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모금하는 사람들] 정부 보조금의 올바른 관리, 근본 해결책 제시해야

‘눈먼 돈’이라고 일컫는 몇 종류의 돈이 있다. 정부 보조금이나 출연 등을 통해 조성된 공공기금 등이다. ‘먼저 찾아 쓰는 사람’이 임자라는 식이다. 보조금이 주인 없는 돈, 눈먼 돈이라는 얘기는 하루이틀 일이 아닌데 요즘 유난히 정부 보조금에 대해 말이 많다. 드디어 정부에서 문제해결 의지를 표명한 건가 싶다. 핵심은 타이밍과 맥락이다. 하필이면 정권이 바뀐 시점에 조사가 시작되고 적발된 문제를 보면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에 있는 내용들이 부각된다. 정말 순수하게 보조금의 오남용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로 출발했다고 해도 공교롭다. 보조금은 우리 사회의 문제해결을 위한 일종의 정부 투자금이다. 진보와 보수 어느 쪽에서든 접근가능하고, 양쪽 모두 실수와 실패를 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따라서 보조금 문제는 정치 공방이 돼서는 안 되며 사회발전을 위한 올바른 진단과 처방을 가져가야 한다. 종종 보조금이나 후원금의 배분심의와 집행 현장 조사에 가게 된다. 돈이 잘못 쓰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특히 보조금 지급 결정은 대체로 정책 결정에 따라 급하게 이루어진다는 데서 문제가 출발한다. 해당 사업 주무 부처는 정해진 기한 내에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성과관리가 어려운 질적 성과에 집중하는 대신 사업을 드러내놓고 홍보하기 좋은 다수의 취약 대상에게 배분하는 선택을 한다. 약자 중심의 배분원칙이다. 신생조직, 형편이 어려운 대상, 상대적으로 어려운 여건에 있는 소규모 단체들에 우선권이 주어진다. 이러한 곳들은 경험과 역량, 행정 여력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어서 지원이 시급한 한편 늘 투명성 리스크가 높다. 보조금 배분에 약자 우선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껌값과 쌀값, 오해와 편견을 넘어

지난해 농업계는 쌀 가격 때문에 큰 혼란을 겪었다. 쌀이 너무 많이 생산된 게 문제였다. 곡물자급률이 20%도 채 안 되는 나라에서 쌀이 너무 많이 생산되어 문제라는 설명이 쉽게 받아들여지긴 어려웠다. 농민들은 밥 한 공기의 쌀값이 껌값보다 못해졌다고 한탄했다. 2022년 기준 국내 쌀 생산량은 376만t이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쌀이 생산된 1977년 600만t에 비하면 37% 줄어든 수치였다. 반면에 인구는 3600만명에서 5100만명으로 늘었다. 그러니 쌀이 많이 생산돼 문제라는 진단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오히려 쌀 수요가 줄어서 생겨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1인당 쌀 소비량은 1979년 135.6kg으로 정점을 찍은 후 계속 줄어 지난해에는 56.7kg까지 떨어졌다. 쌀이 많이 생산된 게 문제라고 진단했으니 대책은 쌀 생산량을 줄이는 쪽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대안은 태생부터 한계에 부딪혔다. 우리나라는 벼농사에 적합한 기후대이고 농업 투자는 대부분 벼농사를 잘 짓는 데 집중됐다. 1995년 발효된 WTO 협정에서도 쌀 시장을 보호하는 데 집중했다. 이 모두가 쌀이 너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식량안보를 고려하면 논 면적은 유지해야 하고, 콩과 밀 등 대체 작물은 쌀을 생산했을 때의 소득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밀가루를 많이 먹으면서 쌀을 덜 먹게 됐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역시 착각이다. 1인당 밀가루 소비량은 1980년 38.4kg였고, 40년이 지난 지금은 36kg으로 약간 줄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우리와는 다른 방향으로 식단이 바뀌었다. 건조한 사막기후에 맞게 이 나라는 유목과 밀이 주식 작물이다. 1970년대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소득이 높아지자 쌀 소비량이 빠르게

