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20대 청년이 바꾸는 ‘커피의 미래’

[인터뷰] 아린다 카리나 렝갈리(Arinda Karina Renggli) ‘렝갈리 커피 컴퍼니’ 창업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북부 아체주(州)의 고산지대. 이곳에는 약 36개 마을, 2000여 명의 농민이 소속된 커피 협동조합 ‘페르마타가요(Permata Gayo)’가 있다. 농민들이 직접 자본을 출자하고 운영하는 이 협동조합은 인도양 쓰나미와 아체 지역의 무력 분쟁 이후 파괴된 커피 농장을 재건하기 위해 2006년 설립됐다.  페르마타가요는 중간 유통단계를 생략하고 해외 바이어와 직접 거래하는 방식으로 가격 협상력을 확보했다. 농민들은 제값을 받고 안정적으로 커피를 판매할 수 있게 됐고, 이는 경제적 자립과 지역 복구로 이어졌다. 현재 이 협동조합은 매달 5~10 컨테이너, 약 100톤에서 200톤에 달하는 커피를 한국,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전 세계에 수출하고 있다. ◇ “조합은 단순히 돈만 버는 조직이 아닙니다” 지난 9일 한국을 찾은 페르마타가요의 마케팅 매니저 아린다 카리나 렝갈리(Arinda Karina Renggli·25) 씨는 조합의 성과로 ‘커피 수출’보다 먼저 “구급차 5대”를 언급했다. 조합은 사업 수익으로 지역 주민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구급차를 기증하고, HPV 백신 접종, 건강검진 장비 지원 등 보건 사업에도 힘쓰고 있다. “우리는 커피로 돈을 벌기만 하는 조직이 아닙니다. 조합원뿐 아니라 지역 주민과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믿어요.” 협동조합은 농민에게 농기구를 지원하고, 가지치기·재배법·가공법 등 농업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한다. 여성 조합원을 위한 재봉교실과 보육 공간도 마련해 일과 돌봄이 병행 가능한 환경을 조성했다. 조합 내부에는 청년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청년위원회’도 존재한다. 페르마타가요와 함께 자매 협동조합인 ‘코코와가요’ 소속 청년 약

“돈을 넘어, 사람과 지구를 가르친다”…지속가능경제 교육을 말하다

배우는 학교, 움직이는 청소년<4·끝> 청소년 ‘지속가능경제 교육’의 의미와 과제 기존의 경제교육은 무엇을 놓치고 있었을까. 효율과 이윤 중심의 교육은 기후위기, 불평등, 무분별한 소비와 같은 문제에 제대로 답하지 못해왔다. 그렇다면 ‘경제’와 ‘지속가능성’을 함께 가르치는 일은 가능할까. 청소년을 교육의 수혜자가 아닌 실천의 주체로 세우려면, 우리는 무엇부터 바꿔야 할까. 지난 10일 열린 ‘지속가능경제학교 포럼’에서 이 같은 질문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졌다. 재단법인 아름다운커피와 공익미디어 더나은미래가 공동 주최하고, 금융산업공익재단이 주관한 포럼에는 교사, 연구자, 시민단체 활동가 등 100여 명이 참석해 청소년 경제교육과 지속가능성의 접점을 모색했다. 현장에서는 청소년 주도의 지속가능성 교육 사례로 ▲캐나다 환경·인권단체 ‘그린호프재단’ ▲국제 지속가능 학교 네트워크 ‘TASS’ ▲아름다운커피의 ‘지속가능경제학교’ 등이 소개됐다. 이어 두 차례의 패널 토론에서는 교육의 본질과 과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오갔다. 먼저 ‘청소년이 만드는 지속가능성과 경제 교육’을 주제로 한 첫 토론에서는 한진수 경인교육대 교수(인천지역경제교육센터장)가 좌장을 맡고, 앤서니 딕슨(Anthony Dixon) TASS 창립자, 김나영 양정중 사회 교사 겸 작가, 이원재 경제평론가가 패널로 참여했다. 김나영 교사는 “경제학은 개인의 효율과 이익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지만, 지금은 지구를 위한 소비와 생태 감수성까지 가르쳐야 할 시점”이라며 “학생들의 관심사에 따라 업사이클링, 비건 식단, 재사용 캠페인 등을 직접 설계해 참여형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원재 평론가는 “우리는 종이컵 하나를 아무렇지 않게 쓰지만, 그 안에 우리가 고민해야 할 수많은 문제들이 숨어 있다”며 “AI 같은 기술이 사회를 바꾸는 수단이 될 수 있어도, 데이터센터가 남기는

