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NPO스쿨 대표
[사회혁신발언대] 코로나19 이후의 비영리<下>

온라인 기반 스크랩 서비스 중 ‘미로’와 ‘비캔버스’라는 곳이 있다. 최근 원격근무가 대중화되면서 크게 주목을 받는 서비스 중 하나다. 포스트잇 방식을 활용해 팀별 토론까지 가능하게 해 호평을 받고 있다. 온라인으로 하는 토론이 처음엔 어색하게 느낄 수 있지만 실제로 서비스를 사용해본 결과 대부분의 사람이 금세 적응하고 토론에 몰입했다. 사람들이 이 서비스에 금세 적응한 것처럼, 대면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비영리 영역도 언젠간 ‘느슨한 조직 문화’와 ‘비대면 활동’에 익숙해지는 날이 오진 않을까. 좋은 점도 있을 것이다. 온라인 행사가 늘어나면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이나 사회 참여권도 확대될 수 있다. 재택근무로 이동량이 줄면 탄소배출이 감소할 수도 있다. 지금 비영리 영역 안에서도 코로나 19 이후에 대한 여러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이 시각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전자책이 나와도 종이책이 팔리는 것처럼 코로나 19 이후에도 대면 활동의 비중이 일부 줄어드는 정도의 작은 변화만 있을 것이라는 보는 시각이다. 전통적인 비영리 활동 방식을 고수하는 가장 보수적인 시각이다. 두 번째, 온라인상에서 네트워킹과 협업을 도와줄 기술이 새로 나와 비영리가 하던 일부 활동에 적용되는 정도의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비대면을 대면의 보조 활동 정도로 본다. 변화에 대한 중도적 시각이라 하겠다. 세 번째, 온라인 중심 활동이 대면 활동을 거의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을 것이란 시각이다. 이 의견을 가진 사람 중에는 비대면 활동이 대면

이재현 NPO스쿨 대표
[사회혁신발언대] 코로나19 이후의 비영리<中>

“코로나 19로 인한 불황이 장기화되면 후원금이 줄어들 텐데, 재정 환경이 열악한 작은 단체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요즘 비영리조직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코로나 19 이후를 준비하는 비영리조직은 직원들의 ‘고용 유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도, 조직 생존과 해산에 관한 새로운 시나리오까지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아무런 재난이 없는 상황을 전제하고 만들어진 조직 운영 방식을 완전히 바꿀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상근 인력의 숫자나 임대료 등 일반적인 비용 축소 방안도 통하지 않을 정도의 재정 상황이 극한에 치달은 조직은 해산을 고민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발전적인 해산’이라는 상상을 해 보면 어떨까. 중요 활동을 남겨둔 채 사무실과 상근 인력이 없는 네트워크나 자원봉사 조직으로 바꾸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직원 임금을 고정급여가 아닌 성과급 방식으로 지급할 수도 있다. 이때 필수적으로 도입될 재택근무나 자율근무의 확대에 대한 대응법도 고민이 필요하다. 노동 강도와 성과를 명확히 평가하고 보상할 체계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식의 새로운 조직 운영 방식을 찾는 실험을 이미 시작한 단체도 있다. 상근자가 아닌 일반 시민이나 자원봉사자와의 협력 방법도 다시 구상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소규모 모임이 확산하고 있는데, 이것도 비영리조직들에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코로나 19 사태 이전에도 이미 ‘가볍게 연결되기’를 선호하는 2030세대가 사회 주류로 떠오르면서 개인보다 조직을 중시하던 비영리 운영 방식은 변하기 시작했다. 재난은 조직에 지친 시민들이 개인 대 개인으로 느슨하게 연결되는 흐름을 가속할 것이다. 전통적인

