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이 오늘(4월 12일) 40주년을 맞았다. 지난 4일 만난 김승환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 이사장은 “아모레퍼시픽은 여성의 힘으로 성장한 기업이기에 40년 전 남들보다 앞서 여성 문제를 해결하는 재단을 설립했다”면서 “이제는 여성을 넘어, 남성, 성별 이슈 등 ‘여성의 삶’과 닿아 있는 다양한 이슈로 재단의 사업을 확장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한준호 C영상미디어 기자
여성으로 일어선 기업이 여성을 돕는 방법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 40주년 인터뷰] 김승환 이사장 아모레퍼시픽이 여성 복지 사업을 시작한 건 1982년이다. “여성의 힘으로 일어선 기업이니 여성에게 혜택을 돌려줘야 한다”는 서성환 선대 회장의 뜻에 따라 ‘태평양복지회’가 설립됐다. 화장품을 만들던 회사는 여성의 삶과 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여고생 장학금 지원, 생활비 지원 등 여성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복지 사업을 펼쳐나갔다. 태평양복지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이 오늘(4월 12일) 40주년을 맞았다. 지난 4일 서울 용산 본사에서 만난 김승환(53)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 이사장은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상황이 변하면서 복지 사업의 내용과 방법도 바뀌었지만 ‘여성의 삶과 꿈을 응원한다’는 대명제는 40년이 흐른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교육 지원에서 공간 지원으로 ―민간 기업이 여성 이슈에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하는 게 40년 전에는 보기 드문 일이었죠. “당시만 해도 여성의 사회 진출이나 자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어요. 서성환 선대 회장님은 일찌감치 이런 문제들에 주목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남편을 잃고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여성들을 위해 화장품 방문 판매 일자리를 만든 게 대표적이죠. 직원들에게 유니폼을 지급해 전문직 여성이라는 점을 부각했고, 그 덕에 자녀들은 일하는 엄마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됐어요.” ―여성의 자립을 위해 시작한 방문 판매가 결과적으로 기업에 큰 수익을 가져다줬다고 들었어요. “방문 판매 제도는 국내 화장품업계 전체를 성장시켰습니다. 1970년대 중반 오일쇼크 위기 속에서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인 태평양이 최고의 실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방문 판매 덕분이었어요. 물론 초반에는 보수적인 인식 때문에 여성 판매원을 모집하는 일도 힘들었다고

[진실의 방] 상상 부고

비영리단체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단체에 매달 소액을 기부하던 젊은 기부자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였다. 기부자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품을 정리하던 부모는 딸이 수년간 후원하던 단체가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됐고, 딸이 하던 기부를 계속 이어서 하고 싶다며 단체에 문의를 했다. 착실하고 따뜻하게 살다 세상을 떠난 평범한 기부자의 이야기는 그 어떤 유력가의 오비추어리(Obituary·부고 기사)보다도 감동적이었다. 감동이 너무 컸던 탓일까. 그 후로 괴상한 버릇이 생겼다. 누군가를 만나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 미래의 어느 날 쓰일 그의 부고를 미리 상상해보는 버릇이다. 일종의 ‘상상 부고’라고 해두자. 사업하는 사람, 모금하는 사람, 투자하는 사람, 봉사하는 사람. 쌩쌩하게 웃고 말하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 죽은 뒤에 그가 어떻게 기록되고 추모될 것인가를 머릿속으로 몰래 적어본다는 게 상대에게는 어쩐지 미안한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의외의 장점이 있다. 개인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그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기사 쓰는 과정과 비슷하다. 알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 끌어모아 리드(첫) 문장과 본문에 들어갈 핵심 내용을 정하고 대략적인 마지막 문장까지 떠올려 본다. 제목도 달아본다. 각자의 삶에서 최대한 주제(기자들이 흔히 ‘야마’라고 부르는 그것)를 뽑아내는 작업이다. 직접 취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한계는 있지만 생각보다 괜찮은 상상 부고가 써질 때도 있다. 사회로부터 받은 것보다 ‘준 것’이 더 많은 사람을 만났을 때가 그렇다. 우리는 그 사람에게 해준 게 없는데 그는 우리에게, 혹은 우리 사회에 준 것이 꽤 많다는 걸