저탄소 급식부터 버스 기사님 노동환경…청소년이 실천한 변화의 현장

배우는 학교, 움직이는 청소년<3> 청소년이 주도한 국내외 지속가능경제 교육 “2012년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지속가능성 정상회의에 참가했습니다. 참석자만 5만 명이 넘었는데, 그중 18세 이하 미성년자는 저를 포함해 단 다섯 명뿐이었습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12세 나이에 ‘그린호프재단’을 설립한 케카샨 바수(Kehkashan Basu)는 지난 10일, 아름다운커피와 더나은미래가 공동 주최한 ‘지속가능경제학교 포럼’에서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당시 경험을 계기로 그는 청소년도 지속가능성 논의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결심했고, 현재 그가 이끄는 재단은 28개국에서 50만여 명의 청소년과 함께 환경 교육, 맹그로브 복원, 태양광 이동 도서관 등 수십 개의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지속가능성 아카데미’는 청소년이 직접 강사가 되어 지속가능성과 경제 개념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강의 대신 연극, 춤, 음악, 스포츠 등 창의적인 방법을 활용해 어려운 주제를 쉽게 풀어낸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과 캐나다를 넘어 베트남, 방글라데시, 시리아·로힝야 난민 캠프 등지에서도 운영되며 교육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서도 호응을 얻고 있다. 케카샨 바수 대표는 “청소년부터 취약계층까지,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교육”이라며 “청소년에게는 긍정적 변화를 이끌 힘이 있기에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청소년 주도의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 청소년, 급식의 ‘탄소 발자국’을 바꾸다 포럼에서는 학교를 거점으로 청소년이 주도하는 지속가능성 활동도 소개됐다. 국제 네트워크 ‘지속가능한 학교를 위한 연합(TASS)’은 통학버스, 급식, 교복, 건물, 교육을 중심으로 지속가능성 실현을 위한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2023년에는 홍콩에서 ‘지속가능한 학교 급식 정상회의’를 열고, 학생들이 급식 데이터를

“학교가 변하면, 사회도 변할 수 있습니다”

배우는 학교, 움직이는 청소년<2> [인터뷰] 앤서니 딕슨(Anthony Dixon) TASS 창립자 “학교는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실험하고 확산할 수 있는 작은 사회입니다.” 학교 운영 전반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실천하는 국제 비영리 네트워크 ‘지속가능한 학교를 위한 연합(The Alliance for Sustainable Schools·이하 TASS)’를 만든 앤서니 딕슨(Anthony Dixon)은 “학생이 지속가능성을 ‘배우는 것’과 ‘실천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0일, 재단법인 아름다운커피와 공익미디어 더나은미래가 공동 주최하고 금융산업공익재단이 주관한 ‘지속가능경제학교 포럼’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TASS는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금융업계에서 15년을 일하다 ‘환경과 관련된 의미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에 2018년 학교 대상 지속가능성 컨설팅 기관인 ‘메타노이아(Metanoia)’를 설립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건, 학교마다 겪는 문제도 비슷하고 해법도 비슷하다는 점이었어요. 그런데 정작 그 문제를 학교들끼리 공유하진 않고 있었죠. 그래서 ‘서로 배울 수 있는 실천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2022년 TASS가 탄생했습니다. 현재 20개국 135개 학교가 참여하고 있고, 각 학교는 2명의 학생 대사를 두고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습니다.” ―왜 하필 ‘학교’였습니까. “학교는 하나의 작은 사회입니다. 도시나 국가보다 작지만, 오히려 그만큼 지속가능성을 실험하기에 유리한 공간입니다. 이해관계자가 비교적 단순하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용해보고 빠르게 결과를 확인할 수 있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에서 자라는 학생들이 미래의 결정권자라는 점입니다. 교육은 느릴 수 있지만 세대를 바꿀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지속가능성을 자연스럽게 체득한 아이들이 10년, 20년 뒤 사회를 움직이는 리더가 될 겁니다.”

