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미 포포포 대표
[기차에서 일합니다] 로컬 브랜딩의 그늘

“플레이어가 없다.” 지역에서 무언가를 시작할 때 입 모아 얘기하는 것은 인프라의 부족이다. 일할 사람과 자원을 연계할 구심점을 찾아 헤매는 사이 기획 부동산은 빠른 속도로 ‘0리단길’을 만들어 원주민을 밀어낸다. 팬시한 카페가 늘어선 관광지는 본연의 매력 대신 도시의 위용을 닮아간다. 자연스레 원도심의 할렘화에도 가속도가 붙는다. 지역의 국립대학과 강소대학도 베드타운으로 기능하기는 마찬가지. 이쯤 되면 외지인에 대한 경계와 텃세가 십분 이해된다. 물론 지역에 정착하기까지 인식의 차이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한번은 사회적기업 피칭 현장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 장애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이 아이들이 커서 자립할 수 있는 ‘카리타스 작업장’을 만들겠다는 목표에 자식 앞세워 장사한다는 심사평이 오갔다. 건설적인 비판이라 포장할 수 없는 지역의 단면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로컬이 미래다, 경쟁력이다’라는 슬로건이 유행하고, 지자체의 로컬크리에이터를 양성하는 사업이 성행 중이다. 지역의 가능성을 조명하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 다만 수십에서 수백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배정된다 한들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사업을 맡을 인력이 없어 국고로 돌려보내는 일을 왕왕 목격한다. 예산을 사수하기 위해 대게는 외부의 전문인력을 공수하는 것으로 결론이 좁혀진다. 허나 잠시 머물며 로컬을 맛보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새롭고 낯선 시도를 향해 쏟아지는 관심은 벚꽃비 내리는 봄날처럼 찰나에 불과하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명확한 관점과 의지만이 기나긴 겨울을 나는 불쏘시개가 된다. “우리가 살아갈 미래는 우리가 개척해야죠!” 이찬슬 스픽스 대표는 가장 작고 소외된 곳을 찾아 목포역에서 1시간 떨어진 섬마을 안좌도로 들어갔다. 그의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공급망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RE100은 재생에너지로만 전력을 조달하겠다는 기업들의 글로벌 이니셔티브다. 자발적 운동이며 캠페인이다. 재생에너지로만 전력을 쓰도록 강제하는 법률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등이 가입했다. 재생에너지 비율이 낮고 가격이 비싼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왜 RE100에 가입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글로벌 공급망의 거센 요구 때문이다. 2020년 7월 애플은 ‘2030년까지 10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놀라운 것은 자체 비즈니스뿐 아니라 공급망과 제품 생애주기 전반에서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협력업체에 RE100 달성을 강력히 요구했다. 애플의 CEO 팀 쿡은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 연못 안의 물결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원료 채취부터 폐기까지 제품의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환경적인 영향을 따지는 세상이 됐다. 전 생애주기 평가(Life Cycle Assessments)와 제품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을 추적하는 것이다. RE100은 재생에너지의 수요를 만들어 에너지 시장과 산업을 바꾸고, 국가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급망을 통한 변화는 환경문제만이 아니다. 우리가 먹는 초콜릿에 아동의 눈물이 담겨 있다면? 2021년 미국 워싱턴DC 법원에는 코코아 농장의 아동노동 소송이 제기됐다. 원고는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노동자들, 피고는 네슬레, 허쉬, 카길 등 식품회사들이었다. 원고들은 16세 이전부터 코코아 농장에 끌려가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했는데, 피고들이 자신의 공급망이며 영향력이 지배적인 이들 농장에서 일어난 아동착취를 묵인하고 이득을 취했다고 주장했다. 2022년 6월 법원은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피고 회사와 그들이 일한 농장 사이에 ‘추적 가능한 연결’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네슬레는 소송이 진행되는 2022년 1월, 코코아 농장의 아동노동을 없애기 위한 획기적인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모금하는 사람들] 기부금 경제 개혁, 아직 갈 길이 멀다

