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간절함이 있는가

얼마 전 어느 단체가 주관하는 ESG 포럼의 발제자로 참여해달라고 요청 받았다. 공공기관에 재직하다 보니 일정이 자유롭지 못한 부분도 있고, 행정감사와 내년 예산심의도 앞두고 있어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거절했다. 연말이면 조직마다 한 해 사업을 정리하고, 성과를 대중에게 공유하는 자리를 갖는다. 하루가 멀다하고 다양한 주제로 세미나와 포럼, 컨퍼런스가 줄을 잇는다. 이러한 행사의 단골 주제 중 하나로 여전히 ESG가 주목받는다. 환경과 에너지, 다양성과 포용성 등도 인기가 있다. 수년 전 우리 사회에 광풍을 일으킨 ESG 이슈만 보더라도 이 정도의 관심과 지지, 교육과 지원이 있었으면 지금쯤 가시적인 성과가 몇 개씩은 나올 법도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은 친숙한 단어인 ‘콜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가 스탠포드사회혁신리뷰(SSIR)에 소개된 건 2011년이다. 마크 크레이머(Mark Kramer)와 존 카니아(John Kania)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서 다양한 분야의 조직이 참여해야 사회적가치의 파급력이 강해진다며 콜렉티브 임팩트를 제안했다. 이를 위한 다섯 가지 협력 방법은 ▲공통의 주제 ▲측정체계 공유 ▲상호강화 활동 ▲지속적인 의사소통 ▲핵심운영조직 등이다. 그러면 전 세계가 관심을 갖고 있는 유엔지속가능발전목표(UN SDGs)나 기업의 ESG 이슈 또한 콜렉티브 임팩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민간기업뿐 아니라 공공과 시민단체까지도 구호처럼 외치는 ESG 이슈도 콜렉티브 임팩트 방식을 적용한다면 더 큰 사회적가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이 콜렉티브 임팩트의 다섯 가지 방식을 이야기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선행조건(Pre-conditions)이다. 진정한 협력을 통해 사회적가치를 확대하기 위해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생물계절 변화와 식량의 미래

11월에 맞는 여름 날씨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살아온 인생이 길든 짧든 낯선 경험일 수밖에 없었다. 극한기상이 주는 당황스러움은 일회성이 아니라 앞으로 자주 겪게 될 기후 변덕의 일부에 불과하다. 4월 초에 갑자기 찾아온 무더위를 지날 때만 해도 약간의 희망을 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공포영화처럼 어디서 기후 괴물이 뛰쳐나와도 이상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마음을 놓지는 말자. 이제 겨우 도입부가 시작되었을 뿐이다. 너무 이른 더위와 너무 늦은 더위는 선진국 시민들에게 냉방기 덮개를 다시 벗겨야 하는 번거로움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대부분 생물에게 이런 변화가 날벼락에 가깝다. 예민한 생물시계를 가진 과수와 부지런한 꿀벌은 계절 변동 범위를 벗어난 무더위와 연이은 냉해의 습격을 고스란히 받았다. 생물계절의 이상은 농업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과일의 생산량을 많게는 40%까지 떨어뜨렸고 쌀 생산량마저 줄어들 전망이다. 육상 식물종의 약 40%는 희귀종으로 분류되는데, 기후변화는 이 분류군의 식물종을 멸종 위기로 내몰고 있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적합한 기후대로 서식지를 옮겨야만 하는데, 식물종은 10년마다 고도는 11.0m, 북으로는 16.9km를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작물은 더 빠르게 이동한다. 생존 한계보다 품질하락과 생산성 감소로 인한 경제성 한계에 먼저 도달하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 산지가 점점 더 고지대로 옮겨가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제주에서 재배되던 아열대 작물이 남해안을 지나 남부지방으로 북상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극한 기상이 농산물 수확량을 크게 줄이기는 하겠지만 버틸 수는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 투자로 인해 증가한 농업 생산성은 기후변화로 상쇄되어 투입비용 증가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은 정체될

