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나눔의 리더를 찾아서] ① 양호승 월드비전 회장

62년 쌓은 월드비전 ‘나눔 노하우’다양한 NGO에 아낌없이 나눌 것 가진 것이 많을 때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잃을 것이 많아 두려워하는 사람과, 나눌 것이 많아 행복해하는 사람으로. 후자가 많아지면 사회는 건강해진다. ‘더나은미래’는 2020년 우리 사회의 건강 지수를 높여줄 나눔 리더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첫 번째 인물은 올 1월 취임한 양호승 월드비전 회장이다. “앞으로 비즈니스석은 못 탈 테니 각오하세요.” 양호승(64) 회장이 월드비전 회장에 취임하기 전, 이사장인 이철신 영락교회 담임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야간에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도, 30시간 걸리는 아프리카를 갈 때도, 월드비전의 모든 임직원은 이코노미석만 탈 수 있다. 양 회장의 이력을 보면 이런 충고를 이해할만 하다. 서울대 농과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대와 MIT를 거쳐 일리노이주립대에서 MBA 석사를 한 이후 SK그룹을 거쳐 CJ제일제당 글로벌 신규사업개발 부사장을 역임했다. 억대 연봉의 영리조직(PO·Profit Organization) 부사장에서 세상의 어려운 이들을 돕는 비영리조직(NPO·Non Profit Organization)의 리더가 된 소감을 들어봤다. ―’NGO에 비즈니스를 입히다’ 등 취임 당시 회장님의 이력이 많은 화제가 되었습니다. 공개채용이라는 특별한 형태로 월드비전 회장직에 선임되었는데, 비영리조직으로 오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아내와 함께 은퇴 후의 삶을 봉사하고 나누는 것으로 준비해왔습니다. 교회에서 12주 동안 선교사 파송교육을 받았는데, 그 도중에 월드비전 회장에 선임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하고 싶어 회장직을 맡기로 했습니다.” ―월드비전은 40만명에 달하는 후원자가 있는 국내 최대의 국제개발 NGO입니다. 40만명이 넘는 해외아동뿐 아니라

인력난 겪던 NGO 숨통 트였지만 ODA 청년인턴, 1년 후 갈 곳 없어

‘ODA 청년인턴제’ 시행 1년 국내 78개 ODA 기관과 34개국 해외사무소 근무 해외 근무 인턴 현장에서 전문성 쌓고 중소 NGO 기관은 인건비 부담 덜 수 있어 정규직 채용 인원 한정 일회용처럼 끝나지 않게 지속 가능성 열어줘야 취업경력자는 제외되는 지원 자격도 문제 제기 “청년인턴으로 일하면서 현장에서 직접 새로운 것을 배워보니 무척 좋았어요.” 재작년 성신여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채송아(28)씨는 최근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의 1년 계약직 직원으로 채용됐다. 작년 4월부터 1년 동안 이곳에서 ‘ODA 청년인턴’으로 일한 후 곧바로 채용된 것이다. 채씨는 그동안 다양한 국제개발 협력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채씨는 “내년쯤 대학원에도 진학해 국제개발 분야를 좀 더 깊게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채씨는 운이 좋은 편이다. 많은 청년인턴의 경우, 6개월~1년 인턴기간이 끝나면 다시 백수로 되돌아가 구직자 대열에 끼게 된다. 청년인턴은 많이 배출되지만, 막상 이들을 채용해줄 기관이 마땅치 않은 것이 큰 이유다. 기자는 청년인턴을 채용한 기관 10곳을 취재, 시행 1년을 맞은 ‘ODA 청년인턴제’의 빛과 그림자를 살펴봤다. ◇ODA 청년인턴, 인력난으로 허덕이는 NGO 숨통 트이게 해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하 코이카)은 작년부터 청년인재를 공적개발원조(ODA) 전문가로 키우기 위한 ‘ODA 청년인턴제’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 92명의 청년인턴이 아프리카, 아시아 등 34개국 코이카 해외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으며, 월드비전이나 지구촌나눔운동,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등 78개 ODA사업 수행기관에서 159명의 인턴이 근무 중이다. “이제야 겨우 숨통이 트였어요.” ODA 청년인턴을 채용한 기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인건비 부담 때문에 직원을 쉽사리 채용하지 못했던 중소 NGO에 청년인턴제는 반가운 소식이다.

