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기부 트렌드 결산<2>
모금의 틀을 바꾸는 비영리 단체들
2024년, 기부 문화는 더 이상 동정심에 머물지 않았다. 올해 기빙코리아 발표에 따르면 사람들이 기부하는 가장 큰 이유로 ‘사회적 책임감(32.1%)’이 꼽혔다. 기부를 시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책임으로 여기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2017년 이후 꾸준히 기부 동기 1위를 기록하며 전통적 기부 관념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와 함께 모금 분야에서도 변화가 감지됐다. 동정심 유발에 의존하지 않고 사회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는 ‘임팩트 기부’가 주목받았으며, 빈곤 포르노로 대표되는 전통적 모금 광고의 관행을 거절하는 캠페인도 이어졌다.
◇ ‘우는 아이’ 없는 아름다운재단 모금 캠페인
지난 11월 말, 아름다운재단은 ‘아름다운재단에는 우는 아이가 없습니다’ 캠페인을 시작했다. 동정심을 유발하는 이미지를 거부하고, 기부의 본질을 되짚겠다는 의도를 담았다.
가상의 모금 광고에서는 찬밥과 김치로 한 끼를 해결하는 할머니의 뒷모습부터 갓난아이를 업고 학교에 가지 못한다는 어린이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는 전통적인 모금 광고에서 흔히 쓰이는 장면이다.
아름다운재단은 이와 같은 전통적인 모금 광고의 관성을 거부하고 있다. 동정심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기부 대상을 묘사하는 광고는 이웃의 어려운 현실을 알리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기부 대상을 단순히 동정의 대상으로 고정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름다운재단은 2001년 설립 당시 정관에 자선적 시혜 대신 긍정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만드는 올바른 나눔문화를 확산하겠다고 명시했다.
이번 ‘아름다운재단에는 우는아이가 없습니다’ 캠페인 게시글에 한 시민은 “인위적으로 동정심을 유도하는 우는 아기보다, 동등한 입장에서 타자를 바라보는 웃는 아기 모습이 더 마음에 든다”고 공감을 표했다. 이어 “같은 시대를 사는 동시대인으로서, 같이 잘 살고 싶은 마음으로 기부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열여덟 어른 캠페인은 재단의 모금 철학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2019년에 시작된 이 캠페인은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의 존재를 알리면서 이들을 안타까운 청춘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청년 당사자들과 함께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며, 건강한 자립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 곧장기부, 투명성과 임팩트를 결합하다
기부 문화의 변화는 SK행복나눔재단의 기부 플랫폼 ‘곧장기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0월, 곧장기부의 누적 기부금이 론칭 5년 만에 30억 원을 돌파했다. 곧장기부는 기부자가 낸 금액을 1원도 빠짐없이 100% 기부처에 전달하며, 투명성을 앞세운 플랫폼이다.
올해 곧장기부는 월평균 1억 원의 모금액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SK행복나눔재단은 정기기부 제도의 도입이 이 같은 성장을 뒷받침했다고 설명했다. 2021년 정기기부 제도를 도입한 이후 참여자가 꾸준히 늘어나 현재 전체 기부자의 약 15%가 정기기부에 동참하고 있다. 이들의 월평균 정기기부액은 약 5000만 원에 달한다.
특히 지난해부터 시작한 ‘임팩트 기부’는 하나의 사회문제에 집중해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기부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첫 프로젝트로 시각장애 청소년의 학습환경을 지원하기 위해 점자 문제집을 제작했고, 이후 ▲뇌병변 장애인 맞춤 운동프로그램 ▲특수 마우스 지원 ▲소방관 심리상담 프로젝트 등 8개의 임팩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약 1억 5000만 원을 모금했다.
◇ 빈포선셋, 전통적 모금 방식에 질문을 던지다
전통적 비영리 모금 방식을 비판하는 애드보커시 활동도 있었다. 올해 8월 초 시작된 ‘빈포월드컵’ 캠페인은 모금 광고 중 자극적으로 동정심을 유발하는 영상을 선정해 투표하는 형식으로, 빈곤 포르노 문제를 공론화했다.
이 캠페인은 국제개발협력 청년 커뮤니티 ‘공적인사적모임’의 프로젝트 그룹 ‘빈포선셋’이 주최했다. 빈포선셋은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월드비전 ▲월드쉐어 ▲컨선월드와이드 ▲플랜코리아 ▲함께하는 사랑밭 등 7개 NGO가 빈곤 포르노 의심 영상을 모금 광고에 활용했다고 지목했다. 빈포선셋의 NGO 공개질의 당시 굿네이버스, 플랜코리아 등 대형 단체들은 침묵을 지켰다.
빈포월드컵에 대한 더나은미래 보도 이후, 현장에서는 캠페인에 대한 반론도 있었다. 월드비전 관계자는 “해외 아동 중에는 모금 영상에서 묘사된 것처럼 실제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며 “오히려 비참한 현실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역연출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2024년 비영리 현장은 기존 모금 방식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새로운 시도가 주목받은 해였다. 투명성과 임팩트를 중시하는 기부 모델이 전통적 방식을 재정립하며, 기부 문화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