정유미 포포포 대표
[기차에서 일합니다] 인어도 환영하는 화장실

항공사 예매 창의 Gender 선택 카테고리에서 스크롤을 내리다 주춤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으로 넘어가는 비행기를 예매하는 중이었다. F-Female, M-Male, X-Unspecified(명시(지정)되지 않은), U-Undisclosed(밝혀지지 않은, 비밀에 부쳐진). 낯선 질문으로부터 변화의 기류가 피부에 와닿았다. 현지에서 “May I pronoun?”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인칭 대명사(Personal Pronoun)를 “어떻게 불러 드릴까요?”라는 의미였다. 처음엔 알아듣지 못했고 이후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점에서 팔던 She/Them, He/They 같은 서로 다른 인칭 대명사가 공존하는 배지의 뜻을 그제야 이해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SNS 프로필의 인칭 대명사를 유심히 보게 됐다. 생물학적 상태와는 별개로 불리기를 원하는 지칭 명사를 물어보는 게 에티켓이 됐다. 레스토랑, 학교를 비롯한 미국의 공공장소에서 성중립 화장실을 심심찮게 발견했다. All gender restroom, Gender neutral restroom 등 여러 이름으로 표기되고 있었다. 심지어 구글에서는 남성, 여성, 임산부, 해적, 인어, 배트맨, 외계인, 운영 체제인 안드로이드 등 여러 아이콘을 더해 공간의 특성을 드러냈다. 인간의 가장 주요한 또 내밀한 영역인 동시에 역사에서 성별과 인종을 기준으로 가장 오래 차별받아 온 공간. 화장실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여러 생각이 머리를 헤집었다.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상태일까 아니면 이도 저도 모두 ‘나’라는 여러 정체성이 혼재된 결정체일까. 혹은 그 무엇도 차별의 대상이 되거나 타인에 의해 규정될 수 없다는 메시지일 수도.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건 소외된 자를 포용할 수 있는 사회적 책임에 관한 담론으로 연결된다. LA타임스에 따르면 2026년부터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연간 5조원 기업 기부가 사회를 바꾸지 못하는 이유

