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나미 책꽂이] ‘백래시 정치’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제2의 불확실성의 시대’

백래시 정치 제20대 대선을 전후로 한국 선거판에 새로운 프레임이 등장했다. ‘이대남’ ‘여성가족부 폐지론’ 등으로 유권자를 집결시키는 안티페미니즘(Antifeminism) 프레임이다. 과거에도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반발은 존재했지만, 저자는 정치세력과 결합한 ‘백래시(backlash)’에 주목한다. 백래시는 민주주의 성장이나 진보적 물결에 대한 반동을 총칭하는 단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주로 여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집단적 공격을 일컫는다. 백래시는 안티페미니즘 분석을 위한 주요 개념이지만, 상대적으로 이론적 깊이가 부족하며 현상을 발견하고 기술하는 도구에 머무른다는 평가도 받는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백래시를 새로 정의했다. 1999년 군복무 가산점제 위헌결정부터 오늘날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 이르기까지 안티페미니스트 백래시의 굵직한 역사를 설명한다. 그러면서 백래시의 정확한 개념과 양상, 대응 방법 등을 체계적으로 톺는다. 신경아 지음, 동녘, 1만6000원, 272쪽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혐오와 차별의 시대, 모두 ‘공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문제는 남발되는 공감이다. 고통에 공감한다는 말을 건네는 이조차 진심이 담긴 심심한 위로인지, 공감을 가장한 말뿐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고통을 불행으로 인식하는 관점으로는 공감이 동정이나 시혜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저자는 상실과 결여, 고통이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이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는 농인(聾人) 부모에게 태어난 비청각장애 아동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사람들은 종종 그에게 ‘공감’이라는 말로 연민했다. 부모의 장애를 안타깝게 보는 시선이 자신을 훑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논픽션 작품을 집어들었다. 책 너머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고통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가치를 깨달았다. 저자는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더나미 책꽂이] ‘그대의 마음에 닿았습니다’ ‘기적의 도시 메데진’ ‘공익을 위한 데이터’

그대의 마음에 닿았습니다 정신과 의사 아홉 명의 성장 이야기. 의사들의 얘기라고 해서 성공적인 대수술, 새로운 치료법 개발 등을 기대했다면, 이 책은 당신의 예상을 빗나갈 것이다. 이들은 섣불리 자신을 ‘치료자’라 칭하지 않는다. ‘얼마나 잘 치료했는지’가 아닌 ‘얼마나 함께 견뎌주었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들의 진료실은 트라우마를 겪는 중증외상환자, 술·마약 중독자, 자살 충동자들이 찾는다. 의학 지식에만 의존해 환자 유형을 A, B, C로 구분하고, 형식적인 진료를 보는 건 올바른 처방이 될 수 없다. 환자의 얘기를 듣고, 아픔에 공감하고, 마음을 보듬어야 한다. 전지전능한 의사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살가운 친구 같은 모습이다. 다정한 아홉 명의 의사들은 진료실, 재난 현장에서 만난 환자들과 겪은 얘기를 담담하게 건넨다. 그러면서 환자를 통해 오히려 자신들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들의 얘기는 마음 한 켠에 따뜻한 울림을 준다. 김은영·정찬승 외 7명 지음, 플로어웍스, 1만8000원, 252쪽 기적의 도시 메데진 콜롬비아 제2의 도시 ‘메데진(Medellín)’은 서울과 뉴욕의 롤모델, 이른바 ‘셀럽시티’라 불린다. 비즈니스 혁신센터 루나 에네(RUTA N)를 비롯한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도서관·교육기관과 융합된 아름다운 생활형 공원들은 도시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빈곤 계층의 주거지이자 산 중턱에 위치해 도심으로의 이동이 원천 차단된 산하비에르 지역에는 384m짜리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소외 지역 거주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에스컬레이터는 현재 메데진의 랜드마크로 손꼽히며 해마다 수십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메데진이 셀럽시티로 자리매김한 건 혁신적인 도시재생 프로젝트 때문이다. 불과