2010년대 중후반 공익에 대한 사회 믿음을 깨뜨리는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했다.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 특혜, 새희망씨앗과 어금니아빠 사건 등 공익 모금으로 포장된 사기 행각들은 공익활동의 순수성을 훼손하기에 충분했다. 때마침 공인회계사들의 회계 투명성 문제 제기는 공익법인 관리·감독 기준 강화에 명분이 됐다. 몇 년간 기획재정부는 공익법인 회계기준을 만들고 기부금 관리기준을 통일시키면서 공익 분야에 회계 투명성을 요구했다. 이에 단체들은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도 경각심을 가지고 호응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 회계 투명성과는 별도로 기부금 모금에도 의혹이 불거졌다. 이번에는 국회에서 행정안전부 소관인 기부금품법 개정을 통해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행법이 기부금 투명성을 규율하기에 충분치 않아 규제를 높이자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매우 타당하게 들린다. 그렇지만 모금을 해본 이들은 이런 접근이 시대착오적이며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다. 우물가서 숭늉 찾는 격이라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모금은 숫자를 다루는 회계와는 달리 ‘다양하고 복합적인 현장 상황을 수반하는 활동’이라서 하나의 잣대로 옳고 그름을 판별하기 어렵다. 오늘의 비영리 활동은 그 옛날 가난했던 나라에서 먹고 사는 일을 염려하던 시절의 모습과 다르다. 활동 분야와 내용, 종사자 인구, 그리고 파급효과는 엄청나게 확장했다. 국가 경제에서 공익재정의 비중도 상당해졌고, 지역사회의 조직화된 활동 주체이자 정부와 기업의 파트너로서 날로 전문화되고 있다. 이 모든 활동을 뒷받침하는 기부금 모금은 기업들의 마케팅 활동과도 유사한 것이라서 ‘속임수’가 아니라면 거의 모든 활동이 다 활용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면 활동과 전화, TV나 라디오, 신문과 매거진,

김정빈 수퍼빈 대표
[쓰레기공장 이야기] 재활용 사업에도 디지털 첨단기술을 허하라

2023년 5월 25일. 대한민국은 누리호 3차 발사에 성공하면서 우주강국 G7에 합류했음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리고 전기차로 유명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대표는 자율주행 시대를 눈앞에 뒀다고 공언합니다. 또 우리는 스마트폰이라는 디지털 장비 하나로 건강, 통신, 음악, 영상, 금융서비스와 쇼핑까지 해결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종종 폐지를 줍는 할머니, 공병을 모으러 다니시는 할아버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들은 작은 카트나 손수레를 끌며 직접 재활용품을 수집합니다. 또한 우리도 가정에서도 분리배출에 정성을 다합니다. 도시 곳곳에는 고물상이 있고 그곳에는 다양한 형태의 고철, 책이나 종이박스 등 폐지, 망가진 전자제품, 사용하지 않는 화분 등 우리 생활에서 나온 수많은 폐기물이 쌓여 있습니다. 좀 더 재활용품을 따라서 들어가 보면 재활용선별장이라는 곳도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많은 사람이 선별라인에서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재활용품 더미 안에서 진짜 재활용될 것을 손으로 골라냅니다. 하지만 이렇게 모인 재활용품들이 결국 기대하는 것처럼 유용하게 재활용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재활용이 잘 되려면 결국 재활용품을 활용한 제품으로 시장에서 돈벌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갖고 있어야 하며, 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데 사용하고 싶은 재활용품을 수급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계를 산업의 공급망이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의 문명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선형경제에서 순환경제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재활용의 가장 큰 변화는 “재활용이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의외로 잘 모르는 지속가능성에 대해