정유미 포포포 대표
[기차에서 일합니다] 지독하게 외롭고 찬란하게 눈부신 엄마라는 세계

경력보유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정서적 자립이라는 미션을 정관에 기재하던 3월을 기억한다. 입춘은 지났건만 겨울을 벗어나지 못한 2019년의 어느 봄. 경력이 단절되고 경제권을 상실했을 때 마주한 건 자본주의에서 돈은 곧 인권, 결정권, 통제권이라는 서슬 퍼런 민낯이었다. 창업과 창간이라는 예상치 못한 인생의 트랙으로 급격한 U자 커브를 그렸다. 엄마의 잠재력에 주목한다는 슬로건에 정작 육아 정보 하나 없는 생경한 엄마의 서사, 사양산업이라는 잡지로 출발한 포포포 매거진이 그 시작이었다.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모순덩어리의 시간이었다.  대체 누가 왜 보는 걸까. 상상으로 그리던 독자를 찾아 책 박스를 이고 지고 북페어에 나가 누군가의 딸들을 만났다. 그들이 한참 책을 들여보다 머뭇거리며 꺼낸 질문엔 대게 호기심과 두려움이 묻어있었다. “엄마가 되어도 제 삶은 망하지 않을까요?”라는 동일한 질문을 꺼내는 다른 얼굴들이 부스를 찾아왔다. 우리가 주고받은 질문은 다음 호 주제가, 존재의 이유가, 성장의 동력이 됐다. 저출산이라는 문제만 있고 여성에 대한 고민은 부재한 현실은 닭 없는 달걀과 같다. 이들에게 한시적인 지원 정책은 20년 뒤에 찾아갈 수 있는 로또 번호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5번은 성평등 달성과 여성 역량 강화를 목표로 한다. 이는 모든 국가의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경제 및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참여와 리더십의 공평한 기회 보장을 포함한다. 유엔여성기구와 유엔글로벌콤팩트는 2010년 ‘성평등을 위한 노력은 더 좋은 기업을 만든다’는 모토로 여성역량강화원칙(WEPs)을 발족했다. 2023년 지금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온통 타인을 돌보는 삶에서 실종된 엄마의 성장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누군가를 차별하는 비즈니스는 온당한가?

노인을 위한 금융은 없다. 어느 기사 제목이다. 은행 점포는 매년 300개씩 사라지는데 노인에게 인터넷 뱅킹이나 앱은 어렵다. 키오스크나 온라인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쇼핑하는 시대가 노인에겐 버겁다. 장애인은 소비자에서 소외된 지 오래다. 자필 서명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각장애인의 대출이 거부된 일, 성인임에도 부모 동반을 요구하면서 발달장애인의 통신 가입을 거절한 사건이 여전히 뉴스에 오른다. 유아차를 끌고 버스를 타거나 편의점에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상버스라도 유아차를 위해 램프를 내려주지 않고, 편의점에는 경사로가 없다. 세계로 눈을 돌리면 더 심각하다. 2020년 기준 7억3300만명은 전기 없이 살고 있다. 20억명에 달하는 인구가 대소변으로 오염된 물을 식수로 사용한다. 기후변화로 물 부족은 심각해져 2050년에는 50억명이 물 부족을 겪을 것이라 한다(UN 세계 물 개발 보고서 2023). 약 2억5800만명의 아동이 학교에 다니지 못한다(유네스코 2020 세계 교육현황 보고서). 의료도 마찬가지다. 2020년 미국의 코로나19 사망률 차이를 분석한 연구를 보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히스패닉 남성그룹의 경우 백인 여성그룹에 비해 27.4배나 높은 수치의 사망률을 보였다. 기업은 상품과 서비스를 판다. 우린 이를 구매해 삶을 영위한다. 그런데 누군가는 소비에서 소외되고 있다. ESG는 소비자의 접근성(Accessibility)을 중요한 문제로 다루고 있다. 물과 전기, 가스, 통신과 같은 영역은 물론이고, 기업이 일반적으로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에 누구든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이, 장애, 성, 국적과 인종,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 EU의 소셜 택소노미에서도 재화 및 서비스에의 접근권을 중요한 기준으로 다루고 있다. 양질의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
[혁신의 목격자] 어느 탈북민 창업자의 부고