[더나미 책꽂이] ‘이토록 다정한 기술’ ‘인류세에서 죽음을 배우다’ ‘안녕, 열여덟 어른’

이토록 다정한 기술 싱가포르에서는 교통약자들이 보행자 신호등의 초록불 점등 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정부에서 노인과 장애인에게 지급하는 ‘그린 맨 플러스’라는 카드 덕분이다.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신호등에 붙어 있는 단말기에 카드를 갖다 대면 횡단보도 길이에 따라 짧게는 3초, 길게는 13초까지 보행 시간이 늘어난다. ‘걸음이 불편한 이웃들이 마음 놓고 횡단보도를 건널 수는 없을까?’란 물음에서 출발한 작은 아이디어다. 때로는 소소한 고민이, 이웃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혁신을 만들어낸다. 형편껏 돈을 내는 식당 ‘문턱없는밥집’, 시각장애인을 위해 깨알로 점자를 새긴 ‘윔피 버거’…. 소외된 이웃들을 일상의 범주로 끌어들이는 아이디어가 결국 세상을 빛낸다. 이 책은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빚어낸 아이디어 90여 가지를 소개한다. 소개된 아이디어를 보다 생생하게 접할 수 있도록 동영상이나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QR 코드도 같이 실렸다. 변택주 지음, 김영사, 1만6800원, 272쪽 인류세에서 죽음을 배우다 46억년 지구 역사에 새로운 지질시대가 도래했다. 네덜란드 화학자 파울 크뤼천은 이를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라고 정의한다. 인간의 활동이 기후·자연생태계에 뚜렷한 변화를 가져왔고, 그 흔적이 지각에 고스란히 남아 지질시대가 바뀌어야 할 정도라는 뜻이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상기후 현상은 인류세 도래가 머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영국은 지난해 사상 최고 기온인 41도를 기록했고, 파키스탄에서는 홍수로 1486명이 사망했다. 이제 우리는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안다. 과학적 분석에 철학적 사고를 곁들여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저자는 인간과 문명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다루면서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로이 스크랜턴 지음, 안규남 옮김,

[더나미 책꽂이] ‘날씨 통제사’ ‘유류품 이야기’ ‘미래가 있던 자리’

날씨 통제사 ‘기후위기와 인류의 미래’를 SF 미스터리 장르로 풀어낸 소설집. 엉망이 된 기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날씨 통제사의 이야기인 ‘벙커가 없는 자들’, 태평양에 실재하는 쓰레기 섬을 시체 섬으로 비틀어 표현한 ‘그레이트 퍼시픽 데드 바디 패치’,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던 인류가 파멸한 이후의 세계를 다룬 ‘비지터’ 등 저자 특유의 재치와 필력이 흥미진진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이번 소설집에는 이주노동자, 퀴어 등 소수자의 이야기를 섬세한 감성으로 표현한 작품들도 함께 수록돼 있다. 총 8편의 단편은 독자를 각기 다른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일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기묘한 세계를 경험한 독자들은 이윽고 섬뜩한 사실을 하나 알게 된다. 이 이야기는 작가가 그려 낸 그저 허구의 세계가 아닌,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었음을. 최정화 지음, 창비교육, 1만5000원, 252쪽 유류품 이야기 가방 123개, 옷 258벌, 신발 256켤레…. 10·29 참사 유실물센터에는 현장의 얼룩이 그대로 묻은 물건들이 늘어져 있다. 당시의 급박한 상황이라도 보여주듯 유실물은 검게 때가 타고 찌그러졌다. 검은 얼룩으로 물든 건 유실물뿐만이 아니다. 대형 참사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남긴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지는 것 같지만, 이 또한 결국 아픔을 덮은 채 살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충격적인 사태가 발생한 후의 시간은 어떻게 흘려보내야 할까?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선행돼야 할까? 저자는 재난 이후, 회복의 과정을 얘기한다. 그는 미국 9·11테러, 아이티 대지진 등 인류를 충격에 빠뜨린 대형 참사 현장에 늘 있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현장에서 실종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유해를 가족의