“OO기업은 ESG 지향점을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OO기업은 사업 분야의 글로벌 리더를 넘어 어떠한 위기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글로벌 톱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ESG 경영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위 두 문장은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어느 기업의 지속가능경영과 ESG(환경적, 사회적, 거버넌스) 경영의 방향성을 설명하고 있는 표현이다. 지속가능경영을 설명하는 문장에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라는 설명이, ESG 경영의 목표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는’이라는 문장이 포함돼 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다는 것과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인가? 최근 ESG가 유행하면서 이처럼 지속가능성, 지속가능경영이라는 단어도 자주 접할 수 있게 됐다. 기업들은 ESG 경영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추구한다는 홍보를 하고 있고, 시민사회에서도 지속가능한 생활을 위해 다양한 ESG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면 지속가능성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이야기하는 지속가능성은 도대체 무엇의 지속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는 매우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이지만 대부분 큰 고민 없이, 구분 없이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기업의 산업활동 및 인간의 생활활동을 통해 발생시킨 물질은 대기, 물, 토양 등을 오염시켜 왔다. 공장 등 제조시설에서 배출되는 화학물질과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 폐기물의 불법적인 처리 등은 환경을 심각하게 오염시켰고, 무분별한 인류의 소비 패턴은 물, 식량, 자연자원 등 여러 분야에서 지속가능한 자원이용에 대한 제한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기후변화는 지구상의 자연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며, 인류의 생존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또한 양극화, 차별, 안전문제, 사회적 불평등은 공정한 경제와 정치적 시스템을 방해하고 지속가능한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식량안보 정글’을 헤쳐 나갈 내비게이션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가는 걸 ‘독도법’이라 한다. 독도법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자신의 위치를 찾는 것이다. 나침반으로 방향을 확인하고 지도의 등고선과 지형지물과 대조해 현재 위치를 특정한다. 그 이후는 쉽다. 지도를 따라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현실 세계에서도 독도법의 원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만약 농업의 미래가 궁금하면 먼저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떤지 알 필요가 있다. 이때 사용되는 방법이 ‘벤치마크’다. 벤치마크는 기업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다른 회사나 업계의 우수사례를 참고하는 경영 기법을 일컫는다. 물론 기업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농업 분야에서는 시범농장, 선진지 견학, 해외연수 등이 벤치마크 목적으로 활용된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벤치마크는 선진국의 사례를 국내에 재현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된다. 농업 분야에서도 정책과 제도, 기술과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외국의 사례를 국내에 적용해 우수한 성과를 거뒀다. 학계에서는 이를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이라고 명명했다. 벤치마크를 활용한 빠른 추격자 전략은 우리가 따라 할 대상이 있는 한 유효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 앞에서 길을 만들어 주던 대상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우리만의 지도가 필요한 때가 도래했다. 해외 사례가 국내에 적용될 때는 필연적으로 부작용도 발생한다.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도외시한 정책과 제도가 다른 나라에서 같은 효과를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외국의 성공 사례는 타국에 이식돼 후유증만 남길 수 있다. 벤치마크를 통해 독일에서 농민이 되기 위해서는 농업직업학교를 졸업한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기업의 공급망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2010년 네슬레는 오랑우탄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그린피스가 네슬레 광고를 패러디한 영상을 공개하면서다. 영상에는 어느 회사원이 네슬레 초콜릿을 꺼내 먹는데 다름 아닌 오랑우탄 손가락이었다. 그린피스는 네슬레의 초콜릿 원료인 팜유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오랑우탄 서식지인 열대우림이 파괴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네슬레는 억울했다. 네슬레와 팜유 공급계약을 체결한 회사도 아니고 공급망의 말단 농장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네슬레는 먼저 해당 동영상의 삭제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청구는 받아들여졌지만 영상은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사게 되고 여론은 더 나빠졌다. 기업은 공급망의 환경파괴나 인권침해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할까? 1차 협력사가 아닌 말단의 공급망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할까? 법률상으로 보면 네슬레는 아무런 책임이 없었다. 스스로 한 행위도 아니고, 아무런 계약관계도 없는 농장의 산림 벌채를 교사하거나 방조한 바 없었다. 직접 계약관계가 없는 말단 공급망의 불법행위에 대해 연대책임을 묻는 법률도 없었다. 그러나 네슬레에 대한 시민사회 및 소비자들의 비난은 거셌다. 결국 네슬레는 해당 업체와의 거래를 중단하고, 10년 안에 산림 벌채가 없는 공급망을 만들며, 2015년까지 100% 지속가능한 팜유를 사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지속가능한 팜유란 생산과정에서 환경 파괴와 인권 침해가 없는 팜유를 말한다. 네슬레는 ‘법적 책임’은 없지만 ‘사회적 책임’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공급망의 첫 단계부터 상품이 생산돼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전체 사슬에서 기업의 책임은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기업의 공급망 관리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책임은 시장과 사회가 책임을 묻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외면하고, 투자자들이 투자를 하려 들지