[Cover story] 굿네이버스 20주년 100번의 새로운 ‘도전’… 20년 만에 일궈낸 ‘기적’

굿네이버스의 성공 비결 1. 비전 공유 통한 인재 육성 2. 투명성·전문성 등 국제 감각 3. 앞선 계획과 끝없는 도전 세계적인 구호단체의 상당수가 한국 전쟁을 통해 만들어졌다. 한국 땅을 밟았던 선교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스러져가는 생명 앞에서 오열했고,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살리기 위해 미국과 유럽 등에서 모금을 시작했다. 월드비전·컴패션 등의 역사가 이 땅에서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 ‘토종’ 구호단체가 나오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스스로 도울 힘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91년, 굿네이버스가 ‘한국이웃사랑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할 때만 해도 ‘토종’ NGO의 성공에 대해서는 대부분 비관적이었다. 하지만 불과 20년 만에 굿네이버스는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회원 수 33만1456명(월 1만원 후원자 기준), 사업비 482억여원(2009년 기준), 국내 44개 지부와 해외 28개 지부를 둔 초대형 조직으로 거듭났다. 매년 20~30%의 초고속 성장세를 거둔 셈이다. 굿네이버스 이일하 회장은 그 성공 비결을 크게 3가지로 꼽았다. ①비전 공유를 통한 인재 육성 ②투명성·전문성 등의 국제 감각 ③앞선 계획과 끝없는 도전이다. “처음 8명으로 시작했던 굿네이버스가 이만큼의 성장을 거두는 동안 100번이 넘는 새로운 도전을 했습니다. IT 붐을 보면서 인터넷을 통한 모금을 시도했고, 돈 있는 사람이 그저 자선의 의미로 돕는 게 아니라 왜 우리가 나눠야 하고 세계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등을 알려주는 사회개발교육을 시작했습니다. 100번의 도전 중 90% 이상이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굿네이버스가 인터넷을 통해 시작한 ‘100원의 기적’ 프로젝트는 지금까지도 가장 성공한

소통의 공간에서 나눔의 공간으로

SNS 모금 열풍 최근 스마트폰이 열풍을 일으키면서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국내 나눔 문화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SNS의 가장 큰 특징은 빠른 확산 효과다. 한 예로 미국 적십자사는 아이티 지진이 발생한 지 나흘 만에 트위터를 통해 80만명을 모금에 참여시키며 800만달러(약 90억원) 이상을 모았다. 이런 SNS의 효과가 알려지면서 국내 NGO들도 앞다퉈 SNS를 활용한 모금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자체 트위터(@unicefkorea)와 미투데이(metoday.net/unicef)를 통해 작년 12월 23일부터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연필 보내기 운동’을 알리고 있다. 이 운동은 한 자루에 25원 하는 연필을 자신이 원하는 수만큼 핸드폰, 신용카드 등으로 소액 결제해 후원하는 운동이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의 트위터에는 이미 1만명의 팔로어가 등록되어 있어 이들이 트윗과 리트윗을 통해 캠페인 홍보와 모금에 톡톡히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의 채정아(36) 미디어 팀장은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했던 SNS가 모금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지 테스트하기 위해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캠페인”이라며 “반응이 좋으면 SNS를 통한 소액기부 운동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굿네이버스는 트위터(@Good_Neighbors)를 통해 자체 캠페인인 ‘날아라 희망아’를 홍보하고 있다. 트위터에 캠페인 관련 웹페이지 주소를 링크해놓고, 링크를 따라가면 캠페인 홈페이지를 볼 수 있도록 했다. 네티즌들은 캠페인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국내외 아동들의 사연을 읽고 정기 후원이나 일시후원을 할 수 있다. 개인이 SNS를 통해 나눔 문화 확산에 앞장서는 경우도 생겨났다. 가수 션이 대표적이다. 7일 현재 그의 트위터(@jinuSEAN300·사진) 메인에는 ‘루게릭병 요양소 건립’ 모금을 위한 계좌번호가 적혀 있다.

