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가 말하는 청년, 저희는 그거 아닌데요?

여기 한 청년이 있다. 김민준은 1994년생으로, 31살이다. 현재 경기도에 있는 부모님 집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 서울 소재 모 대학의 경영학과를 졸업해 제조업 계열의 총무팀에서 일하고 있다. 아침에 7시쯤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자차를 운전해 1시간 10분 정도 서울로 이동한다. 퇴근 후 집에 와서는 OTT로 이것저것 보다가 새벽에 1시쯤 잠이 든다. 민준은 정치엔 관심이 없고, 투표 외엔 정치적인 활동은 전혀 해본 적이 없어 캠페인에 참여해 본 적도, 집회에 나가본 적도 없다. 주말엔 수면시간이 두 시간 정도 늘어나고, 토요일 저녁에 친구들과 만나 술 한잔하고, 직장에 출근하지 않는다는 점 정도가 평일과 다른 점이다. ‘공정’과 관련해 김민준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특권을 누리는 데에는 반대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과 상관없이 빈곤하거나 욕구가 있는 사람을 돌봐야 공정하다는 의견에는 어느 쪽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얻는 데에는 노력이 필요한데, 노력 없는 도움을 줄 순 없다. 그렇지만 어려운 사람은 돕고 살아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배워왔다. 쉽게 고르기 어려워 의견을 유보하고 있다. 김민준의 연간 총소득은 3200만원으로 98%가 회사 다니면서 번 돈이고, 나머지 2%는 주식에 투자해서 번 돈이다. 지금 갖고 있는 자산은 적금을 붓고 일해서 모은 돈이 1131만원이고, 주식에 투자해서 모은 돈이 259만원, 가상자산에 투자해서 모은 돈이 25만원 정도 있다. 여기에 부채도 비슷한 정도로 있는데, 학자금 대출 남은 돈이 58만원, 초반에 주식에 투자해 보겠다고 대출받았던 돈 36만원과 출퇴근을 위해

[임팩트로의 초대] 동료를 찾습니다

우리는 AI 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 2022년 말 ChatGPT가 세상에 공개되고 사람들은 AI가 인터넷과 모바일 다음의 커다란 혁명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2023년 약 436조 원의 VC 투자금 가운데, 분야별 투자금 총액을 분류했을 때 가장 많이 투자된 분야는 Gen AI(29조 원), 그다음으로는 Gen AI model maker(21조 원), 그리고 Gen AI applications(9조 원)이다(DealRoom). AI와 관련된 반도체, 자율주행차, 신약 개발 등의 산업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훨씬 방대해진다. 초기의 과열되었던 AI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다소 진정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AI는 미래의 핵심 산업으로 평가되며 그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기술 발전은 우리에게 번영을 가져다주었다. 농업 혁명이 그러했고, 18세기 증기 기관의 발명이, 19세기 전기와 전화의 발명이, 20세기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명이, 21세기 모바일과 AI의 발명이 그러했다. 어두운 이면도 있다. AI의 발전으로 일자리 감소와 사회적 불평등 심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고,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기후 위기 대응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AI와 데이터센터, 암호화폐 분야 전 세계 전력 소비량은 2022년 기준 약 460TWh였는데 2026년에는 1000TWh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한 해 전체 전력 소비량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역사적으로 기술 발전에 따른 번영엔 어두운 이면은 늘 있어왔다. 농업혁명 때에는 노예 제도가, 산업혁명 때에는 노동 착취가 있었고, 갈수록 커져가는 빈부 격차와 공해와 같은 환경 오염 문제 등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마주한 문제들은 번영 뒤 늘 있어왔던