정유미 포포포 대표
[기차에서 일합니다] 유괴 미수 사건의 전말

“선생님! 오늘 은성이(가명)가 유괴될 뻔해서 경찰서에 다녀오는 길이에요!” 부재중 통화를 이제 발견했다는 A선생님의 목소리는 격양돼 있었다. 유괴라니. 9시 뉴스에 등장할 법한 일이었다. A선생님이 부리나케 경찰서에 달려갔을 때 은성이는 잔뜩 겁을 집어먹은 채 떨고 있었다. 꼬치꼬치 상황을 캐묻는 어른들 앞에서 아이의 진술은 조금씩 흔들렸다. 혼비백산한 아빠를 대신해 A선생님은 경찰과 인근의 CCTV를 확보하러 나섰다.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돌봄센터에 간다던 아이는 방향을 틀어 놀이터에서 홀로 놀고 있었다. 낯선 사람이 다가와 처음에는 말로 그다음에는 완력으로 아이를 끌고 가려는 시도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날의 일은 단순 유괴 미수 사건이 아니었다. 전지적 시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지역의 결혼이주여성들과 그림책을 만드는 ‘그림과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을 두고 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엄마들의 사연을 처음 접하게 됐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타국에서 가정 폭력, 향수병 등 여러 상황에 노출된 여성들이 도움의 손길을 청할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고민 끝에 본국에 홀로 돌아가는 그 발걸음이 가벼웠을 리 없다. 그렇게 남겨진 아이들과 양육을 떠맡게 된 아빠는 이중고에 처했다. 생계에 쫓겨, 정보의 부재로 어쩔 수 없이 방임된 아동의 숫자는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돌봄센터나 보육 지원 정책을 알게 된다면 그나마 운이 좋은 케이스. 제도권 안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찾을 여력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정보 접근성의 허들을 넘었다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은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결정되는데 단 몇백원 차이로 은성이네는

전혜경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대표
[사회혁신발언대] 어린이날, 난민 아동의 보호 받을 권리를 생각한다

해마다 어린이날이 되면, 한껏 부푼 마음과 기대에 찬 눈망울로 사랑하는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아이가 어린이날의 들뜬 분위기를 온전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아동복지법 6조에 따르면, 어린이날은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보호의 정신을 높임으로써 이들을 옳고 아름답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나도록 하기 위해’ 제정됐다고 한다. 어린이들이 ‘보호’를 받고, 나아가 삶의 여러 가지 권리를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하는 데에는 ‘출생신고’가 필수적이자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어린이들에게 출생신고가 중요한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출생이 등록되지 않을 경우 교육, 노동, 의료 서비스, 이동 등 삶의 다양한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고, 무국적자가 될 위험에 더욱 많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7조 제2항은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하며, 출생 시부터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출생신고’가 당연하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 난민의 자녀들이 그러하다. 현재 대한민국 내 외국인 자녀의 출생신고는 출신국 대사관을 통해서만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본국에서 박해를 당할 위험이 있어 우리나라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그들이 출신국 대사관에 찾아가는 것은 여의치 않다. 비단 이런 경우뿐만 아니라, 본국의 출생등록 관련 법 제도상의 문제나 대한민국 내 체류 자격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본국 대사관에서 출생 등록이 거부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출생신고는 국가가 아동의 존재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
[혁신의 목격자] 당신의 게임은 무엇인가요?

‘대표나 창업가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요?’ 이제 60명 넘어가는 조직을 이끄는 시점에서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이렇게 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건 마치 비유적으로 전쟁에 참여했지만, 끝날 기미가 없는 전쟁을 해가면서도 또 개인의 삶은 그대로 지속하는 이중성 아닐까요?’ 금방 끝나는 해프닝이라고 간주했던 어떤 전투. 사람들은 그 해가 끝나기 전 크리스마스 이전에 복귀할 것이라며 출전하는 군인들을 환송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역사가들이 이름을 붙이기까지 누구도 이 게임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1914년 7월 28일, ‘제1차 세계대전’이라 사후에 명명된 전쟁의 시작은 이러했다. 1918년 종전이 되기까지 이어진 1460일 동안의 참호전쟁에서 군인들은 휴가를 쓰고 집에 다녀 왔고 다시 전쟁에 참여하기를 지속했다. 전쟁과 일상이 공존했다. 창업한 날, 새로운 혁신을 시작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날도 이와 비슷한 시작일 것이다. 세계적인 경영사상가 사이먼 시넥은 비즈니스와 혁신 생태계 관점에서 이를 ‘무한게임’(The Infinite Game)이라고 설명한다. 저서 ‘인피니티게임’에서 그는 비즈니스를 “승패가 갈리는 운동 경기,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게임을 해나가는 여정 그 자체가 게임”이라고 정의한다. 한두 번의 승리나 성공은 의미가 없다. 전쟁이 계속되더라도 일상을 꾸리고 계속 게임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무한게임’이다. “게임에 명확한 종료 지점이 없어서 사실상 ‘이긴다’는 개념도 없다. 무한게임의 주목적은 게임을 계속해 나가며 그 게임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다.” 지금은 유럽에서 사회혁신을 가르치는 교수님이 오래전 ‘소셜섹터에 참여하는 종사자들의 유입 유형’을 바탕으로 박사논문을 썼다. 나 역시 인터뷰에 참여했는데,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다고