비영리 리더 20人, 새 정부에 바란다
비영리 리더 20人, 새 정부에 바란다

“제3섹터 국정 파트너로 자원봉사자 예우해주길”“아이가 행복한 나라로… 선진국형 모금 제도 도입” 동해안 산불 피해 현장에서 이재민을 돌보는 사람들이 있다.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을 돕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터로 달려간 이들도 있다. 코로나19로 경제적 위기에 처한 가정을 발굴해 지원하고, 학대 피해 아동을 찾아내 돕고, 고립된 노인들의 마음을 돌보고, 노숙인에게 도시락을 배달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기부하고 돕고 봉사하는 시민들. NGO(비정부단체), NPO(비영리단체), 시민단체 등으로 불리는 ‘제3섹터’ 사람들이다. 재난시대, 제3섹터는 정부(제1섹터), 기업(제2섹터)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에서는 이 영역이 통째로 빠져있었다. 새 정부의 국정 과제에 담겨야 할 중요한 이슈를 제3섹터 리더 20인(人)이 짚었다. <이름 가나다 순> 권찬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 다양한 복지 수요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사회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비영리 섹터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새 정부는 비영리 섹터를 국정 운영의 ‘주요 파트너’로 인식하고 국민의 생활과 맞닿은 정책을 마련해 국민 행복의 기틀을 닦아야 합니다. 또 세제 개편 등 정책 지원 확대를 통해 ‘시민의 힘으로 시민을 돕는’ 나눔의 선순환을 이끌기를 바랍니다. 권미영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센터장 갈등과 양극화를 치유하고 모든 국민이 서로를 보살피는 사회 통합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자원봉사의 정신과 가치가 일상적 문화로 뿌리 내려야 합니다. 시민의 관심과 참여가 공동체 문제를 해결하도록 자원봉사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고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자원봉사 정상 회의(Summit)를 개최하는 등 ‘자원봉사자를 예우하는 사회’를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김희영 티앤씨재단 대표 팬데믹과

2013년 설립된 에버영코리아는 시니어를 고용하는 'IT 기업'이다. 직원 평균 나이는 64.9세. 지난 11일 만난 정은성 에버영코리아 대표는 "직원들의 나이가 점점 많아지면서 고민이 늘고 있다"면서 "직원의 체력과 상황에 맞게 업무 강도와 시간을 줄여가며 전 생애에 걸쳐 오래 일하게 하는 방법을 설계하고 있다"고 했다. /이경호 C영상미디어 기자
직원 평균 나이 64.9세… ‘시니어계의 삼성’이라 불리는 회사

[이상한 사장님] 정은성 에버영코리아 대표 ‘정년 100세’를 공표한 IT 기업이 있다. 직원 평균 나이는 64.9세. ‘에버영코리아’는 시니어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사회적기업이다. 서울 종로구 신축빌딩 6층에 위치한 사무실에서는 백발(白髮)의 직원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업무를 본다. 인터넷상의 부적절한 정보와 콘텐츠를 모니터링해 삭제하고 이용자들이 최적화된 이미지를 볼 수 있도록 튜닝하는 일이다. 직원 280여명은 대부분 60~70대 고령자다. 평균 근속 연수는 6년 2개월. 2013년 법인 설립 후 이듬해 첫 공채를 진행했는데 그때 뽑은 30명 중에 25명이 여전히 근속 중이다. ‘단기 알바’ 성격의 시니어 일자리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다. 지난 11일 만난 정은성(61) 에버영코리아 대표는 “처음 회사를 만들 때는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시니어 직원들이 IT 업무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있었다. 우려와 달리 회사는 성장을 거듭했고 매년 안정적인 매출이 발생하고 있다. 정은성 대표는 “우리 사회가 노인의 능력을 실제보다 훨씬 낮게 평가하고 있다”면서 “제대로 된 시니어 일자리가 나오기 어려운 이유”라고 했다. 서류-필기-실기-면접… 격식 갖춰 뽑는 이유 ―구직자들 사이에서는 ‘시니어계의 삼성’으로 불린다고 들었습니다. “근무 환경도 좋고 오래 일할 수 있다는 게 소문이 나서 채용 공고를 내면 경쟁률이 높은 편이에요. 80대 1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시니어들에겐 ‘삼성’ 이상이라고도 할 수 있죠. 실제로 삼성전자에서 퇴직하고 오신 분도 있고요(웃음). 하지만 채용 과정에서는 소위 말하는 ‘스펙’을 전혀 안 봅니다. 나이, 학력, 성 차별을 없애자는 게 회사를 시작한 이유였으니까요.” ―스펙을 안 보면 어떤 기준으로