이재현 NPO스쿨 대표
[사회혁신발언대] 코로나19 이후의 비영리<上>

어딜 가나 코로나19 이야기다. 미디어에도 코로나 19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NGO나 NPO 등 비영리조직이 큰 역할을 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거대한 재난인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바꾸고 있는 지금, 비영리 영역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커다란 위기를 맞았다. 스스로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과 정체성을 증명하고 재난 이후에도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장애인·저소득층 등 사회취약계층이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졌다. 비영리조직 대부분이 이들에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코로나 19 국면에선 속수무책이었다.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대면 활동이 제한되면서 노인·장애인 복지관과 지역아동센터 등의 복지 시설과 도서관·평생교육원 등 지역사회 서비스 센터, 비영리활동의 거점이라 할 수 있는 자원봉사센터 등 많은 시설이 문을 닫았다. 이들 시설 대부분이 개관 이래 최초의 휴관을 겪었다. 비영리기관과 이들이 돕던 사회적 약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문제는 코로나 19 사태가 끝나도 비영리 영역의 약화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코로나19로 복지·공공서비스 전달체계가 ‘올스톱’ 수준으로 무너지면서, 정부와 민간의 관계성이 달라질 조짐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복지·공공서비스 전달체계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부는 비영리조직 등 민간 영역의 복지 관계자들에 대한 개입과 관리를 강화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올 가능성이 크다. 비영리 관계자들 사이에선 코로나19 시국에서 시민의 건강과 위생 관리 역할을 독점하게 된 정부가 앞으로의 민관 파트너십을 이끌며 ‘관 주도’ 방식을

[진실의방] 여전히 천동설을 믿는 사람들

  “쇼하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CEO 제프 베이조스가 최근 사재를 털어 100억달러(약 12조3000억원)를 기부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못해 싸늘하다. 그는 이른바 ‘베이조스 지구 기금(Bezos Earth Fund)’이라는 걸 조성해 이 돈을 기후변화 대응에 쓰겠다고 밝혔다. 칭찬받아 마땅할 일인데 되레 욕을 먹는 이유는 아마존이 ‘기후위기 악당 기업’으로 명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전자상거래 사업과 배송 사업 등으로 전 세계 탄소배출량을 늘리는 데 큰 공(?)을 세우고 있다. 기후변화를 가속화하는 기업 운영 방식은 바꾸지 않고 기후변화 대응 기금을 만들겠다고 하니 거액을 내놓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듣는 것이다. 최근 SNS에서 번지고 있는 ‘나쁜 기업 사회공헌 활동 기금 거부 운동’도 흥미롭다. 국내 복지기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이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는 기업의 기부금은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릴레이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에 지목된 곳은 한국마사회다. 지난해 벌어진 문중원 기수 사망 사건과 관련해 무책임한 모습을 보인 한국마사회의 사회공헌 활동 기부금을 거부하는 운동을 진행 중이다. 아마존도 그렇고, 나쁜 기업들의 보여주기식 사회공헌 활동에 큰 차질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세상이 바뀐 걸 모르고 여전히 수익만을 쫓는 기업들은 투자도 받기 어려워졌다. 올 초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은 “앞으로 기업에 투자를 결정할 때 ‘기후변화’와 관련된 대응을 하고 있는지를 주요 지표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석탄화력 등 탄소배출량이 많은 기업에 대한 투자금부터 빼겠다고 밝혔다. 물론, 블랙록이 환경을 위해서 이런 결정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석탄화력 산업의 경제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게

[모두의법] 인력·재정난에 힘든데… ‘의사록 인증’으로 삼중고 겪는 비영리

매년 초 비영리법인들은 총회 또는 이사회 개최로 분주해진다. 그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이 닥치지만 이 가운데 ‘의사록 인증’이라는 큰 벽에 부딪히곤 한다. 민법상 변경 등기 사유 중 총회 또는 이사회 의결사항이 있을 경우에는 변경등기 신청서류에 의사록을 첨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단법인이 정관 중 법인명칭, 목적 사업 등을 변경하려면 변경등기를 해야 하는데 이때 총회 의사록을 제출해야 한다. 의사록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공증인이 필요하다. 문제는 공증인의 인증을 받는 것 자체가 비영리법인에는 무척 부담이라는 점이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공증인을 의결장소에 참석시키는 방법은 출장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재정적인 부담이 발생한다. 또 하나는 공증인이 의결에 필요한 정족수 이상의 사람들에게 진술을 듣고, 그 진술과 의사록의 내용이 부합하는지 대조하는 방법이다. 이 같은 경우 출석 회원의 인감 날인과 인감증명서를 일일이 받아야 하기 때문에 업무 부담이 상당하다. 이러한 부담을 줄이려면 ‘의사록 인증 제외대상 법인’으로 분류되면 된다. 의사록 인증 제외 대상 법인은 ▲민법 32조에 따라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 설립된 비영리법인 ▲설립 목적 및 수행 사무가 공익적이고 주무관청의 감독으로 법인 총회 등의 결의절차와 내용의 진실성에 대한 분쟁 소지가 없는 법인 ▲주무관청의 추천을 받아 법무부장관이 지정·고시하는 법인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공증인법 제66조의2 제1항 제2호, 공증인법 시행령 제37조의3) 의사록 인증 제외 대상이 되면 등기 신청을 할 때 공증문서 대신 법무부 고시를 제출하면 된다. 법무부 고시에 의사록 인증 제외 대상 법인 목록을 확인할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사회혁신발언대] 공적마스크 공급과 공정무역

