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네이버스 부모교육① “가족과 자연스런 봉사 수다 아이들 마음을 움직였죠”

백선희씨 두 아들 직접 편지·영상 기획해 지진 피해 日주민 전달 “부모부터 관심 가져야 아이들 스스로 실천해” 옛말에 “아이들은 제 밥그릇 타고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를 공동체 안에서 건강하게 키워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금보다 더 많은 아이들을 낳아 키웠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요구되는 부모의 역할은 쉽지 않습니다. 지난 9월 발표된 교과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교생 10명 가운데 1명은 정신 건강에 대한 정밀검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경제적인 풍요로움과 많은 교육의 혜택을 주고 있지만 웬일인지 마음이 아픈 아이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영아기,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에 따라 성취해야 할 과업이 달라진 아이들에 맞춰 부모 역할도 함께 변신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도 배우고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굿네이버스는 부모님들과 미래에 부모가 될 청소년들에게 세계시민교육의 일환으로 부모교육을 해 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부모교육에 참여한 부모님들은 약 2만5000명이고, 예비부모교육을 받은 청소년들은 499개 학교 13만1973명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구호 단체 굿네이버스와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세계시민교육’ 시리즈 중 세 번째 파트 ‘부모교육’편을 시작합니다. 부모 교육은 오는 12월까지 네 번에 나눠 진행되며,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과 사례에서부터 자녀와 소통하는 법, 청소년들의 예비부모 교육 현장, 전문가들이 알려주는 좋은 부모가 되는 법 등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김태환(17), 용환(12) 형제의 어머니 백선희(44)씨는 ‘눈높이 봉사’를 강조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봉사를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할

‘협력의 씨앗’ 뿌리니 미개의 땅이 변하더라

굿네이버스 스티븐 사무장이 전하는 케냐 개발記 “오랜 기간 잠들어 있던 정부가 깨어났습니다. 주민들에게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기 시작했어요. 사람이 모이고 마음이 모이니 마을에 활기가 넘칩니다.” 소통을 가로막던 빗장이 풀렸다. 마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싹트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굿네이버스 케냐 지부, 메구아라(Meguarra) 지역개발사무장 스티븐 씨(Mr. Stephen Ole Tome)는 “협력이란 이름의 씨앗이 뿌리내린 순간부터 메구아라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며 지난 13년간 보고, 듣고, 느꼈던 생생한 현장 사연들을 한 올 한 올 풀어냈다. 아프리카 동부, 케냐와 탄자니아의 경계에 위치한 메구아라(Meguarra)는 마사이족이 살고 있는 시골 마을이다. 자연과 전통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이 마을엔 약 5000명의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져 유목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집에서 가축을 돌보느라 학교에 가질 않았다. 어린 여자 아이들은 할례 의식을 치른 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남성과 결혼하는 풍습에 따르고 있었다. 열 살 된 여자 아이가 50대 남성과 결혼하는 일이 허다했다. 게다가 마을엔 병원이 없어 주민들은 검증되지 않은 약초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열쇠는 ‘씨앗’이었다. 스티븐씨는 굿네이버스로부터 옥수수, 콩 등을 들여와 메구아라를 농촌으로 가꿔나갔다. 땅을 개간하고 농작물을 재배하면서 마을 주민들은 협력하는 방법을 자연스레 깨달아갔다. “유목 생활을 하면서 타인에 대해 무관심하던 그들입니다. 공동체 의식을 배우자 놀라울 정도로 달라지더군요. 회의가 있는 날엔 한 명도 빠짐없이 마을회관에 모여 지역 발전을 위해 밤새워 토론할 정도니까요.” 지역개발위원회가 조직되자 메구아라 지역 내에 퍼져 있던 다양한 문제들이 차례차례 해결돼갔다. 2000여명의 아이들이 학교를

“쉼터 아이들은 모두 내 딸… 평범한 가정환경 보여주려 일부러 부부싸움도 했죠”