[진실의 방] 누가 봉사활동을 모욕하는가

서울의 한 여자고등학교가 군부대와 자매결연을 맺고 학생들에게 위문편지를 쓰게 한 일로 온라인상에서 한바탕 전쟁이 났다. 일부 학생들이 장병들을 조롱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게 알려지면서다. 학교는 편지를 쓴 학생들에게 1시간의 ‘봉사활동’ 점수를 인정해줬다고 한다. 미성년자인 여학생들에게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성인 남성을 위로하는 편지를 보내게 했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나왔고, 결국 여혐·남혐 논쟁으로까지 번졌다. 원론적으로 따지면 위문편지는 훌륭한 봉사활동이다. 코로나 이후 고립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면서 ‘심리 케어’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에 따르면 투병 중인 동료를 정기적으로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 온라인 응원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도 봉사활동에 해당한다. 하지만 위문편지를 쓰게 한 그 학교는 애초부터 군장병의 심리 케어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봉사활동을 해서 점수를 얻는 건 괜찮지만, 점수를 얻기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건 ‘공익성’과 ‘자발성’이라는 봉사의 기본 원칙과 너무 멀어진다. 시대착오적인 봉사활동에 대한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매년 겨울이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기업 임직원들의 ‘김장 나눔’과 ‘연탄 배달’ 봉사가 대표적이다. 이걸 한국 기업이 버려야 할 ‘적(赤)과 흑(黑)’이라고 표현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김치라곤 담가본 적 없는 임직원들이 모여서 만든 김치를 누구 먹으라고 준다는 것인가. 맛있는 김치를 사주는 게 백 배 낫다. 연탄 배달 봉사도 마찬가지다. 임직원들이 일렬로 연탄을 나르며 구슬땀을 흘렸다는 구태의연한 스토리에 감동하는 사람은 없다. 봉사활동이 아니라 홍보활동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저개발국 아동·청소년에게 티셔츠와 운동화를 보내주는 캠페인이 유행한 적 있었다. 하얀 티셔츠와 운동화에

2022년 더나은미래 칼럼니스트 10人을 소개합니다 -(왼쪽 사진부터) 김경신, 남재작, 안지훈, 장서정, 황신애.
2022년 더나은미래 칼럼니스트 10人을 소개합니다

2022년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의 오피니언 코너를 채워줄 10인(人)의 칼럼니스트를 소개합니다. 기존 칼럼니스트 5명에 ▲메타버스 ▲농업 ▲정책 ▲돌봄 ▲모금 등 전문가 5명이 새롭게 합류했습니다. 더나은미래의 대표 코너인 ‘모두의 칼럼’은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오픈형 칼럼으로 변신합니다. 나이·소속 무관, 사회문제 해결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기고할 수 있습니다. 올해 필진으로 합류한 김경신 파울러스 대표는 ‘메타버스와 사회혁신’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씁니다. 메타버스 플랫폼인 리비월드를 운영 중인 김경신 대표는 최근 산업계의 가장 ‘핫’한 키워드라 할 수 있는 메타버스와 NFT가 어떻게 사회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과 전략을 공유합니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은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으로 농업의 새로운 흐름과 이슈를 소개합니다. 신기술로 무장한 농업 스타트업 이야기, 기후위기와 식량 안보 이슈, 농업 분야 재생 에너지 문제 등을 다룹니다. 안지훈 소셜혁신연구소장(한양여대 행정실무과 교수)은 ‘안지훈의 생활정책’이라는 코너를 통해 지역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혁신 사례를 소개합니다. 지역 주민과 정부, 기업, 비영리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만나 함께 토론하고 정책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돌봄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는 장서정 자란다 대표는 ‘오늘도 자란다’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씁니다. 우리 사회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인 ‘돌봄’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스타트업계의 여성 대표로서의 경험담을 함께 나눌 예정입니다. 비영리 분야 핵심 키워드인 ‘모금(펀드레이징)’에 관한 칼럼도 마련됩니다. 국내 1호 고액 펀드레이저인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가 ‘모금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모금의 기술, 모금하는 사람들의 마음, 모금의 어려움과 중요성 등을 풀어냅니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2022년, 선택을 말하다
2022년, 선택을 말하다