직접참여 봉사·SNS 홍보… 한 걸음 도약하는 기부문화

국내 NGO 2011년 트렌드 상처 입은 국민 신뢰 투명성으로 회복 직접 참여 소통·홍보전문성 강화 2010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비리 파문으로 들썩인 ‘기부계’의 올해 가장 큰 트렌드는 ‘투명성 강화’다. 국내 NGO들은 기존에도 외부 회계법인을 통해 감사받은 내용을 인터넷 홈페이지와 회보 등에 공개하고, 후원자들이 직접 국내외 사업현장을 둘러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해왔다. 하지만 ‘모금’에 대한 국민의 신뢰성이 흔들리자, 이를 회복하기 위한 ‘히든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로 ‘후원자 직접참여 프로그램 강화’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은 올해 봉사단원이 파견되어 있는 해외 사업장을 방문하는 ‘비전트립’과 ‘CDP(Child Development Program) 트립’의 참여자 수를 늘릴 예정이다. 기아대책 홍보사업본부 김은희(38) 본부장은 “올해 비전트립에는 작년보다 15% 정도 늘어난 750여명이 참가할 예정이고, CDP 트립의 참여자 수도 2.5배 정도 늘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기아대책은 후원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현지 사업장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해서 정기 후원을 유도할 계획이다.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은 중고등학생 우수자원봉사자들이 해외 사업장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올해 강화했다. 베트남, 몽골, 캄보디아, 필리핀 등 4개국에 작년보다 2배 늘어난 140여명을 파견해 해외에서 봉사활동도 해보고, 현장에서 월드비전 후원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실제로 NGO의 해외 사업장을 방문했던 후원자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오은주(46)씨는 작년 10월 국제아동개발원조단체인 ‘플랜코리아’를 통해 후원하는 아이를 만나기 위해 베트남에 갔었다. 오씨는 “후원아동이 사는 지역에 만들어진 학교와 유치원을 보고 나서 내가 낸 후원금이 잘 사용되고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며 “편지나 사진만 교환할 때와 달리 직접 만나고

“세계에 우리 나눔정신 알리는 봉사자들이 진짜 애국자죠”

정정섭 기아대책 회장 “내가 지난 21년 동안 한 일은 세상 곳곳에 사람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국제구호개발 NGO 기아대책의 정정섭(69·사진) 회장이 말했다. 대부분의 NGO가 가장 욕심내는 일이자,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가는 곳곳이 전쟁터이거나 재난이 휩쓸고 간 지역이고, 굶주림과 질병에 고통받는 땅이기 때문이다. 돈으로 사람을 돕는 마음을 내는 것도 힘든데, 아예 현장에 눌러 살며 그들과 함께 할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 ‘용기 있는 사람들’이 1000명을 넘어섰다. 77개국에 보낸 ‘사람의 역사’에 큰 획이 그어진 셈이다. 1989년 기아대책을 설립한 정정섭 회장은 “후원자 사무실 한편에 책상 하나 놓고 시작했던 기아대책이 이만큼 성장했다”고 뿌듯해했다. 설립 첫해 780명에 불과했던 후원자 수는 2010년 현재 27만8000명을 넘어섰고, 1억8000만원(1989년)에 불과했던 후원금도 올 한 해 1246억원의 사업 예산으로 늘었다. 21년간의 세월 동안 정정섭 회장의 머리도 하얗게 세었다. 직원들과 함께 하는 산행에서 늘 1등을 했었지만, 올해는 무릎이 속을 썩인다. ‘신념’ 하나로 전 세계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뛰는 기아대책 식구들 얘기를 할 때는 눈시울도 붉어졌다. 가장 어려운 곳에서 빛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했다. 2030년까지 10만명의 해외 봉사단원을 파견하는 것이 목표다. ―왜 사람입니까. “모금을 많이 한다고 좋은 NGO는 아닙니다. 사람이 함께 가야 믿을 만하고 확실합니다. 우리 후원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 사람들이 돕게 하려면 기부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사람이 가야 대한민국이 돕는다는 걸 여과