임팩트투자를 하며 울음을 터뜨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6월 셋째 주 토요일 오후, 소셜벤처 제시키친(Jessie Kitchen)을 설립한 고 제시킴(김정향) 대표 영정 앞에서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안경을 벗고 흐르는 눈물을 연신 훔치며 제시키친의 임팩트 투자자라는 사실에 나는 슬픔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임팩트 투자자가 놓쳤던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인연은 아산나눔재단이 통일한국 비즈니스를 주도할 탈북 창업가를 육성하기 위해 마련한 ‘아산상회’(ASAN SANGHOE)에서 예비창업가와 액셀러레이터로 만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대학교 3학년이었던 제시킴은 ‘한반도를 잇는 음식! 잃어버린 한식의 반쪽을 소개한다’라는 비즈니스 컨셉으로 국내외 누구나 친숙한 음식을 통해 통합과 연합의 정신을 실현하고자 했다. 때마침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와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에서 만난 분들과 ‘손실이 발생해도 괜찮은’ 윤리적 투자(ethical investing)를 처음 시도하기 위해 개인투자조합을 만들었던 때였다. 탈북민 여성 창업가가 시작한 제시키친은 국내 최초의 윤리적 투자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2020년 10월, 창업자와 동일한 수준의 위험을 감내하겠다는 의미로 스타트업 투자에서는 흔하지 않는 보통주(equity) 투자를 진행했다. 제시킴은 탈북민 여성 창업가가 임팩트투자를 받은 국내 첫 사례라며 너무나 행복해했다. 다문화가족이라 통칭하는 결혼이민자·귀화자가 30만명이 넘는 것과 비교해, 탈북민은 현재 3만명 내외로 창업생태계 관점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긴 어렵다. MYSC에 탈북민 창업가 육성과 임팩트투자는 2011년 설립 때부터 주요한 영역이었다. 제시키친을 포함해 탈북민 사회적기업 1호였던 ‘메자닌아이팩’, 남북한 청년들이 함께 사회적 경제를 실현하는 ‘요벨’ 등 3개 기업에 보통주 투자를 진행했다. 조성하려 한 ‘탈북민 창업가 임팩트투자 펀드’는 출자자를 확보하지 못해 한 걸음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3개 기업 투자는 안타깝게도 현재까지의 탈북민 관련 스타트업에 대한 국내 최다 기록이다. 장례식이 끝나고 지난주 복잡한 마음 그대로 아시아 최대의 임팩트투자 네트워크 AVPN 글로벌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전 세계 1300여 명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모여 3일간 임팩트투자의

양경준 크립톤 대표
[로컬 패러다임] 수도권을 향하는 청년, 수도권을 떠나는 청년

지방대 소멸은 청년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 중 하나다. 과거에는 지방 명문대로 불리는 학교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역 인구가 줄어서 혹은 실력이 없어서 이 대학들이 소멸 위기를 겪는 게 아니다. 전적으로 학생 수가 줄기 때문이다. 입학생도 줄어들지만, 설령 입학했어도 졸업 전에 떠나는 학생이 많다. 이유는 지방 대학을 나와서는 기회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회심리학자 매슬로우에게 대한민국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몰려가는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하면 ‘생존의 욕구’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한 욕구의 발동으로 청년들은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결혼도 하지 않으며, 결혼해도 출산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존조차 담보할 수 없는데 가족과 후세의 생존까지 생각하는 건 사치다. 대세가 이러함에도 언젠가부터 탈(脫)수도권하는 청년들이 나타났다. 제주의 로컬 콘텐츠를 깊이 있게 담아내는 매거진 ‘제주iiin’을 창간한 고선영 대표는 제주 출신이 아니다. 여행 전문기자로 전 세계를 누비던 그녀는 어느 날 방전(放電)됐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서 도피하듯 제주로 내려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서 자신만의 여행 전문 매거진을 만들었다. 방전된 그녀를 제주가 다시 충전(充電)해준 것이다. 이전보다 더 달릴 수 있는 수준으로 말이다. 현대카드와 라인에서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하다 제주에서 서핑을 테마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베러댄서프’를 만든 김준용 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그에게도 어느 날 번아웃이 왔고, 지칠 때마다 재충전을 위해 찾던 제주에서의 서핑을 떠올리며 아예 제주로 내려온 것이다. 그런가 하면 지치지 않고서도 제주에 내려온 청년들도

