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일(금)
직원 평균 나이 64.9세… ‘시니어계의 삼성’이라 불리는 회사

[이상한 사장님] 정은성 에버영코리아 대표

‘정년 100세’를 공표한 IT 기업이 있다. 직원 평균 나이는 64.9세. ‘에버영코리아’는 시니어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사회적기업이다. 서울 종로구 신축빌딩 6층에 위치한 사무실에서는 백발(白髮)의 직원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업무를 본다. 인터넷상의 부적절한 정보와 콘텐츠를 모니터링해 삭제하고 이용자들이 최적화된 이미지를 볼 수 있도록 튜닝하는 일이다.

직원 280여명은 대부분 60~70대 고령자다. 평균 근속 연수는 6년 2개월. 2013년 법인 설립 후 이듬해 첫 공채를 진행했는데 그때 뽑은 30명 중에 25명이 여전히 근속 중이다. ‘단기 알바’ 성격의 시니어 일자리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다.

지난 11일 만난 정은성(61) 에버영코리아 대표는 “처음 회사를 만들 때는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시니어 직원들이 IT 업무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있었다. 우려와 달리 회사는 성장을 거듭했고 매년 안정적인 매출이 발생하고 있다. 정은성 대표는 “우리 사회가 노인의 능력을 실제보다 훨씬 낮게 평가하고 있다”면서 “제대로 된 시니어 일자리가 나오기 어려운 이유”라고 했다.

2013년 설립된 에버영코리아는 시니어를 고용하는 'IT 기업'이다. 직원 평균 나이는 64.9세. 지난 11일 만난 정은성 에버영코리아 대표는 "직원들의 나이가 점점 많아지면서 고민이 늘고 있다"면서 "직원의 체력과 상황에 맞게 업무 강도와 시간을 줄여가며 전 생애에 걸쳐 오래 일하게 하는 방법을 설계하고 있다"고 했다. /이경호 C영상미디어 기자
2013년 설립된 에버영코리아는 시니어를 고용하는 ‘IT 기업’이다. 직원 평균 나이는 64.9세. 지난 11일 만난 정은성 에버영코리아 대표는 “직원들의 나이가 점점 많아지면서 고민이 늘고 있다”면서 “직원의 체력과 상황에 맞게 업무 강도와 시간을 줄여가며 전 생애에 걸쳐 오래 일하게 하는 방법을 설계하고 있다”고 했다. /이경호 C영상미디어 기자

서류-필기-실기-면접… 격식 갖춰 뽑는 이유

―구직자들 사이에서는 ‘시니어계의 삼성’으로 불린다고 들었습니다.

“근무 환경도 좋고 오래 일할 수 있다는 게 소문이 나서 채용 공고를 내면 경쟁률이 높은 편이에요. 80대 1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시니어들에겐 ‘삼성’ 이상이라고도 할 수 있죠. 실제로 삼성전자에서 퇴직하고 오신 분도 있고요(웃음). 하지만 채용 과정에서는 소위 말하는 ‘스펙’을 전혀 안 봅니다. 나이, 학력, 성 차별을 없애자는 게 회사를 시작한 이유였으니까요.”

―스펙을 안 보면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뽑나요.

“지원자 중에 대기업 대표이사 출신도 있었고, 해외 명문대 박사 출신도 있었어요. 서울대는 경제학과, 법학과, 화학과 등 학과별로 다 만나본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엄청난 경력을 가진 지원자가 최종 합격이 안 되는 경우가 은근히 많아요.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예전에 어떤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함께 일하는 동료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요. 일의 가치를 아는 사람, 주변 사람과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사람들을 뽑는 편이에요. 일이라는 게 결국 같이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하는 거잖아요. 조화롭게 잘 지내면서 요령있게 배우고 습득하는 사람들이 업무 성과도 더 좋아요.”

―채용 전형이 서류-필기-실기-면접까지 4단계나 되던데요.

“시니어 직원을 뽑을 때 보통은 알바 뽑듯이 서류와 면접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회사는 단계를 다 거치게 하고 있어요. 나이가 든다는 것의 가장 큰 어려움은 자신감을 잃게 된다는 겁니다. 시니어에게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을 넘어 자존심과 자존감을 회복하는 수단이기도 해요. 4단계의 전형을 모두 통과하고 합격한 지원자들은 마음가짐이 달라요. 그 어려운 과정을 거쳐 합격했다는 것에 대해 프라이드도 생기고 일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집니다.”