해외에선 후원금 허투루 못 쓴다

공시양식 따라 공개하고 사업 내용별 별점도 매겨 정부가 감시 역할 ‘한몫’ 기부문화가 발달한 해외에서는 기부단체들의 투명성을 살필 수 있는 제도가 잘 마련돼 있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같은 세계적인 부자들이 ‘재산의 절반을 내놓자’고 공개적으로 제안할 만큼 기부문화가 발달한 데에는 기부금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기부자들이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둔 덕이 크다. 미국 국세청(IRS)은 비영리단체 공시양식인 ‘양식 990’에 따라 기부금 수익과 사용내역, 사업내용과 임직원 보수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연간 2만5000달러(2800만원) 이상의 기부금을 받은 자선단체는 이 양식을 국세청에 제출해야만 면세혜택을 받을 수 있고, 기부금 수익이 100만달러(11억원), 총자산이 250만달러(28억원) 이상인 큰 단체의 경우에는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비영리단체는 최근 3년간의 ‘양식 990’ 정보를 원하는 사람에게 우편과 팩스, 전자우편으로 제공할 의무가 있으며, 이 정보는 파운데이션센터(www.foundationcenter.org)와 가이드스타(www.guidestar.org), 자선 통계를 위한 국가 센터(NCCS)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정해진 공시양식도 없을 뿐더러 받은 정보를 민간에 공개하지도 않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다. 공시자료 자체가 어려운 일반 기부자들을 위한 대안도 마련돼 있다. 비영리단체 재무평가 기구인 미국 채리티 내비게이터(Charity Navigator)와 가이드스타는 비영리단체가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각 단체를 분석하고 평가해 기부자들이 똑똑한 기부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채리티 내비게이터는 5000여 개 자선단체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별점 평가를 매긴다. 단체가 목적한 주요사업에 쓰이는 비용은 많을수록 좋은 평가를 받고 단체 운영비는 낮을수록 좋은 평가를 받는다. 평가에는 국제구호·환경·문화·종교 등 NGO를 각 활동별로 분류하고 각각의

實效 없는 정부정책이 기부단체 ‘불신’ 낳았다

성금 비리사건 이후 얼어붙은 나눔 전월 기부액, 작년比 14억 줄어 비영리법인마다 다른 회계양식,현실 반영 못 한 기부금法 원인 “회계양식 통일·공시 의무화” 정부 차원의 제도 마련 시급 연말이 다가온다. 예년 같으면 온정의 손길이 점점 커져야 할 때다. 하지만 올해는 좀 다르다.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늘었다. 방송작가 김영은(29)씨는 올해 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아이티 성금모금에 참여했다. 영은씨는 “유명한 단체를 통한 모금이라 좋은 곳에 쓰일 거라고 믿고 1년 가까이 잊고 있었는데 최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건을 접하고 나니 올 연말에는 성금을 내야 할지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영은씨만의 얘기는 아니다. 비리 보도 후 지난 10월 한 달간 모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억원가량 줄었다. 지회마다 소액기부를 철회하는 건수는 하루 10~30건에 달했다. 도움의 손길이 더욱 필요해지는 시기에 후원 손길이 줄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불신을 없애고, 이번 사건을 우리 사회의 기부 문화를 더욱 건강하고 투명하게 만드는 계기로 삼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비영리단체의 특성에 맞는 회계보고양식을 만들어 정확하고 비교 가능하게 공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2008년부터 자산총액 10억원 이상의 공익법인은 외부 전문가로부터 세무확인을 받고 결산서류 등을 국세청에 공시하도록 되어 있다. 대부분의 비영리 단체들은 이 제도에 따라 국세청에 관련 자료를 공시한다. 문제는 비영리 법인을 위한 표준 양식이 없어서, 영리 법인의 회계 양식에 기반해 보고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영리법인과 돈을