신수정 KT엔터프라이즈 부문장
[완벽한 리더 삽니다] 완벽한 스타일이란 없다

한 임원이 있다. 스타일이 솔직하고 진취적이었다. 새롭게 조직을 맡은 후 리더십 평가와 다면평가를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면평가 점수가 높지 않았고 성향이 너무 주도적이니 보완하라는 권고가 있었다. 나와의 1대1 미팅 시 고민을 털어놓으며 지금까지 이런 스타일을 바꿔보려고 노력했는데 잘 안되어 힘들다고 했다. 나는 답변했다. “괜찮은데요. 굳이 스타일을 바꿀 필요가 있을까요?” 그는 놀라서 “제 스타일이 너무 진취적이라 직원들이 힘들어하는데 제 스타일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나는 답했다. “괜찮아요. 그것이 본인의 강점인데요. 만일 상무님이 진취적인 것이 잘못됐다고 소극적으로 행동하면 어떻게 될까요? 본인이 가지고 있던 추진력이나 혁신 능력이 다 사라지지 않겠어요?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리더가 될겁니다. 단지, 자신이 이런 스타일이고 그러기에 본의 아니게 구성원들을 힘들게 할 수도 있고 필요한 부분은 피드백 해달라고 구성원들과 진솔하게 소통하시죠. 그리고 상무님과 달리 적극적이 아닌 다른 구성원의 스타일 또한 잘못된 것이 아님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예전에는 한 금융기관의 행장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소탈하고 친화력이 있는 분이었다. 이분이 행장이 되자 주위 참모들은 이런 제안했다고 한다. “이제 행장님이 되셨으니 진중한 모습을 보이시는 게 어떨까요.” 행장은 한두주간 그렇게 하셨단다. 조용히 말하고 무게도 잡고 말수도 줄였다. 그러자 주위 임직원들이 “행장님 어디 아픈 거 아냐?” “심기가 불편하신 거 아냐?” “부인이랑 싸우신 거 아냐?” 등으로 뒷담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에 다시 원 상태로 돌아오니 다들 편해했단다. 많은 분이 리더십 책을 읽고 강연을 들으면서 자신의 스타일이

양경준 크립톤 대표
[로컬 패러다임] 로컬은 취향의 대상이 아니다

‘패러다임(paradigm)’은 패턴, 예시, 표본 등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파라데이그마(παράδειγμα)에서 유래한 말로 ‘한 시대의 보편적인 사고의 틀(frame)’을 뜻한다. 우리말로는 시대정신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과학사학자이자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Thomas S. Kuhn)이 1962년 자신의 책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에서 처음 사용했는데 그는 이 책에서 과학의 발전은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에 의해 혁명적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이후 보통명사화 되면서 상황이나 생각이 혁명적으로 바뀌는 상황을 뜻하는 표현이 됐다. 패러다임 시프트를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예로 천동설과 지동설을 들 수 있다. 지금이야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16세기 이전에 우리가 살았다면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지동설과 마찬가지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패러다임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강력한 것은 아마도 산업혁명일 것이다. 과학혁명이 산업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적용되면서 구축된 산업혁명 패러다임의 가장 큰 특징은 ‘대량생산 대량소비’다. 1760년대 기계의 발명으로부터 촉발된 산업혁명은 짧은 시간 안에 인류를 규정해 버렸는데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하려면, 다시 말해 대량생산 기계를 작동하려면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이는 농촌의 노동력을 빨아들이면서 도시화를 가속했다. 엄마 아빠를 모두 공장에 뺏긴 아이들을 관리(탁아)해야 했기 때문에 공장 시스템과 똑같은 형태의 공교육이 등장했다.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에 등교하고, 정해진 시간 동안 공부하고, 정해진 시간에 쉬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하교했다. 대량으로 생산해 대량으로 소비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