―여성 직원 비율도 높다고 들었어요.

“초창기에는 남녀 비율이 6대4 정도였고, 지금은 여성 비율이 더 높아져서 5.5대4.5 정도 됩니다. 한번은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여성이 입사 시험을 보러 왔는데 실기에서 떨어졌어요. 오락실에 있는 ‘총쏘기 게임’ 수준의 실기 시험인데 일종의 순발력 테스트 같은 거죠. 반면 학력도 경력도 없는 여성들이 여러 전형을 뚫고 최종 합격하는 경우도 많아요. 살림과 육아를 하며 생활 속에서 얻은 순발력, 판단력, 융통성이 실기 시험이나 면접에서 강점으로 작용하는 거예요. 60세가 넘어서 얻은 첫 직장. 개인의 인생에서는 엄청난 의미가 있죠.”

―시니어가 IT 업무를 한다는 게 놀랍긴 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에버영코리아의 주요 파트너사는 네이버와 현대카드예요. 가장 큰 매출은 네이버에서 발생합니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지도 관련 서비스를 주로 했어요. 지도 거리뷰에서 사람들의 얼굴이나 휴대폰 번호, 차량 번호 등 개인 식별 정보가 노출되는 것을 찾아내 블러링하는 작업이죠. 기술이 발전하면서 최근에는 AI가 블러링을 할 수 있게 됐어요. 물론 아직 사람보다는 못하지만 블러링 업무는 점점 AI 쪽으로 넘어가는 분위기예요. 요즘에는 모니터링 업무가 가장 많아요. 예를 들어 카페나 블로그, 지식인 등에 부적절한 게시물이나 광고, 음란물 등이 올라올 때 실시간으로 찾아내서 차단하는 하는 일을 합니다. 방송 DB 관리 업무도 해요. 방송 프로그램의 줄거리 등을 네이버 스타일에 맞게 정리하는 작업이죠.”

정은성 에버영코리아 대표가 한 직원과 업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에버영코리아는 280여 명 직원 대부분이 60~70대로 구직자들 사이에서는 '시니어계의 삼성'이라 불린다. /이경호 C영상미디어 기자
정은성 에버영코리아 대표가 한 직원과 업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에버영코리아는 280여 명 직원 대부분이 60~70대로 구직자들 사이에서는 ‘시니어계의 삼성’이라 불린다. /이경호 C영상미디어 기자

평등한 조직 문화… 출입구 앞이 사장님 자리

―시니어 직원들은 급여를 어느 정도 받나요.

“직원들은 하루 최대 4시간씩 일해요. 네이버 일이 24시간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 일이라 초창기에는 풀타임으로 7시간 반씩 일했고, 심야 파트도 있었어요. 회사 매출에는 도움이 됐지만 직원들의 건강에는 안 좋더라고요. 그 후에도 여러가지 근무 형태 실험을 해봤어요.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식으로도 해봤고, 하루 하고 이틀 쉬는 식으로도 해봤는데, 매일 하루 4시간 일하는 게 가장 적당하다는 결론이었어요. 이렇게 일하면 월 100만원 정도를 받습니다.”

―하이힐을 신은 여성 직원이 있어서 나이를 물어 봤는데 너무 젊어 보여서 깜짝 놀랐어요. 52년생, 올해로 일흔 살이라고요.

“60대에 입사해서 70대가 된 분들이 꽤 많죠. 그런데 입사했을 때보다 다들 훨씬 젊어졌어요. 외모도 표정도 달라졌어요. 스타일도 좋아졌고요. 직원들 스스로는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저는 처음 면접 때부터 쭉 봐왔으니 잘 알죠. 나이를 더 먹었는데도 전보다 건강이 나빠졌다는 분이 거의 없어요. 매일 제시간에 일어나 씻고 옷을 갖춰 입고 출근하는 모든 행위가 운동이잖아요.”