[더나미 책꽂이] ‘플래닛 B는 없다’ ‘키워드로 읽는 불평등사회’ ‘돌봄과 인권’

플래닛 B는 없다 “플랜A는 실패했습니다. 플랜B를 꺼내세요.” 이러한 주문이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에도 적용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미 오염된 지구 ‘플래닛A’ 대신 깨끗한 행성 ‘플래닛B’에서 살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플래닛B는 없다. 인류의 유일한 행성인 지구에서 생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식량안보, 기후위기, 에너지 대란 등 인류가 직면한 도전과제들을 우선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 책은 산적한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행동요령을 제시한다. 탄소발자국 전문가, 지속가능성 컨설턴트, 공정무역 의류 수입상 등 독특한 이력을 가진 저자가 자칫 어렵고 복잡해 보일 수 있는 내용을 쉽고 간결하게 설명한다. 인류에게 남은 패(牌)는 하나다. 이 패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마이크 버너스-리 지음, 전리오 옮김, 퍼블리온, 2만5000원, 616쪽 키워드로 읽는 불평등사회 ‘블룸버그 혁신지수 세계 1위’ ‘국내총생산(GDP) 세계 10위’ ‘미디어·콘텐츠 강국’….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수식하는 타이틀이다.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것을 증명한다. 눈부신 경제 성장, 그 이면에는 불평등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2020년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5.3%. 100명 중 약 15명이 빈곤층인 셈이다. 국내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다. 전 세계 난민 보호율은 평균 40%이지만, 한국은 5%에 불과하다. 사회학자인 저자는 한국 사회의 불편한 현안을 27개의 키워드로 정리했다. 그리고 이 키워드를 바탕으로 기초적인 안전과 경제를 도모하면서 사회적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모색한다. 정세가 급변하는 시대에서 사회 문제를 빠르게 파악해 구조적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까지 제시하는 이 책은 2022년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를 가장 잘

[더나미 책꽂이] ‘편향의 종말’ ‘전쟁을 짊어진 사람들’ ‘동물권력’

편향의 종말 머릿속에 한번 박힌 편견은 그 뿌리를 뽑아내기 어렵다. 인간이 고정관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미국의 차세대 과학 저널리스트 제시카 노델은 이 물음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우선 노델은 교육·의료·정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원인을 진단한다.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는 차별과 혐오는 인간의 편향적인 사고에서 비롯된다. 문제는 편향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이다. 두뇌는 불확실한 결과를 정확히 예견했을 때 쾌감을 느낀다. 반대로 예견이 틀리면 짜증과 위협을 느낀다. 이러한 보상시스템 속에서 인간은 생각을 공고화하고, 고정관념을 만들어낸다. 편향의 회로를 끊기 위해서는 새로운 설계가 필요하다. 노델은 스웨덴 유치원의 가치중립 교육, 매사추세츠공대(MIT)가 여성 종신교수 비율을 66%까지 늘린 사례를 얘기하면서 실질적인 해법을 알려준다. 노델의 설계는 자신의 편향을 줄여나가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방향키가 돼 줄 것이다. 제시카 노델 지음, 김병화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만2800원, 500쪽 전쟁을 짊어진 사람들 늦은 밤 우크라이나 동북부 하르키우 지역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엄청난 소리에 벌떡 일어난 안드레이는 집 밖을 살폈다. 러시아군이 폭격을 퍼붓고 있었다. 악몽이길 바랐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현실이었다. 안드레이는 가족들을 자동차에 태워 급히 해외로 피신시킨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안전한 거점과 중고차, 방탄조끼, 헬멧을 구하는 것이었다.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서다. 헬멧을 쓰고 방탄조끼를 걸친 안드레이는 피란민과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이 책은 구호활동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전쟁의 사각지대에서 사람을 구하고, 전후 재건을 돕고, 헌혈 네트워크를 구성해 전쟁의