코로나19가 가져온 마스크 대란. 너무 급작스럽게 터진 일이라 물량 준비가 부족했던 것일까?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마스크 시장을 통제하지 못했다. 정부는 긴급한 개입을 통해 수출량을 통제하고, 무자료 거래에 따른 세금 추징 경고로 창고에서 잠자던 마스크 배포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자기 마스크를 한 달간 양보하는 자발적인 캠페인이 일어나고, 시민들이 재봉틀로 면 마스크를 제작해 취약 계층에게 무상으로 보내주고 있다는 미담도 들려온다. 보이지 않는 손은 비록 마스크의 분배를 통제하진 못했지만, 문제를 해결할 사람들을 하나씩 호명한 것이다. 공정무역에 오래 몸담은 필자는 코로나19로 촉발된 2020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공정무역 현장과 너무나 닮았음을 느낀다. 공정무역은 가장 취약한 곳에서 어려움을 겪는 커피 농부들에게 제값을 줘 시장에 대비하게 하는 것, 커피 가격을 시장이 결정하게 두지 말고 커피 농부들이 살아갈 만큼의 기본소득을 지켜줄 수 있는 선에서 정하자는 것이다. 왜 이런 개념이 생겨난 걸까? 1980년대 후반, 시장은 커피 가격을 통제하는 데 실패했다. 세계커피위원회의 가격 협상 결렬로 커피 가격이 폭락하면서 커피 농부들의 생계는 하루아침에 벼랑 끝에 내몰렸다. 만약 국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역량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커피의 과다 생산을 일시적으로 막기 위해 작물 전환을 위한 교육과 보조금을 제공하고, 그 기간을 견딜 수 있도록 기존에 생산된 커피를 정부 주도하에 사들여도 된다. 또는 커피를 생산하는 국가들이 연합해 커피 소비국과 가격 협상을 벌여 농부들이 시장에 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진실의 방] 흩어지면 데이터, 모이면 임팩트

중학교 때였다. 늦은 여름날, 학교에서 단체로 야영을 했다. 다른 건 다 잊어버렸는데 친구들과 운동장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같이 밤하늘을 올려다봤던 게 기억난다. 밤하늘을 그렇게 오래 바라본 건 처음이었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또렷해지던 별들. 어쩌다 별똥별이 떨어지면 친구들과 호들갑을 떨며 좋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다시 밤하늘을 제대로 본 건 지난해 몽골 취재를 갔을 때였다. 저녁까지 비바람이 몰아쳐서 별 보긴 글렀구나 포기하고 있었는데, 거짓말처럼 구름이 걷히더니 까만 하늘 위로 별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밤하늘을 뒤덮은 별들을 보며 그저 작은 탄성만을 내뱉었다. 그때 알았다. 별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별을 보는 게 어렵다는 걸.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일행 중 한 분이 손가락으로 먼 하늘을 가리켰다. 북두칠성이 거기 있다고 했다. 찾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몽골의 북두칠성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또렷해서 단번에 국자 모양을 발견했다. ‘이번 건 좀 더 어려운 별자린데’라고 운을 떼더니 다른 곳을 가리켰다. 수많은 별이 정신없이 얽히고설킨 그곳을 한참 동안 헤맨 끝에 찾아냈다. 꼬리와 머리, 활짝 편 양 날개. ‘백조자리’였다. ‘코로나맵’ 서비스가 처음 나온 건 지난 1월 말이었다. 정부에서 내놓는 코로나19 확진자 데이터가 산발적이고 정돈되지 않아 시민의 불안감만 키우던 와중에, 한 대학생이 확진자 동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코로나맵을 만들어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정부 발표와 언론 보도, 사람들의 제보 등 흩어져 있던 데이터를 긁어모아 좌표를 찍고 그걸 선으로 이어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모두의법] “양육비 안 주는 부모들 명예보다 아동 생존권이 우선”