―회사에 회의실, 탕비실, 라운지, 심지어 ‘요가실’까지 있는데 대표 방이 없네요.

“우리 회사의 핵심 가치가 ‘평등’ ‘발전’’공유’예요. 평등하다는 것은 평등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어색한 일이죠. 평등하지 않아야 효율성이 높을 거라는 착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래서 말로만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물리적으로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대표실을 없앴어요. 제 자리가 있긴 있어요. 경영지원실 들어가서 입구에 있는 자리예요. 회사에서 흔히 막내들이 앉는 자리죠. 책상, 의자, 컴퓨터, 명패 모두 직원들과 똑같은 걸 씁니다.”

―월급도 받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처음 5년간은 안 받았어요.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랬는데 나중에 지인이 그렇게 하는 건 아니라고 따끔하게 한마디 하더라고요. 그게 직원들에게 오히려 불안감을 줄 수 있다고요. 월급을 받지 않으니 저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회사를 떠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한다는 이야기였어요. 놀러 나오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요.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어서 이제는 월급을 조금씩 책정해서 받고 있어요.”

좋은 회사란? 구성원들에게 ‘좋은 삶’을 제공하는 회사

정은성 대표의 이력은 독특하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5년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통치사료비서관’으로 일했다. 해외에서 국제관계학, 정치학, 행정학을 공부하고 한국에 들어와 우연한 기회로 국회에 발을 들였고 청와대까지 가게 됐다. 대선 과정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도왔던 게 인연이 됐다고 했다. 청와대를 나온 이후에는 교육 회사를 차려 기업가로 살았다.

―사회적기업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정치도 하고 기업도 하면서 바쁘게 살다 보니 50세를 넘겼어요. ‘이제부터라도 세상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비슷한 고민을 하던 지인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이야기를 나눴어요. 토론 끝에 나온 결론이 ‘나이 차별 없이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보자’는 거였어요. 시니어 일자리를 고민하던 네이버가 이 프로젝트에 동참했어요. 당시 네이버는 거리뷰 블러링 작업을 중국 회사에 맡기고 있었는데, 그걸 시니어 일자리로 만들어 보자고 뜻을 모았죠. 처음에는 일을 조금 받아서 시니어들에게 맡겨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해서 나중에는 중국 일을 우리가 다 가져오게 됐어요.”

―‘정년 100세’는 언제 공표한 건가요.

“사실 우리 회사는 정년이 없어요. 직원들에게 정년이 없다고 하니 와닿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어느 날 직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우리 회사 정년은 100세다’라고 이야기했는데 갑자기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때부터 100세가 공식화됐어요. 물론 100세가 넘어도 건강이 허락한다면 하고 싶을 때까지 계속 일할 수 있습니다.”

―100세에도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고민하고 있어요. 직원들 나이가 점점 많아지고 있어서요. 직원들의 체력과 상황에 맞는 저강도 업무를 계속 개발해야 해요. 하루 4시간을 할 수 없다면 하루 1시간만 일하게 하면 됩니다. 나중에는 일주일에 한 번이 될 수도 있겠죠. 몇 년 전부터 회사 차원에서 여러 가지 사회공헌 사업을 시도해본 것도 일종의 일자리 실험이었어요. 시니어 직원들에게 ‘초등 코딩 교육’을 맡겨보기도 했고, 또래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교육도 맡겨봤어요. 어려움도 있었지만 가능성을 확인했고요.”

―대표님이 생각하는 ‘좋은 회사’란 어떤 회사인가요.

“결국은 구성원들에게 ‘좋은 삶’을 제공하는 곳이 좋은 회사라는 생각이 들어요. 직장 다닐 때만 월급 주고 잘해주는 회사가 아니라, 직장 나간 뒤에도 행복하게 살게 해줘야죠. 시니어 직원들이 전 생애에 걸쳐 직업을 갖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에버영코리아를 설립하면서 정은성 대표는 ‘시니어 직원 1000명을 고용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어떤 기업 하나가 1000명을 고용한다고 해서 시니어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좋은 모델’을 만드는 게 목표다. 남들이 따라 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을 만들어 널리 퍼뜨리는 게 세상을 바꾸는 방법이자 ‘사회혁신’이라고 그는 말했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기자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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