어울림청소년쉽터 김인자 소장 부부 ‘잃어버렸다 찾은 내 딸이라면 포기할 수 있겠나?’ 어울림청소년쉼터 김인자(55) 소장이 쉼터를 시작한 2004년 한 아이를 구제불능이라 판단하고 기대를 접으려 할 때 내면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당시 14세였던 아이는 학교도 다니지 않은 채 정신지체 어머니와 여관에서 살다가 어머니가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하면서 쉼터로 오게 됐다. 미취학 아동만큼의 학업수행력도 없던 아이를 초등학교 6학년에 편입시키고 별도로 개인 지도를 하는 사이 김 소장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됐다. “그런 저 자신도 너무 싫은 거예요. 아이가 나아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데, 그걸 못 했던 거죠. 내 딸이라면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고는 펑펑 울었습니다. 그 이후 쉼터의 모든 아이를 내 딸로 생각하고 안정을 찾고 성장하기까지 인내하고 기다리게 됐습니다.” 서대문구 어울림청소년쉼터는 가정 해체, 폭력, 학대, 방임 등으로 돌아갈 가정이 없는 여자 청소년들이 살고 있는 중장기 쉼터로, 우리나라에 있는 90개 청소년쉼터 중 유일하게 민간 개인 운영 시설이다. 어울림쉼터에 있는 아이들과 근무자들은 모두 쉼터를 ‘집’이라고 부른다. 호칭도 큰엄마, 큰아빠, 딸이다. 아이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쉼터에 가정의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김 소장의 의지와 그를 받아들인 아이들의 마음이 낳은 결과다. 김 소장은 여느 엄마와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미니홈페이지도 이용하고 채팅도 한다. 연락이 잘 되지 않을 때 댓글을 달거나 채팅을 하면 전화를 받지 않던 아이들도

나눔전문가 준비 이렇게 해보세요

◆국제협력팀 최미나 팀장 “나눔 전문가로서 가장 중요한 건 현장의 목소리를 정확히 전달하고 각각의 빈곤 현장에 맞는 개발 전략과 시스템을 구축하는 거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다문화 체험’을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한 가지 방식으로는 빈곤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각 지역의 빈곤문제를 다각도로 해석하고 그에 맞는 개발 계획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 각지의 문화와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열린 마음으로 그들과 소통할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답니다.” ◆홍보제작팀 김이수 PD “빈곤, 재난 상황을 카메라에 담고 구호물자가 들어갈 수 있는 경로와 국제구호단체의 안전까지 파악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학창 시절 여러 가지 경험을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요. 스포츠도 좋고 여행도 좋습니다. 인문학적 지식의 폭도 중요합니다. 특히 주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 세밀한 이야기들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중요합니다. 디지털 카메라든 아이폰이든 상관없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촬영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눔 전문가로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사회개발교육팀 한유정 팀장 “저는 대학생 때부터 소외된 아이들의 교육, 인권을 위해 일하고 싶었습니다. 진로를 일찍 결정하니 어떤 역량을 개발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목표도 뚜렷해졌어요. 꾸준히 자원봉사를 하며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려 했고, 아동복지에 대한 세미나를 찾아다녔습니다. 아동학대문제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아동 복지 매뉴얼을 고민하기도 했고요. 나눔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청소년 시기부터 목표를 세우고 적극적인 자세로 관련 단체를 찾아보고 강의를 듣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나눔사업본부 e-나눔팀 경미화 팀장

“기업·대학의 협력은 더 나은 미래 위한 시대의 과제”