양육비 미지급은 단순한 민사채무와 달리 아동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이다. 임신, 출산, 육아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채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한부모가정에서, 양육비 미지급은 사실상 아동의 생계수단을 박탈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규제는 매우 부실하다. 재판을 통해 판결을 받아도 재산은닉, 위장전입, 잠적 등의 방법으로 집행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양육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무려 80%에 이르고 있다. 지난 1월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들의 신상을 공개해 온 사이트 ‘배드파더스’의 관계자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해 화제를 모았다. 배드파더스는 제도가 미비한 가운데 생존권을 위협받는 아동들을 위해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들의 명단을 공개하는 사회운동을 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운동을 통해 양육비 미지급 실태와 부실한 규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양육비 관련 제도와 정책의 근본적 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재단법인 동천의 변호사들을 포함한 12명의 변호사들은 이 사건을 공익사건으로 보고 피고인의 변호인으로 참여했다. 변호인단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여러 쟁점 가운데 특히 양육비 미지급 실태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지난 1월 14일에 이 사건의 국민참여재판 공판기일이 진행됐다. 변호인단은 ▲검찰의 공소권 행사가 공소권 남용이라는 점 ▲피고인에게 공익적 목적이 인정되므로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없다는 점 ▲정당한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어야 한다는 점 등을 중심으로 다퉜다. 이 중 핵심 쟁점인 공익적 목적의 인정여부에 대해서는 검찰과 변호인단의 공방이 벌어졌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배드파더스 사건의 외양은 ‘아동의 생존권’과 ‘양육비 미지급자의

[진실의 방] 잘 알지도 못하면서

  놀이기구 타는 걸 유독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그들이 ‘강추’하는 놀이기구 중 하나가 에버랜드의 ‘티-익스프레스’다. 예전에 에버랜드에 갔을 때 본 적은 있는데 타보진 못했다. 지옥에서나 들릴법한 비명이 나서 쳐다봤더니 거기서 나는 소리였다. 한번 타볼까 하다가 그 소리를 듣고 소름이 돋아서 관뒀던 기억이 난다. 티-익스프레스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 시작된 지 햇수로 6년이 됐다. 2015년 5월, 이 놀이기구를 타려고 줄을 섰던 시각장애인들이 탑승을 제지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스릴 레벨’이 높은 놀이기구 7종에 대해 시각장애인의 이용을 제한하는 ‘어트랙션 안전 가이드북’ 내용을 근거로 직원들이 탑승을 막아선 것이다. 공익인권변호사 모임인 ‘희망을만드는법’은 이를 장애인 차별이라고 주장하며 탑승을 거부당한 시각장애인들을 대리해 손해배상과 가이드북 시정을 청구하는 소송을 진행했다. 에버랜드 측은 반사적 방어행동 속도가 느린 시각장애인이 고속으로 낙하하거나 360도 회전하는 놀이기구를 탔을 때 정상 시력을 가진 사람보다 충격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여러 안전상 이유를 들며 탑승 제한이 정당하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현장 검증’을 통해 티-익스프레스가 실제로 시각장애인에게 위험한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판사들도 검증에 동참했다.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놀이기구를 탔고 비상 탈출 과정에도 참여했다. 에버랜드의 주장과 달리 시각장애인들은 아무런 문제 없이 티-익스프레스를 즐겼고, 비상 상황을 가정한 탈출 과정에서도 정상적으로 대피했다. 신체적 충격을 측정한 결과에서도 차이가 없었다. 2018년 10월 재판부는 시각장애인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에버랜드 운영사인 삼성물산 측은 즉각 항소했다. 다툼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대부분의 차별은 무지(無知)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이런

[모두의법] 전염병과 국가의 보호의무

출근길 지하철을 타니 주변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릴 때도 보기 힘든 풍경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불러온 공포를 실감한다. 외부에서 오는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종종 ‘바깥’으로 인식되는 사람들에 대한 배타와 차별로 이어진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후진적인 중국의 식문화를 성토하는 글들이 가득하다. “NO CHINA”를 선언하며 중국인 출입을 막는 가게들도 생겨났다. 미지의 병에 대한 공포와 생존에 대한 갈망은 본능에 가깝다. 문제는 공포가 타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이어지는 기제다. 혐오 정서에 편승하고 부추기는 몇몇 언론의 모습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림동을 가보니 실로 위생상 문제가 많았다”는 ‘르포’ 기사가 버젓이 언론매체에 실리고 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구성원들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존재 이유를 소환한다. 몇 년 전 메르스 방역의 실패는 지난 정권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는 근거 중 하나로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즉흥적인 여론에 즉각 호응하는 것만이 국가의 보호의무일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불필요한 공포의 확산을 막고, 방역에 가장 효과적인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 지금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국가 3부 기관 중 하나인 입법부의 모습은 어떠한가. 일부 국회의원은 혐오 여론에 재빨리 편승해 ‘중국인 입국 금지’ 법안을 발의했다. 2018년 제주도 내 예멘인 난민신청이 불러온 ‘법안 발의 러시’와 비슷한 행태다. 당시에도 ‘대중 추수주의’를 넘어 ‘혐오 추수주의’에 가까운 법안들이 우후죽순으로 발의됐다. 대부분 난민의 권리와 생존을 제한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국회 본회의에 올라간 법안은 전무하다. 이번 입국금지 법안 등도 혐오정서의 불쏘시개로

