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더나미 책꽂이] ‘당신은 전쟁을 몰라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 ‘각자도사 사회’

당신은 전쟁을 몰라요

열두살 소녀가 적어 내린 전쟁 연대기. 초등학생인 예바 스칼레츠카는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르키우에서 할머니와 살았다. 평범한 일상은 2022년 2월 24일 깨졌다. 그날 아침 스칼레츠카는 폭격 소리에 잠을 깼다. 벌떡 일어나 휴대전화를 확인해보니 학교 단체 채팅방은 폭발 소음 얘기로 가득했다. 소문으로 떠돌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현실이됐다. 스칼레츠카는 할머니와 함께 비좁고 축축한 지하실로 대피한 뒤 참혹한 현실을 선명하게 기록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렇게 고향인 하르키우를 떠나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으로 이동한 두 달간의 여정을 일기로 남겼다. 스칼레츠카의 글은 가공되지 않은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면서도 어린이만의 순수함을 드러낸다. 우크라이나 서쪽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와의 일화, 폭격을 당한 집에서 아끼던 인형을 무사히 꺼내온 사연에는 어린아이의 섬세함과 투명함이 묻어 있다.

예바 스칼레츠카 지음, 손원평 옮김, 생각의힘, 1만5000원, 272쪽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

재난으로 생긴 마음의 흉터는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지난 6일(현지 시각) 규모 7.8의 강진이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쳤다. 양국에서 공식 집계한 전체 사망자 수는 4만8000명을 넘어섰다. 당장 생존자와 이재민을 구호하는 일만큼 장기화하는 복구·재건 작업에서 남은 이들의 마음을 치료하는 일도 관건이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재난 트라우마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로부터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그는 1995년 1월 17일 일본 한신·아와지에서 발생한 대지진 현장에서 이재민을 돌보며 현장의 분위기를 틈틈이 기록했다. 그 기록을 바탕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치유 과정에서 사람과 사회의 역할 등을 논하며 따뜻한 메시지를 전한다. 약 30년 전 일본에서 일어난 재난의 실상은 현재 튀르키예·시리아 현장과 똑 닮았기에, 이 책은 많은 독자에게 위로를 건넨다.

안 가쓰마사 지음, 박소영 옮김, 후마니타스, 1만8000원, 320쪽

각자도사 사회

“죽음이 개인의 능력과 운에 달렸다고?” 의료인류학자 송병기씨는 이 물음에 “죽음의 문제는 주사위 놀이 같다”고 답한다. 사람들은 바란다. 노화는 최대한 천천히, 질병의 고통은 덜 하게, 그리고 다정하고 친절한 의료진·간병인을 만나기를. 그러나 노후에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는 주사위를 던져 봐야 알 수 있다. 죽음을 운에 맡겨야 하는 이 사회를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있는가. 저자는 파리대학교병원(AP-HP) 의료윤리센터와 서울대학교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노화·돌봄·죽음 등 생애 말기 연구를 해왔다. 그는 빈약한 사회적 자본을 가진 노인이 집에서 죽어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정부 정책은 노년의 삶을 개선하기보다는 취약한 삶에 적응하도록 설계된 것은 아닌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죽음의 경로를 추적하고 죽음을 둘러싼 국가와 개인의 관계, 관련 정책, 불평등 문제를 보여준다. 묵직한 이야기지만, 보편적이고 존엄한 죽음을 꿈꾸는 독자의 필독서다.

송병기 지음, 어크로스, 1만6000원, 264쪽

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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