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일(수)

100% 민간 자금 기후 펀드 탄생 “거대한 기후 시장으로 돈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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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 제현주 인비저닝파트너스 대표

국내 첫 민간 자금 ‘기후 대응 펀드’
목표액도 훌쩍, 600억원 이상 모여

인간의 모든 활동·산업 탄소 배출
기후 테크, 산업 넘어 일상 속으로

돈에도 의지와 방향이 있다. 사람의 의지가 돈에 스며들어 오랫동안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면, 돈은 사회와 환경을 변화시킨다. 거대한 도시가 생겨나기도 하고 강과 산이 없어지기도 한다. 인류가 심각한 기후 위기에 직면한 것도 돈 때문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너무 오래, 너무 많은 돈을 흘려보냈다.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에 놓이고 나서야 사람들은 돈의 의지와 방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석탄화력 산업에 투자되던 돈이 ‘기후테크(climate tech·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기술)’ 산업으로 몰리는 이유다. 글로벌 시장조사 플랫폼인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기후테크 분야 투자금은 약 160억 달러. 8년 전인 2012년(약 10억 달러)보다 16배 증가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에 돈을 투자하는 ‘임팩트투자’가 기후테크 산업을 이끌고 있다.

제현주 인비저닝파트너스 대표가 100% 민간 자금으로 꾸려진 600억원 규모의‘기후 테크 특화 펀드’조성 소식을 알렸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혁신 기술과 설루션에 투자하기 위해 조성된 펀드로, 기존 목표였던 500억원을 초과 달성했다. 정책기금이나 공공자금 유입 없이 기업과 개인 출자자의 투자금으로만 구성된 업계 최초의 펀드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지난달 임팩트투자사 ‘인비저닝파트너스’를 설립한 제현주(44) 대표가 흥미로운 소식을 전해왔다. 100% 민간 자금으로 조성된 ‘기후테크 특화 펀드’를 결성했다는 이야기였다. 순수 민간 자금으로만 꾸려진 국내 최초의 기후 펀드라고 했다. 임팩트 벤처캐피털(VC)인 옐로우독 대표에서 인비저닝파트너스 대표로 자리를 옮긴 뒤 전한 첫 소식이었다.

“펀드 규모는 600억원 이상입니다. 기후변화 대응에 관심 많은 국내 기업들이 출자자로 참여했어요. 이른바 ‘큰손’이라 불리는 개인들도 들어왔고요.” 지난 8일 서울 성수동 사무실에서 만난 제현주 대표가 새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민간 자금으로 조성한 최초의 기후 펀드

―펀드를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말 그대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혁신 기술과 설루션(solution)을 가진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 조성된 펀드예요. 처음 펀드를 만들 때부터 100% 민간 자금으로 조성해보자는 목표를 세우고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반신반의했지만요.”

―확신이 없었나요?

“이전에도 기후테크 분야에 계속 투자하고 있었지만 그걸 전면에 내세워서 펀드를 조성한 적은 없었거든요. 두 가지 의문이 들었죠. 첫 번째, 우리가 투자할 만한 기후테크 회사가 많을까? 두 번째, 기후만 다루는 펀드에 돈을 내겠다고 할 민간 출자자가 얼마나 될까? 첫 번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작년 5월부터 국내외 기후테크 회사들을 조사하기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좋은 회사들을 발견했고 펀드로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거란 확신을 갖게 됐어요. 올해 2월, 그러니까 설연휴 직후부터 많은 민간 출자자들과 미팅하며 공격적으로 펀드레이징을 했습니다.”

―기후에 투자하겠다는 기업이 많던가요.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조금 걱정을 했는데 올해로 넘어오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기후에 대한 투자자의 인식과 공감대가 급격하게 올라왔어요. 심지어 펀드레이징을 진행한 넉 달 동안에도 2월과 6월의 분위기가 달랐을 정도니까요.”

―분위기가 어땠기에?

“예전 같으면 출자자들을 만나서 기후변화가 얼마나 심각한지부터 설명해야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설득 과정이 필요 없었어요. 투자자 대부분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게 기업과 산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까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어요. ‘기후테크? 오케이. 필요하고 중요하지. 그래서 당신들이 투자를 잘할 수 있다는 얘기야?’ 이런 반응이었죠. 우리가 얼마나 잘하는지만 설명하면 되니까 어렵지 않았어요.”

―투자금이 600억원 넘게 모였는데 목표한 만큼 모인 건가요.

“처음 목표액은 500억원이었으니까 훨씬 넘어섰죠. 이달 안으로 결성 총회를 열고 바로 투자를 진행할 거예요. 연말까지 출자자를 좀 더 모아서 규모를 더 키울 생각입니다.”

제현주 대표는“탁월한 능력과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기후변화라는 시대의 난제(難題)를 향해 뛰어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기후라는 시장으로 몰리는 투자자들

―최근에 임팩트투자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책 ‘돈이 먼저 움직인다’를 출간했죠? 그 책에서는 기후를 ‘거대한 시장’이라고 표현했던데요.