“청소년이 기획하고 실천”…아름다운커피, 지속가능경제학교 포럼 연다

배우는 학교, 움직이는 청소년<1> 지속가능성을 배우고 실천하는 교실 사례 공유 4월 10일 노무현시민센터 개최…국내외 전문가 한자리에 재단법인 아름다운커피가 오는 4월 10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홀에서 ‘교육의 길, 지속가능경제시민으로의 성장’을 주제로 포럼을 개최한다고 31일 밝혔다. 이번 포럼은 아름다운커피와 공익미디어 더나은미래가 공동 주최하고, 금융산업공익재단이 주관한다. 포럼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기조연설에서는 캐나다 환경·인권 활동가 케카샨 바수(Kehkashan Basu) 그린호프재단 창립자가 ‘청소년이 만드는 지속가능성과 경제교육’을 주제로 강연에 나선다. 바수는 2016년 ‘국제 어린이 평화상’을 수상한 인물로, 청소년이 주도하는 환경 프로젝트 사례와 교육에 지속가능성 가치를 통합하는 방법을 소개할 예정이다. 이어 한진수 경인교육대 교수(인천지역경제교육센터장)의 사회로 패널토론이 진행된다. 이 자리에는 케카샨 바수를 비롯해 앤서니 딕슨(Anthony Dixon) TASS 창립자, 김나영 양정중 사회 교사 겸 작가, 이원재 경제평론가가 참여해 청소년 대상 경제교육의 방향을 논의한다. 2부에서는 앤서니 딕슨 TASS 창립자가 ‘지속 가능한 학교 시스템’ 사례를 발표한다. TASS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비영리 학교 네트워크로, 건물·교통·급식·교복 등 학교 운영 전반에 지속가능성을 반영하는 시스템을 공유하고 있다. 이어 아름다운커피 이혜란 홍보캠페인 팀장이 ‘지속가능경제학교’ 교육 사례를 발표한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해 13개 기관, 203명의 청소년과 함께 운영되었으며, 청소년이 직접 기획한 ESG 프로젝트를 통해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실천한 경험을 담고 있다. TASS 대사 및 프로그램 참여자들의 경험 공유도 이어질 예정이다. 마지막 3부 종합토론에서는 점프(JUMP) 창립자 이의헌 씨가 좌장을 맡고, 케카샨 바수, 앤서니 딕슨, 김나영 교사, 한진수 교수, 고대권 이노소셜랩 대표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앞선 자 뒤서고, 뒤선 자 앞선다

지난 10여 년, 공정무역 커피 비즈니스 덕에 나름 개성 있는 커피 생산지를 경험해 왔다. 스페셜티 커피처럼 맛있는 커피만을 찾아 여기저기 다닌 것이 아니다 보니, 한 산지에 긴 시간 머물면서 여러 가지 렌즈로 그 사회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 렌즈의 이름은 젠더, 인류학, 경제학, 비즈니스, 사회혁신 등 다양하다. 이 중에서도 나를 가장 매혹했던 관점은 ‘다이내믹스(dynamics·사물 간의 변화를 주는 힘의 작용)’다. 어떻게 변화가 찾아올까, 무엇이 변화를 견인하는가. 최근 흥미 있게 본 생산지는 코스타리카 커피 섹터다.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영세중립국으로 선언한 이 나라에는 유엔 부설 대학원 대학인 유엔평화대학이 있다. 또 생태적으로 잘 보전된 지역을 중심으로 관광 산업이 발전했다. 일찍이 재생에너지를 적극적으로 개발해, 공급 가능한 에너지의 90%가 신재생에너지라 한다. 이것을 기반으로 세계 최초 ‘탄소중립 커피’를 생산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런 기후위기의 시대에 앞선 자가 걸어온 길이 궁금하다. 코스타리카는 중미의 인구 500만 국가로 식민지 시대부터 커피, 바나나 등의 단일 작물 경작과 수출을 주된 경제활동으로 영위했다. 토착 원주민의 숫자가 작아 스페인 본국에는 무의미했던 땅이었지만, 원주민과 영토분쟁 없이 커피 재배 면적을 확대할 수 있었기에 인접 주변국보다 50년 이상 빠르게 커피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 또한 국가 내 커피재배 확산 과정도 다양하다. 초창기 작은 길을 놓고 비즈니스를 시작한 따라주 지역은 소농 기반의 소규모 경작과 가공방식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후 대서양 철도와 판아메리칸 하이웨이로 연결된 뚜리알바, 뻬레스 셀레동 지역은 대규모 경작을 할 수 있어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한국 쌀에도 공정무역이 필요한 이유