60%가 아프리카 학생… 빠르게 성장한 ‘한국’ 배우러 왔어요

아주대학교 국제대학원 쉬는 시간이 시작되고 학생들이 복도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한 강의실만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문틈 사이로 간간이 들리는 영어에 수업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20여분 지났을 때 강의실 문이 열렸다. “반갑습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수원 아주대학교 국제대학원 NGO 학과의 이완 왓슨(38) 교수는 기다리게 해 미안하다며 악수를 청했다. 그는 ‘사회 발전과 빈곤 감축 (Social Development and Poverty Reduction)’이라는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참이었다. 왓슨 교수 뒤로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강의실 밖을 지켜보고 있었다. 1996년 3월 개원한 아주대학교 국제대학원은 현재 26개국 97명이 공부하고 있다. 이 중 한국인은 단 한 명에 불과하다. 96명의 외국인 중에서도 60%에 해당하는 57명이 카메룬,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대륙에서 온 학생들이다. 57명 중 8명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개발도상국가 공무원 대상 장기석사과정 프로그램 학생들이고, 나머지는 NGO학, 국제개발학 등을 공부하기 위해 스스로 아주대를 찾았다. 대다수의 사람이 아프리카인과 아프리카 대륙을 NGO 활동의 수혜 대상자로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많은 아프리카인들 역시 NGO와 국제개발 현장에서 활동한다. 문제는 이들이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체계적인 공부를 원할 때, 영어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영국이나 미국은 학비와 생활비가 너무 비싸다는 점이다. 아주대학교 국제대학원 교학팀 김재은(39)씨는 “우리는 전 수업을 영어로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비의 50~100%까지 지원해주는 장학제도가 있고, 짧은 시간 가난에서 일어선 한국의 역사를 함께 배울 수 있는 장점 덕분에

시민단체 30여 곳·활동가 45명 참석… 더나은미래 설명회 열려

‘더나은미래’가 NGO와 관련 단체들을 대상으로 연 설명회가 지난 7일 열렸다. 이번 설명회는 ‘더나은미래’와 비영리 단체가 함께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풀어가야 할 문제 해결 방안을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국제구호, 환경, 문화, 복지, 교육 분야의 시민단체 30여 곳과 활동가 45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이날 설명회는 참가자들의 자기 소개에 이어 기업 사회 공헌 트렌드와 더나은미래 지면 소개, 캠페인 연계방법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특히 그간 모금과 홍보에 어려움을 겪었던 중소 규모의 NGO들이 많이 참여해 서로의 사업을 알리는 뜻깊은 자리가 됐다. 수술실과 입원실을 갖춘 병원 선박으로 개발도상국에서 의료 봉사를 하는 ‘머시쉽’의 한국 대표 권현순씨는 “우리 같은 작은 NGO들도 소개하고 발언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기쁘다”고 말했다. 세계복지지원단의 박춘식 사무총장은 “도움을 받던 한국이 이제 국제 구호에 나설 만큼 위상이 높아졌다”며 “더나은미래가 작은 NGO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시간가량 진행된 설명회를 통해 현장 활동가들은 더나은미래를 위한 다양한 조언도 쏟아냈다. 모금 전문회사 휴먼트리 이선희 대표는 “넓은 시각으로 NGO들에 필요한 것을 제시해주는 역할까지 하는 ‘더나은미래’가 기부자 콘퍼런스도 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월드투게더 조영진 간사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NGO를 만날 수 있는 기회라 뜻 깊었다”며 “좀 더 자주 NGO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더나은미래’는 9월 NGO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10월에는 사회적 기업가, 11월에는 기업 사회 공헌 담당자, 12월에는 기부자를 만날 예정이다. 구체적 일정과 내용은

