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7일(화)
[한수정의 커피 한 잔] 한국 쌀에도 공정무역이 필요한 이유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유례없이 큰 태풍 ‘힌남노’가 추석 직전 몰아닥쳤다. 여름부터 간헐적으로 이어진 큰비, 연초부터 줄줄이 인상된 금리와 환율 등 추석 차례상 물가 걱정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각종 식품 제조 가공업체들은 추석 대목까지만 버티고, 이후 가격 인상을 예고한다. 사실 장바구니 한번 들어본 사람이라면, 추석 차례상 아니라도 익히 체감한 일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밀값 상승의 불안감이 이어지고, 작년부터 이어지는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은 우리 먹거리 시장을 불안하게 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위기를 체감할 상황은 닥치지 않았다. 한국 정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식량위기를 느낄 정도가 되면, 개발도상국에선 이미 식량 위기로 폭동이 나도 여러 번 났어야 한다. 즉 가난하고 어려운 나라의 백성들에게 식량 위기는 늘 먼저 닥친다.

다행일까. 이렇게 전 세계가 기후위기에 따른 식량으로 불안한 가운데 한국의 주곡인 쌀 자급률은 그나마 선방하고 있다. 연속 풍년으로 너무 선방한 나머지, 물가는 오르는데 쌀값만 폭락하고 있다.

햅쌀 본격 출하 시점을 앞둔 지난 8월 농민들은 쌀값 안정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열었다. 농민들은 “정부가 시장에 있는 쌀을 사들이는 ‘시장격리’ 조치를 세 차례 발동했지만, 쌀값은 작년 대비 23.6% 폭락했다”며 필수 농기자재에 대한 지원과 햅쌀이 풀리기 전 신속한 시장격리, 농업 생산비 보전 등을 요구했다.

농민들은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용산 방면으로 향하며, 화물차에 실린 볍씨를 도로에 뿌렸다. 판로가 없어 헐값으로 커피를 팔아야 하는 개발도상국가 농민들은 항의할 관계 기관이 없어 스스로 커피나무를 갈아엎었다 하는데, 우리 농민들은 항의할 대상이라도 있으니 그나마 나은 것인가. 

이런 농민의 처지에 아랑곳하지 않는 메가톤급 태풍이 시작됐다. 지난 4월 정부는 아시아-태평양을 둘러싼 11개국이 지역 경제 공동시장 창출을 목표로 다자간 무역협정인 ‘포괄적이고 점진적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추진을 공표했다. 한국은 수출주도형 경제발전 전략 아래 90년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시작으로 58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우리 농업도 경쟁력을 키우면 된다’고 주장했지만, 5건의 FTA 발효 이후 5년간 국내 농업 손실은 1조8000억원에 달한다. 

이번 무역협정의 회원국들은 호주, 뉴질랜드, 베트남 등은 세계에서 내노라하는 농업 강국들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상대 국가가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쌀과 곡물들을 수출하려는 경우, 600% 내외의 고관세를 부과해 한국의 쌀 시장을 지켜왔다. 한국 국경으로 들어오는 순간, 100원짜리 쌀을 700원으로 만들어 버리니, 수입쌀은 한국의 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는 가격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CPTPP에서는 회원국 간의 관세 철폐율은 기존의 FTA 기준을 훌쩍 뛰어넘는 96%로 추가 개방이 불가피하다. 농축산, 수산업까지 광범위하게 어려움이 닥칠 것이다. 더 이상 쌀 농민들에게 한 것처럼 ‘희생’을 통한 식량주권의 근간을 지킬 수는 없다.

그러니 경쟁력 없는 농업을 이제 미련 없이 포기하자고? 한국의 농축산물 수입 공급선은 북미,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유럽 쪽이다. 한국이 지금 전 세계적인 식량 위기를 그나마 가격 인상 정도로 넘기고 있는 것은 미국과 호주의 가뭄과 산불이 순차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어떤 불운으로 미국과 호주가 기후재난을 당한다면, 우리의 식량 수입 공급선 관리는 실패하고 그 이후는 걷잡을 수 없는 파고가 몰려올 것이다. 마스크 대란과 요소수 사태는 돈이 있어도 물건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을 이미 경고했다. 

불행하게도 많은 전문가는 기후위기 대응이 ‘이미 늦었다’고 전망한다. 극심한 기후위기를 기정사실로 했을 때, 그것이 가장 먼저 초래할 식량 위기에 대한 대답은 농산물 무역개방일 수 없다. 농민들이 주장한대로 인프라 지원, 가격 안정, 생산비 보전 등에 대한 정책을 통해 변화된 환경에서 우리를 지킬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농민들의 주장들을 가만히 다시 보니 개발도상국 커피농부들이 요청하는 사항이고, 그 나라 정부들이 해 주지 않아 민간단체들의 공정무역을 통해 지원하는 사항이다. OECD 가입국이라면 응당 달라야 한다. 정부도, 농민들의 대표 단체도 말이다. 농협은 쌀 농부들의 국내 공정무역을 즉각 지원하고, 보장하라!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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