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에 동행한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심장질환을 앓는 소년을 위로하는 사진이 공개되며 이목을 끈 적이 있다. 대통령실은 ‘심장병 수술을 받은 아동들을 격려하기 위한 방문’이라고 설명했지만, 해당 사진은 ‘빈곤포르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빈곤포르노(Poverty porn)란 ‘신문 판매, 기부금의 증대 또는 필요한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목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상황을 착취하는 모든 유형의 미디어’를 뜻한다. 사진에서 시작된 논란은 빈곤포르노 vs 국위선양이라는 구도로 정당 간 논란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국제개발협력 청년활동가들의 커뮤니티인 ‘공적인 사적모임’은 김건희 여사와 대통령실을 규탄하는 서명을 추진했다. 2만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하며 우리 사회에 빈곤포르노 이슈에 대해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
◇ 착취를 통한 동정심의 문제
‘빈곤포르노’ 개념이 대두된 1980년대는 국제적으로 아프리카 아동의 기아 실상을 알리는 캠페인이 많았다. 가슴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깡마른 아이 얼굴에 파리들이 달라붙은 장면이 등장했다. 그런 캠페인은 단번에 수천만~수억 달러를 모금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많은 국제개발협력의 현장에서 그런 이미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됐다. 내로라 하는 국제 비정부기구들은 앞다투어 처참한 빈곤 속에 놓인 아이들을 사진에 올렸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많은 모금기관도 덩달아 빈곤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사진 속 아이들은 아프고, 슬프고, 배고팠으며, 불쌍했다.
그렇다면 왜 많은 비영리기관은 왜 빈곤포르노를 통해 모금을 했을까? 그 배경에는 모금기관의 ‘성장주의’가 숨어있다. 자선을 위해 많은 기부가 필요하다는 명분은 ‘모금 규모의 성장’이 가장 큰 미덕이 되도록 면죄부를 줬다. 또한 많은 대중은 동정심을 자극하는 한 장의 사진에 더 크게 반응했다. 많은 모금기관이 독배를 마시듯 그렇게 성장해 왔다. 한국사회 기부규모 성장의 이면에는 착취의 역사가 숨어 있는 것이다.
많은 기부를 끌어낸다는데 뭐가 문제인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만 멀리 내다본다면 빈곤포르노의 위험성에 우리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빈곤포르노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감춘다는 것이다. 최근 다양한 사회문제들은 난제가 되고 있다. 사회구조가 고도화된 만큼 빈곤문제의 기저에는 쉽게 해결되지 못하는 구조적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빈곤포르노를 통해 ‘배고픔’으로 단순화된 빈곤은 문제를 단순화하며 대중들의 인식을 문제의 본질에서 멀어지게 한다.
병든 부모와 동생을 돌보며 일찌감치 가장이 되어야 했던 지방에 사는 한 아이에게는 빈곤을 넘어서는 무거운 사회문제가 숨어있다. 건강보험의 급여항목의 확대, 노동자의 고용 보장, 주거문제를 비롯한 지방소멸, 기초생활보장제도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가 처한 모든 문제의 총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아이의 눈물 맺힌 얼굴이 부각된 한 장의 이미지는 이 모든 불평등한 사회 구조와 제도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납작하게 단순화한다.
◇ ‘사회적 책임’에 기부하는 시민 인식에 발맞춰야
다행히 최근 빈곤포르노에 대한 자성의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많은 비영리기관들은 빈곤포르노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개선의 노력을 보인다. 한국에서도 2014년에 이미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는 국내외 주요 국제개발기구들과 ‘아동권리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한 바 있다. 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적인 사적모임’과 같은 청년활동가 커뮤니티는 빈곤포르노 종식을 위해 지속적 활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모금의 주체인 비영리단체 스스로 늘 질문해야 한다. 진정성과 윤리성을 지키면서도 신뢰를 얻을 수 있는지. 모금목표 달성을 위한 지름길을 놔두고 먼 길을 돌아갈 수 있는지. 리더십의 용기와 결단도 선결 조건이다. 북극성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늘 떨림을 갖듯, 우리가 하는 한마디의 메시지와 사진 한 장이 미칠 나비효과를 고민해야 한다. 스스로 경계에 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 복잡한 얘기를 덮어두고라도 한번 자신에게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세상 어느 누가 자신의 가장 취약하고 굴욕적 순간을 노출하며 도움을 받고 싶을까?”, “누가 함부로 나를 그렇게 해도 된다고 허락했는가?” 도움이 필요한 대상의 삶을 한 인격으로 존중한다면 우리는 그토록 쉬운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아름다운재단은 최근 기부문화에 대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아름다운재단에는 우는 아이가 없습니다”로 시작하는 이 캠페인은 우리가 알면서 외면했던 모금단체들의 빈곤포르노에 대해 함께 각성하자고 이야기하며 건강한 기부문화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2024년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의 기빙코리아 조사 결과 시민들이 꼽은 기부하는 이유 1위는 ‘사회적 책임감’이라는 응답이었다. ‘동정심’이라는 응답을 제친 것은 벌써 수년 전 일이다. 기부를 통해 사회변화에 동참하는 우리 시민들의 인식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 대중들에게 ‘우는 아이 사진 한 장’을 보여주는 대신, 조금 더 무거운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은 현재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가?’
‘그 문제는 왜 생겨났으며,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당신은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
당장 기관의 이익이 아닌 기부의 생태계와 미래까지 바라볼 수 있는 모금단체들의 넓고 담대한 시야가 필요한 때다.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가야 할 바른길이다.
김진아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
필자 소개 아름다운재단에서 15년간 근속하고 2023년 내부선발 1호 사무총장이 되었습니다. 공익활동을 지원하고 건강한 기부문화를 확산하는 아름다운재단의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도록 전략적 도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난제’가 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다자간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문제의식 아래 거버넌스에 대한 연구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