유례없이 큰 태풍 ‘힌남노’가 추석 직전 몰아닥쳤다. 여름부터 간헐적으로 이어진 큰비, 연초부터 줄줄이 인상된 금리와 환율 등 추석 차례상 물가 걱정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각종 식품 제조 가공업체들은 추석 대목까지만 버티고, 이후 가격 인상을 예고한다. 사실 장바구니 한번 들어본 사람이라면, 추석 차례상 아니라도 익히 체감한 일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밀값 상승의 불안감이 이어지고, 작년부터 이어지는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은 우리 먹거리 시장을 불안하게 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위기를 체감할 상황은 닥치지 않았다. 한국 정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식량위기를 느낄 정도가 되면, 개발도상국에선 이미 식량 위기로 폭동이 나도 여러 번 났어야 한다. 즉 가난하고 어려운 나라의 백성들에게 식량 위기는 늘 먼저 닥친다. 다행일까. 이렇게 전 세계가 기후위기에 따른 식량으로 불안한 가운데 한국의 주곡인 쌀 자급률은 그나마 선방하고 있다. 연속 풍년으로 너무 선방한 나머지, 물가는 오르는데 쌀값만 폭락하고 있다. 햅쌀 본격 출하 시점을 앞둔 지난 8월 농민들은 쌀값 안정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열었다. 농민들은 “정부가 시장에 있는 쌀을 사들이는 ‘시장격리’ 조치를 세 차례 발동했지만, 쌀값은 작년 대비 23.6% 폭락했다”며 필수 농기자재에 대한 지원과 햅쌀이 풀리기 전 신속한 시장격리, 농업 생산비 보전 등을 요구했다. 농민들은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용산 방면으로 향하며, 화물차에 실린 볍씨를 도로에 뿌렸다. 판로가 없어 헐값으로 커피를 팔아야 하는 개발도상국가 농민들은 항의할 관계 기관이 없어 스스로 커피나무를 갈아엎었다 하는데, 우리 농민들은 항의할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해방,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

8월 23일은 ‘세계 노예무역 및 철폐 기억의 날’이다. 역사 속에서 인류가 부의 축적을 이루는 가운데 노예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 로마 콜로세움을 열광의 도가니로 이끈 검투사들도 노예였으며, 일본의 도예 문화를 꽃피운 조선의 장인들도 노예였다. 남미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해 세계 곳곳에 공급한 것도 노예다. 이 중에서도 16세기부터 시작된 삼각무역에 동원된 흑인 노예들은 그 이전의 노예들과 매우 다르다. 검투사는 승리하면 자유를 얻을 수 있었고, 장인은 그 재주에 맞는 대우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럽이 고안한 노예무역은 ‘흑인은 인간이 아닌 존재’로 개념화했다. 그래야만 노예선에 높이 30cm로 다섯 단을 쌓아 사람을 짐짝처럼 차곡차곡 눕혀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이런 상태로 운반되는 노예가 질병이나 영양실조로 상품가치가 떨어진다면, 바다에 밀어 넣어 수장을 시키고 보험금을 받는 것이 합리적 판단이 된다. 영화 ‘벨(BELLE)’은 1781년 9월 자메이카를 떠난 노예선 ‘종(ZONG)’호에서 3일간 133명의 병든 노예를 바다에 수장시킨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보험금을 노린 사건이다. 종호는 영국에 도착해 보험금을 청구하나, 보험사는 거절했고 긴 재판이 이어졌다. 결과는 패소했고 이 일은 영국사회에 노예무역의 잔혹성이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초기 노예무역 반대론자들의 캠페인은 어쩌면 요즘 공정무역 캠페이너들의 활동과 비슷하다. 영국의 지식인들은 식민지에서 생산한 설탕 불매운동(boycott)을 벌이면서 ‘노예의 피로 만든 달콤함을 거부한다’며 인도산 설탕을 대안(buycott)으로 소비하기도 했다.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주장이 담긴 신문이 돌고, 카페에서는 그에 대한 토론이 활발했다. 그 카페의 커피는 공정무역이 아니었을 테니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드라마 속 우영우의 충고 “핵심을 봐야 해요”