한국의 기업 기부금은 2018년에 5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10년의 총액은 48조 이상이다. 삼성전자는 10년 동안 3조원에 이르는 돈을 기부했다. 2022년 100억원 이상을 기부한 기업은 37개나 된다. 이렇게 많은 기부금은 어떤 임팩트를 주고 있을까?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있을까? 자선적 기부 vs. 임팩트 기부 어느 기업이 10억원으로 결식아동에게 도시락을 나눠 주었다. 많은 아이가 수혜를 받았다. 하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지원이 끊어지면 아이는 다시 굶게 된다. 허기를 채울 수는 있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다른 기업은 같은 금액으로 취약 아동의 문제를 다루는 비영리단체와 소셜벤처를 지원했다. 부모가 감옥에 가게 된 수용자 자녀 단체, 이주배경 아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주 부모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조직 등이다. 한국 기업은 주로 자선적 기부를 한다. 생색도 나고 홍보하기도 좋다. 그런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아닐까?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거나 어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임팩트기부’가 필요하다. “기부자들은 노숙자 쉼터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노숙자 문제를 끝내기를 원한다.” 지난 2017년 9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실린 글 중 일부다. 글로벌 기업과 재단들은 진짜로 사회를 바꿀 기부를 시도하고 있다. 2016년 ‘구글 임팩트 챌린지 코리아’는 한국의 소셜 섹터를 들썩거리게 했다. 세상을 바꿀 혁신적 아이디어를 공모받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챌린지는 기존의 기부와는 달랐다. ‘사회문제 해결’을 정면으로 내세웠다. 수혜자 지원이 아니라 ‘비영리단체의 성장’을 목적으로 했다. 기부 시장에서 소외된 ‘작은 단체’들이 선정됐다. ‘성과 측정’은 까다롭지만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
[혁신의 목격자] 당신의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올해 가을, 나는 새로운 서사를 만났다. 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서사의 위기’에서 “문제 풀기에만 몰두하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 서사만이 비로소 우리로 하여금 희망하게 함으로써 미래를 열어준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앞으로의 방향을 알려줌과 동시에 이야기에는 새 시작의 힘이 있기에 삶의 여정마다 경험하는 서사는 이전과 이후를 다르게 만드는 독특한 분수령이자 갈림길이 되곤 한다. 이번에 경험한 서사는 지난 9월 싱가포르에서 만난 제러미 린(Jeremy Lin)과의 만남에서 시작됐다. 하버드대학교 졸업 후 최초의 대만계 미국인 NBA 선수로 활동하며 전세계에 ‘Linsanity'(미친 린)라는 돌풍을 일으킨 제러미. 주목받지 못한 벤치 플레이어던 그가 타임지 표지 인물과 ’21세기 최고 농구 이야기 중 하나'(자세한 이야기는 ‘38 앳 더 가든’이라는 다큐멘터리 참고)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그가 걸어온 여정은 사실 고난과 인종차별 등으로 가득했다. 임팩트투자를 시작한 그가 초대한 자리에서 린은 자신의 미래 비전이나 현재 영향력이 아닌 과거 자신의 두려움을 먼저 이야기했다. ‘이번 경기에서 별로면 오늘이 NBA에서 마지막 게임이 될 거야.’ 에이전트는 매 게임에 앞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경기장 건물에 들어설 때 경비원들이 검지 손가락을 흔들며 입장을 막는다. 동양인이 NBA 선수일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매번 이러한 ‘경기 전 불안감’(pre game anxiety)에 괴로워하던 그는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더 노력하거나 회피하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못함을 깨닫는다.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게임이 잘되든 안되든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에 집중할 때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에게 정체성은 바로 ‘사랑(love)’. 놀랍게도 두려움의 반대말은 ‘두렵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바로 ‘사랑’이었다.

신수정 KT엔터프라이즈 부문장
[완벽한 리더 삽니다] 리더의 그릇은 조직 규모와 비례하지 않는다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하셨다. “자신의 그릇 크기만큼 구성원들을 리딩할수 있는 것 아닌가요? 제 그릇은 작은 것 같은데 어느 정도 인원까지 리딩할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나는 이런 답을 했다. “리더 산하 인원의 규모가 그 리더 개인의 그릇 크기와 관련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한 창업자를 만났다. 몇 차례 창업을 한 분이었다. 그분은 내게 이런말을 했다. “후회되는게 있습니다. 젊은 시절 창업을 했을때, 다른 창업자들과 투자규모, 매출, 직원수 비교에 빠졌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로인해 서로 자극도 되긴 했지만, 회사가 단단해지고 이익도 차근히 창출할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 때문에 규모에만 신경썼습니다. 규모가 커야 유명해지고 폼잡을 수 있었으니까요. 이후 실패를 겪었습니다. 이제는 규모 집착보다는 단단한 뜻과 성장 구조를 만들고, 그 뜻에 맞는 직원들과 일하는 회사를 추구합니다.” 사실 어느 모임에를 가도 대개 규모 순서 대로 자리가 배치된다. 더 큰 규모, 더 높은 직위, 더 많은 클릭수가 추앙받는 시대다. 이에 규모를 개개인의 인격이나 역량과 동일시 하기도 한다.  나도 사회생활을 하며 적지않은 사업가와 경영자를 보았지만 그분들이 이끄는 조직의 규모와 그들의 역량과 인격의 그릇이 비례하는 것이 아니었다. 인격도 리더십도 부족한 분들이 큰 조직이나 큰 기업을 이끄는 경우도 있었고, 성품도 능력도 좋지만 작은 조직이나  작은 기업을 이끄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큰 조직을 이끈다고 세상에 더 크고 훌륭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도 아니다. 성경의 예수는 고작 12명을 이끌었지만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테레사 수녀나 루터킹도 그리 큰