산학협력 재능기부 강연 “강의실에서 얘기를 들어보면 빨리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는 학생이 많아요. 하지만 기회는 얼굴에 기회라고 쓰고 다가오는 게 아니에요. 기회는 평범하게 생겼거든요.” 방송인 이윤석씨의 얘기 한마디 한마디에 청중들은 웃거나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이 대학생인 청중을 향해 이윤석씨는 때론 선배처럼, 때론 선생님처럼 얘기했다. “모든 일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나중에 지나봤을 때 그게 기회라는 걸 알 수 있더라고요. 쉬운 방법이나 빠른 방법이 뭘까 찾는 학생들을 보면 좀 안타까워요. 우리 주위엔 많은 방법이 있어요. 그 방법들을 낭비하지 않고 하나하나 몰입하다 보면 그 안에 기회가 있어요.” 이윤석씨가 오늘의 청년들에게 준 ‘사회생활의 팁’은 “주어지는 모든 미션에 최선을 다하기, 팀워크를 챙기기,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 선택해야 한다면 우선은 잘하는 일을 시작해보기”였다. 보통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가 이상과 꿈에 대한 얘기로 흐르는 데 반해 이윤석씨는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했다. 개그맨으로 살아오고, 공부를 하고, 예술전문학교의 교수로 활동하며 몸으로 체험한 교훈들이었다. “목표가 없이 산다고 기성세대에게 욕을 먹는 청년들도 있잖아요. 하지만 처음부터 목표를 갖고 달려가서 성공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앞에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정표를 만나는 사람도 많아요. 그러니 나에게 꿈과 비전이 없다고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자고요. 그건 평범한 거예요. 대신 자책할 시간에 좀더 노력을 해보자는 거죠.” 웃고 있는 청중을 향해 이윤석씨는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맺었다. “일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홈런타자도 중요하지만 팀에서 일정한 역할을

“새마을운동, 개도국에 전파… 스스로 일어날 의지 심는다”

성하은 제네바 국제협력사무소 대표 “지구촌 빈곤 문제 해결의 키워드는 ‘협력’입니다. 각기 다른 전문성을 가진 단체가 하나로 뭉칠 때 그 힘은 배가 됩니다.” 제한된 재화를 가지고 최대한의 원조효과성을 거두는 것, 전 세계 국제구호 NGO가 가진 공통된 비전일 것이다. 한국 국적의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는 UN과의 협력에서 그 해답을 모색하고 있다. 제네바 국제협력사무소 성하은<사진> 대표가 ‘국제협력’을 강조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성 대표는 UNHCR(유엔인권고등판무관), UNEP(유엔환경계획), UNDP(유엔개발계획) 등 UN 기구가 주최하는 회의에 참석해 새롭게 채택되는 국제조약을 모니터링하는 등 국제 동향을 파악한다. UN NGO 자문회의에 참석해 국제구호 NGO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그는 “이는 굿네이버스가 UN 공인기구로 인정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굿네이버스는 지난 1996년 국내 최초로 UN 경제사회이사회(ECOSOC)로부터 NGO 최상위 지위인 포괄적 협의지위를 부여받았다. 2009년 기준으로 UN에 등록된 3289개의 NGO 중에서 최고 지위를 가지고 있는 단체는 전체의 약 4%(141개)에 불과하다. 굿네이버스와 UN과의 협력이 긴밀해지면서 성 대표의 하루는 더욱 바빠졌다. 굿네이버스가 WFP(세계식량계획)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FFNV(Food-for-New-Village·식량 배분과 지역개발을 결합한 사업형태)의 사업실행 파트너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FFNV는 WFP의 식량 지원 및 안보 강화 사업에 지속가능개발사업 개념을 입힌 것으로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개발도상국에 전파하는 사업이다. 계기는 지난해 11월 개최된 WFP NGO 자문회의였다. “WFP 부사무총장의 초대로 자문회의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그때 한국 정부와 WFP, 굿네이버스의 만남이 이뤄졌어요. 외교부는 WFP와 FFNV 관련 MOU를 체결하면서 ‘한국 NGO가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20년 만에 해외원조 360억원 구호단체로 우뚝