[더나미 책꽂이] ‘빈곤 과정’ ‘자연은 협력한다’ ‘백인의 역사’

빈곤 과정 유엔식량계획(WFP)이 집계한 전 세계 빈곤 인구 7억9500만명. 한 가지 묻고 싶다. 빈곤은 사회 곳곳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지만, 이를 체감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쪽방촌, 고시원에 살면서 지척의 가난을 보고 듣지만 ‘다들 이렇게 살겠지’라는 생각을 한다. 책에서 등장하는 빈자에도 경계는 없다. 빈자의 외연은 이 사회의 통치 방식과 그에 연루된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계속 확장된다. 그렇다면 빈곤의 과정은 무엇일까? 누가, 어떻게 빈곤에 처하게 되는가. 저자는 “물질적 궁박함으로 표상된 빈곤이란 상태가 사실은 실존의 결핍을 메우려는 끝없는 분전”이라고 말한다. 취약한 존재가 세계 속에서 진정한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을 ‘빈곤’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인류학자 조문영이 바라본 빈곤은 돈이 없고 불안한, 전망 없는 삶이 아니었다. 조문영, 글항아리, 2만4000원, 428쪽 자연은 협력한다 우리는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다. 팬데믹, 기후위기, 에너지 대란 등 모든 현상은 단편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사회 네트워크와 생태계의 현상을 통합적으로 분석하는 ‘복잡계 과학’은 다층적인 현상을 이해하는 데 나침반이 돼 준다. 이 책은 복잡계 과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자연과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현상 사이의 공통점, 보편적인 규칙을 탐구하고 그 연관성을 가시적으로 만든다. 그리고선 이제껏 등장하지 않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핵심은 통합적인 사고와 협력이다.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린 마굴리스에 따르면, 협력과 공생을 바탕으로 생물의 진화가 이뤄진다. 동식물도 서로 살아남기 위해 공생관계를 도모해 왔다. 우리 생태계는 촘촘하게 얽혀 있고,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인간의

[더나미 책꽂이] ‘공감의 반경’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 ‘회복력 시대’

공감의 반경 대한민국은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시기를 겪고 있다.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로 채 피지 못한 꽃들이 저물었다. 곳곳에서 비통과 안타까움, 정부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혐오와 갈등은 사회 곳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와 분열을 부추긴다. 현재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공감해야 할까. 좋은 공감은 무엇일까. 인간은 소속감을 느끼는 내집단에서는 정서적으로 깊은 공감을 느낀다. 문제는 집단을 벗어나 공감의 반경이 넓어지는 경우다. ‘우리’와 ‘그들’로 구분되는 사회에서 집단 간의 경계를 허물기란 쉽지 않다. 저자는 감정에만 기반을 두지 않은 ‘넓고 이성적인 공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감의 깊이보다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은 공감의 반경을 넓혀야만 한다. 장대익 지음, 바다출판사, 1만6500원, 296쪽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 시골에서 상경한 강정희씨는 부모님과 함께 신계동 달동네에 자리를 잡았다. 부엌 창을 열면 도원동 철거민들이 지은 망루가 보였지만, 그땐 그저 남의 일에 불과했다. 싱글맘인 그녀에게 신계동은 정겨운 이웃들과 함께한 추억이 살아 있는 삶의 터전이었다. 하지만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무너졌다. 철거용역의 위협을 견디지 못한 이웃들은 하나씩 떠났고, 그녀의 집도 외출한 사이 철거당했다. 지금도 정희씨는 오랜 노숙농성 탓에 앉아서 선잠을 잔다. 이 책은 초고층 빌딩들로 채워진 서울의 화려한 모습 이면에 숨겨진 아픔을 조명한다. 반빈곤활동가인 저자는 12년간 함께한 철거민, 홈리스,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불러와 재개발 과정에서 지워진

[더나미 책꽂이] ‘눈에 선하게’ ‘타오르는 질문들’ ‘나는’