양경준 크립톤 대표
[로컬 패러다임] 라이콘을 말한다

“유니콘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됐지만, 라이콘은 대한민국에서 시작해 세계로 가게 하겠다.” 지난 10월 6일 열린 ‘라이콘 육성 파이널 피칭대회’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이영 장관이 한 말이다. 라이콘(LICORN)은 이번 정부가 만들어낸 용어로 라이프스타일(Lifestyle)·로컬(Local)과 유니콘(Unicorn)의 합성어다. 유니콘은 1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비상장 스타트업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라이프스타일과 로컬 영역에서도 큰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기업을 배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정부의 이 선언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지금까지 이 분야에서는 큰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기업이 없었다는 뜻이다. 적어도 국내에서는 말이다. 왜 없었을까. 이 분야 창업은 꾸준히 있어왔는데 말이다. 큰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성장성과 수익성이 담보돼야 한다. 여기서 성장성은 시간과 속도의 함수다. 더 짧은 시간에 더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어야 더 큰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리고 자본은 절대적으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움직인다. 쉽게 말하면, 투자금의 총액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짧은 시간에, 상대적으로 더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어야 더 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21세기는 IT가 성장을 주도하는 시대다. 소규모의 IT 엘리트들이 노트북 앞에 앉아서 단기간에 앱을 개발하고 단기간에 수십만, 수백만명의 사용자를 모은다. 제품과 서비스를 한 땀 한 땀 만들어내야 하는 라이프스타일·로컬 창업이 그들과 성장을 겨뤄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기업가치를 키우는 것은 난제다.   둘째, 하지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분명한 증거가 있다. 전세계 60개 이상의 국가에서 2만30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스타벅스는 커피를 좋아하던 영어교사 제리 볼드윈,

정유미 포포포 대표
[기차에서 일합니다] 양육자라는 경험, 구글에선 스펙이다

금요일 11시. 샌프란시스코 구글 베이 뷰의 주차장. 우주 정거장을 연상케 하는 건물의 입구를 찾는 데만 20분이 걸렸다. 구글의 향후 로드맵을 관장하는 인공지능(AI) UX 리서치의 정수진 파트장을 만나 ‘Guest visit’ 절차를 밟는 과정은 출국 수속과 비슷했다. 국제공항을 방불케 하는 메인 홀을 지나 카페테리아로 향한 우리는 세 자매의 비밀 레시피라는 재밌는 이름의 수프를 가득 퍼담았다. 벙거지를 쓰고 골든 리트리버를 산책시키는 직원, 유모차를 탄 영아부터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백발의 어른까지 삼대가 모여 식사 중인 그룹 사이에서 자연스러움이 묻어났다. 공간마다 예술 경험을 전담하는 아티스트 그룹의 작품을 두리번거리며 인터뷰 장소로 가는 길엔 헨젤과 그레텔이 떠올랐다. 빵 부스러기라도 흘려 두어야 겨우 출구를 찾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일과 삶의 균형을 얘기할 때 과연 이 둘을 완벽히 분리할 수 있을까. 규격화된 업무 환경에서 창의성은 떨어지고 생산성은 올라간다. 도서관이나 카페 같은 공간에서 업무 효율이 올라가는 건 열린 공간이 사고를 확장하기 때문이다. 이 으리번쩍한 건물은 관상용 로비가 아니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발상의 정거장이다. 10년 후 구글의 미래 먹거리를 고민해야 하는 이들이 규격화된 공간에 갇혀있는 건 해롭다.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틈을 만들어야 한다. 본인의 일은 스스로 주도해서 만들어 가야 한다. 주니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리더로서 조언은 아끼지 않고 우선순위를 조율하되 어떤 일을 할 건지 관여하지 않는다. 누가 몇 시에 어디서 일하는지 개의치 않는다. 휴가 중에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대기업은 왜 사회문제 해결하는 비즈니스를 하지 않을까?