“핵심을 봐야 해요.” 최근 인기를 끄는 TV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충고다. 주인공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지만, 뛰어난 능력과 자질을 가진 변호사다. 그녀는 지금 일어난 현상 너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미래를 지켜주기 위해 사건의 핵심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어떤 마음과 의도를 갖고 그 일을 했는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지난 5월 31일은 ‘바다의 날’이었다. 그즈음, 바다의 미래에 대한 매우 중요한 무역협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협정은 강대국과 개도국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21년을 끌고 왔다. 어떻게 바다를 지속가능한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 우리의 미래를 지킬 것인지 그 ‘핵심’에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역협정을 다루는 사람 중에 우영우 같은 변호사가 없기 때문일까. 무역협정이란 국가 간 산업의 개방 또는 보호를 위해 수출입 관세와 시장 점유율 제한 등의 무역장벽을 제거하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또한 수출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협상국가 내의 보조금도 규제한다. 보조금을 받은 생산농가는 국제시장에 낮은 가격으로 팔 수 있고, 이는 무역질서 교란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1년째 타결하지 못한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협정 주제는 바로 ‘수산업 분야에 대한 보조금’이다. 이런 협정은 매우 전문적이고 실생활에 대한 영향력을 즉각적으로 체감하기 어려워 시민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무역협정과 관련 우리 기억 속에 또렷이 남은 몇 장면이 있는데, 2008년 ‘광우병 위험물질이 포함된 쇠고기의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그렇다. 당시 협정에서 문제가 됐던 부분은 광우병을 일으킬 수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코카콜라엔 있고, 스타벅스엔 없는 것

빈용기 재사용 생산자가 부담하는 취급수수료.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이 제도 덕에 동네마트나 편의점에서 팔린 음료수 공병의 90% 이상이 생산 공장으로 되돌아온다. 공병을 세척, 소독, 재활용하여 자원 낭비를 막는다. 국내에서 소주, 맥주, 청량음료 제조사들은 한 병당 약 30원가량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는 이 돈을 재원으로 소비자가 상점에 빈 병을 반환하도록 촉진하고, 도소매 상점들은 수거센터의 역할을 하도록 계도하고 있다. 한국에서 음료회사 13곳이 연간 납부하는 취급수수료 규모는 2800억원 정도다. 제도 시행 초에는 혼란도 있었지만, 2016년부터는 병 음료 출고량 대비 회수비율이 95.2%나 된다고 하니 작은 수수료의 위력이 엄청나다. 그런데 어지간한 병 음료보다 더 비싼 값으로 판매되는 커피가 담긴 일회용 컵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2002년 자발적 협약에 근거해 처음 시행되었다가 2008년 폐지, 그리고 2018년 경기수도권 쓰레기 대란으로 다시 한번 도입이 논의되어, 마침내 오는 6월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를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당국은 지난 2년간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자원재활용법을 개정하여 추진의 근거를 마련했다. IT 강국답게 온라인으로 원스톱 관리가 가능한 앱을 개발하고, 지난 제도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반납처를 구매처에 상관없이 반납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거리에 무단으로 투기 되던 일회용 컵이 사라지고 소각 시 발생하는 온실가스 60% 이상을 줄일 수 있다. 하와이에서는 이 제도를 도입한 첫해에만 해안가에 무단투기 되던 일회용 컵의 50%가 회수되었다. 한국은 보증금제도의 점진적 안착을 위해 우선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선자에게도 커피가 필요하다