[6人의 학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내 인생은 내게 일어난 사건의 총합이 아니라 내가 내린 선택의 총합이다.” 세계적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이 남긴 말입니다. 2022년의 인류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기후변화와 감염병 위기, 이로 인한 양극화는 우리에게 ‘미룰 수 없는 선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3·9 대통령 선거와 6·1 지방선거라는 중요한 정치적 선택까지 앞두고 있습니다. 융의 말처럼 개인의 크고 작은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미래를, 지구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겁니다. 좋은 선택, 정의로운 선택이란 무엇일까요? 선택은 어떻게 세상을 바꿀까요? 왜 우리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걸까요? 더나은미래는 ‘학문’에서 지혜를 구해보기로 했습니다. 인지심리학자, 서양철학자, 수학자, 사회학자, 진화심리학자, 국어국문학자 등 여섯 명의 교수를 차례로 만났습니다. 6인의 학자가 각자의 학문적 시각에서 들려준 ‘선택’에 대한 통찰을 전합니다. “안 한 것에 대한 후회가 가장 크다”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어제 딸아이의 친구가 집에 놀러 왔습니다. 저녁 무렵 아이가 집에 간다고 하길래 인사를 하고 돌려보냈죠. 그런데 그 아이를 차로 데려다주지 않았던 게 내내 마음에 걸리고 후회가 됩니다. 어젯밤에 날씨가 너무 추웠거든요. 후회라는 것은 참 복잡하고도 괴로운 감정입니다. 이렇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다음에는 이렇게 해야지라는 식으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그래서 인간은 ‘최적의 선택’보다 ‘후회를 덜 할 것 같은 선택’을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중요한 힌트를 하나 드리죠. 연구에 따르면 어떤 일을 한 것에 대한 후회보다 안 한 것에 대한 후회가

[진실의 방] 뜻밖의 발견

한국 나이로 열여섯 살. 유지민양은 더나은미래의 최연소 칼럼니스트이자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다. 태아 때 몸속에 생긴 종양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받았고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를 갖게 됐다. 장애인 이동권 향상을 위해 활동하는 협동조합 ‘무의’의 홍윤희 이사장이 지민이의 엄마다. 지민이에게 칼럼을 부탁한 건 ‘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장애인 당사자이자 Z세대인 지민이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칼럼을 쓰게 된 인연으로 우리는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사 장소는 모녀가 정했다. 맛집이 많기로 유명한 광화문 F빌딩의 한 식당을 알려줬다. 하지만 식당 입구에서 막혔다. 계단처럼 생긴 턱이 여러 개 있어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었다. 이렇게 크고 좋은 빌딩에 자리한 품격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휠체어 출입을 고려하지 않고 인테리어를 했다는 게 뭐랄까, 참 모자라 보였다. 남자 직원들이 지민이의 휠체어를 들어서 안으로 옮겨줬다. 예약한 자리에 앉은 엄마는 지민이의 눈치를 조금 살피며 “식당 알아볼 때 가장 먼저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인지부터 알아보는데, 여긴 전에 와본 곳이라 되는 줄 알았더니 착각했나보다”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엄마는 늘 모든 것을 미리 알아보고 준비한 뒤에 움직인다고 했다. 원래부터 성격이 그렇게 꼼꼼하셨냐 물었더니 손사래를 쳤다. 결혼 전까지는 완전 기분파에 왈가닥이었다는 이야기였다. 갑자기 떠나는 여행,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인연과 풍경, 이런 걸 너무 좋아했는데 지민이를 키우면서 성격이 정반대가 됐다고 했다. 지금은 어디를 가든 동선부터 살피고 경로를 다 찾아본 뒤 움직인다. 무턱대고 나섰다가 휠체어가 못 가는 길이라도 만나게 되면