눈에 선하게 시각장애인의 눈이 돼준 베테랑 화면해설작가 5명이 쓴 고군분투기. 화면해설작가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영화나 드라마 화면 속 시간과 공간, 등장인물의 표정과 몸짓, 대사 없이 처리되는 여러 정보를 해설하는 원고를 쓴다. 작가의 글은 성우 목소리에 실려 시각장애인들에 전달된다. 시각 정보를 소리의 언어로 바꾸는 작업은 전문성과 예술성을 요한다. 대개 등장인물의 대사와 대사 사이, 혹은 내레이션과 내레이션 사이 10여 초의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정보를 압축해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가장 정확한 표현을 찾기 위해 조사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는다. 볼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세상을 글로 그려내는 화면해설작가들의 직업 수기인 이 책은 작가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장르·소재에 따라 어떤 문법을 사용하는지 등을 알려준다. 영상 속의 장면을 한 편의 시(詩)처럼 전달하기 위해 분투하는 화면해설작가들의 작업실 너머 얘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권한다. 권성아·김은주 외 3명 지음, 사이드웨이, 1만6000원, 268쪽 타오르는 질문들 마거릿 애트우드의 에세이 선집. 독일도서전 평화상, 미국PEN협회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애트우드는 ‘현존하는 가장 치열한 작가’라 불린다. 이 책에는 환경, 인권, 문학, 페미니즘 등 애트우드가 평생 관심을 가져온 다양한 주제와 관련된 에세이 62편이 수록돼 있다. 애트우드는 “21세기에 도래한 위기는 이전 시대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라며 방대하고 세세한 역사적 지식, 다채롭고 기발한 비유가 담긴 이야기로 인류가 당면한 전 지구적 문제들에 답한다. 애트우드 특유의 유머는 자칫 무겁고 딱딱할 수 있는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미있게 풀어낸다. 매년 40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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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나미 책꽂이] ‘어쩌다 숲’ ‘동물, 채소, 정크푸드’ ‘아마존 분홍돌고래를 만나다’

어쩌다 숲 높은 건물,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 도시는 인공물로 가득한 공간이지만 동시에 빠르게 성장하는 생태계이기도 하다. 최근 미국 대도시에는 수달과 박쥐, 코요테, 앵무새 등 각종 야생동물이 몰려들고 있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대도시는 자국의 다른 지역보다도 생물다양성 수준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저자는 최근 일어나는 야생동물들의 ‘위대한 이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간의 어떤 선택이 도시를 ‘이상한 야생동물 보호소’로 만들었는지, 어떤 재야생화의 패턴이 나타나는지, 도시 동물의 삶은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인간과 야생동물이 지속가능한 공존을 이룰 수 있는 도시의 미래를 모색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피터 알레고나 지음, 김지원 옮김, 이케이북, 1만9800원, 424쪽 동물, 채소, 정크푸드 사람은 ‘먹어야’ 산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도, 오늘을 사는 현대인도. 하지만 식문화는 완전히 달라졌다. 미국 컬럼비아대 공공보건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고대인의 식물 채집부터 근대의 아일랜드 기근, 현대 맥도날드 성장까지 인간의 식량사를 분석했다. 직접 식량을 채취하던 고대인과 달리 현대인은 끼니의 50%를 집 밖에서 때운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칼로리의 60%는 기업이 생산한 초가공식품에 들어 있다. 저자는 현대로 올수록 농업의 무게 중심이 인간의 필수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에서 대기업의 이익을 내는 수단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밝힌다. 식품 기업이 배를 불리는 사이 환경은 오염되고 저소득층 건강은 악화했다. 책의 결론이 절망은 아니다. 저자가 사례로 든 미국과 브라질의 지역중심 농업, 정크푸드 제한 정책 등에서 희망을 볼 수 있다. 마크 비트먼 지음, 김재용 옮김, 그러나, 1만8000원, 508쪽

[더나미 책꽂이] ‘니 얼굴’ ‘다이버시티 파워’ ‘여성이 말한다’