굿네이버스 해외지부장 4인방 무작정 기술 전달보다 현지인 삶 존중하며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 지원금 예산 공개해 주민이 직접 투자 결정 “끊임없는 소통과 헌신본부의 지원과 신뢰 어우러져 가능했던 일” 굶주림 없는 세상,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설립된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가 해외원조를 시작한 지 벌써 20년이 됐다. 1992년 방글라데시를 시작으로 꾸준히 원조 국가를 확대한 굿네이버스는, 2011년 10월 현재 전 세계 25개 사업국에서 전문사회복지와 국제구호개발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한국인에 의해 한국에서 설립된 ‘토종’ NGO가 20년 만에 연간 약 3000만달러(360억원)에 달하는 해외원조가 가능해진 비결은 무엇일까.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빈곤 현장의 긴급구호를 책임지고 있는 4명의 국제본부 및 해외지부장을 만나봤다. 편집자 주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7년 넘게 재난 현장에서 동고동락했기 때문일까. 입을 열 때마다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전역에 걸친 생생한 현장 이야기가 그칠 줄 몰랐다. “에티오피아에서 보낸 4년은 현지인들에게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식사하고, 일하고, 뛰어다니면서 현지인의 특성과 문화를 이해하려 했죠. 해답은 그들 안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단지 거들 뿐이었죠.” 아프리카 권역본부장 장수영씨가 꼽은 굿네이버스의 원동력은 ‘섬김’이었다. 현지인의 삶을 존중하고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하자, 해당 국가와 굿네이버스가 시너지 효과를 내며 함께 성장하기 시작했다. 장 본부장이 에티오피아 땅을 밟은 2003년만 해도 상황은 열악했다. 주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포기한 채, 국제단체들의 지원에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굿네이버스 역시 해외원조에 있어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였다. 해외지원 규모도 작고, 파견

[날아라 희망아] “멋진 수영복 당당하게 입고 싶어요”

“멋진 수영복 당당하게 입고 싶어요” 정신지체 2급 엄마가 네살 때 끓는 주전자 던져… 당장 수술 안 받으면 성장 멈출 위기에 처해 14살 정우(가명)는 매일 밤 똑같은 꿈을 꾼다. 첫 장면은 항상 아빠와 함께다. 햇살에 반짝이는 모래사장 위를 아빠와 함께 걷는다. 멋진 수영복을 입고 푸른 바닷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수영도 한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정우에게는 꿈과 다른 현실이 펼쳐진다. 하반신 전체를 파고든 깊은 화상 자국. 중1 또래 친구들보다 한뼘이나 작은 키. 정우는 ‘꿈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중얼거린다. 정우가 깊은 화상을 입게 된 건 10년 전이다. 2001년 6월, 정신지체 2급인 엄마는 당시 4살이던 정우에게 펄펄 끓는 주전자를 던졌다. 뜨겁게 달궈진 주전자는 정우의 허벅지 위로 떨어졌고, 끓는 물이 하반신 전체를 덮었다. 병원에 입원했지만 화상 치료는 마취도 할 수 없는 탓에, 4살 아이는 치료 때마다 정신을 잃었다. 병원 생활보다 더 끔찍했던 것은 엄마의 존재였다. 엄마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들의 양팔과 한쪽 다리를 부러뜨렸다. 대퇴골(허벅지 속에 있는 뼈) 분쇄골절이었다. 어린이 성장에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는 대퇴골이 부러지고 화상 자국이 갑옷처럼 피부를 조이면서 아이는 키가 더디 자라기 시작했다. 아이의 뼈가 부러지는 사건 이후로 엄마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아빠 역시 정신지체 2급 장애인으로, 아이를 홀로 키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우는 사고 이후 10년 동안 천안의 한 육아원에서 살고 있다. 간호조무사 선생님과 원장님의 따뜻한 도움으로 차츰 웃음을 찾아갔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정서불안