고장 난 자본주의 되살리려 ‘ESG’가 왔다

[인터뷰] ‘책임지는 경영자 정의로운 투자자’ 출간한 김민석 소장 “고등학교 때 풀던 수학 문제를 떠올려 보세요. 공식만 외운다고 문제를 풀 수 있는 건 아니죠. 다 안다 생각했는데 막상 시험에서는 못 푸는 경우가 있어요. 제대로 알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에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식이 아닌 ‘원리’ 를 알아야 풀 수 있어요.” 지난 8일 만난 김민석(48) 지속가능연구소장은 최근 한국에 부는 ESG 열풍을 수학 문제에 비유해 설명했다. 엄청난 양의 기사와 정보가 쏟아지고 기업들도 앞다퉈 ESG 경영을 선언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모두 어려운 수학 문제를 받아든 표정이다. 김민석 소장이 이달 초 출간한 ‘책임지는 경영자 정의로운 투자자’는 자본주의의 맥락 속에서 ESG를 설명한 책이다. “ESG 점수를 잘 받는 기술이나 공식을 알려주는 책은 아니에요. ESG의 뿌리와 원리를 짚어주는 책이죠.” ESG는 ‘옳음’에 관한 이야기 ―시중에 나와 있는 ESG 책과는 결이 좀 다른 것 같아요. “ESG 위원회를 만들어라, 여성 이사 뽑아라, 인권침해 발생하지 않게 해라…. ESG 공식을 다룬 책은 너무 많아요. 그런데도 기업들은 여전히 어려워해요. 기업 사람들을 만나보면 ‘ESG 부서는 만들어 놨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해요. 큰돈 들여 컨설팅을 받았는데도 별 도움이 안 됐다는 기업도 있고요. ESG가 왜 생겨난 건지 그 뿌리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통해 ESG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었어요.” ―우리가 ESG를 오해하고 있나요. “ESG가 최근에 새롭게 등장한 개념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요. ESG라는 용어가 공식석상에 등장한 게 2005년이에요. UNGC(유엔글로벌콤팩트)가 콘퍼런스를 주최하면서 이 용어를 처음 썼죠. 하지만 그 뿌리는 훨씬

시민들의 자유로운 ‘환경 실험’ 지원한다

[인터뷰] 장재연 숲과나눔 이사장 장재연 숲과나눔 이사장을 인터뷰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2018년 7월 재단 설립을 계기로 한 첫 인터뷰는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진행했다. 이제 막 설립된 신생 재단이라 사무실도 없을 때였다. 당시 그는 “우리 사회의 난제(難題)인 환경, 안전, 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와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이 너무 부족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분야의 인재를 지원하고 육성하는 게 숲과나눔의 가장 큰 미션이라고 밝히며 “세상을 이롭게 하는 울창한 ‘인재 숲’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3년 만에 성사된 두 번째 인터뷰는 서울 양재동에 있는 숲과나눔 재단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장재연 이사장은 “두 가지 소식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3년 전 인터뷰 때 했던 약속 잘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또 하나, 재단의 사업이 1단계를 완료하고 2단계로 전환한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처음으로 내부 자금이 아닌 외부의 자금을 받아 협력하면서 ‘판’을 키우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사랑의열매와 함께 10억원 규모의 ‘초록열매’ 진행 ―최신 소식부터 들어볼까요. 누구와 어떻게 판을 키운다는 건가요. “사랑의열매에서 10억원을 받아 ‘초록열매’ 프로젝트라는 공동 사업을 진행합니다.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를 선정해 최대 3000만원의 사업비를 지원해주는 사업이에요. 환경 복지, 자원 순환, 기후 위기 대응, 생태계 보호, 환경 교육 등 참여할 수 있는 분야도 다양하고 선정된 단체에는 행정 지원과 전문가 멘토링도 해줍니다. 아이디어와 전문성을 갖고도 자금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환경 분야 비영리 단체들엔 반가운 기회죠.” ―숲과나눔에도 비슷한

100% 민간 자금 기후 펀드 탄생 “거대한 기후 시장으로 돈 몰린다”