전국 24만대 넘는 택시 중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택시는 단 2대뿐이다. 대신 승합차를 개조해 리프트를 단 장애인 콜택시를 타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특별교통수단이다. 휠체어 이용자인 친구와 저녁을 먹고 택시를 부르면 일반 택시는 금방 오지만, 장애인 콜택시는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사회적 기업인 코액터스는 영국의 블랙캡(Black cab) 택시를 2대 수입했다. 블랙 캡은 휠체어를 탄 채 옆문으로 들어갈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외관도 예쁘지만 이러한 유니버설 디자인 덕분에 런던의 명물이 됐다. 코액터스는 청각장애인이 운전하는 ‘고요한M’이라는 모빌리티 서비스를 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코액터스의 이러한 도전은 장애인 콜택시를 늘리는 방향으로만 달려온 한국에 “아예 택시의 모델 자체를 바꾸면 되지 않을까”라는 메시지를 던져줬다. 왜 현대자동차 등은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택시 모델을 개발하지 않는 것일까? 세계적으로 보면 고령화로 인해 휠체어 이용자가 늘고 있는데 말이다. GM은 접근성센터(Accessibility Centre of Excellence)를 설치한 뒤 장애물 제로(zero barriers)를 위한 차량 개발을 하고 있다. 의수나 의족,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 청력이나 시력이 제한된 사람을 위한 자동차를 개발한다. GM은 자동차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자고 한다. 포용적인 비즈니스 모델이기도 하지만 미래의 먹거리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일본의 토요타도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이른바 ‘Japan Taxi’를 상용화했다. 청각 또는 시각장애인도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자막과 화면해설을 제공하라는 소송에서는 일본 엡손(Epson)이 개발한 스마트 안경으로 시연했다. 이 안경을 쓰면 한국어뿐 아니라 다양한 언어 자막과 수어 영상을 선택해 볼 수

신수정 KT엔터프라이즈 부문장
[완벽한 리더 삽니다] 잘될 때 조심하라​

한 대형 제조사의 임원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지난 수년간 너무 수주가 잘됐다. 모든 인력이 제품을 만들어 내는데 바빴다. 다른 걸 고민할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 열심히 생산해서 팔고 돈을 벌었다. 그런데 문제는 돈 버는 기쁨에 그리고 제품을 만드는데 바빠 막상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늦었지만 이제야 신기술 적용이나 디지털전환 등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이헌재 전 부총리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한국의 산업에 대해 유사한 진단을 하셨다. “시장수요가 너무 빨리 우리에게 들이닥쳤기 때문에 우리는 마지막 생산에 바빴다. 이러다 보니 하나씩 도전을 받으면서 문제를 풀어온 경제가 아니고 그냥 점프업한 경제가 됐다. 중간단계 고민의 과정이 없었다. 이것이 그 당시는 성공적이었는데 전환기의 끝에 오니 부담이 돼버렸다.” 현재가 너무 잘되면 세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는 시행착오를 통한 축적의 시간을 별로 갖기 어렵다. 기본적인 시간과 고난, 장애, 허들과 고통도 있어야 시행착오를 통해 실력과 역량이 축적된다. 그런데 너무 잘되면 그걸 쌓을 시간이 없다. 생산과 판매에만 집중하고 기본 역량을 축적하지 못한다. 둘째, 현재의 수요 공급에 매몰돼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다. 잘될 때 별도의 조직을 꾸려 차근히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고 신기술 투자도 크게 해야 하는데 모든 조직이 현재 수요 대응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나빠질 때 그때 가서야 미래 대응을 부랴부랴 검토한다.  셋째, 그것이 자신의 실력이라고 여긴다. 상황이 좋아서 잘되는 것을 자신의 실력이 좋아서 잘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자만한다. 상승장에는 실력과 무관하게

김정빈 수퍼빈 대표
[쓰레기공장 이야기] 우리는 왜 항상 재활용에 실망하고 실패하는가?