[지역의 미래] 출산보다 출가에 집중할 이유

저출산, 고령화, 지방소멸은 사이좋게 붙어 다닌다. 세 단어를 조합하면,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노인들만 남아 있으니 지방은 곧 소멸할 거라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이다. 이중 서울은 0.55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고 행안부에서 인구감소 지역으로 지정한 79곳(89개 중 대도시와 부산, 대구,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제외)의 평균은 0.96명이다. 현재 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대체출산율 2.1명보다는 모두 낮지만 저출산 때문에 지방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지방의 인구가 적어서 출생아 수가 적을 뿐이지 출산율로 따지면 서울이 가장 위험한 인구감소 지역이다. 아이를 낳지 않아도 서울 인구가 급감하지 않는 이유는 지방에서 나고 자란 청소년들이 서울로 떠나기 때문이다. ◇ 4명 중 1명은 둥지를 떠난다 지방에는 대학 입시를 도와줄 유명 학원이나 일타강사가 없다. 부족한 학습 환경을 보완하기 위해 대부분의 지자체는 수십억 원의 장학기금을 조성하고 어떤 지자체는 유명 입시 학원과 계약을 맺어 중고생들의 입시를 돕기도 한다. 이렇게 공부한 청소년은 스무 살에 서울로 떠나 대학에 다니고 취업해서 결혼하며 자리를 잡는다. 어느 지역의 15~19세 인구를 5년 후 20~24세 인구와 비교해 감소한 비율을 ‘출가율’이라고 한다면, 79개 인구감소 지역의 22년 평균 출가율은 23%이다. (참고로 서울은 17년 15~19세 49만 6000명에서 22년 20~24세 61만 3000명으로 24% 증가했다.) 7개 도별로 가장 높은 출가율을 나타낸 곳은 강원 태백시, 충북 단양군, 충남 서천군, 전북 고창군, 전남 보성군, 경북 영양군, 경남 고성군으로 이들의 평균 출가율은 43.8%에 달한다. 출가율은 지역 자본의 유출로

이재현 NPO스쿨 대표
[사회혁신발언대] 우리 사회는 ‘비영리 경영인’을 양성하는가?

최근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통해 언론에 이슈가 된 특정 스포츠 협회들은 법적인 비영리 조직이다. 이 조직의 본질적 존재 이유는 돈을 버는 행위와 분명 거리가 있다. 이러한 결사체의 본질적 취지는 구성원들의 권익을 보호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일이다. 이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조직은 언제든 문제가 발생하며 그 부작용은 고스란히 사회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비영리성(Not-for-profit)을 가진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와 의미를 경시하고 기업 오너와 같이 독선적으로 결정을 반복하거나, 매사 효율성만 따지는 조직운영을 통해 보여주기식 숫자놀음(bean counting)만 한다면 조직은 본연의 힘을 잃고 망가지기 마련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많은 협회들이 국민들의 시선에서는 공적 조직의 측면이 떠오르지 않는, 그저 이익 단체 정도로만 인식된다는 사실이다. 문제가 무엇일까?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조직은 정부 조직과 기업 조직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소리 없이 사회를 유지하는 조직도 많다. 국가마다 이를 지칭하는 이름과 범위는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비영리 조직(Non-profit organization, NPO)이라 부르고 있다. 과거 시민단체를 일컬어 NGO(Non-government organization)로 지칭했던 우리 사회의 오래된 오해는 아직까지 혼란함을 가중시키고 있다. NGO는 국제적인 규모, 의사결정을 위한 거버넌스 체계 보유 등의 조건을 통과하여 UN이나 ILO 등의 국제기구에서 승인하는 규모 있는 비영리조직의 인증 용어다. UN이 창설된 1945년 처음 사용된 NGO라는 용어(Thomas Davies)는 UN헌장(United Nations Charter) 71조에서, 경제사회이사회에 협의자 지위를 수여받은 기관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현재 6000개 내외로 추산된다. 일반적인 비영리 조직을 칭한다면 NPO로 불러야 적합하다. 우리 사회의 NPO는 얼마나 많을까? 관행적으로

