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여성으로 일어선 기업이 여성을 돕는 방법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 40주년 인터뷰] 김승환 이사장

아모레퍼시픽이 여성 복지 사업을 시작한 건 1982년이다. “여성의 힘으로 일어선 기업이니 여성에게 혜택을 돌려줘야 한다”는 서성환 선대 회장의 뜻에 따라 ‘태평양복지회’가 설립됐다. 화장품을 만들던 회사는 여성의 삶과 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여고생 장학금 지원, 생활비 지원 등 여성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복지 사업을 펼쳐나갔다.

태평양복지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이 오늘(4월 12일) 40주년을 맞았다. 지난 4일 서울 용산 본사에서 만난 김승환(53)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 이사장은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상황이 변하면서 복지 사업의 내용과 방법도 바뀌었지만 ‘여성의 삶과 꿈을 응원한다’는 대명제는 40년이 흐른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이 오늘(4월 12일) 40주년을 맞았다. 지난 4일 만난 김승환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 이사장은 “아모레퍼시픽은 여성의 힘으로 성장한 기업이기에 40년 전 남들보다 앞서 여성 문제를 해결하는 재단을 설립했다”면서 “이제는 여성을 넘어, 남성, 성별 이슈 등 ‘여성의 삶’과 닿아 있는 다양한 이슈로 재단의 사업을 확장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한준호 C영상미디어 기자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이 오늘(4월 12일) 40주년을 맞았다. 지난 4일 만난 김승환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 이사장은 “아모레퍼시픽은 여성의 힘으로 성장한 기업이기에 40년 전 남들보다 앞서 여성 문제를 해결하는 재단을 설립했다”면서 “이제는 여성을 넘어, 남성, 성별 이슈 등 ‘여성의 삶’과 닿아 있는 다양한 이슈로 재단의 사업을 확장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한준호 C영상미디어 기자

교육 지원에서 공간 지원으로

―민간 기업이 여성 이슈에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하는 게 40년 전에는 보기 드문 일이었죠.

“당시만 해도 여성의 사회 진출이나 자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어요. 서성환 선대 회장님은 일찌감치 이런 문제들에 주목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남편을 잃고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여성들을 위해 화장품 방문 판매 일자리를 만든 게 대표적이죠. 직원들에게 유니폼을 지급해 전문직 여성이라는 점을 부각했고, 그 덕에 자녀들은 일하는 엄마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됐어요.”

―여성의 자립을 위해 시작한 방문 판매가 결과적으로 기업에 큰 수익을 가져다줬다고 들었어요.

“방문 판매 제도는 국내 화장품업계 전체를 성장시켰습니다. 1970년대 중반 오일쇼크 위기 속에서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인 태평양이 최고의 실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방문 판매 덕분이었어요. 물론 초반에는 보수적인 인식 때문에 여성 판매원을 모집하는 일도 힘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여성의 사회 참여를 유도하고 적극적인 여성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작업까지 함께 진행해야 했죠. 아모레퍼시픽은 여성과 함께 성장했습니다. 여성의 삶을 지원하는 복지 사업들을 남들보다 먼저 시작한 이유죠.”

―초창기에는 여고생 장학금, 여대생 장학금 등 교육 지원 사업을 많이 했던데요.

“지원 대상과 금액은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지만 주로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입학금을 지원해주는 방식이었어요. 예를 들어, 1989년 지원한 내용을 살펴보면 선정된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입학금 7만원씩을 지원했어요. 현재 가치로 따지면 140만원 수준을 지원한 셈이죠. 2001년까지 총 4만2000건이 넘는 입학금 지원을 했고 누적 금액은 20억원이 넘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공간 문화 개선 사업’에 주력하는 모습입니다. ‘공간’에 주목하는 이유는?

“공간은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다양한 경험이 공유되고 새로운 꿈이 만들어지고 따뜻한 만남이 이뤄지는 곳도 바로 공간이죠. 공간 사업은 아모레퍼시픽에 아주 잘 맞는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오프라인 매장을 오픈하면서 얻은 노하우와 경험이 있어서 기업 내부에 공간과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직원이 많아요. 2005년 비영리단체의 화장실 개선 사업을 시작으로 17년간 총 226개 기관의 공간을 아름답게 변화시켰습니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이사장으로 취임한 지 1년 정도 됐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재단 사업은 무엇이었나요.

“지난해 ‘아리따운 화장방’ 오픈식에 참여했을 때가 기억에 남아요. 어떤 곳보다 안전해야 할 공중화장실에서 몰래카메라를 비롯한 각종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태원 공중화장실 두 곳을 아름답고 안전하게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특히 이 사업은 아모레퍼시픽 MZ세대 직원들이 직접 제안한 아이디어를 실현한 것이라 더 의미가 있었어요. ‘아리따운 화장방’도 계속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뷰티풀 라이프’ 사업도 좋던데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여성의 자립은 재단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가지고 온 테마입니다. ‘뷰티풀 라이프’는 취약 계층 여성이 단기·저임금 일자리가 아닌 지속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갖도록 지원하는 사업이에요. 개인의 특성에 맞는 직무를 찾아주고 직업 훈련도 해줍니다. 직무 관련 교육 외에도 자녀 돌봄, 사회 기술 코칭, 자조 모임 등도 함께 지원합니다. 모든 여성이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게 돕자는 취지입니다.”

―인터뷰하면서 ‘아름답게’라는 말을 스무 번도 더 한 것 알고 있나요?

“아마도 그랬을 겁니다(웃음). ‘사람을 아름답게, 세상을 아름답게’가 아모레퍼시픽이라는 기업의 소명이거든요. 기업의 존재 이유이자,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죠.”

김승환 이사장은 “지난 40년간 변한 것도 있고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고 했다. 변한 것은 재단의 사업 내용과 방식이다. 시대의 흐름, 한국의 상황에 맞게 필요한 지원과 알맞은 방식을 찾아내며 진화했다. 저소득 여성, 장애인, 경력 단절 여성 등을 대상으로 하던 ‘뷰티풀 라이프’ 사업은 최근 지원 범위를 일반 청년(여성)으로 확장했다. 코로나19로 단절과 고립을 경험하는 사람이 늘면서 물리적·경제적 여건을 개선하는 기존의 사업과 함께 심리와 정서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병행하고 있다.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요?

“‘여성’이라는 키워드입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여성이 아니라 ‘여성의 삶’이죠. 여성의 삶에는 학업, 진로, 연애, 결혼, 육아, 돌봄 등이 모두 담겨 있어요. 여성들이 행복하려면 결국 남성들과의 조화로운 삶이 전제돼야 합니다. 여성을 넘어 남성, 그리고 다양한 젠더 이슈까지 품으며 세상을 아름답고 조화롭게 만드는 것. 앞으로 40년, 재단의 비전입니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기자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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