[ 인터뷰 ] 제현주 인비저닝파트너스 대표 국내 첫 민간 자금 ‘기후 대응 펀드’목표액도 훌쩍, 600억원 이상 모여 인간의 모든 활동·산업 탄소 배출기후 테크, 산업 넘어 일상 속으로 돈에도 의지와 방향이 있다. 사람의 의지가 돈에 스며들어 오랫동안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면, 돈은 사회와 환경을 변화시킨다. 거대한 도시가 생겨나기도 하고 강과 산이 없어지기도 한다. 인류가 심각한 기후 위기에 직면한 것도 돈 때문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너무 오래, 너무 많은 돈을 흘려보냈다.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에 놓이고 나서야 사람들은 돈의 의지와 방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석탄화력 산업에 투자되던 돈이 ‘기후테크(climate tech·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기술)’ 산업으로 몰리는 이유다. 글로벌 시장조사 플랫폼인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기후테크 분야 투자금은 약 160억 달러. 8년 전인 2012년(약 10억 달러)보다 16배 증가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에 돈을 투자하는 ‘임팩트투자’가 기후테크 산업을 이끌고 있다. 지난달 임팩트투자사 ‘인비저닝파트너스’를 설립한 제현주(44) 대표가 흥미로운 소식을 전해왔다. 100% 민간 자금으로 조성된 ‘기후테크 특화 펀드’를 결성했다는 이야기였다. 순수 민간 자금으로만 꾸려진 국내 최초의 기후 펀드라고 했다. 임팩트 벤처캐피털(VC)인 옐로우독 대표에서 인비저닝파트너스 대표로 자리를 옮긴 뒤 전한 첫 소식이었다. “펀드 규모는 600억원 이상입니다. 기후변화 대응에 관심 많은 국내 기업들이 출자자로 참여했어요. 이른바 ‘큰손’이라 불리는 개인들도 들어왔고요.” 지난 8일 서울 성수동 사무실에서 만난 제현주 대표가 새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민간 자금으로 조성한 최초의 기후 펀드 ―펀드를 간단히

이름만 공익위원회… 유명무실한 조직될 수도

[공익 이슈] ‘법무부 시민공익위원회’ 논란 최근 법무부가 내놓은 ‘시민공익위원회’ 신설 계획을 두고 비영리단체들 사이에서 우려와 반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30일 법무부는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익법인법’)’ 전부개정안을 발의하며 그 핵심 내용으로 시민공익위원회 설치를 공표했다. 시민공익위원회를 신설해 전국에 흩어져 있는 모든 공익법인들을 관리·감독하고 이를 통해 비영리 공익법인의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설명이다. 개정안에 담긴 시민공익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을 들여다본 비영리단체들은 “뒤통수를 맞았다”는 반응이다. 지난 수년간 비영리단체들은 공익법인을 총괄하는 기구인 공익위원회 설치를 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해왔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시민공익위원회 설치가 현 정부의 100대 국정 과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비영리단체들은 “법무부의 공익위원회 설립 관련 TF에 참석해 의견을 내고 국회 토론회도 열며 오랜 시간 함께 틀을 잡았는데, 이번 개정안은 그 틀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주장했다. 학계와 법조계 등 외부 전문가들도 법무부가 추진하려는 시민공익위원회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모범적 사례로 평가받는 영국과 호주의 공익위원회와 비교할 때 수준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시민공익위원회의 한계점을 쟁점별로 살펴봤다. 쟁점 1. “공익법인 4000개 모두 관리” vs. “공익법인은 4만개인데?” 법무부는 개정안을 발표하며 “시민공익위원회가 전국 4000여 개의 모든 공익법인을 관리·감독한다”고 설명했다. 과연 전국에 공익법인이 4000여 개뿐일까. 일반적으로 공익법인은 공익 활동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법인을 통칭한다. 법무부가 말하는 공익법인은 전체 2만여 비영리법인 가운데 공익법인법에 근거해서 설립된 4000여 개를 의미한다. 기부금을 걷고 세금 공제 혜택을 받는 세법상의 공익법인등은 4만개가 넘는다. 법무부가 관리·감독한다는 4000개는 사실상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