신수정 KT엔터프라이즈 부문장
[완벽한 리더 삽니다] 질문만 잘해도 리더 역할 잘할 수 있다

벤처를 창업해 수년간 경영하고 있는 한 분이 질문한다. “초기에는 제가 영업, 마케팅, 기술 혼자 다 했습니다. 이제 각 조직에 저보다 잘하는 분들이 리더로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제가 가르치거나 도울 것이 별로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 나는 답했다. “전문성을 돕는 것만이 리더의 역할은 아니죠. 전문성이 더 높지 않아도 각 책임자의 한계를 스트레치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요. 각 책임자는 해당 조직의 목표와 한계에 갇혀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가 묻는다. “어떻게 스트레치하게 돕죠?” 나는 답했다. “질문을 하면 되죠. 예를 들어, 새로운 시장을 뚫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현재 수익을 점프업 시키려면 어떻게 할지? 어떤 고객을 타겟으로 하고 어떤 전략으로 접근할지? 무엇이 가능할지? 등 질문을 통해 자극주고, 그들이 자기 생각을 더 확대하도록 돕는 거죠.” 우리는 리더가 뭔가 서브리더나 구성원에게 가르칠 게 있어야 한다는 오해가 있다. 더 높은 전문성과 경험으로 리딩해야 권위가 선다고 착각한다. 물론 초기는 리더가 모든 면에서 최고 지식 수준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이 커지는데도 여전히 리더가 영업전문가에게 더 영업을 잘하는 방법을 가르친다든지, 마케팅 전문가에게 마케팅하는 방법을 가르친다든지 기술전문가에게 코딩 잘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여긴다면, 그 조직은 리더의 전문성 수준 안에 머물게 된다.  전설적인 축구 감독 호세 모리뉴는 이렇게 말한다. “코치가 할 일은 선수에게 축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호날두에게 프리킥 차는 법을 가르칠 수 없다.