재미있는 한국 구호단체 60년 小史

털모자·염소·빵 저금통…다양한 아이디어로 빈국 도와 다큐멘터리 : 한국의 NGO들은 후원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지원 국가의 실상을 알릴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한국 구호 개발의 초기, 한국을 위해 모금했던 NGO들도 우리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세계인의 관심을 모았다. 1959년 ‘세이브더칠드런’과 ‘옥스팜’은 ‘먼 곳에서의 울음(A Far Cry)’을 제작했다. 스테판 피트씨가 메가폰을 잡은 이 흑백 다큐멘터리는 39분52초 동안 고수자·한창수 등 힘들게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대 한국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먼 곳에서의 울음’은 1959년 영국 BBC 방송국을 통해 부활절 일요일에 방영됐다. 털모자 뜨기 : 세계적으로 폐렴이나 말라리아, 설사 등 예방이 가능하고 쉽게 치료가 되는 병으로 사망하는 5세 미만 영유아는 500만명이다. 모자 뜨기 캠페인은 폐렴이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인 저체온증을 막아줄 수 있는 털모자를 떠서 보내주는 캠페인이다. 모자 뜨기의 시초는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의 한 지역 신문사로 “세이브더칠드런 기금을 위해 담요와 아동의 옷을 떠 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라는 편지가 배달됐고, 그 이후 며칠 만에 100여명의 사람들이 지역 교회와 학교의 도움으로 털실을 얻어 모자와 담요를 뜨기 시작했다. 한국에는 1993년 12월에 영국으로부터 직접 손으로 뜬 담요 450상자를 기증받아 부산 시내에 있는 육아시설과 양로시설 등 40여개 시설에 분배해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염소 보내기 사업 : 저개발 지역에 염소나 암소를 보내는 것은 지역 빈곤문제 해결에 효과적이다. 염소는 새끼를 낳고 그 새끼는 다시 새끼를 낳기 때문이다. 일종의 종잣돈이 마련되는 셈이다. 염소가

70년대까진 도움 없인 못 사는 나라… 88올림픽 이후 도움 주는 나라로

6·25전쟁 후 국제 NGO에서 아동구호 손길, 60~70년대엔 지역·가정 개선사업으로 전환, 90년대, 원조 ‘홀로서기’… 토종 NGO 생겨나… ‘탯줄도 잘리지 않은 아기들이 밤새 항구에 버려져 있어요.’ 6·25전쟁이 치열하던 1950년대 초반. ‘세이브더칠드런’ 한국사무소 직원이었던 박미자씨가 세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며 쓴 글이다. 전쟁 기간 중 남쪽 사망자만 50만명을 넘었고, 행방불명된 사람을 합하면 그 숫자는 80만명을 넘어선다. 주택 61만채가 폐허가 됐고, 760만명의 이산가족이 생겼다(한국전쟁피해통계집). 해방 직후 어렵게 지켜온 산업 기반시설은 모두 붕괴돼 재건이 불가능해 보였다. 공업시설의 43%, 발전시설의 41%, 철도 312km가 파괴됐다. 모두가 힘들었던 시기. 하지만 가장 힘든 이는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아동의 피해가 컸다. 전쟁 중에 부모를 잃고 가족과 헤어진 아이만 10만명에 달했다. 남북한 전체 인구가 3000만명 남짓했던 시절이다. 이런 처참한 현실 속에서 어린아이들을 돌보고 재건의 씨앗을 마련한 이들이 바로 국제 구호단체들이다. 이들은 열정적으로 한국의 상황을 해외에 알리고 적절한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국의 거리에서 만난 거지 소년이 들고 있던 깡통과 한국에서 찍은 영상을 시애틀의 교회에서 보여주며 한국 돕기를 제안했던 에버렛 스완슨 목사 같은 이도 있었고, 부산 용주동에 방 2개짜리 사무실을 구하기 전까지 길거리에서 잠을 잤던 로버트 세이지씨 같은 이도 있었다. 구호사업의 초기인 1950~60년대에는 아동 구호사업이 구호 NGO의 대표적인 사업이었다. ‘세이브더칠드런’ 영국·미국 지부는 매년 3500명의 한국 아동들을 후원했고, ‘플랜’의 후원자들은 한국의 아동들에게 쌀·밀가루와 서양 의복 등을 보내왔다. 당시 문서에는 “아이들이 처음에 서양식 옷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