[사회혁신발언대] 시스템적 사고와 협력으로 향하는 임팩트 투자

지리적으로는 북반구 경제선진국부터 남반구의 저소득국까지, 투자 유형으로는 상장 주식에만 투자하는 임팩트 투자자부터 개발도상국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국제개발 NGO까지. 스스로를 임팩트 투자자로 정의하는 조직이 다양해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상업적 투자와 구분되는 임팩트 투자의 개념이 자리잡는 시기였다면, 바야흐로 무엇이 진짜 임팩트 투자인지에 대한 세심한 논의와 사례가 쌓여가는 시기가 도래했다. 지난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2024년 임팩트 투자의 날(Impact Investing Days 2024) 콘퍼런스’는 이런 장면을 잘 보여주는 자리였다. 이 콘퍼런스는 2018년 코펜하겐에서 처음 시작해 올해로 5회를 맞았다. 초기에는 임팩트 투자자, 자선재단 실무자, 사회적기업가와 학계의 만남을 여는 장으로서 역할을 했다면, 점차 임팩트 투자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오늘’의 임팩트 투자 분야가 직면한 실질적 고민을 털어놓고 방안을 찾는 자리로 그 성격이 깊어지고 있다. 무엇이 임팩트 투자인가? 혹은 임팩트 투자가 아닌가? 임팩트 투자는 일반적으로 ‘재무적 수익과 함께 긍정적이고 측정 가능한 사회적, 환경적 영향을 창출하려는 의도로 이루어지는 투자’로 정의한다. 여기서  ‘측정 가능한’ 그리고 ‘창출하려는 의도’ 라는 표현은 임팩트 투자와 그렇지 않은 투자를 구분 짓는 데 있어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투자와 임팩트 창출 간의 상관관계나 인과관계를 증명하지 못하는 투자, 사회적·환경적 영향을 고려하지만 그 결과로 측정가능한 임팩트를 만들지는 못하는 투자, 혹은 단순히 사회적·환경적 가치와 원칙을 재무 목표와 일치시키기만 하는 투자는 엄밀히 말해 ‘임팩트 투자’ 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콘퍼런스에서는 방글라데시 모바일 금융서비스 기업 ‘비캐시(bKash)’에 대한 투자 사례를 두고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기업의 미래? 아니 현재!

기업 없이 세상은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기업에서 일하고 기업이 파는 상품과 서비스로 살아간다. 역사상 유례가 없던 코로나 시기도 기업의 비대면 서비스와 새로운 업무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기업은 긍정적 역할을 하지만 우리는 기업을 곱게만 보지는 않는다. 지속가능성과 ESG가 화두가 된 시대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 새로운 기업 새로운 기업이 출현하고 있다. 지배주주의 단기적 이익보다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추구하는 기업, 경제적 가치 못지 않게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 직원을 존중하고 소비자를 우선하며 공급망과 함께 하는 기업,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기업. 이런 기업이 과거에도 있었으니 새롭다는 말이 정확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ESG 시대를 맞아 이런 기업이 새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사실이다. 이런 기업이 주류가 될 수 있을까? 해외에서는 이런 기업을 ‘목적 지향 기업’(purpose-driven company)이라 부른다. 이익보다 목적을 앞세우는 기업이라는 것이다. 목적 지향의 브랜딩은 강력한 기업문화를 구축하고 소비자에게 어필하며 결국 재무성과도 향상시킨다고 한다. 포브스(Forbes) 기사 중에는 “모든 기업이 목적 지향 기업으로 변모하고 싶어한다”는 것이 있다. 그러나 목적 지향 기업은 아직 생소하다. 여전히 비주류이다.  새로운 법인격 기업의 목적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법인격이 등장했다. 베네핏 기업(Benefit Corporation)은 그 예이다. 베네핏 기업법(Benefit Corporation Law)은 2019년 미국 메릴랜드 주에서 시작해 미국 전체로 확산되었다. 이후 이탈리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 페루, 르완다, 우루과이 등으로 퍼져 나갔다. 베네핏 기업은 여러 면에서 기존 기업과 차이가 있다. 이윤(profit)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
[혁신의 목격자] 앞으로 유망한 투자 분야를 누군가 물어본다면