지난 22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진행하는 교사 워크숍에 특강을 다녀왔습니다. 탄소중립 시범학교, 생태전환교육 연구학교, 탄소제로실천 선도학교의 담당 선생님들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현장에 도착하니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페트병 라벨을 제거하고, 재활용에 관련된 문제를 푸는 영상을 보고 계셨습니다. 아마도 각 학교의 활동 결과를 공유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날 워크숍을 주관한 장학사는 탄소중립 시범학교와 생태전환교육 연구학교, 그리고 탄소제로실천 선도학교의 다른 점을 설명했습니다. 프로그램마다 목적과 성격은 달랐지만 결국은 지향점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속가능한 환경이나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교육이 현장에서는 이렇게 복잡하고 어렵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많은 사람이 탄소중립(Carbon Neutrality), 넷제로(Net-Zero), 탄소저감(Carbon Negative), 기후긍정(Climate Postive)의 차이점을 정확히 모르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또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순환경제(Circular Economy), 전주기평가(Life Cycle Assessment) 등의 뜻도 잘 알지 못합니다. 환경이나 재활용 관련 개념이 언제부터 이렇게 어려워지고 복잡해졌을까요? 기점은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입니다. 이때부터 우리가 기존 방식대로 생산하고 소비하고 폐기하는 방식으로는 지구생태계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존 생산 방식의 평가, 소비 방식에 대한 제재 그리고 이에 따른 온실가스의 발생량을 측정하고 관리하고자 하는 방법론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기후위기를 직면한 인류는 생산과 소비 그리고 재활용을 포함한 폐기의 단계에 대해서 지금까지 없었지만 다음세대를 위해 필요한 새로운 제도들을 만드는 중입니다. 재활용 방식도 분리배출과 정부보조금 등의 방식을 벗어나 미래 산업에 맞는 구체적인 방법론이 설계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재활용으로 인한 탄소배출 감축량은 탄소배출권 형태로 자본시장과 연결되며, 순환자원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모금하는 사람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말에는 영화배우 고(故) 강수연씨가 떠오른다. 그녀가 자주 하던 말인데 연기와 영화예술에 대한 자긍심을 뜻하는 표현이다. 돈이 좀 부족해도 해야 할 일에 대한 목적과 사명이 분명하면 주눅 들지 말라는 뜻이니 비영리 업계 사람들이 써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돈과 가오는 모금에 항상 등장하는 단어다. 돈을 언급하는 것이 자존심을 건드리고 사람을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모금은 구걸이 아니라는 걸 애써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쪼그라드는 마음이 쉽게 펴지지 않는다. 주는 이나 받는 이나 모금은 쉽지 않다. 돈 없는 것은 괜찮지만 돈 달라고 하는 순간 가오도 무너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타인을 돕는 일은 두 가지 관점으로 나뉜다. 하나는 자선, 또 하나는 투자다. 자선은 오늘의 결핍에 집중하고, 투자는 내일에 대한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다. 둘을 완벽하게 분리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이 두 가지 관점은 사람들의 태도를 다르게 설정한다. 즉, 누군가의 오늘이 궁핍함을 보고 마음이 불편해져서 하는 기부가 있고, 조금만 더 도와주면 내일이 달라질 것을 기대해서 하는 기부가 있다. 이러한 기부자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들이 빈곤 포르노와 타당한 모금 명분으로 갈라지게 된다. 대학에서 오래 모금하고 자선단체의 일로 넘어오면서 나는 이 두 가지 관점의 명백한 경계를 보았다. 대학에 희사되는 기부들은 오늘의 궁핍함의 해결이 목적이 아니었다. 늘 더 나은 미래와 밝은 희망의 이야기를 기부자들에게 전하고자 그 명분의 타당성과 투자의 가치를 준비했었다. 그 명분의 크기가 매우 큰 것이라서 고액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