애플TV+의 드라마 ‘파친코’가 화제다. 일제강점기 영민함과 자존심으로 스스로를 지켜내던 젊은 여인 선자는 갑작스런 임신으로 고향을 떠나게 된다. 무력으로 조국을 지배하는 제국의 심장에 던져지는 것도 어려운데, 남편은 병약하고 일자리 없는 가족은 자기 앞가림도 못한다. 그러나 선자는 온갖 역경을 이겨, 가정을 일으키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갑자기 고향을 떠나거나 급작스런 환경변화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업루티드 피플(Uprooted people)’이라고 한다. 뿌리가 뽑혀나간 사람이라는 뜻이다. 뿌리를 잘 내려도 흔들리며 갈등하는 것이 삶의 본질인데, 예상치 않았던 사건은 우리를 다른 곳에 데려다 놓곤 한다. 사람만을 다른 곳에 데려다 놓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을 따라 삶의 총체를 구성한 생활양식과 지식과 기술 등도 함께 이동한다. 업루티드 피플을 따라, 세계 각지를 이동하며 그들의 삶을 달래준 대표적인 상품이 커피다. 별빛을 따라 육로의 무역 길에 나선 아라비아 상인들과 이탈리아에 도착했고, 목숨을 건 대항해의 끝에서 아프리카 노예의 손을 빌려 전 유럽에 퍼져 나갔다. 산업혁명의 시기에는 노동자들의 끼니가 되어 주고, 프랑스 혁명기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념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전쟁만큼 커피의 확산을 촉진한 단일 사건은 없다. 커피는 미국 남북 전쟁의 승패를 갈랐다 할 정도로 병사들의 사기 진작에 필수적이었다. 링컨 대통령은 1862년 남군 지역의 항구 봉쇄령을 내려 남군의 커피 보급을 끊어 사기를 저하시키려고 했다. 남북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간 군인들과 함께 커피의 아메리카 대륙 여행은 시작됐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원두 대신 인스턴트 커피가 병영에 투입되며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여성 농부들, 커피 산업의 주인이 되다

2013년 네팔. 커피 수확이 한창인 3월 초. 깊은 산 속 커피 농장 새벽 한기는 뼈가 시릴 정도다. ‘커피를 따러 가야 하는데’ 생각하면서도 침대 속 따뜻함을 물리치기란 쉽지 않다. 커피를 사러 농가를 방문한 나의 게으름 저편으로 산중 그녀들의 아침은 분주하다. 마당에 건 솥단지에선 집안의 큰일을 해내는 검둥소에게 먹일 여물이 끓고 부엌에서는 장작이 타는 소리, 달그락 그릇 소리가 요란하다. 일단 커피 농장으로 나가면 다시 집으로 들어와 점심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아침은 든든히 먹고 농장에서 먹을 도시락도 싸야 한다. 학교에 가는 자녀들 등교 준비를 돕고, 젖먹이를 들쳐 업고 저녁에 쓸 물도 미리미리 길어다 둬야 한다. 텃밭의 야채를 거두어 집안에 챙겨두면 비로소 그녀들은 커피농장으로 향할 수 있다. 열심히 일한 만큼 부자가 된다면 내가 네팔에서, 르완다에서, 페루에서 만난 커피 농가의 여성들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2015년 페루. 여성들의 노동은 장소와 시간을 바꿔 계속된다. 커피나무 가지치기, 가뭄에 견딜 수 있도록 흙 덮어주기, 묘목을 심어 미래의 수확을 준비하기, 적정한 비료 주기, 잡초 뽑기. 이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면 드디어 수확의 기쁨이 찾아온다. 빨간 체리를 골라 따고 세척장에 이동할 수 있게 포장하는 일까지, 커피 농장의 일은 끝이 없다. 국제여성커피연맹(IWCA)의 통계에 따르면, 커피 생산에 필요한 노동이 100이라면, 이 중 75가 여성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다. 75의 일은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대부분 가족 농장에서 이루어지는 부가가치가 낮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