STOP HUNGER 후원자주부 김주연씨

“받는 것보다 주는 기쁨, 이제야 깨달았죠” 봉사 앞장선 아버지 영향 3년간 1000만원 모아 캠페인에 기부하게 돼 “액수가 크고 작은 건 중요하지 않아요 돕고 싶다는 마음 생겼을 때 바로 실천” 더 알뜰해지고 더 따뜻해졌다. 나누는 기쁨을 알게 된 평범한 5년 차 주부 김주연(30)씨 가정의 이야기다. 얼마 전 주연씨 가족은 지난 3년간 모아 온 1000만원을 ‘STOP HUNGER(굶주림은 그만)’ 캠페인에 기부했다. ‘STOP HUNGER’는 국제 구호단체 기아대책과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소망화장품이 ‘절대빈곤과 기아 퇴치’를 위해, 10월 31일까지 벌이는 식량 지원 캠페인을 말한다. 넉넉한 형편이 아님에도 선뜻 나눔에 동참하게 된 계기를 묻자 주연씨는 “오래전부터 나보다 더 어려운 지구촌 이웃을 돕고 싶었다”며 웃음을 보인다. “저희 네 식구 외에도 아버님, 어머님, 동서 내외가 함께 뜻을 모았습니다. 미리 금액을 정해두진 않았어요. ‘평소 절약해 모인 금액을 언젠가 뜻깊은 일에 쓰자’는 약속을 해왔거든요. 마침 1000만원이 모아졌을 때 ‘STOP HUNGER’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실 주연씨 가족의 나눔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주연씨는 첫째 딸 해린(5)이가 태어난 지 1년째 되던 날, 돌잡이 비용 100만 원을 기아대책에 기부했다. 이는 아프리카 한 아동의 수술비로 쓰였다. 해린이의 생애 첫 번째 선물에 감동한 기아대책은 이를 모델로 ‘난생처음’ 후원 사업을 시작했고, 그 후로 많은 부모들이 첫 생일을 맞은 아이의 이름으로 ‘난생처음’ 기부에 동참하고 있다. 주연씨는 “뜻깊은 나눔을 경험했기 때문인지 해린이가 클수록 마음이 더 예뻐지는 것 같다”며

내가 할 수 있는 봉사활동… 직접 현장 방문하면 알 수 있어요

복지기관 투어프로그램 “봉사를 해보고 싶다거나 장애인을 이해하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요즘 많아졌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이런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봉사활동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조금씩 떠오르네요.” 정주현씨는 27년차 선생님이다. 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상담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있다. 상담을 하다 보니 마음이 힘든 학생들을 많이 만났다. 주현씨는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통해 삶을 더 적극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봉사활동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실제 봉사가 필요한 현장은 어떤지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다. 그런 주현씨에게 지난 21일에 진행된 밀알복지재단의 국내사업장 투어프로그램은 현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투어프로그램은 ‘장애인의 생애주기에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알아볼 수 있도록 운영되었다. 장애유아와 비장애유아 103명이 통합교육을 받고 있는 목련어린이집과 유치부, 초등부, 중학부, 고등부, 전공과에 195명의 장애학생이 다니고 있는 밀알학교에서는 장애학생의 자립과 기초적인 생활능력 향상, 특기 발견을 위한 교육이 진행되는 현장을 볼 수 있었다. 강남구의 직업재활센터에서는 장애인들이 자립을 위해 제작하고 판매하는 비누 작업장, 제빵 작업장을 돌아본 후 천연비누를 같이 만들어 보는 봉사활동을 통해 직업재활에 대해 이해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특히 참가자들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소매유통과 장애인직업재활을 결합한 ‘굿윌스토어’였다. 기업이나 개인으로부터 중고품을 기증받아, 이를 장애인이 분류하고 수선하는 등의 상품화 작업을 거쳐 매장에서 판매한다. 기증을 통해 나눔의 문화를 형성하고 중고품 재활용으로 환경을 보호하고 장애인 고용과 교육을 통해 장애인 재활에 기여하는