임팩트투자를 하면서 자주 듣는 질문에 “어떤 분야가 앞으로 유망할까요?”가 있다. KT&G 상상서밋에서 ‘사회혁신가로 살아온 10년, 앞으로의 10년을 상상하다’란 주제의 기조강연 후 받은 질문도 유사했다.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투자하다 보면 몇 년에 걸쳐 새롭게 부상하는 주제들을 미리 지켜보는 특권을 누리곤 한다. 반려견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직전 펫테크(Pet Tech)가 동시다발적으로 부상한 적이 있다. 클린테크(Clean Tech)를 넘어 기후테크(Climate Tech) 역시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과 정책 방향이 강화되기 직전부터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정 환경 조건이 존재함을 나타내는 식물을 ‘지표식물’(indicator plant)이라 부르듯, 특정 영역의 혁신 수요가 증가함을 선제적으로 알려주는 이런 스타트업은 ‘지표 스타트업’(indicator start-up)이라 볼 수 있다. MYSC는 올해 총 130억원을 47건의 투자로 나눠 집행했다. 누적으로 총 투자금액은 300억, 그리고 누적 투자건수는 160건에 달한다. 올해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으로 육성한 기업 수는 267개에 달한다. 투자 집행을 하고 직접 육성을 하면서 작년에 이어 올해부터 부쩍 빈도가 많아짐을 느끼는 ‘지표 스타트업’들이 있다. 바로 ‘인구변화’와 관련된 스타트업들이다. 아직 이렇게 부른 적은 없지만 ‘인구테크’(population tech)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일만하다. 이와 관련된 스타트업은 시니어 제반 문제를 해결하는 시니어테크가 주를 이뤘다. 투자한 기업으로는 시니어 맞춤형 1대1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무빙 컴퍼니’와 시니어를 위한 여행 및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포페런츠’ 등이 있다. 하지만 인구테크는 시니어를 넘어서 인구 변화가 가져오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과 수요까지도 포함하기 시작했다. 농어촌 지역에 늘어나는 빈집을 공동소유 가능한 세컨하우스로 탈바꿈해 제공하는 ‘클리’, 1인 주거

신수정 KT엔터프라이즈 부문장
[완벽한 리더 삽니다] 리더들의 에너지 관리법

직장인들이나 리더들과 대화하다 보면 의외로 많이 나오는 질문이 있다. “번아웃을 어떻게 극복하나요?” 또는 “번아웃을 어떻게 예방하나요?” 가 그것이다.  어떤 영상을 보니 한 분이 이런 말을 한다. “소고기를 시켰는데 닭고기가 나온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 나는 그냥 먹는다. 또 누군가 끼어들었다. 그럼 그냥 가게 한다. 이유는 괜스레 별거 아닌 것에 에너지를 쓰지 않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것에 분노하고 에너지를 쓰다 보면 막상 에너지를 써야 할 곳에 쓰지 못한다.” 사람마다 에너지의 크기는 다르지만 그 총량은 한정돼 있다. 에너지가 다하면 ‘번아웃’이 온다. 그러므로 번아웃을 예방하려면 다음 세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①웬만한 데에는 에너지를 쓰지 않고 에너지를 아낀다.②에너지를 빼앗는 사람이나 환경을 멀리한다.③에너지를 주는 환경에 자신을 놓고 에너지를 충전한다. 이는 휴식, 음악, 영화, 야외활동, 독서, 걷기, 모임, 명상 등 사람마다 다르다. 만사에 예민하고 완벽해지려면 에너지가 엄청나게 든다. 사사건건 시비를 가리려다 보면 에너지 소모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다 보면 번아웃되기 쉽다. 에너지를 뺏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 에너지가 빨려 위험하다. 불평불만이 많은 분들은 스스로 에너지가 쉽게 고갈되고 주위의 에너지도 소모한다. 그러므로 불평, 불만, 다툼, 사소한 일에 가능한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그런데 매사 열정적인 리더분들 중 이런 말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나는 번아웃을 겪어본 적이 없어. 매사 열정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가.” 과연 그럴까? 물론 보통 사람의 에너지 총량이 100이라면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200일 수 있다. 그런데도 200이 넘으면