“이번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보고서를 보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정말 얼마 없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사람들의 위기의식이 갑자기 높아진 것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기후변화의 여파를 두 눈으로 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인류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엄청 많은 돈을 써야 할 겁니다. 그 돈의 사이즈가 곧 시장의 사이즈예요. 어마어마한 시장이 열리고 있는 거죠.”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기후테크에는 크게 ‘완화(mitigation)’ 기술과 ‘적응(adaptation)’ 기술이 있어요.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탄소를 감축하거나 흡수하는 게 ‘미티게이션’이고, 기후변화로 인해 달라진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돕는 게 ‘어댑테이션’이에요. 예를 들어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해안가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을 돕는 기술이 있다면 그건 어댑테이션의 영역이죠. 이렇게 보면 기후테크가 범위가 굉장히 넓어요. 사실상 인간의 모든 활동과 모든 산업이 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에 기후테크는 결국 산업과 사회, 사람들의 일상 전반에 걸친 설루션을 호출하게 됩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거대한 시장이 형성될 수밖에 없어요. 기업의 입장에서는 큰 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게 가시권에 들어왔으니 적극적으로 투자하게 되는 거고요.”

―이번 펀드가 정책기금이나 공공자금 없이 기업과 개인 참여로 꽉 차버린 것도 이유가 있었네요.

“의미 있는 성과죠. 지금까지 기후 분야에 대한 투자는 국가가 육성 목적을 가지고 펀드를 조성해 드라이브를 거는 방식이었어요. 펀드가 100% 민간 자본으로 조성됐다는 건 공공의 드라이브 없이도 시장에서 통한다는 뜻이에요. 기후가 돈이 된다는 거죠.”

―투자할 만한 기후테크 기업이 많이 있나요?

“많아요. 그런데 더 많아야 해요. 우리 펀드의 최종 목표는 기술을 통해 기후변화의 대응 수준을 높이는 거예요. 그걸 잘하는 회사를 발굴하고 투자해서 수익도 얻는 거고요. 두 가지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는 우리나라에서 혁신 기업이 나올 수 있게 돕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싶어요. 탁월한 능력과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기후변화라는 시대의 난제(難題)를 향해 뛰어들면 좋겠어요. 그걸 잘하면 투자를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걸 우리 펀드가 보여주고 싶어요.”

―두 번째 역할은?

“해외의 기후테크 기술 기업을 우리나라 기업들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기후변화는 국경이 없는 전 세계적인 문제죠. 해외의 우수한 기업을 많이 소개하면 국내 창업자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돈의 연쇄 반응을 이해하고 예측하라

제현주 대표의 첫 직장은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였다. 이후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와 사모펀드운용사 칼라일에서 기업 재무와 투자 전문가로 경력을 쌓았다. 2010년 직장을 그만두고 해외 경제 서적을 번역하며 자본시장에 대해 공부하던 중 ‘임팩트투자’라는 키워드를 만나게 됐고, 2017년 옐로우독에 합류하면서 임팩트투자 업계에 발을 들였다.

―옐로우독의 주요 구성원들과 함께 독립해서 새로운 임팩트투자사인 인비저닝파트너스를 설립했습니다. 그간 생각이 많았을 것 같아요.

“결정하기 전까지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결정하고 나서부터는 고민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펀드 조성하면서 독립 준비까지 해야 해서 너무 바빴거든요. 낙장불입! 지금은 잘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에요.”

―사무실은 예전과 같네요.

“같은 공간에서 같은 멤버들과 같은 일을 하고 있죠. 운용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 옐로우독 포트폴리오사에 대한 투자도 이관받아 운용하고 있어요. 출자자들이나 포트폴리오 기업들과도 여전히 긴밀한 소통을 이어가고 있고요.”

―기후 관련 투자도 옐로우독 시절부터 쭉 해왔잖아요.

“기후 관련해서는 식품 쪽에서 가장 먼저 시장이 열릴 거라고 예측하고 2017년부터 푸드 섹터 전체 밸류체인에 대한 공부를 했어요. 첫 기후 관련 투자가 ‘지구인컴퍼니’였죠. 2019년 초에 투자한 걸로 기억해요.”

―대체육 만드는 회사죠? 지금은 꽤 유명해졌는데 지구인컴퍼니도 그때는 초창기였겠네요.

“기관으로서는 우리가 처음으로 투자를 집행했어요. 이후에 후속 투자도 진행했고요. 100% 식물성 소재로 만든 대체육을 개발해 축산업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 문제를 해결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임팩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미국의 대체육 전문 기업인 ‘비욘드미트’가 상장하면서 대체육 시장이 확 커졌고 지구인컴퍼니도 함께 잘 성장하고 있어요. 플라스틱 폐기물을 고부가가치 원재료로 업사이클링하는 기술을 가진 ‘노보루프’(미국), 포집한 탄소를 새로운 자원으로 재탄생시키는 기업인 ‘디멘저널에너지’(미국) 등에도 투자했습니다. 한국에는 탄소포집 관련 기술을 가진 기업이 거의 없어서 아쉬운데 창업자들이 이 분야에 많이 도전하면 좋겠어요.”

제현주 대표는 “인비저닝파트너스를 통해 기후, 웰니스, 교육, 미래의 노동 등 4개의 영역을 중심으로 임팩트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라면서 “그중에서도 기후변화 대응을 투자의 최우선 순위로 놓고 혁신적인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과 창업자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투자한 돈이 기업을 지나고 사회를 지나고 환경을 지나서 다시 돌아오기까지 다양한 연쇄반응이 일어나요. 임팩트투자는 그 일련의 연쇄반응을 이해하고 예측해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만드는 투자예요. 더 많은 자본이 임팩트 메이커들에게 흘러가도록 자본 시장과 임팩트 시장을 연결하는 다리를 짓고 싶습니다. 더 많이, 더 크게 짓고 싶어요.”

김시원 더나은미래 기자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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