그들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하게 하라

영국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을 배우다 장애인실태조사(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19.2%의 장애인만이 문화생활에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장애인 문화활동 실태 및 욕구조사(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도 문화 및 여가 활용 내용의 76%가 TV시청이었으며, 문화예술교육 경험률은 2.3%에 불과했다. 장애인의 문화예술 접근성과 질적 내용은 여전히 낮은 상태다. 이에 예술이 가져올 수 있는 사회 변화에 주목하며 문화예술 교육을 발달시켜 온 영국의 장애인 문화예술 교육 단체를 방문해 우리의 현재와 비교해 보았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지적 장애인 특화 단체인 맨캡은 직접 운영하고 있는 대학에 예술학과를 가지고 있으며 예술 교육을 위한 산하 단체인 아트 스파이더를 통해 장애인 청소년 대상 랩, 펑크록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대상과 장르를 세분화해 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아트 스파이더의 런던 지부 매니저 거스 가사이드씨는 “보조자가 추측하거나 대신 결정하지 않고 지적 장애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주체적으로 결정해 실행에 옮기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3년간 예술 교육 활동을 함께한 테이트 리버풀이 프로젝트 후에도 젊은 지적 장애인의 고용을 통해 프로그램을 지속하도록 한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바를 보여주는 사례다”라며 주류 기관, 단체, 예술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전문적인 교육을 제공하고, 참여를 넘어 사회 활동까지의 연결을 강조했다. 내년에 30주년을 맞는 브라이튼 지역에 위치한 카로셀은 신체·시각·청각 장애인을 도와주거나 복합 장애인을 보조하는 역할로 출발했으나 현재는 지적 장애인들이 주축이 되어 이끌어가는 단체로 변화하고 있다고 했다. 이 단체 마크 리처드슨씨 또한 교육 과정에서 장애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창의적이고

[날아라 희망아] “의사 돼서 아빠 병 고쳐줄 거예요”

식물인간 아버지와 함께 사는 12살 소년 재훈이 2007년 12월 18일. 당시 8살 소년 재훈(가명)이에게 잊지 못할 사건이 발생했다. 건강했던 아빠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뇌병변 1급 장애 판정을 받게 된 것. 평소 재훈이를 끔찍이 아꼈던 아빠는 병원에 누워 꼼짝할 수 없는 ‘식물인간’이 됐다. 심장마비로 뇌에 오랫동안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결국 뇌병변 1급 장애 판정을 받게 된 것이다. 그날 이후 재훈이네 가족의 시간은 아빠와 함께 멈춰버렸다. 재훈이네 가족은 엄마 없이 아빠, 할머니 이렇게 두 명뿐이다. 엄마는 이혼 후 연락이 끊겼고, 재훈이는 아빠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비록 엄마의 빈자리가 있긴 했지만, 세 식구는 서로 의지하며 오순도순 지내왔다. 그러나 아빠의 심장 마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갑작스러운 그날의 사고로 할머니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아빠의 병간호에 매달리게 됐고, 정부보조금은 아빠의 병원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정부보조금이 유일한 수입원인데, 아빠의 요양병원 입원비로 매달 지출되는 90만원을 빼면, 세 끼를 제대로 챙겨 먹을 여유도 없다. 운동을 좋아하는 재훈이는 검도학원을 다니고 싶지만, 학원비는 꿈도 꿀 수 없게 됐다. 동사무소에서 연결해 준 아파트 지하 방이 재훈이와 할머니를 지켜줄 유일한 보금자리다. 할머니는 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거의 매일 병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부모의 손길이 한창 필요한 나이의 손자와 병원에 누워있는 아들을 돌봐야 하는 재훈이 할머니의 어깨는 늘 무겁다. 할머니는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부모가 못다 준 사랑을 재훈이에게 주겠다”고 오늘도 다짐한다.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