양경준 크립톤 대표
[로컬 패러다임] 로컬을 위한 금융

벤처 투자는 ‘로컬’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벤처 투자의 속성부터 알아야 한다. 벤처 투자는 리스크가 커서 은행과 같은 전통 금융에서는 도저히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 투자하는 걸 말한다. 왜 리스크가 크다고 할까. 첫째, 리스크를 측정하려면 뭐라도 측정할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 신생 회사다 보니 업력도 없고 매출도 없다. 게다가 상당수의 창업자가 사회 경력이 없거나 경력이 있다 하더라도 불과 몇 년에 불과하다. 둘째, 아무도 해보지 않은 사업모델이거나 누가 먼저 시작했더라도 아직 검증이 됐다고 하기엔 이르다. 리스크가 큰 정도가 아니라 측정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벤처투자의 속성을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이라고 하고 벤처투자자들이 ‘사람을 보고 투자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실사람의 됨됨이만 보고 투자하는 건 아니다. 벤처투자자들이 반드시 보는 지표가 있다. 바로 성장성과 수익성이다. 매출 또는 기업가치가 빠르게 (거의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해야 하고 수익성도 커야 한다. 이 두 지표는 시기에 따라 비중이 다른데 시장이 너그러울 때는, 다시 말해 유동성이 풍부할 때는 당장 수익이 나지 않아도 성장성이 큰 기업을 선호하고 시장이 어려워지면 성장성보다도 수익성에 더 무게를 둔다. 그러나 벤처 투자는 둘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두 가지를 다 충족시키지 못하면 벤처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 없다. 그럼 이 기준을 로컬에 적용해보자. 로컬을 비수도권에 위치한 스타트업이 아니라 로컬 아이덴티티를 사업화한 스타트업이라고 한다면, 일단 성장성부터 걸린다. 여기서 스타트업은 초기 창업기업의

나민수 아산나눔재단 선임매니저
[사회혁신발언대] 아시아 벤처 필란트로피에 나타난 세 가지 변화

내년 소셜섹터 시장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까. 그 힌트를 아시아의 사회적가치 창출 지원기관이 한데 모인 ‘아시아 벤처 필란트로피 네트워크(AVPN)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찾을 수 있다. 올해 AVPN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렸다. 여러 세션 가운데 투자 형식으로 자선사업을 펼치는 ‘벤처 필란트로피’ 관련된 세션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된 세 가지 키워드가 있다. 바로 ‘신뢰 기반(Trust based)’과 ‘담대한 필란트로피(Bold Philanthropy)’, 그리고 ‘패밀리오피스(Family Office)’였다. 기부자와 단체 간 신뢰 기반의 필란트로피 벤처 필란트로피에서 기부자와 기부금·보조금을 받는 단체 간의 신뢰를 강조하는 담론이 등장한 배경은 바로 팬데믹이다. 2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은 국제개발과 비영리 사업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국제개발 분야는 기부자와 현지 단체가 지리적으로 나뉘어 있어 국가·지역 간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현지 단체에 현장 사업 운영을 믿고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말레이시아 청년들을 위한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인 ‘아큐먼 아카데미 말레이시아(Acumen Academy Malaysia)’다. 말레이시아 ‘YTL 재단’과 세계적인 비영리 벤처캐피털 ‘아큐먼’은 갑작스러운 팬데믹 때문에 최초의 온라인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글로벌 강사와 참가자 사이 시차, 온라인 교육의 효과성 등 염려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아큐먼의 발자취를 믿고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팬데믹이라는 역경이 필란트로피 영역에서 새롭고 혁신적인 도전을 촉진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 과정에서 얻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축적된 협업 경험들은 기부자와 단체 간의 신뢰를 다지며 필란트로피로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담대한 필란트로피 그동안 임팩트 투자가 보다 역동적이고 과감한