정유미 포포포 대표
[기차에서 일합니다] 로컬 브랜딩의 그늘

“플레이어가 없다.” 지역에서 무언가를 시작할 때 입 모아 얘기하는 것은 인프라의 부족이다. 일할 사람과 자원을 연계할 구심점을 찾아 헤매는 사이 기획 부동산은 빠른 속도로 ‘0리단길’을 만들어 원주민을 밀어낸다. 팬시한 카페가 늘어선 관광지는 본연의 매력 대신 도시의 위용을 닮아간다. 자연스레 원도심의 할렘화에도 가속도가 붙는다. 지역의 국립대학과 강소대학도 베드타운으로 기능하기는 마찬가지. 이쯤 되면 외지인에 대한 경계와 텃세가 십분 이해된다. 물론 지역에 정착하기까지 인식의 차이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한번은 사회적기업 피칭 현장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 장애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이 아이들이 커서 자립할 수 있는 ‘카리타스 작업장’을 만들겠다는 목표에 자식 앞세워 장사한다는 심사평이 오갔다. 건설적인 비판이라 포장할 수 없는 지역의 단면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로컬이 미래다, 경쟁력이다’라는 슬로건이 유행하고, 지자체의 로컬크리에이터를 양성하는 사업이 성행 중이다. 지역의 가능성을 조명하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 다만 수십에서 수백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배정된다 한들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사업을 맡을 인력이 없어 국고로 돌려보내는 일을 왕왕 목격한다. 예산을 사수하기 위해 대게는 외부의 전문인력을 공수하는 것으로 결론이 좁혀진다. 허나 잠시 머물며 로컬을 맛보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새롭고 낯선 시도를 향해 쏟아지는 관심은 벚꽃비 내리는 봄날처럼 찰나에 불과하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명확한 관점과 의지만이 기나긴 겨울을 나는 불쏘시개가 된다. “우리가 살아갈 미래는 우리가 개척해야죠!” 이찬슬 스픽스 대표는 가장 작고 소외된 곳을 찾아 목포역에서 1시간 떨어진 섬마을 안좌도로 들어갔다. 그의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공급망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RE100은 재생에너지로만 전력을 조달하겠다는 기업들의 글로벌 이니셔티브다. 자발적 운동이며 캠페인이다. 재생에너지로만 전력을 쓰도록 강제하는 법률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등이 가입했다. 재생에너지 비율이 낮고 가격이 비싼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왜 RE100에 가입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글로벌 공급망의 거센 요구 때문이다. 2020년 7월 애플은 ‘2030년까지 10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놀라운 것은 자체 비즈니스뿐 아니라 공급망과 제품 생애주기 전반에서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협력업체에 RE100 달성을 강력히 요구했다. 애플의 CEO 팀 쿡은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 연못 안의 물결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원료 채취부터 폐기까지 제품의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환경적인 영향을 따지는 세상이 됐다. 전 생애주기 평가(Life Cycle Assessments)와 제품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을 추적하는 것이다. RE100은 재생에너지의 수요를 만들어 에너지 시장과 산업을 바꾸고, 국가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급망을 통한 변화는 환경문제만이 아니다. 우리가 먹는 초콜릿에 아동의 눈물이 담겨 있다면? 2021년 미국 워싱턴DC 법원에는 코코아 농장의 아동노동 소송이 제기됐다. 원고는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노동자들, 피고는 네슬레, 허쉬, 카길 등 식품회사들이었다. 원고들은 16세 이전부터 코코아 농장에 끌려가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했는데, 피고들이 자신의 공급망이며 영향력이 지배적인 이들 농장에서 일어난 아동착취를 묵인하고 이득을 취했다고 주장했다. 2022년 6월 법원은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피고 회사와 그들이 일한 농장 사이에 ‘추적 가능한 연결’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네슬레는 소송이 진행되는 2022년 1월, 코코아 농장의 아동노동을 없애기 위한 획기적인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모금하는 사람들] 기부금 경제 개혁, 아직 갈 길이 멀다

2010년대 중후반 공익에 대한 사회 믿음을 깨뜨리는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했다.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 특혜, 새희망씨앗과 어금니아빠 사건 등 공익 모금으로 포장된 사기 행각들은 공익활동의 순수성을 훼손하기에 충분했다. 때마침 공인회계사들의 회계 투명성 문제 제기는 공익법인 관리·감독 기준 강화에 명분이 됐다. 몇 년간 기획재정부는 공익법인 회계기준을 만들고 기부금 관리기준을 통일시키면서 공익 분야에 회계 투명성을 요구했다. 이에 단체들은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도 경각심을 가지고 호응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 회계 투명성과는 별도로 기부금 모금에도 의혹이 불거졌다. 이번에는 국회에서 행정안전부 소관인 기부금품법 개정을 통해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행법이 기부금 투명성을 규율하기에 충분치 않아 규제를 높이자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매우 타당하게 들린다. 그렇지만 모금을 해본 이들은 이런 접근이 시대착오적이며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다. 우물가서 숭늉 찾는 격이라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모금은 숫자를 다루는 회계와는 달리 ‘다양하고 복합적인 현장 상황을 수반하는 활동’이라서 하나의 잣대로 옳고 그름을 판별하기 어렵다. 오늘의 비영리 활동은 그 옛날 가난했던 나라에서 먹고 사는 일을 염려하던 시절의 모습과 다르다. 활동 분야와 내용, 종사자 인구, 그리고 파급효과는 엄청나게 확장했다. 국가 경제에서 공익재정의 비중도 상당해졌고, 지역사회의 조직화된 활동 주체이자 정부와 기업의 파트너로서 날로 전문화되고 있다. 이 모든 활동을 뒷받침하는 기부금 모금은 기업들의 마케팅 활동과도 유사한 것이라서 ‘속임수’가 아니라면 거의 모든 활동이 다 활용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면 활동과 전화, TV나 라디오, 신문과 매거진,