[사회혁신발언대] ‘세상에 좋은 일’로 돈을 벌어라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최고경영자(CEO) 래리 핑크(Larry Fink)가 전 세계 CEO들에게 보낸 새해 편지가 주목받고 있다. 그는 ‘환경 지속가능성(environmental sustainability)’을 향후 회사 운용의 핵심 전략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또 석탄제조업과 같이 환경 지속가능성을 해칠 위험이 큰 투자처로부터 철수하겠다고 선언했다. 운용 총자산 7조달러(약 8120조원)에 달하는 블랙록의 수장이 지속가능성 화두를 꺼낸 건 3년 전이며, 최근 들어 점점 그 논조가 강해지고 있다. 물론 블랙록의 이 같은 행보가 오로지 래리 핑크 개인의 신념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속가능한 세상을 바라는 블랙록 투자자들의 압박을 그 이유로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기업들은 ESG로 불리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기업 경영 전략의 DNA로 삼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기업들의 변화를 이끌어낸 건 상장 기업을 주 대상으로 하는 ‘사회책임투자’와 비상장 기업을 주 대상으로 하는 ‘임팩트투자’다. 만약 우리가 투자한 기업이 살상용 무기를 만들고, 인체에 해로운 담배를 생산하고, 도박 카지노업을 영위한다면 우리는 ‘투자’라는 행위를 통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셈이다. 이런 기업들을 회피하는 것을 ‘소극적 사회책임투자’라 부르고, 회피를 넘어 사회환경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유망 기업을 적극적으로 찾아 투자하는 것을 ‘적극적 사회책임투자’라 부른다. 임팩트투자는 특정 사회환경적 문제를 시장에 기반한 혁신으로 해결하는 기업이나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사회책임투자와 임팩트투자 모두 재무적 투자 수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환경적 가치와 재무적 수익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동시에 잡을 수 있느냐고 반문할

[모두의법] ‘폰트 저작권 침해’ 내용증명 받으셨다고요?

최근 1~2년 사이 비영리단체들의 폰트 저작권 침해에 대한 문의가 부쩍 많아졌다. 문의 내용은 거의 같다. 단체의 뉴스레터, 활동 보고서, 웹 포스터 등에 사용한 폰트가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폰트 디자인 회사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등이 내용증명을 보내고 프로그램 전체를 구입하라며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영리단체가 받아든 내용증명에는 ‘폰트 프로그램을 적법한 허락 없이 사용했으므로 합의에 응하지 않을 경우 단체 대표 또는 활동가가 저작권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내용이 주로 담겼다. 합의금 액수는 다양했지만 대체로 단체 활동가의 평균적인 월급을 훨씬 웃도는 액수였다. 또 비영리단체 운영에 타격을 줄 정도 큰 액수도 있었다. 이러한 일을 겪은 대부분 사람은 상당한 공포심을 갖게 된다. 아마도 두려움 때문에 단체 운영에 상당히 부담되는 액수임에도 합의금을 지급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합의할 여건이 안 되는 일부 단체는 폰트 저작권자 등에게 고소를 당해 단체의 대표나 담당자가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다행히 무혐의 처분 또는 불기소 처분 등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아직 비영리단체가 관련 처벌을 받은 사례를 접하진 못했다. 하지만 사건이 종료될 때까지 활동가들이 받은 고통과 소요된 시간을 고려하면 결코 가벼이 볼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정말 비영리단체의 폰트 사용이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저작권법에 따라 처벌받을 사안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폰트 저작권 분쟁의 가장 전형적인 유형은 홍보용 웹 포스터에 개인적 또는 비상업적 목적의 다운로드를 허용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