니 얼굴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배우 한지민의 쌍둥이 언니 ‘영희’ 역으로 열연한 정은혜의 첫 그림집이다. 은혜씨가 맨 처음에 그린 그림부터, 캐리커처, 색연필·아크릴을 사용한 채색 그림까지 150여점이 담겼다. 세상을 바라보는 은혜씨의 맑고 따뜻한 시선이 작품에 그대로 투영됐다. 그림집에는 10대 시절부터 써온 일기, 식구들에게 사랑을 전하면서 쓴 편지, 메모도 실렸다. 은혜씨는 “사람들 얼굴은 다 다르니까 다 예쁘고 멋있고 자랑스럽다”면서 한결같이 얼굴을 그리는 게 좋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까지 자화상을 포함해 4000명의 얼굴을 그렸다. 타인과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던 은혜씨는 그림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마주 보게 됐다. 정은혜 지음, 보리, 2만2000원, 176쪽 다이버시티 파워 ‘기술 스타트업 창업가와 럭비 감독이 영국 국가대표 축구팀에 조언하는 이유는?’ ‘십자말풀이 장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암호해독 요원으로 차출된 까닭은?’ 이 질문들의 답으로 저자는 ‘다양성(Diversity)’을 내민다. 다양한 사람들이 기존의 가치체계나 규범을 벗어난 ‘반항적인 아이디어(Rebel Ideas)’를 제시하며 지속적으로 폭넓은 의견을 주고받을 때 특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능력주의에 치우쳐 동종 선호로 가득한 전문가들만 모이면 결국은 기존의 관행만 견고히 하는 방안이 도출될 것이다. 이에 저자는 수많은 사례와 연구 자료, 인터뷰 등을 토대로 왜 능력주의만으로는 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는지, 왜 다양성이 조직과 사회에 꼭 필요한지 보여준다. 기후위기, 에너지 대란 등 현재 산적한 과제들은 선형적이거나 단순하게 분리 가능한 사안들이 아니다. 위기를 맞닥뜨린 인류가 다양성에 초점을 맞출 때다. 매슈 사이드 지음, 문직섭 옮김, 위즈덤하우스, 2만1000원, 416쪽 여성이

[더나미 책꽂이] ‘세대 감각’ ‘언니의 상담실’ ‘날씨 기계’

세대 감각 X세대, Y세대, MZ세대…. 우리나라는 세대라는 용어 하나로 폭넓은 연령층을 범주화하고 특징짓는 경향이 있다. ‘언제 태어났는지’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일까? 저자 바비 더피는 “오염된 세대 감각은 잘못된 이해를 조장하고, 편견과 고정관념을 증폭시켜 사회 변화의 중요한 신호들을 놓치게 한다”고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세대 분석가’로 평가받는 받는 바비 더피는 전 세계 300만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인터뷰 데이터를 활용해 주택 문제, 기후변화, 정치 양극화 등 각 세대가 처한 경제적·사회적 현실을 정밀하게 추적한다. 이를 통해 오늘날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각 세대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생생하게 포착한다. 균형 잡힌 세대 감각을 기르고, 시대 변화의 흐름을 빠르게 파악하고픈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바비 더피 지음, 이영래 옮김, 어크로스, 1만8000원, 408쪽 언니의 상담실 “나 고민 있어.” 이 말을 툭 건넬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몇명이나 있는가? 고민의 무게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울 때가 있다.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을 가진 여성들을 ‘언니의 상담실’로 초대한다. 2030 여성의 심리 멘토로 자리 잡은 정신과 전문의 반유화가 무기력함·우울·완벽주의 등 개인적인 문제는 물론 가족과 친구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직장 내 성차별 등 사회·제도적 문제와 연결된 고민까지, 2030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어려움에 답한다. 사연자의 고민을 깊이 있고 세밀하게 분석하며 따뜻한 문장으로 위로를 건넨다. 지금 당장 따라 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조언을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