었나. 1979년에 공장 기숙사를 우리나라 최고로 지었다. 외국 대사들이 공장을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다. 롯데호텔 로비 화장실 사진을 찍어와서 공장 화장실을 그것과 똑같이 만들어놓았다. 직원이 ‘사장님. 자꾸 화장지를 가져갑니다’ 하기에 혼을 내면서 ‘1년에 화장지값이 얼마나 드나. 남들도 아니고 직원이 가져가는 거 아니냐’고 했다. 내부가 안정되고 나니, 공장이 있는 인천 지역 주민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큰 공연을 하면 인천의 여유있는 분들은 다 서울 가서 보기 때문에, 다른 대도시엔 순회공연을 가도 인천에는 잘 안 온다. 인천에서 고급 클래식 음악회를 열기로 했다. 다 반대했다. 이사회에 3번 올려서 결국 승낙받았다. 외부 기획사를 찾아갔는데 너무 비싸서 우리 직원 4명이 여관에서 며칠 밤을 새우면서 준비했다. 첫해에 합판 공장을 1시간 반 동안 문 닫아걸고 공연했다. 성공적으로 잘 됐다. 그때부터 자신이 생겼다. 좋은 일 하는 데 규격이 있나. 자기가 좋아하는 걸 자기 수준에 맞춰서 하면 되지. 중요한 건 강제로 해서는 안 된다. 내부 콘센서스(동의)가 이뤄져야 한다. 또 모두가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일 하는데 즐기지 않으면 곤란하지 않은가.” ―기업 사회공헌을 지속적으로 오랫동안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쉽지 않다. 어떤 철학을 갖고 있나. “‘돈 많이 벌면 좋은 일 하겠다’고 하면 평생 못한다. 사업 하면서 돈 여유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돈 생기면 투자하고 공장 증설하고, 돈 좀 벌었다 싶다가도 금방 다시 어려워지고…. 사회공헌 하겠다고 결정하면 형편에 맞춰서 규모를 결정하고 진행하면 된다. 10원 있으면 10원어치 하고, 1만원 있으면 그만큼 하면 된다. 다만 목표는 분명히 정해야 한다. 또 시작하면 계속해야 한다. 사회공헌이나 문화재단이나 박물관식으로 운영하며, 이것저것 조금씩 하면 안 된다. 그러면 30~40년 지나도 남는 게 없다. 또 돈만 주면 안 된다. 제일 잘못하는 게 돈만 주고 마는 것이다. 직접 관심을 가져야 한다. IMF 사태 이후에 직원들이 월급 20%를 깎겠다고 결의해서 올라왔는데 내가 반대했다. 임원 월급을 동결키로 했다. 대신 직원들에게 월급의 1%를 내게 하고, 회사가 1%를 매칭해서 사회공헌 사업을 했다. 전 직원들이 몸으로 하는 사업을 정했다.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도 결국 내부가 행복해야 한다.” ―예술의전당 이사장이자 전 메세나협의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공헌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이유는 뭔가. “문화예술이 가진 힘은 굉장히 크다. 이건음악회 역사상 가장 감명 깊었던 게 작년이었다. 베를린 필 브라스 앙상블을 초청해, 우리가 후원하고 있는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혜광학교 아이들에게 일대일 개별 레슨을 갖고 합동 연주하는 마스터 클래스를 했다. 부모도, 관객도, 연주한 아이들도 감동받은 순간이었다. 메세나를 할 때 한번은 소년원에서 연극을 가르쳤는데, 소년원생 한 명이 ‘지금까지 살면서 주목받아본 게 처음’이라고 했다. 문화예술이 가진 감동과 가치는 물질적인 것과 대등할 만큼 중요하다. 우아한 사회, 우아한 가난, 우아한 부귀는 문화의 힘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솔로몬 군도나 칠레에서 벌이는 글로벌 사회공헌 또한 매우 일찍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솔로몬 군도의 경우 목재 벌채와 조림 과정에서 지역민들과 갈등을 겪지는 않았나. 최근 국내 기업들의 해외수출이 늘면서 글로벌 사회공헌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이를 위한 조언이 있다면. “솔로몬 군도에서는 벌채 허가를 받기 전부터 재단을 설립해 사회공헌 사업을 했다. 칠레도 마찬가지다. 해외에 갈 때는 특히 그 회사를 어떤 포지션(Position)에 갖다두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가능하면 존경받는 그런 포지션에 우리 회사를 갖다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솔로몬에서 재단을 먼저 세울 때 다들 ‘4~5년 내에 돈 벌어서 하자’고 반대했다. 하지만 나는 ‘안 된다. 이건 정말 중요한 투자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병원, 아동 교육, 주민교육 등 사업을 시작했고, 칠레에선 장학사업과 어린이사생대회 등을 열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우리가 해외 나가서 가장 범하기 쉬운 실수는 그들이 후진국이라고 무시하는 것이다. 그건 독(毒)이다. 현지의 문화와 관습,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전경련 사회공헌백서에 따르면, 대기업들은 연간 3조원 가까운 비용을 사회공헌으로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한 기업, 개인, 정부의 역할이 각각 다를 텐데, 아직은 각자 비용을 많이 쓰지만 그 효과가 제대로 밑바닥까지 전달되지는 않는 것 같다. 어떤 해법이 필요할 것으로 보나. “우리나라 대기업이 외국 대기업에 비해 사회공헌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계속 못 한다는 얘기보다는 칭찬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 또 개인 기부 측면을 보면, 한 대기업에서 부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95%가 개인 기부를 하고, 기부의 90% 이상을 종교 기관에 하고 있었다. 이제 종교 기관 또한 내부 서비스뿐 아니라 외연을 넓혀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해 힘을 더 합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요즘 걱정되는 건 자꾸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평가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모든 게 힘들고 부족했다. 지금 이 풍족한 시대에 과거를 투정하고, 남을 투정하고 있으면 남는 게 뭘까.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이 필요하다.” 박 회장은 “2주일 전에도 친구가 세 명이나 세상을 떠났다”며 “요즘은 남은 생을 어떻게 보람있게 사느냐를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감사한 것 외엔 아무것도 없어요. 평생을 통해 참 좋은 분이 많았어요. 내가 복이 많아요.” 인터뷰=박란희 편집장 정리=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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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1호 202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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