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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돌아왔다. 지난해 11월 6일 미국의 제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트럼프가 지난 1월 21일 공식 취임했다. 바이든의 사퇴, 트럼프의 유세장 피습, 해리스의 추격 등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사건을 지구촌 모두가 지켜봤다.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두 후보의 기후 정책은 극명한 온도차를 보였다. 여론조사에서는 해리스와 트럼프가 백중세를 이루는 것으로 점쳐졌지만, 결과는 312 대 226. 예상보다 트럼프가 여유 있게 승리했다.
기후 부정론자 트럼프의 귀환을 반길 수는 없었다. 그가 8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보였던 반기후적인 행보를 모두가 기억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번에는 그 간의 학습효과를 바탕으로 반기후 정책을 폈으면 더 폈지 절대로 덜 할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상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 미국이 트럼프를 선택한 이유를 살펴보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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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트럼프를 선택한 이유
트럼프 당선의 배경을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 요인이 꼽힌다.
첫째, 인플레이션 문제다. 코로나 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며 물가가 많이 올랐고, 바이든의 경제 정책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 그린뉴딜 정책에서 출발한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이 바이든 정부의 성과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체감도는 낮았다.
둘째, 민주당 지지층의 이탈이다. 바이든 정부가 이스라엘을 적극 지지하면서,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진보층과 대학생들이 등을 돌렸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이었던 이들이 투표를 포기하거나 다른 선택을 하면서 트럼프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셋째, 해리스의 차별화 전략 실패다. 바이든이 사퇴한 이후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문제지만, 유권자들에게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바이든 정부의 정책에 불만을 가진 이들에게 설득력 있는 대안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표를 끌어오는 데 실패했다.
결국 트럼프의 개인적 문제와 범죄 이력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정부 정책 실패 결과, 유권자들은 다시 트럼프를 선택했다.
◇ ‘힐빌리의 노래’가 보여준 현실
트럼프의 당선은 단순히 그 개인의 정치적 역량 때문이 아니라, 미국 사회가 처한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트럼프의 러닝메이트인 J.D. 반스 부통령의 자서전 ‘힐빌리의 노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스는 미국 오하이오 미들타운 출신으로, 이혼 가정, 마약 중독, 가정폭력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로스쿨을 졸업하고 법조인, 벤처투자자로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다. 2016년 출간된 그의 자서전 ‘힐빌리의 노래’는 베스트셀러가 되며 그는 유명세를 얻는다. 여기서 ‘힐빌리’는 미국 중부 애팔래치아 산맥 주변의 가난한 백인을 비하하는 말이다. 영화로도 제작된 그의 자서전은 미국 중부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의 몰락한 백인 노동자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J.D 반스와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트럼프가 얻은 것이다. 러스트 벨트는 말 그대로 ‘녹슨 지대’다. 한때 미국의 철강·자동차·중공업이 번성했던 곳이었지만, 1960년대 이후 석유파동과 산업 구조 변화로 급격히 쇠퇴했다. 이 지역 주민들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에 희망을 걸었다. 그가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제조업을 부활시키겠다고 약속하면서 이 지역의 백인 노동자들은 다시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바이든 정부의 IRA 정책도 러스트 벨트를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기차 보조금을 확대해 자동차 산업을 살리고, 지역 전환을 유도하려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효과가 충분히 체감되지 않은 상태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것이다.
◇ 한국에도 ‘러스트 벨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철 산업으로 먹고 사는 포항시가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다. 작년 11월 포스코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이 가동 중단되었고, 현대제철도 포항 2공장 폐쇄까지 갔다가 현재는 축소 운영되고 있다. 그 여파로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지역 상권은 더욱 위축되고 있다.
한국에도 ‘러스트 벨트’와 ‘힐빌리’는 이미 존재한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만약 조기 대선이 펼쳐진다고 해도 이 문제가 주목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머지 않은 미래에 분명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무더기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파리협정 탈퇴를 공식화했다. 앞으로도 그는 기후 부정론을 앞세워 화석연료 규제를 철폐하며, 기후위기 대응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가 ‘사업가 기질’을 발휘해 친환경 정책을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산업 경쟁력이 ‘저탄소 기술’에 강점이 있다면, 트럼프는 이를 ‘미국 우선주의’와 연결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탄소국경세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찬성하는 ‘청정경쟁법안(CCA)’이 바로 그것이다. 그를 지지하는 ‘힐빌리’에게 도움되는 일자리가 ‘친환경 일자리’라면 기후 부정론을 주장하는 그의 신념도 바뀌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트럼프도 대통령이 두 번째지만, 우리도 그를 두 번째 겪고 있다. 우리는 끝내 길을 찾을 것이고. 그 해답은 ‘힐빌리의 노래’에 있다.
김민 빅웨이브 대표
필자 소개 ‘당사자에서 배제되고 파편화된 청년들이 기후위기의 대응의 주체가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사단법인 빅웨이브의 대표입니다. 외계의 위협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어벤져스’를 모으는 것과 같이, 더 많은 역량 있는 청년들이 성장하여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온전히 목소리 낼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NGO, 국회, 정부 위원회 등 다양한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사회문제를 기후위기 관점에서 바라보고 기후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기후 유니버스)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