김정빈 수퍼빈 대표
[쓰레기공장 이야기] 재활용 사업에도 디지털 첨단기술을 허하라

2023년 5월 25일. 대한민국은 누리호 3차 발사에 성공하면서 우주강국 G7에 합류했음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리고 전기차로 유명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대표는 자율주행 시대를 눈앞에 뒀다고 공언합니다. 또 우리는 스마트폰이라는 디지털 장비 하나로 건강, 통신, 음악, 영상, 금융서비스와 쇼핑까지 해결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종종 폐지를 줍는 할머니, 공병을 모으러 다니시는 할아버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들은 작은 카트나 손수레를 끌며 직접 재활용품을 수집합니다. 또한 우리도 가정에서도 분리배출에 정성을 다합니다. 도시 곳곳에는 고물상이 있고 그곳에는 다양한 형태의 고철, 책이나 종이박스 등 폐지, 망가진 전자제품, 사용하지 않는 화분 등 우리 생활에서 나온 수많은 폐기물이 쌓여 있습니다. 좀 더 재활용품을 따라서 들어가 보면 재활용선별장이라는 곳도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많은 사람이 선별라인에서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재활용품 더미 안에서 진짜 재활용될 것을 손으로 골라냅니다. 하지만 이렇게 모인 재활용품들이 결국 기대하는 것처럼 유용하게 재활용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재활용이 잘 되려면 결국 재활용품을 활용한 제품으로 시장에서 돈벌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갖고 있어야 하며, 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데 사용하고 싶은 재활용품을 수급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계를 산업의 공급망이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의 문명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선형경제에서 순환경제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재활용의 가장 큰 변화는 “재활용이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의외로 잘 모르는 지속가능성에 대해

“OO기업은 ESG 지향점을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OO기업은 사업 분야의 글로벌 리더를 넘어 어떠한 위기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글로벌 톱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ESG 경영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위 두 문장은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어느 기업의 지속가능경영과 ESG(환경적, 사회적, 거버넌스) 경영의 방향성을 설명하고 있는 표현이다. 지속가능경영을 설명하는 문장에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라는 설명이, ESG 경영의 목표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는’이라는 문장이 포함돼 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다는 것과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인가? 최근 ESG가 유행하면서 이처럼 지속가능성, 지속가능경영이라는 단어도 자주 접할 수 있게 됐다. 기업들은 ESG 경영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추구한다는 홍보를 하고 있고, 시민사회에서도 지속가능한 생활을 위해 다양한 ESG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면 지속가능성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이야기하는 지속가능성은 도대체 무엇의 지속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는 매우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이지만 대부분 큰 고민 없이, 구분 없이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기업의 산업활동 및 인간의 생활활동을 통해 발생시킨 물질은 대기, 물, 토양 등을 오염시켜 왔다. 공장 등 제조시설에서 배출되는 화학물질과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 폐기물의 불법적인 처리 등은 환경을 심각하게 오염시켰고, 무분별한 인류의 소비 패턴은 물, 식량, 자연자원 등 여러 분야에서 지속가능한 자원이용에 대한 제한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기후변화는 지구상의 자연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며, 인류의 생존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또한 양극화, 차별, 안전문제, 사회적 불평등은 공정한 경제와 정치적 시스템을 방해하고 지속가능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