정유미 포포포 대표
[기차에서 일합니다] 뉴욕 지하철, 살아 숨 쉬는 책들의 비밀기지

빅애플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뉴욕의 애플화. 코로나19 이후 4년 만에 찾은 뉴욕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였다. 대중교통은 물론 키오스크 같은 일상의 영역이 애플페이로 움직인다. 타고 있던 지하철 호선이 갑자기 바뀌거나 연착되는 건 여전하지만. 차량 공유 플랫폼 우버, 리프트의 새로운 대항마로 등장한 테슬라 전기차 레벨까지 앱마다 목적지를 입력하고 가격을 비교하다 지쳐 옐로캡을 잡아도 애플페이 결제는 웰컴. 지하철 여기저기서 버스킹하는 뮤지션을 만날 때마다 뉴욕을 실감하지만 그사이 승강장에서 묻지마 떠밀기 같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도 증가했다. 현지인에게 목적지로 가는 방향을 재확인할 때면 ‘Safe Trip’이라는 인사가 뒤따랐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보다 더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었던 할렘 교회의 가스펠은 다음을 기약했다. 그 방향의 지하철에서 탄피를 발견했으니 조심하라는 친구의 조언을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나는 뉴욕의 지하철에서 아이들과 책 읽는 사람들이 자아내는 평화로운 풍경을 꽤 자주 목격했다. 뉴욕의 독서율이 높은 건 지하철 와이파이가 먹통이기 때문이라는 의견에 동의하지만, 가방에 가벼운 페이퍼백 하나 정도는 가뿐히 넣어 다니는 일상이 부럽기만 하다. 화창한 날의 센트럴파크나 길가의 카페에서 종이책을 펼쳐 든 사람을 쉽게 목격하는 것도.  우주 삼라만상이 그러하듯 우리는 관성의 절대적 영향을 받는 존재다. 조금 무겁고 귀찮더라도 가방의 한 자리를 내어준다는 것. 시간의 빈틈에 접어두었던 페이지를 다시 초대하고, 곁에 두고 틈틈이 들여다보면 오래오래 음미하고 싶은 문장이 쌓인다. 읽고 보는 대상이기 전에 책을 대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두서없는 발걸음으로 오래된 서가 사이를 종횡무진하다 고른 건 ‘지금 여기’가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한국 기업은 왜 문제 해결을 위해 연대하지 않을까?

한국 기업들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행동을 하는데 소극적이다. 각자 움직인다. 경쟁 관계이므로 공익을 위한 협력도 어려운 것일까? 문제 해결보다는 기업의 성과나 홍보가 중심이기 때문일까? 집합적 임팩트(Collective impact)라는 개념이 들어왔지만, 스타트업이나 지방자치단체와 협력을 모색하는 정도이다. 산업 내부의 협력이나 기업간 연대는 찾아보기 어렵다. 해외의 ESG 이니셔티브에는 가입하면서 정작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이니셔티브는 거의 없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은 심각한 환경문제 중 하나다. 관련된 한국 기업들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유통업, 음료업, 식품업, 화학산업 등 업종별 공동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기업간 공동행동을 하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인데 말이다. 사회성과 인센티브(SPC) 사업은 SK그룹이 2015년부터 시작했다. 사회적 기업 또는 소셜벤처가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화폐가치로 측정한 뒤 보상한다. 사회성과를 ‘측정’하고 그에 기반해 ‘보상’하므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사회적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데 큰 힘이 된다. SK그룹은 다른 기업들의 참여를 요청하고 있지만 별다른 호응이 없다. 한국의 많은 대기업들은 보호종료아동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 LG전자, 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수많은 기업들이 참여한다. 그런데 보호종료아동 문제 해결을 위해, 근본적으로 분리된 위기아동의 문제를 풀기 위해 기업들이 머리를 맞대고 협력하거나 공동행동을 하는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유니레버는 2008년 오랑우탄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유니레버가 사용하는 팜유 생산과정에서 열대우림과 오랑우탄 서식지가 파괴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팜유는 비누와 샴푸, 초콜릿과 빵 등에 널리 사용되는 기름이다. 팜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